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력( 浮力 )의 힘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2024. 11. 17.(추수감사주일) 출애굽기 34:18-23
김삼성 목사님이 독일에서 살 때였다. 목사님은 하나님도 사랑하고, 또 아내도 사랑하는데 매일 아내와 다투고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신학공부를 하면서도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는 숲에 가서 기도하였다. 그날도 그랬다. 아내와 밤새 다투고 새벽에 숲으로 간 목사님은 하나님 왜 이렇게 다툽니까? 저 여자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사실 목사님이 아내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목사님은 재수할 때 딱 한번을 빼고는 누구와도 주먹질하며 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 자주 다투는 것을 오직 아내 때문이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늘 하나님 저 여자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하고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목사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나는 왜 사랑하는 아내마저 용납하지 못하고 품어주는 마음이 부족합니까? 나는 정말 악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목사님이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 하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아니야! 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이제 죄인인 줄 알겠느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말이 너무 서러웠지만, 그래도 목사로서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떠나소서 하고 말했다. 그때 하나님은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고 말씀해 주었다. 그 말씀에 얼마나 울었던지 목사님은 이제 다시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서원하였다. 그렇게 마음껏 울었던 목사님은 박사 학위 10개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님은 이렇게 결단한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이런 흉악한 죄인을 주님의 피로 구원해 주셨으니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 내 일생을 바치겠습니다.
이 고백을 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하나님은 목사님을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목사님이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많이 했거나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부싸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는가?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오늘날 교회 연약함의 뿌리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 곧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쉽게 설명하면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Knowing about God),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욥기의 제일 마지막 부분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욥은 까닭없는 고난을 당한 사람이다. 그런데 욥기 42장을 보면 욥의 모든 부분이 다 회복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욥이 회복될 때 나타난 3가지 모습을 욥기 42장은 이렇게 기록하는데, 첫번째가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한다(42:6)는 욥의 회개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욥을 괴롭혔던 친구들이 제물을 가지고 왔을 때 위하여 제단을 쌓고 기도하는 것이었다(욥 42;8-9). 욥은 친구들을 용서한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갑절의 재물과 10명의 자녀를 낳고 140년을 더 살면서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다는 것이다.
여러분 보시기에 이 3가지 회복이 복으로 보이는가? 회개하는 것도 쉽지 않고, 내 마음에 큰 상처를 준 친구를 용서하는 것은 더 쉽지 않다. 그리고 갑절의 재물을 받고, 10명의 자녀를 낳아 사는 것도 복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1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에 어떤 아들은 죽은 아들과 닮아서 그 아들을 볼 때마다 죽은 아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아니 갑절의 재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할 때 이것은 죽은 딸이 좋아하던 음식인데 하는 생각이 나면 눈물이 나서 먹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개와 용서와 갑절의 재물이 복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회개와 용서와 갑절의 재물이 복이 될 수 있었겠는가? 욥기 42장 5절을 읽기 바란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된 욥은 그 크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또 그 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에 감격하여 친구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큰 하나님이 주시는 재물과 자녀와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여러분은 이 기쁨의 맛을 아는가? 얼마 전 우리교회 집사님과 식사를 하였다. 그때 집사님은 저에게 목사님 하나님은 나를 많이 사랑합니다 라고 말씀하였다.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집사님은 텃밭을 가면 종종 뱀을 만났는데, 그 뱀이 너무 징그러워서 나는 하나님이 만든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는데, 이제 내 눈에 뱀이 보이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한 후부터 집사님은 텃밭에서 한 번도 뱀을 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집사님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자랑하며 말씀하였다. 집사님은 뱀이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지만, 더 기쁜 것은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기쁨과 감사가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유월절, 초실절), 맥추절(오순절, 칠칠절), 수장절(초막절, 장막절)을 3대 절기로 지킨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3대 절기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먼저 첫번째 절기인 유월절(무교절, 초실절)의 의미이다. 하나님이 애굽 땅 종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때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른 집은 여호와의 사자가 넘어갔기에 그 날을 pass over(유월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2천 년 전에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어린양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다. 이것이 유월절이다.
그리고 두번째 절기인 오순절(맥추절, 칠칠절)의 의미이다.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세워진 날이다.
그리고 세번째 절기가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다. 사실 이스라엘 3대 절기는 농사와 연관되어져 있다. 그래서 보리를 처음 수확하는 날을 기념하여 무교절을 지킨다면 보리 수확이 마치고 밀을 수확하는 날이 맥추절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수확을 끝내고 창고에 곡식을 가득히 채운 날을 수장절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열매를 창고에 넣은 후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의 의미이다. 추수감사주일은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하여 고생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그 첫수확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풍족할 때 장막에서 일주일동안 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풍성함을 주었구나! 하며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수장절 의미의 전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수장절을 지키라고 제일 먼저 명령한 곳은 시내산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3개월을 걸어서 시내산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두 돌판을 통하여 언약의 백성이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은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아직 가나안에 정착하지 않아서 거둔 곡식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수장절을 지키는 또 다른 의미이다. 추수감사주일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하는 날이다. 그런데 풍성함이 없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거두어 창고에 가득히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 날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날이 추수감사주일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오늘 추수감사의 기쁨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에는 3가지의 힘이 있다고 한다. 먼저의 힘은 압력이다. 모든 사람은 모두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한다. 그런데 우리가 성공을 향하여 높이 날아오르려 할 때 위에서 짓누르는 압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압력을 이기고 조금 올라가면 그때부터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의 힘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위에서 누리고, 아래에서 당기는 압력과 중력의 힘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이 있는데, 그 힘이 부력이다. 압력과 중력에 의하여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없을 때 나를 올려주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부력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에 부력의 힘이 있는가? 지난 주에 주남이가 가족단톡방에 24년 대학순위를 올려 놓았다. 전국 169개 대학을 10단계로 분류하였는데, 최고등급인 S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항공대가 차지하였고, 주남이와 주현이가 졸업한 부경대와 명지대는 A-레벨(4번째 등급)이었다. 그리고 주혜가 나온 경성대는 D레벨(7번째 등급)이었고, 저와 아내가 졸업한 고신대학은 E레벨(8번째 등급)에 있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주에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면서 공범식 성공했네 하며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학력도 실력도 상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서 압력과 중력에 더 많이 짓눌려 살아야 했지만, 부력되시는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A-, D레벨 대학을 졸업한 아이들의 삶에도 하나님이 부력이 되어서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더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저는 공범식 성공했네 하는 행복을 외칠 수 있었다.
추수감사주일은 그 중력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감사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감으로 인하여 기쁠 때도 감사하고, 힘들 때도 감사하는 그런 복된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