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운영자님께서 '사법 따위'라는 글을 올리셨지요.
사법 따위의 하챦은 일보다 중요한 것들이 활에는 아주 많다고 하시면서, 활쏘기란 몸으로 하는 것이니 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글쎄요... 저는 그 말씀에 잘 동의가 안 돼서, 제 생각을 조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든 생각은, 운영자님께서 '사법'이란 용어에 대해 너무 좁고 치우친 개념을 가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과녁 잘 맞히는 비법이라 하셨던가요? 물론, 온깍지학교에 오시는 분(그리고 수많은 보통 궁사)들의 생각(질문?)을 끌어다 말씀하신 것이지만, 그리고 양궁같은 다른 활쏘기에선 혹시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활쏘기에서 사법이 본래 그런 것은 아니지요.
제가 알기론, 우리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가장 중요한 사법 문헌 '사예결해' '정사론' '조선의 궁술' 어디에도 글의 목적으로서 '잘 맞히는 비법'을 전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바르게, 힘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호쾌하고 맹렬하게, 몸에 무리가 없게(유익하게) 쏘는 법을 주로 이야기하지요. 사법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과녁 맞히는 능력은 올바른 사법으로 계속 수련을 하다보면 어느새 얻게 되는 것이구요. 바둑에 견줘보면 과녁 맞히는 기술은 돌 따먹는 비법이고, 사법은 정석이 아닐지요. 정석은 모르고 돌 따먹는 비법만 잘 익히면 동네 기원 바둑의 고수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진정한 고수로 올라갈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우리 활판의 상황을 보면, 다 아시듯이 (한편 놀랍게도!) 이 사법이 중구난방, 각양각색, 백가쟁명이지요. 몸으로 하다 보면 다 알게 된다구요? 그 말씀은 각자의 사법에 자기 확신을 가진 어느 누구나 그냥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각자의 사법이란 요즘말로 뇌피셜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긴) 그것들이 수천 년을 내려오며 정립된 우리 사법의 정수를 담은 문헌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초식에 불과하며 적어도 겉모양은 눈에 다 보이는 동작이 그리 다르다는 것은 현재 우리 활쏘기 말고 일반적인 기예나 스포츠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비상식적인 상황이 펼쳐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테지만, 여기선 저도 (철전문파 대표의 표현대로) '우리 역사의 굴곡' 때문이라고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법'의 문제는 우리 활쏘기의 알파와 오메가가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활꾼이라면 대다수가 염원하는 국궁의 대중화와 세계화가 가능하려면 말이죠. 양궁이나 일본 규도가 세계에서 그리 잘 나가는 근본에도 명확히 정립된 사법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각궁(최상의 베어보우, 전통활) 문화권 안에서 단연 최고봉이라 자부할 수 있는 우리의 사법이니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활쏘기 문화엔 사법 말고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겠지요(사례, 편사, 획창, 팔찌동 등등). 하지만 그것들이 현재와 미래에도 세계적 보편성을 띠고 퍼져나갈 수 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지역과 시대의 한계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법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오중만곡궁이라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베어보우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정련하는 방법이니까요.
따라서 진정한 사법은 결코 '따위'라는 말을 이어붙일 수 없는, 우리 활쏘기의 '처음과 끝'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게시판이 단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덕담이나 자위의 말만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 활쏘기의 사법에 대해 좀더 솔직하고 폭넓은 대화의 마당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ps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좀 망설였습니다. 관리자께서 지난번 제 댓글에 "또다른 '쓰레기' 만들지 말라"는 경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 글이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건가... 하지만 다행히 운영자께서는 기꺼이 들어보겠다는 뜻을 밝혀 주셔서 용기를 내 봅니다. '가르침'이란 표현도 하셨는데, 당연히 제가 그만한 자격은 없구요...^^; 우리 활을 몹시 사랑하는 초보 활꾼의 작은 의견 정도로 받아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첫댓글 여기에서 다시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윗글은 작년 10월쯤 온깍지동문회 사법토론실 게시판에 나무아래님이 올리셨던 글입니다.
이 방 아래쪽에 있는 '전통, 진실, 그리고 책임'이라는 글보다 조금 먼저 올리신 글이지요. 윗 글('사법은..')은 아직 남아 있지만, '전통..'은 삭제가 되어 우리 카페에만 있습니다. 우리가 전통 활쏘기에서 사법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할 지에 대해 좋은 내용이라 여겨져서 여기 에세이 방에다 옮겨 놓습니다.
(사족) 요즘 온깍지 카페가 거의 파장 분위기인 거 같던데.. 아무래도 나무아래님의 두 글이 많은 작용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왔는데 제 글을 이리 옮겨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ㅎㅎ 뫼사람님의 과분한 칭찬도 감사드리구요.
뭐 저 때문에 개장휴업 분위기로 가기야 했겠습니까. 사법 토론방에도 주로 한분만 계속 비슷한 내용으로 반복되는 글을 올리고, 보는 사람들은 덕담이나 추임새만 이따금씩 보태는 게 다들 스스로 좀 민망해서 그런 것이 아닐지요? 우리 활판을 위해선 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