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시신을 안고 떠오른 해평열녀
경상남도 통영시 봉평동 김춘수 유품전시관 뒤쪽에 해평열녀사당이 있다.
해평열녀가 언제 살았는지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녀가 살던 용화산 아랫자락의 해평마을의 이름을 바탕으로 하여 해평열녀라 불린다.
해평열녀의 굳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마을의 허진이라는 사람이 1887년 사비를 들여 사당을 지었다.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해평열녀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32년 열녀비인 해평열녀기실비가 세워졌다.
해평열녀 이야기는 통영에 전해지는 가장 대표적인 열녀 이야기로 유명하다
남편의 시신 끌어안고 바닷물에 떠오른 해평열녀
옛날에 경상남도 통영의 용화산 아랫자락에 해평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인은 시집 온지 몇 달 안 된 새댁이었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오는 것으로 생활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날처럼 남편이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하지만 돌아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바다에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래서 다른 날보다 걱정이 많았다.
부인은 ‘왜 이렇게 안 오시지.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라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과 같은 배를 탔던 사람이 찾아왔다.
어두운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부인은 마음 한 켠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남편이 심한 파도와 바람때문에 그만 바다에 빠졌는데 끝내 구하지 못하고 돌아왔소. 미안하오.”라며 남편의 죽음을 알렸다.
부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기운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고는 그 사람에게
“남편이 빠진 곳이 어디랍니까? 시신이라도 거두어야겠습니다. 꼭 좀 같이 가주십시오.”라며 흐느꼈다.
그 사람은 “찾는다는 건 불가능하오. 부질없는 짓이오. 하지만 이렇게 원하시니 같이 가봅시다.”라고 하였다.
부인은 부랴부랴 배를 타고 남편이 빠진 곳을 찾아갔다.
시꺼먼 물결만이 일렁일뿐 사람의 흔적이란 애초에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정신이 아득하고 마음이 답답하였다.
이내 결심을 한 듯 부인은 비장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같이 배를 타고 간 사내는 깜짝 놀랐다.
어찌해 볼 겨를도 없이 부인이 뛰어드는 바람에 구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두 시신을 발견하였다.
부인이 팔로 남편을 꽉 끌어안은 채로 바닷물에 떠오른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시신을 배에 실어 뭍으로 돌아왔다.
부부의 죽음을 애도하고 부인의 절개를 칭송하며 시신을 함께 묻어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을의 나무마다 이파리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 먹은 흔적을 살펴보니 ‘열녀’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여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산의 나뭇잎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 열녀를 기리는 듯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