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14)
엠마오
(Emmaus)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당하신 이후 제자들은 실망하여 갈릴래아로 떠나든지(요한 21장),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카 복음서는 클레오파스(Cleopas)와 다른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이 엠마오 이야기(루카 24,13-35)는 복음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본문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엠마오는 오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큰 관심의 대상이었고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부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제 우리는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라는 마을에 대하여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 신약성경의 엠마오
루카 24,13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한 스타디온이 약 185m이므로, “예순 스타디온”은 약 11km가 된다. 그런데 이 구절의 다른 필사본에 의하면 “백육십 스타디온”, 즉 약 29.6km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이 엠마오가 정확하게 어느 장소를 가리키는지에 대한 매우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고, 논란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 익명의 17세기 이탈리아 화가의 "엠마오에서의 만찬"
("Supper at Emmaus", by an anonymous 17th century Italian painter)
■ 엠마오로 추정되는 곳
현재까지 엠마로오 추정되는 곳은 예루살렘 주변의 다양한 장소들인데, 대표적으로 암바스(Amwas), 엘 쿠베이베(El-Qubeibe), 아부 고쉬(Abu Ghosh), 칼로니에(Qolonieh) 등이 있다.
▲ 엠마오로 추정되는 네 곳으로 가는 길 (Roads to four possible locations of Emmaus)
(1) 암바스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를 위한 첫 번째 추정지는 암바스(Amwas)이다. 암바스를 엠마오로 추정하는 이유는 그 이름 때문이다. 왜냐하면 암바스는 엠마오의 아랍식 발음이기 때문이다. 고대 문헌 중에는 예로니모와 에우세비오 등의 기록이 이 암바스를 엠마오로 간주하였다. 암바스는 예루살렘에서 3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예루살렘에서 텔 아비브(Tel Aviv)로 가는 길 가에 있다. 그런데 암바스는 현재 폐허의 상태이고, 오늘날의 행정 지도로는 라트룬(Latrun) 근처이다. 20세기 초에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의 학자들에 의해 암바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 비잔틴 시대의 폐허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사마리아 인의 회당도 발견되었다. 십자군 시대의 성당 아래에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 있는데, 그 아래에는 전통적으로 클레오파스의 집으로 여긴 고대 가옥이 있다.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인상적인데, 그것은 클레오파스 시대 보다 더 후대인 기원후 3세기의 것이다.
▲ 엠마오(암바스) 비잔틴 시대의 성당 유적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암바스는 작은 시골 마을이라기보다는 규모가 큰 도시였다. 요세푸스의 『유다 고대사』 14권 275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 말경에 엠마오(Emmaus)는 카시우스(Cassius)에 의해 고프나(Gophna), 릿다(Lydda), 탐나(Thamna)와 함께 도시 전체가 노예 상태로 전락했다. 그 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는 암바스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221년에 로마 황제 엘라가발루스(Elagabalus)는 마을을 폴리스(polis)로 승격시켰고, 그리스어로 “승리의 도시”라는 의미인 니코폴리스(Nicopolis)로 개명하였다. 이 이름은 유명한 마다바 지도(Madaba map)에 나온다. 그런데 암바스를 엠마오와 동일시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예루살렘과의 거리이다. 비록 예루살렘과 엠마오 사이의 거리를 “백육십 스타디온”으로 표기하는 일부 사본이 있지만, 31km 떨어진 암바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클레오파스와 동료가 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 그들은 하루 동안 거의 60km를 걷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현재의 암바스가 엠마오일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다.
(2) 엘 쿠베이베
엘 쿠베이베(El-Qubeibe)고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십자군 시대 말기부터 순례자들이 엘 쿠베이베를 찾기 시작하였고 이곳을 엠마오로 여겼다. 예루살렘과의 거리는 루카 복음서가 말하는 “예순 스타디온”에 부합한다. 사실 15세기 이전에 엘 쿠베이베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1500년대에는 로마 시대의 시골 길과 마을의 흔적이 발견되고,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 발굴되어 많은 순례자들이 엘 쿠베이베에 왔다. 프란치스코 수도자들은 1867년에 이곳에 정착하였다. 기념 성당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20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이 성당은 클레오파스의 집이라고 여겨졌던 곳에 세워진 성당의 폐허 위에 건축되었다. 이 기념 성당은 1901년 10월 12일에 밀라노 대교구의 안드레아 페라리(Andrea Ferrari) 추기경에 의해 축성되었다. 오늘날에도 매년 부활절 첫 월요일과 클레오파스 성인 축일(9월 25일)에 장엄 미사가 봉헌된다. 그러나 엘 쿠베이베는 역사적으로 엠마오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그리고 이곳에 클레오파스의 집이 있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
▲ 엠마오(엘 쿠베이베) 클레오파스 기념 성당
▲ 엠마오(엘 쿠베이베) 클레오파스 성인 축일(9월 25일) 장엄 미사
(3) 아부 고쉬
또 다른 엠마오의 추정지는 아부 고쉬(Abu Ghosh)이다. 이곳은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구약 성경에는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 사이의 경계인 “키르얏 여아림”으로 불린다. 이곳은 계약 궤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1사무 6,21-7,2; 2사무 6장) 전통적으로 이 마을은 카리엣 엘 에나브(Qaryet el-Enab)로 불렸는데, 이 이름은 키리앗 에아림(Qiryat Yearim)의 아랍식 명칭이다. 사실 아부 고쉬는 19세기 초 이 마을 근처에 야영지를 차렸던 아랍 산적 두목의 이름이다. 십자군 시대에 아부 고쉬를 엠마오로 여겼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발견된 대상숙소(caravanserai) 때문이다. 이것은 여행자들이 쉬는 곳이었는데, 중세기의 순례자들은 이곳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와 빵을 함께 나눈 곳이라고 생각하였다. 1140년에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오늘날 이곳에는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다.
▲ 엠마오(아부 고쉬) 기념 성당
(4) 칼로니에
칼로니에는 구약 성경에서 “모차”(여호 18,26)로 언급된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6km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이다.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유다인들의 무장 봉기를 진압한 후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 마을은 라틴어로 아마사라고 불렸기 때문에, 복음서의 엠마오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 이곳은 순례자들보다는 고고학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곳이다.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엠마우스
(EMMAUS)
https://youtu.be/KXuOi63HjYE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