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정원에서 펼쳐진 우아한 왈츠의 여운
2024.9.29.일
1.
청노루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일요일이면 붓꽃정원을 찾았다. 그곳은 그에게 신선한 설렘을 선사하는 댄스홀이었다.
서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무림(舞林)에서 이름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넓고 쾌적한 공간, 기둥 하나 없이 탁 트인 홀, 그리고 높은 천장에서 빛나는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이곳만의 매력을 더했다.
청노루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붓꽃정원에 들어섰다.
그곳은 언제나 그를 반겼다. 하지만 그날은 다른 느낌이 있었다.
무도장 안은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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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속에서 낯선 여인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자태로 그의 눈길을 끌었다.
늘씬한 키에 균형 잡힌 체형과 볼륨감 있는 몸매를 자랑하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갸름한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매는 청노루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청노루는 그녀의 반듯한 자세와 우아한 움직임에 매료되었다. 그는 무심코 발걸음을 그녀쪽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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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때, 룸바 음악이 시작되었다.
"한 곡 추시겠습니까?"
그가 말을 건넸을 때,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청노루는 느꼈다.
그녀와의 춤이 그저 한 곡의 댄스가 아닌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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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춤이 시작되자, 그녀와의 호흡은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춤을 춰왔던 것처럼. 첫 스텝에서부터 두 사람의 몸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의 춤 동작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그녀와 이날 우연히 마주쳤지만 청노루에게는 예전부터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가볍게 몸을 풀며 댄스를 즐겼다. 그 뒤로 왈츠 음악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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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 댄스를 끝내고 청노루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의 닉네임은 '벨로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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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노루는 그녀를 에스코트해서 왈츠 스타트 지점으로 안내했다. 그의 오른손에 그녀의 왼손이 얹혀졌다. 그녀는 아무런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그와 동행했다. 그리고 왈츠를 출발하기 위해 마주 서서 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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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청노루의 왼손으로 그녀를 맞이 해서 홀드했다.
그는 왈츠의 첫 음률이 흐르자 박자에 맞춰 몸을 한껏 스트레칭해서 예비보를 진행했다.
홀드하는 순간 이미 그녀의 무공이 그에게로 전달되어졌다. 부드러우면서 꽉 찬 바디 텐션감. 이 느낌은 무공이 무르익지 않은 초심자들이나 하수들한테서는 도저히 우러나지않는 몸에서 풍기는 감칠맛나는 그 기운이었다.
청노루는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고수끼리 서로의 숙성된 깊은 무공을 감지하고 그걸 서로가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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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청노루는 삼보직진무 즉, 왈츠의 가장 기초가 되는 매화28식(梅花二十八式)의 초식들을 펼쳐 나갔다.
두 사람은 첫 발을 내디디며 기본적인 왈츠 초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기초 동작을 넘어서 격렬하고 역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청노루와 그녀는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서로의 무공을 확인하듯, 각자의 춤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리드와 팔로우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맞추어갔다. 발끝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가 곧 서로의 실력을 느끼게 해주는 검증의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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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자연회전' 내추럴턴으로 시동을 걸어서, ‘천류회전(天流回轉)’ 내츄럴스핀턴을 한순간에 선보였다. 하늘의 흐름처럼 유연하고 우아한 회전, 그의 동작에 주변의 기운이 한껏 집중되었다.
이 순간, 청노루와 그녀는 더 이상 무도장의 남녀가 아니었다. 무림(舞林)에서의 합일된 동작,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그들은 무릎 위에서 춤을 넘어서 한 편의 검무를 완성해갔다.
연속되는 '역회전' 리버스턴을 연결해서 '운무비보(雲舞飛步)' 샤세프럼피피로 비상해갔다.
그녀는 지긋이 눈을 감고 왈츠 음악을 음미하며 콧노래를 흥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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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청노루는 대지를 짓밟듯이 첫 보를 힘차게 내디뎠다. 그의 발이 바닥을 깊게 눌러가자,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녀의 몸은 묵직하게 그 힘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어떤 부담도, 불편함도 없었다. 마치 팔두(八頭) 마차가 하나로 일치된 보폭으로 구름 위를 날아오르는 천마(天馬)와 같았다. 그 순간의 느낌은 경이로웠다. 무게감 속에서도 깃털처럼 가볍게 흐르는 자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완벽한 조화는 그저 안락과 환희의 절정을 맛보게 했다. 그들의 몸짓은 춤을 넘어선 예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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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음악이 절정을 향해 달려갈수록, 청노루는 더욱 깊이 그녀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질주교차초식' 러닝크로스샤세로 이어지는 질주는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처럼 플로어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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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청노루의 리드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벨로나는 그 바람을 타고 꽃처럼 피어나서 나비처럼 날았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 한 쌍의 학이 구름 위를 나는 듯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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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폭풍과도 같은 고급 무공인 '텀불턴'을 구사했다. 일순간,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기세가 장내를 휩쓸었다. 그들의 몸은 마치 허공을 가르는 듯한 속도로 공중을 돌았다.
눈깜짝할 사이에 회오리처럼 돌아서는 동작을 마무리 짓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사뿐히 착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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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내 그들은 모든 역동성을 멈추었다. 그리고 무림의 극에 이른 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경지의 움직임으로 이어갔다. 그들의 몸짓은 서서히 느려졌다. 섬세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이 무대를 가득 채웠다.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청노루가 그녀를 부드럽게 리드하며 '드로우어웨이 오버스웨이'로 들어갔다. 그녀는 우아하게 몸을 늘리며, 긴 팔다리로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이 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두 사람의 픽처 라인은 극도의 집중과 예술적 감각을 담아냈다. 그녀의 몸은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나며 천천히 무지개를 만들었다. 청노루는 그녀를 안정적으로 받아주며 두 사람의 호흡을 완벽하게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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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어, '레이디킥 디벨롭킥'을 선보였다. 그녀는 그 순간 공중에서 부드럽게 다리를 들어 올리며 우아하게 발끝을 뻗어냈다. 그 움직임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듯 했다. 동시에 한없이 유연한 실크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그녀의 '디벨롭킥'이 청노루의 리드에 따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두 사람은 춤의 정점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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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마지막으로, '라이트 런지'에서 정적인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다. 청노루는 그녀를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이끌며 완벽한 라인으로 그녀를 받쳐주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몸을 기울여 한없이 우아한 곡선을 만들었다. 이때 두 사람의 몸은 마치 한 덩어리가 되어, 중력에 반하는 듯한 우아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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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들의 모든 동작은 조화로웠다. 정적인 고요한 순간들 속에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숨 쉬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무도장 위에서 최고수들의 경지에 오른 완벽한 왈츠의 예술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음악이 점점 끝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청노루는 부드러운 '오버스웨이'로 그녀를 살며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로멘티코' 동작으로 그녀의 얼굴이 그의 턱 아래, 가슴팍에 가볍게 닿았다. 음악은 마침내 끝났지만, 그 순간의 여운은 여전히 공기 속에 남아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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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들의 왈츠가 끝났을 때, 붓꽃정원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붓꽃 봉오리처럼 은은한 생기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