신규 교감의 포부 / 백현
교사로 서른 몇 번의 봄을 맞이했다. 학급의 학생 파악하랴, 업무 계획 세우랴, 정해진 기일 안에 끝내야 하는 일이 쏟아져 조급한 마음으로 동동거리며 보낸 3월이었다. 어떤 3월도 쉽거나 가볍지 않았던 것 같다. 3월만 잘 버티면 큰 고개는 넘은 셈이고, 1년은 절로 간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곤 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새학년 집중준비기간’의 운영으로 3월의 일이 조금 덜어지긴 했으나, 신학기의 긴장과 무게는 여전하다.
올해 3월은 내게 서른 몇 번째가 아닌 첫 번째 봄이다. 교감의 일이 교사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했고, 좋은 교감이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모셨던 몇 분의 교감 선생님이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음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담대하였는지, 패기가 꺾이지 않고 뜻을 품고 끝까지 갈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교사들이 하는 학교의 업무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의 답은 ‘내 업무’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남이 맡아서 하는 일은 강 건너 불로 보고, 내 것은 크고 자잘한 것을 아니까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하게 나누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란다. 12월 하순에 전 교사가 모인 교무협의회에서 교무업무 분장을 협의하였다. 누가 무엇을 맡게 될지 모르지만, 무게가 비슷하게 그러나 편의성과 효율성을 따져 가며 몇 번의 모임 끝에 분장표를 완성하였다.
누군가에게는 미리 자신이 맡을 그것을 생각하며 되도록 가볍게 만들려는 속셈이 보였다. 학급이 감축되어서 부장 교사 자리가 2명, 교사도 1명이 줄어드는 상황이라 업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도 교사들이 가장 가볍다고 생각하는 그 업무에서도 하나를 떼어 내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니 밉기도 했다.
여러 선생님에게 전화를 몇 번이나 돌린 끝에 겨우 새학년의 교무업무 분장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집중준비기간 연수 첫날에 발표하였는데, 오후 회의에서 선생님 한 분이 자기가 너무 겁 없이 어려운 것을 맡은 것 같다고 특정 사업 두 개를 떼어달라고 했다. 3, 4월 병가를 내는 선생님도 자신의 것 중에서 두 개를 빼 달라고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렸단다. 업무와 담임을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도 다른 교사와 통째로 바꾸고 싶다는 말도 들려왔다. 이런 떠넘기기에 몇 번이나 다시 설득하고 조정해야 했다. 교사의 위엄이 다 사라진 그 모습이 슬펐다.
우리 학교는 여섯 분의 선생님이 이학년 담임만을 희망했다. 두 학급을 못 만들어 한 학급이 된 일학년은 학생수가 27명이라 많아서, 학급당 16명인 것은 2학년과 같으나 고입 원서를 쓰고 졸업 앨범을 만들어야 하는 삼학년은 부담스러워서 그랬단다. 작년에 삼학년을 담임했던 선생님이 일이 많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 데다가, 내년 삼학년 학생이 다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단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나니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인사 원칙에 따라 전입 연도, 급여의 호봉을 따져 삼학년으로 밀리고, 올해에 전입해 온 선생님이 일학년을 맡게 되었다.
교감은 2월과 3월에 교감의 일 50%를 하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조각’이라는 것, 부장 교사와 담임을 임명하고 교무업무 분장을 완성한 것이 교감으로서 한 일 중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나 혼자 힘으로 한 것도 아니지만 입이 쓰게 힘들었다. 누가 나를 공격한 것도 아닌데 마음 여기저기에 내상을 많이 입은 느낌이다.
그러나 며칠만 쉬다가 다시 일어나야지. 애써 만든 이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중간에서 신경을 써서 관리하고 지원해야지. 힘든 일에 선생님 혼자 세워 두지는 않겠다고, 선생님이 필요로 할 때는 늘 돕겠다고 했던 내말을 지켜내는 위엄있는 교감이 되어야지.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