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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어줌이 되는 사역자
2018. 11. 25(주일낮예배) 요한복음 20:19-22
여러분은 너무 중요해서 놓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헨리 나우웬이 쓴 열린 손으로(With Open Hands) 라는 책 서론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괴성을 지르며 난폭한 행동을 하는 그 할머니로 인하여 병원의 관계자들은 모두 힘들어 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를 치료하는 의사가 하루는 할머니의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진찰을 받기 위하여 진료실로 들어오는 할머니는 언제나 오른손을 꽉 쥐고 있었다. 아니 의사는 할머니가 오른손을 펼친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의사는 할머니에게 오른손을 펼쳐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 손을 펼치지 않고 오히려 더 힘있게 주먹을 쥐는 것이었다. 그래서 2명의 간호사를 통하여 억지로 오른손을 펼치게 하였다. 할머니는 오른손 손가락이 하나씩 펼쳐질 때마다 강력하게 저항하였지만, 결국 마지막 손가락까지 다 펼쳐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손가락이 펼쳐지는 순간에 바닥에 땡그랑하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녹이 쓴 10센트짜리 동전을 꽉 거머쥐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할머니는 10센트의 동전을 그렇게 거머쥐고 있었겠는가? 할머니는 그 동전을 자신과 동일화하였기 때문이다. 그 동전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한 할머니는 동전을 꽉 거머쥐고, 동전을 지키기 위하여 두려운 눈빛을 하고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할머니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내 손에 들어온 것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옷, 신발, 그릇, 책이 정말 많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정리하면 집도 넓게 사용할 수 있을텐데 아까와서 그냥 거머쥐고 있으면서 집이 좁아서 불편하게 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저에게도 있다. 저는 일년에 책꽂이에서 꺼내지도 않는 책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책꽂이의 책은 먼지가 자욱하고, 새로산 책들은 책꽂이 바깥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면 책을 좀 정리하면 되는데, 가난할 때 그 책을 샀기 때문에 아까와서 못버린다. 그리고 또 책을 버리고 난 후에 혹시 설교할 때 그 책의 내용이 필요할 것같아서 버릴 수가 없다. 아깝고 혹시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책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을 정리하지 못하는 우리가 정말 중요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넘겨졌다는 표현과 상관되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12명의 제자를 따로 불러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했다(마 20:18-19)고 말씀하였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졌기 때문에 이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 때도 넘겨졌다는 말이 나온다.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리고 넘겨주었다는 다른 상황도 읽어보기 바란다.
(막 15: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눅 24: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님은 가룟유다에 의하여 은 30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졌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어서 예수님은 로마법정에서 재판을받아 십자가 언도를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판결에 넘겨 주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넘겨주었다는 말과 연관되어져 있다.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님의 3대 사역을 알려주었다. 예수님은 넘겨지기 전에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시는 사역을 하였다. 그래서 서기관과 다른 놀라운 말씀을 가르쳤고, 또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전파함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참된 믿음의 눈을 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병자와 약한 자들을 고쳐주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가르치는 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분, 그리고 자신들의 연약함을 고쳐주는 분으로 인식되어졌다.
이것이 인식된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런데 넘져줌이 된 예수님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인식된 그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고, 침뱉음과 멸시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당하였다.
왜 예수님이 넘겨지심을 당해야 했는가? 헨리 나우웬은 예일대와 하버드대학의 교수였다. 40여권의 책을 써서 유명한 강사가 된 헨리 나우웬은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또 명예도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54살의 나이에 캐나다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로 가서 정신지체 장애아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거기서 헨리 나우웬은 대학생들이 듣는 그런 설교와 강의를 하지 못하고, 늘 기본적인 내용만 가르쳐야 했다.
이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 일었겠는가? 그런데 헨리 나우웬을 더 답답하게 하는 일을 책을 읽어줄 때였다. 헨리 나우웬이 책을 읽어줄 때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헨리나우웬의 깊이 있는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또 책을 읽어줘도 늘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사람이 있었던 현장이었다.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년 동안 데이브레이크 공동체 생활을 벗어나지 않았다.
왜 헨리 나우웬은 데이브레이크 공동체를 벗어나지 않았겠는가? 대학교수이고 명강사였던 헨리 나우웬은 우울증으로 고통하였다. 그랬던 헨리 나우웬이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는 존이라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있었는데, 존은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집은 어디예요? 오늘 밤에는 집에 있을꺼예요 하고 물었다. 그러므로 헨리 나우웬도 존에게 매일같이 그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존에게 그 질문을 받으면서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학교수와 유명강사직을 내려놓으면 헨리 나우웬은 더 이상 헨리 나우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헨리 나우웬은 더 큰 자유와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예수님되심은 3대사역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전파하심과 고치심의 사역으로 나오는 그 많은 사람이 참된 구원의 길에 이르는 방법은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참된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이 구원의 문을 열기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넘겨줌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창세기 4장을 보면 동생을 죽인 가인은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가인을 위하여 이마에 표를 하여주시고,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더하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두려워 떨던 가인은 이마의 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믿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인은 에덴의 동쪽에 에녹성을 짓고, 그 성안으로 들어갔다. 유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인은 성을 짓고 그 성안으로 들어가 성이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 줄 것이다는 믿음과 기대로 살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가인의 이러한 모습이 오늘 본문에도 나타난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안식후 첫날 저녁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그들은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먼저 본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의 아침에 여인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달려가 예수님의 빈무덤을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서 눈물을 흘리던 막달라 마리아가 환한 얼굴로 와서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는 증언을 들었다. 근심과 눈물의 마리아가 기쁨과 환희에 찬 모습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는데,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문을 굳게 닫고 있었던 것이다.
왜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닫고 있었겠는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이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랬던 제자들은 빈무덤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에 찬 얼굴의 고백을 들었지만 그들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한 방법으로 닫힌 문을 꽉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의 상태이다. 제자들은 문을 굳게 닫고 있으면서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 떨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닫힌 문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하여 줄 것이다는 생각에 문을 닫고 있지만, 실상 제자들의 마음에는 그 문이 완전한 안전지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안타깝게 제자들은 그 문고리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 윤은성목사님이 나침반이라는 곳에 나와서 선택이 두려울 때라는 주제로 말씀하였다. 그 강의에서 목사님은 신앙이 좋다는 사람은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했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어떡해 하지?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신앙좋은 사람들에게 윤은성목사님은 요한1서 4:18의 말씀을 전했다.
(요 1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는가? 윤은성목사님은 이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네비게이션을 이야기 한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누르면 지도가 펼쳐진다. 그리고 차량이 움직이면 그때부터 네비게이션은 음성과 지도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내가 움직일 때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씩 갈림길에서 네비게이션이 방향을 제시하는데, 운전자가 잘못 인식하여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있다. 그러면 네비게이션은 화를 내면서 당신은 운전이 미숙하므로 핸들을 내려 놓으세요 하고 말하거나, 내 말을 듣지 않으려면 네비게이션을 끄세요 하고 말하지 않는다. 띵띵띵띵 하는 소리와 함께 네비게이션은 재탐색 중입니다 하는 말을 한다. 그리고 잘못된 상태에서 재탐색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여 준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네비게이션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인식하여 실수하고 실패하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책망하지 않고, 띵띵띵띵 하는 소리와 함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좋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을 믿는 사람은 비록 완전하지 못하여 실수하고, 또 실패할 수도 있지만, 두려움이 아니라,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네비게이션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확신하는가? 이제 오늘의 본문을 다시 보시기 바란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두려워 닫힌 문안에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다. 뭐라고 말씀하는지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요 20:21-22)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대제사장의 거짓과 선동으로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이 평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이 얼마나 큰 고난의 십자가를 졌는지 제자들은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제자들은 두려워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제자들이었다면 예수님의 보내심에 순종하여 나갈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살 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정말 쉽게 살 빼는 방법인데 이것을 배우고 싶은 분을 저를 따라해 보기 바란다.
먼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라.
그리고 앞을 본 후에 오른쪽으로 돌려라.
이 행동이 익숙할 수 있도록 연속 3번 반복해 보라.
살 빼는 연습은 끝났다. 이제부터 누군가가 음식을 권할 때 이 동작을 반복하라. 결국 인터넷은 먹지 않으면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또 먹고 싶어하는 식탐을 이기지 못해서 늘 다이어트에 실패한다.
이렇게 의지박약인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할 용기가 없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서 생령이 되게 하신 것처럼 세상 것을 붙잡고 벌벌 떨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성령의 바람을 불어주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의 사람이 되는 은혜를 주었는가? 제자들은 문고리를 박차고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문안에서 두려워 떨고만 있다면 제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뛰어나갈 때에 사도행전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3천명, 5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사마리아 땅에도 복음으로 기쁨이 충만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에게 그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히 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을 동일화시키면서 꽉 거머쥐고 있던 것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귀한 일군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