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다른 대학교의 한 학생이
중세철학관련하여 메일로 6개의 질문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답변을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기에 올려 봅니다.
학생 질문 : 1. 존재가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말의 뜻은? / 2.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교수답변 : 1과 2의 질문은 서로 연결된 것입니다. 따라서 동시에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존재가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것을 먼저 설명하도록 하지요.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것 : ‘유비’란 라틴어로 ‘analogia’로서 일종의 디지털에 반대되는 의미의 ‘아날로그’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세철학에서 ‘유비’란 일종의 ‘비유’를 거꾸로 한 용어로서 비유와 유비는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사자가 어떤 동물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하지요. ‘백수(동물들)의 왕’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왕이 가진 어떤 속성(최고 권력자)을 사자가 가진 어떤 속성(가장 힘이 쌘 동물)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비유는 어떤 유사한 점을 들어서 설명하기는 하지만 왕과 사자는 존재론적으로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어떤 점에서 사자를 설명하는데 턱없이 빈약한 설명이지요. 반면 유비는 단정적으로 ‘예’ ‘아니오’라는 식의 디지털적으로 답변할 수 없지만, 충분히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 설명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A가 B를 살해하였다고 합시다. 그런데 사실은 C가 A를 협박하여 어쩔 수 없이 B를 죽인 경우라면 과연 B를 죽인 살인자는 누구인가요? 이러한 질문에서 어떠한 의미로 말해지는 가에 따라서 “살인자는 A이다”, “아니다 살인자는 C이다”라는 답변이 모두 가능할 것입니다. 이때 비록 실제로 살해한자는 A라고 할지라도 살해의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가 C이므로, C를 살인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 경우 우리는 “유비적으로 말해 C가 살인자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한 어린이가 “왜 봄이 되면 꽃이 피는 거지, 누가 꽃을 피게 하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만일 답변하는 이가 유신론자이고 세계를 창조한 자가 신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신이 꽃을 피우게 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애초에 자연법칙이라는 것도 신이 만든 것이며, 꽃이 피는 것은 자연법칙에 의한 것이니까요. 이 경우 이 답변은 사실은 유비적으로 답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의미로 유비적으로 말해진다고 할 때, 전형적으로 신의 속성을 말할 때입니다. 가령 중세의 신학자들은 신을 ‘창조자’ ‘완전한 자’ ‘선한 자’ ‘매우 사랑스러운 자’ 등으로 설명합니다. 이 경우 사실상 신은 인간을 무한히 초월하는 자이며,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는 자이기에 인간이 신의 속성을 말할 수는 없겠지요. 따라서 엄밀히 말해 이러한 신의 속성을 설명하는 내용들은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의 모습을 닮았다고 가정할 때, 인간에게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이거나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면서 신은 그러한 좋은 것들을 최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것을 <긍정의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부정신학>에서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여 말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의 속성을 말하는 신학자들의 사유를 우리는 <긍정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긍정신학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모든 것은 일종의 ‘유비적으로 말해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존재가 유비적으로 말해진다는 것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가 단적으로 말해질 때, 존재하는 총체 혹은 칸트가 말하는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알 수가 없지요. 만일 있는 그대로의 존재(존재자의 총체적인 국면)에 대해서 무언가 말하게 된다면 이는 곧 유비적으로 말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