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시련 / 시 70:1-5, 약 1:2-4
어떤 정치인은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했는데, 야고보는 믿음의 행함, 믿음의 실천,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강조한다. 야고보서는 예루살렘교회의 교인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믿음 생활인지 성도들을 훈련하기 위해 쓰여졌다. 야고보서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약점이 바로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한다. 죽음의 문제, 사업이나 가정 생활의 실패, 낙심, 질병 등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들의 삶에 엄습해 오고 있다. 이러한 때 우리들은 우리에게 부닥치는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 고난 등을 어떻게 이겨나갈 수있을 것인가? 특별히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문제가 심각했다. 오늘 우리들은 기독교를 자유롭게 믿고 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우 심한 박해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들은 예수를 믿게 되면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순교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박해 중에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야고보는 이러한 어려움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겠는가, 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며, 이에 대한 해답과 신앙적인 자세를 말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삶이란 고난의 계곡을 헤쳐나가야 하고, 고난의 풍랑을 이겨나가야 한다. 어떤 면에서 고난의 계곡과 풍랑을 헤쳐나가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생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욥은 이렇게 노래한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마치 나라는 존재가 고난 속에 살도록, 고난 속에서 내가 태어난 것 같다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 사실 고난 그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자만, 이 고난이 내 곁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인류는 에덴동산을 잃어버렸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에게는 저주의 환경이 있다. 여러 가지 수고와 고통과 질병과 눈물과 근심을 떠나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만큼 고난이 우리 생활환경 속에 엄습해 오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신앙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고난은 하나의 시험, 인간은 일생동안 시험을 치루면서 살아간다. 시험칠 때마다 이제 시험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시험이 왔다는 것은 아직도 젊다는 증거, 시험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생명이 붙어있다는 것,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 시험이나 고난이 올까? 신앙 성숙, 순금같이 되라는 것이다. 약 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기쁘게 여기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고난이란 이상한 일도 아니다. 또 나 혼자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고난은 있다. 그래서 고난은 삶의 한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고난을 우리가 바로 극복할 수 있을 때 고난은 새로운 삶을 향하는 도전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고난이 밀어닥칠 때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이 고난은 나에게 새로운 삶을 창조시키는 인생의 도전이요 인생의 새 기회가 될 것이다.
고난은 동물에게도 있다. 미국 록키산맥에 있는 옐로우스톤 공원(서울 15배)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한다.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얻어 먹는 것은 쉬운 일이다. 동물들이 사람을 기다린다. 먹이를 주면 게을러지고, 스스로 먹이를 찾는 법을 잊어버린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 굶어 죽게 된다. 정부에서 절대로 먹이를 주지 못하게 한다. 누에고치가 고치를 뚫고 나비가 되어 나오려고 한다. 고치가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가? 한참 시간이 걸려도 나오지 못한다. 너무 불쌍해서 한 학자가 고치를 가위로 잘라주었다. 그런데 나비가 고치 밖으로 나와서 날지를 못한다. 날개가 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몇 시간이 못되어 죽어버렸다. 고난은 스스로 겪어야 한다. 누에고치를 찢은 학자가 ‘나의 어리석은 자비심이 생명을 죽이고 나비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다’고 말했다. 세상을 날 수 있는 힘은 고치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칠 때 생긴다. 어떠한 고난에도 이기고 일어나 한없이 날 수 있는 날개의 힘이 그때 얻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고난을 통해 강한 힘을 얻는다. 사람은 울만큼 울어야 한다. 땀을 흘릴만큼 흘려야 한다. 고통받을 만큼 받아야 한다. 어려서부터 계속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사람은 자란다. 고난을 거부하는 것은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시련은 저주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신의 삶 전체에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는다. 이럴 때 고난을 당한다면 그 뒤에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숨겨져 있음을 안다. 전주 용머리 고개에 가면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다. 쇠를 불 속에 넣었다 달궈지면 쇠망치로 두드린다. 불에 한번 들어가는 것과 두번 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불에 많이 들러갈수록 더 단단해진다. 칼 특히 검은 수만번 들어갔다 나와야 진검이 된다.
구약 지혜서 5권이 한데 몰려 있다. 욥은 의인이 고난 당해도 딛고 일어나 승리함을 보여준다. 시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법을 말해준다. 의인의 경건이 보여진다. 잠언은 고난을 통해서 얻는 삶의 지혜를 말한다. 정치가, 사업가, 인간관계의 별별 지혜가 다 들어있다. 전도서는 세상 것은 다 헛것이지만 하나님 한 분을 의지함으로 삶이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아가는 하나님과의 뜨거운 사랑을 통해서 고난과 시련 곧에서도 기쁨과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시련을 맞이한다면 모두가 복이다. 모두가 유익이다. 성도는 절대로 시련을 불평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시 한번 약 1:12절을 보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도 바울을 보라.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귀하게 만들었다. 사도 바울은 수없이 매맞고 감옥에 들어갔다. 수고하고 애쓰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엇다. 그래서 그가 망했나? 빌 1:12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의 얼굴은 고생으로 찌든 얼굴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난을 이기는 신앙으로 얼굴엔 언제나 기쁨이, 웃음의 꽃이 피었으리라 본다. 주께서 밀어주시고 성장시키심이 확실하다면 무엇이 두렵겠나? 롬 8: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나? 아무도 없다. 요즘 밥맛도 없고 살맛도 없는가? 고난이 적어서 그렇다.
시험과 고난의 문제가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흔히 성도들은 시험과 고난의 문제에 깊이 빠져 고통당할 때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탓인양 원망할 때가 있다. ‘하나님, 왜 나만 그런가요!’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말함으로써 시험과 고난을 당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는 것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죄의 본성, 육신의 정욕으로 인한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고 그게 다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오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것은 성도를 보다 더 성숙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허용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을 기쁨으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는 무엇인가?
먼저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을 시험과 고난의 올무에 빠지게 한 죄의 본성들과 육신의 정욕들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시험과 고난 중에도 여전히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죄의 본성들을 감추고 고집하며 마치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는듯이 시험과 고난의 상황만을 탓하고 불평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까지 한다면, 그는 더욱 깊은 시험과 고난의 올무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는 어떤 시험과 고난을 만나든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러한 시험과 고난의 올무에 빠지게 했던 자신의 죄성과 정욕들을 회개하고 돌이킴으로써 그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기쁨으로 승리하는 겸손한 자들이 되라.
또 하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28:7절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운 시험과 고난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과 온전한 도움을 배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굳게 붙잡아 주시며 끝까지 도와주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인내하는(참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험이나 고난을 당할 때 쉽게 포기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승리의 기쁨을 얻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시험이란 인내로써 극복할 때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신앙성숙의 축복과 큰 승리의 영광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몇 년 전인가 위도 바다낚시를 갔다가 돌아오는 배가 바다에 빠져 전원이 죽는 사건이 있었다. 부안경찰서 간부급 가족 8명. (20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