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나희경이라는 내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는데, ‘희경’은 소릿값이 여자 이름으로 들린다. 그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다. 특히 ‘희’자가 싫었다. 한자로 ‘기쁠 희’喜를 쓰는 것도 못마땅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 ‘재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에 쓰인 ‘수컷 웅’雄자가 얼마나 멋지고 웅장한가.
나는 여자 이름처럼 들리는 이름을 가진 남자로서 몇 가지 당황스럽거나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예를 들면 대학생이었을 때 어떤 군인으로부터 사귀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당황했었다. 아마 먼저 군대 간 친구들 중 누군가가 고참병이 여대생을 소개해달라고 윽박지르니 내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 내 이름을 먼저 접하고 나를 여자일거라고 짐작했다가 나중에 나의 실물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좀 당황했다. 더러는 상당히 실망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 무고한 죄인처럼 느껴졌다. 잘못한 것 없이 미안했다. 얼마 전에도 어떤 협회의 회장님이 나와의 첫 통화에서 어리둥절해하셨다. 그분은 어떤 다른 분으로부터 내 이름을 소개 받았기 때문에, 전화기에서 상냥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올 걸로 예상했을 텐데 불쑥 남자 목소리가 들리니 전화를 잘못 걸었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어쩌다보니 나는 발음상 남자 이름으로 인식되는 이름을 가진 여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내 아내 이름은 누가 들어도 음가가 남자 이름이다. 우리의 결혼식 날 예식장에 신랑신부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배너를 보고 하객들은 신기해했다. 신부와 신랑의 이름이 바뀐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 아내와 나의 이름을 착각하여 생겨나는 해프닝은 아파트 생활지원 센터나 은행 등에서 지금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요즘은 문패가 없는 시대여서 망정이지, 예전처럼 대문에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걸어놓았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의 다 우리 부부의 이름을 거꾸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패에 ♀♂표시를 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박정희와 육영수(정희와 영수)를 부부 이름 도치 현상의 원조라고 주장해왔다.
어쨌든 나는 나의 이름에 대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불만—약간 흥미 있기도 했지만—을 언제부턴가 거두기로 마음먹었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나 운명이 그가 태어난 후에 누군가가 지어서 붙여준 이름에 의해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오히려 그 반대 경우가 더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가가 그의 이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식에 더 큰 영향을 줄 것 같았다. ‘완용’이라는 이름이 나빠서 ‘이완용’이라는 나쁜 놈이 된 게 아닐 것이다. ‘이완용’이라는 이름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이 그 이름의 나쁜 음가나 의미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실행한 나쁜 삶의 행적 때문일 것이다. ‘순신’이라는 이름이 이순신 장군을 만든 게 아니고, ‘이순신’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과 삶이 그의 이름을 그처럼 숭고해 보이게 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한 것 같다.
이름이라는 언어 기호는 문명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에 거의 절대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다. 이름이 없으면 한 사람은 언어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나아가서 인간은 언어적 배경에 놓이지 않고서는 사회적 개체로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언어적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어 개인으로 인식될 수 없으며, 따라서 정체성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은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본이 되는 요건들—이름과 얼굴, DNA와 경험—중 하나이다. 그래서 내가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처음 본 사람과 서로 얼싸안고 푸른 등불 아래 붉은 등불 아래 춤을 추었는데,’ 만약 그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로 영원히 헤어졌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정체성이 없고 개체성도 없는 보통명사로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일종의 물질적 대상으로 인식되었을 뿐일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뭔가가, 다만 얼마 동안이라도 선善의 한 모습으로 세상에 남겨져 있기를 소망한다. 그게 비석에 새겨진 이름이 되었건 앨범 속 몇 장의 사진이 되었건 혹은 단지 누군가의 마음속에 머무는 기억이 되었건. 어쩌면 그와 같은 자아 연장의 욕구는 무의식적으로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투사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요소들은 대부분 개인의 죽음과 함께 거의 빛의 속도로 소멸한다. 특히 JPG사진들은 한 번의 클릭으로 너무도 쉽게 삭제된다. 그에 비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은 그를 기억하는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비록 극히 제한된 시간 동안일지라도, 가장 실질적인 리마인더로 작용하는 것 같다. 20세기 미국의 유명 극작가인 아서 밀러(Arthur Miller)의 드라마 『시련』(The Crucible)의 끝부분에서, 17세기말 미국 청교도 사회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의 광풍에 휘말려 억울한 죽음을 당할 처지에 이른 주인공 존 프록터가 살아남기 위해서 거짓 자백을 하고 나서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도록 강요당하자, 그걸 거부하고 이렇게 절규하며 교수대에 오른다. “나는 당신들에게 내 영혼을 넘겨주었소. 그러니 내 이름만은 나에게 남겨주시오!”
첫댓글 지혜롭고 세련되고 왠지 강한 느낌.
와, 호미 님의 실물을 접하고 생긴 이미지가 이름의 인상에 영향을 미쳤군요. ^^
저도 처음에 성함만 듣고는 오해했습니다. ㅎㅎ
호미님을 떠올리면서 발음하는 <희경>은 매우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사운드를 가집니다.
이름, 하니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떠오릅니다. 그 영화를 봤을 때 제가 너무 어렸던 건지 격렬했다는 섹스신은 별로 기억에 없고 마지막 총격신과 여주인공의 대사가 충격이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