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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가 가져야 하는 고민
2019. 11. 3(주일낮예배) 요한복음 3:1-21(3)
2005년 머리에 꽃꽂은 사람을 보면 우리는 군관동무 꽃꽂았습네다고 하였다. 임하룡이 머리에 꽃을 꽂고 있었던 강혜정을 두고 한 말인데 혹시 이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는가? 박광현감독의 웰 컴 투 동막골에는 감동도 있었지만, 코믹영화답게 재미난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 하나가 비행기 추락으로 동막골에 들어온 미군의 에피소드이다. 낯선 외국인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이장은 영어교과서를 가지고 미군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이장이 교과서를 가지고 읽는데도 둘은 대화가 되지 않자 사람들이 뭐가 잘 안돼? 하고 묻는다. 그때 이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하와유 이러면 저쪽에서 파인 땡큐 앤드유? 하면 제가 아임 파인 이래야 하나의 뭔가가 만들어 지는건데..
혹시 그 장면 기억하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세상사는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만약 교과서대로 이루어진다면 고민없이 배운대로 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배운대로 하면 저쪽에서 오는 반응이 달라서 우리는 고민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배운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저와 여러분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가?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죽음이라는 신작을 발표한 후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그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대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기 때문에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떨까?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질수록 내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이 옳지 않는가? 과거 우리가 가난한 시절에는 하루 삼시세끼 밥만 먹고 살아도 행복하였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풍요로운 시대에는 밥만 먹는다고 행복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제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또 우리가 죽고 난 뒤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고민을 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때에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것이 운이 좋은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운이 좋은 고민을 하고 있는가? 요한복음 3장을 보면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당신이 표적을 행하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오셨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3:3에 나온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예수다라고 말씀하던지 아니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싶으면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예수님은 거듭남을 말씀하고 있었겠는가?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유대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제국에 무너진 유다는 바벨론의 영향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바벨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제국이 되었을 때는 유다는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어야 했다. 그랬던 유다는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헬라가 제국이 되었을 때 헬라의 속국이 되었고, 헬라가 무너지고 로마가 제국이 되었을 때 유다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제국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세력 앞에 유다는 속국이 되어서 많은 영향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힘든 삶이었겠는가? 조병호박사의 성경과 5대제국이라는 책을 보면 각 제국은 통치경영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바벨론의 경영키워드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똑똑하고 유능한 청년들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와서 그들을 교육시켜서 바벨론화 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관료로 세워서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다. 이 정책에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되었던 인물이 바로 다니엘과 3명의 친구이다.
그리고 바벨론 이후에 형성된 페르시아의 경영키워드는 숫자이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페르시아는 그 군사력의 숫자로 제국을 통치하였다. 그런데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더에게 패비하면서 페르시아는 무너진다.
그리고 세워진 헬라의 경영키워드는 융합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에 제국은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철학과 동방의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을 널리 퍼뜨려 제국을 영원하게 하려 하였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키워드는 관용이었다. 공개적인 토론을 통하여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관용인데, 그 관용의 자리에 노예는 제외되었다. 그러므로 로마는 관용이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유익만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제국이 가진 경영의 키워드이다. 그런데 유다는 이런 경영에 따라서 이리저리 휘둘려야 했다. 그래서 바벨론이 통치할 때는 유능한 인재를 바벨론의 포로로 보내야 했고, 페르시아가 통치할 때는 막강한 군사력앞에 벌벌 떨어야 했다. 그리고 헬라의 헬레니즘 문명앞에 유대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은 싸워야 했고, 로마의 관용정치앞에 유다는 억압받는 들러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다가 제국들에 의하여 휘둘렸을 때 니고데모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유다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기대였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로 예수님을 보았던 니고데모는 저 분이 메시야가 맞을까? 하고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임할 것입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니고데모가 거듭난다는 말의 뜻을 알았겠는가? 니고데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떻게 어머니 모태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3:16이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거듭난다는 말의 뜻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니고데모에게 구약의 사건을 말씀하시고, 또 요한복음 3:16의 복음의 핵심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자세하게 설명했을 때 니고데모는 변화되었겠는가? 요한복음 7장을 읽어보면 니고데모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사람을 시켜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으러 간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그냥 왔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왜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에 지금까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저주할 때 그 말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였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간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여 장례를 치룰 때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장례를 치룬 사람이 니고데모였다. 그래서 요한복음 19:37을 보면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썩은 것을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니고데모가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니고데모는 사람의 눈을 피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다. 그랬던 니고데모는 이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을 변론하고, 예수님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수습하는 담대함을 가졌던 것이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었겠는가? 40대 아재개그 중에 추장보다 더 높은 것 라는 유머가 있다. 제가 조금 각색하면 한 부족을 책임지는 추장은 그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부족에서 가장 높은 것은 추장이었다. 그런데 추장보다 더 높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고추장이다. 그런데 고추장보다 더 높은 것이 초고추장이다. 그리고 초고추장보다 더 높은 것이 있는데 태양초고추장이다.
왜 이런 유머가 만들어 졌겠는가? 사람들의 관심이 누가 더 높은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비웃으며 하는 말이 추장은 고추장보다 낮다고 말하면서 깔깔깔 웃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최고 관심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김동호목사님이 지난 4월 고난주간에 주어진 기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그 설교 때 목사님은 승동교회에서 사역할 때 안수집사님 한 분을 소개하였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자란 집사님은 가난이 너무 싫어서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집사님은 매일 골프가방에 돈을 가득채울 만큼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때는 돈을 헤라리는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녁에 퇴근하여 돈을 헤아리다 잠이 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게 된 집사님은 돈이면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큰 회사와 함께 사업을 벌였다가 그것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리고 집사님은 경제사범으로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 목사님이 성경책 들고 와서 아들 면회를 하였다. 집사님은 아버지가 주시는 성경책 받아들고 그 감옥에서 회개하였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온 후에 정말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교회를 섬기는데, 목사님에게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목사님이 교회에 내는 십일조를 보면 엄청나게 좋은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1,200cc 낡은 중고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사님 집에 심방을 갔는데 10평짜리 부엌과 거실이 하나로 된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보통 십일조를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는데, 집사님은 십일조에 비하여 너무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사님이 왜 이렇게 사는지?를 물었더니 그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빚갚는 거 참 재미있어요. 저는 요즘 빚갚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하였다. 집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업하다 부도맞아서 진 빚을 지금도 갚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을 찾아가서 돈을 갚고, 어떤 사람은 이제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끝까지 찾아가서 돈을 갚고 있다는 것이다.
왜 집사님이 그렇게 살겠는가? 제가 알기로 경제사범으로 감옥에 갔다오면 그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집사님은 자기 때문에 재산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찾아다니며 갚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 때문이었다. 목사 아들이 사업부도 내고 내 돈 다 떼먹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이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끝까지 찾아가서 빚을 다 갚으려 했던 것이다.
멋있지 않는가? 비록 10평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고, 또 1,200cc 낡은 중고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이 집사님이 멋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와 고민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편안하게 살려는 고민을 하며 사는데, 이 집사님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일에 고민할 수 있었던 이 집사님은 세상사람이 봐도 예수쟁이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멋진 예수쟁이가 되고 있는가? 고린도전서12장을 읽어보면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병고치는 은사, 능력행하는 은사,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다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김집사님에게 가면 기도해서 병이 나았다. 그리고 믿음이 없어 고통하는 사람은 박목사님에게 오면 말씀으로 그 믿음 없음을 고칠 수 있었고, 기도는 최권사님에게 가면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은사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큰 유익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분열했다는 것이다.
왜 고린도교회가 분열된 모습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은사를 하나님의 나라와 성도의 성도됨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과 자기 무리만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선물이 오히려 교회를 분열케 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러면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가? 하루 6만 5천 캔을 생산하는 조제분유 전문 대형공장을 1년에 딱 두 번 세우고 12명이 먹는 12종의 특수분유 1만 4천 캔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이 특수분유는 선천성대사이상이라는 희귀한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선천성대사이상이란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런데 몸에 단백질 속에 있는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단백질을 먹으면 그 부산물이 뇌에 쌓여서 뇌손상을 입어서 기형아가 되던지 심하면 사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생아가 태어나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어머니 모유와 분유밖에 없는데 여기에는 단백질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회사는 일년에 두 번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깨끗하게 기계를 청소 한 후에 아미노산이 없는 분유를 만들어서 아주 싼 값에 팔았다.
여러분 이 회사의 이름을 아는가? 바로 매일유업이다. 매일유업의 고 김복용회장(1920-2006)은 정부가 못하니까 우리가 해야 한다며 1999년 희귀질환 아이 3명을 위하여 특수분유 개발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경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 특수분유 생산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당연구원들이 매년 환아모임에 직접 참여하여 아이들이 원하는 제품을 추가로 만들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연구원의 말을 들어보면 환아를 만나고 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한다. 연구원들은 환아를 만나고 나면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뿌듯한지 그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복용 회장이 왜 이런 일을 하였겠는가? 김복용회장은 살아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하였다.
장사와 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장사는 이기적이지만 사업이란 이윤의 창출과 함께 온 국민, 나아가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공익적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김복용회장은 자신이 장사꾼이 아니라,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김복용회장은 어떻게 하면 사업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였고, 그 결과 그는 이익창출이라는 일반회사의 개념을 뛰어넘어 사회와 함께하는 기업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 저와 여러분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좀 더 편하게 살고, 내 이름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의 고민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저와 여러분의 고민이 하나님의 나라와 참된 성도됨에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