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용 위임목사 주일 오전예배 설교
2020.4.19. - 마태복음의 말씀(16) 간음하지말라
마태복음 5장 27-3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짧은 시인데요 이렇습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그럴 때 행복하다 라는 것이지요.
요즘처럼 코로나 19로 행복이란 단어를 찾기 힘들 때에 더욱 행복한 일을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란 시에 이렇게 한 구절 덧붙이고 싶습니다. '영적으로 괴로울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때 우리 믿는 자들은 행복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19로 모두가 힘들지만 환자들을 위해 네 다섯 시간 쪽잠을 자면서 수고하는 의사분들 또 간호사 분들, 정부기관의 관계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생각하며 저희도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곧 이 날이 지나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면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들이 우리의 삶과 교회 위에 넘치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마태복음의 말씀 16번째 간음하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몇주전 설교에서 간디와 설탕에 대한 예화를 말씀드렸습니다. 한 어머니와 아들이 간디를 찾아갔습니다. 매번 설탕을 계속 퍼먹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 소년은 간디 선생님을 너무나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그 간디에게 찾아가서 간디 선생님이 '야, 설탕 먹지 마라' 이 한마디만 들으면 나쁜 습관을 고칠 것 같아서 찾아갔는데 이 간디 선생은 2주 후에 오라고 얘기합니다.
지금 당장 얘기해 주시면 아들이 그 나쁜 습관을 고칠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 후에 오라고 얘기합니다 저희가 먼 곳에서 왔습니다. 제발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 후에 오라고 얘기 합니다. 그래서 2주 후에 왔더니, 그런데 선생님이 그 소년을 보자마자 '너, 설탕 퍼먹지 마라' 라고 얘기합니다. 존경했던 그 소년은 '예. 이제 그러지 않겠습니다' 라고 바로 순종합니다.
어머니는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얘기할 거면 2주 전에 얘기하면 되지, 왜 2주 동안 기다리라고 했을까 물어봤습니다. 그때 간디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도 이 주전 까지는 설탕을 퍼먹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간디는 그 소년에게 바른 충고 바른 조언을 하기 위해서, 자기가 먼저 그 나쁜 습관을 고치고 그 충고와 조언을 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먼저실행 하고자 했던 것이죠.
근데 저도 이 간디의 예화와 같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20대 초에 평신도 시절이었습니다. 3~4학년 초등학교 교회학교 교사로 제가 일했는데, 아이들이 자꾸 지각을 해서 예배 중간에 나가봤습니다. 왜 자꾸 지각을 하나 가서봤더니, 저희 반 아이들이 제자들인데요, 예배 오기 전에 전자오락실에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 불러 모아서 혼을 냈습니다.
야 너희 어떻게 예배오기 전에 이렇게 지각할 수 있니? 어떻게 오락실 가서 오락을 하는 것 때문에 지각을 할 수 있냐? 너 목사님 아들, 장로님 아들, 권사님 아들, 너 어머니 아버지한테 다 이른다! 너 절대 그러면 안돼! 예배를 시간을 꼭 지켜야지 하며 막 꾸중하고 혼을 냈습니다.
그렇게 혼을 낸 후에 제가 어느 날 예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들이 추억 삼아서 같이 전자오락실 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에 아이들을 꾸중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제 친구들과 함께 전자오락실에 갔습니다. 열심히 오락을 하고 있는데, 제 뒤통수가 계속 따가운 겁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지켜보는 거 같아서 뒤를 돌아봤더니, 지난 주에 막 꾸중을 했던 제자들이 뒤에 서있는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 미소를 지으면서 제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생님도 오락실 오시네요. 그러면서 왜 우리를 혼내셨어요 라고 얘기합니다. 제가 너무 창피해서 바로 도망을 나왔습니다. 다음 주에 그 아이들 그 제자들을 보는데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걸 두고 뭐라고 얘기합니까?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이 하나 있죠. 내로남불 이라고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앞자를 따서 내로남불 이라고 얘기합니다.
내가 오락실 가는 것은 괜찮고 교회학교 제자들은 오락실 가면 안된다 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내로남불이 되는거죠.
간디 선생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설탕 퍼먹는 것은 되고, 소년은 퍼먹으면 안된다.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서 이 간디 선생은 2주 동안 자신의 나쁜 습관을 고치고 난 후에 언행일치로 그 소년에게 이제 설탕 먹지마라. 내로남불을 함부로 하지않으려고 간디는 먼저 2주 동안 자신을 훈련했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범하는 내로남불의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내로남불 표현 그대로 우리 믿는 자들이 불륜을 하면서 간음죄를 범하면서, 남의 잘못한 것을 탓하고 문제 삼는 모습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곧 간음죄의 음란의 죄를 범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내로남불 한다 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렇게 존경하고 촉망을 받던 다윗이 그런 사람 중에 하나지요. 다윗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한 마을에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 있었다. 부자는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암 양 한 마리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양과 소가 많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 잡으면 되는데, 그게 아까워서 그 가난한 자의 암 양 한 마리 갖고 있는 그 자의 그 양을 잡아가지고 그 손님을 대접합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윗이 내가 하나님께 맹세하지만 그 사람은 죽여야 합니다. 정말 잘못된 사람이군요 라고 얘기하죠. 그때 나단 선지자 이렇게 말합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거는 다윗의 이야기이지, 내 이야기는 아니지. 어떻게 그렇게 신앙이 좋던 다윗이 그런 추한 죄를 범했을까? 다윗도 별 볼일 없구나.
마치 다른 사람 남의 일처럼 우리는 얘기한다 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간음죄 음란의 죄악에 대해서 우리는 내로남불을 적용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단과 같은 사이비종교 같은 곳에서 항상 비윤리적이고 도덕적이지 않은 성범죄가 일어나는 보도를 볼 때마다, 당연하지 저들은 이상한 집단이니까 저러지 라고 얘기하죠.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작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불편해 합니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닐 텐데, 아닐 텐데 ..
이에 대해서는 최근 두 가지 사건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N번 방 사건입니다. N 번방 사건은 조주빈과 그 일당들이 수십명의 여성을 협박하고 성착취 영상물을 찍게 해서 그것을 텔레그램이라고 하는 sns 에 유포하고, 그것으로 경제적인 거래를 했던 디지털 성범죄 사건입니다.
지난주 그 일당 가운데 미성년자가 있었습니다. 18살 밖에 되지 않은 공범으로 강훈이라고 하는 이가 이 자가 얼굴이 공개되기도 했죠. 그런데 여러분 이 사이버 성범죄 N번 방이라고 하는 sns 공간에 26만명이 회원으로 있다고 합니다.
성범죄 성착취를 은밀하게 보았던 사람들이 26만명입니다. 그것을 단순 합계라고 생각해서 유료회원, 그리고 그 영상물에 댓글을 단 사람들 적극적으로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을 다시 계속 보았더니, 최대 3 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 안에 미성년자도 꽤 많습니다. 미성년자라 하면 교회에 중고등부 학생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3 만명에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sns 공간의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그루밍 목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루밍 목사로 된 사건인데요, 한 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들이 중고등부 청년부를 거치면서 이 목사 아들도 전도사, 목사가 되어서 그 직분을 이용해 그루밍 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아서 피해자를 길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성추행 성폭력을 범죄로 여기지 않게 하고 나중에는 성범죄를 은폐하도록 만드는 범죄를 말하는데 바로 그 목사의 아들이 그 목사가 되어서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도 지난 주에 목사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두 사건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N 번방의 범죄는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 공간에서 생각이 좀 이상한 사람들이 사회 부적응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을 못해서 사이버 공간에서 그렇게 이상한 일을 하는거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 주범인 조주빈은 N 번방 주범으로 잡히기 직전까지 사회봉사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정상적인 청년이었습니다.
또한 그루밍 목사는 어떻습니까? 기사를 보니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 기각이 되었다. 아! 사실 여부를 판단해야 봐야겠네. 설마 목사가 그럴리가.. 뭐가 문제가 있었겠지 생각할지는 모르시겠지만, 여러분 이단에서 이런 문제가 나오면, 그런 자는 단호하게 처벌해야 된다고 우리는 생각하죠.
그렇게 주장하면서 정작 교회 안에서,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안에서, 목회자가, 직분자가 이런 범죄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아마도 사정이 있을 거야. 모함을 받은 걸 거야. 실수가 있을 거야. 상대방이 이상했을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라는 것입니다.
내로남불 하는 거지요. 교회가 내로남불 하는 것입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남이 하면 간음이고 성범죄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내가 하면 실수나 모함이 있는 것이다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여자 전도사님은 여자로서 여자 전도사로서 이런 성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분이셨습니다. 사역을 같이 함께 할 때 다른 사역자들이 불편할 정도로 아주 성에 관련된 성범죄나 성추행에 관련된 것에 딱 선을 그어서 전혀 그럴 가능성이 있지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전도사님의 아들이 성범죄에 연루가 되었습니다. 그때 그 전도사님이 가장 먼저 외친 것이 이거였습니다. 내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다. 내가 키워 봤는데, 내가 제일 잘 안다. 내 아들은 깨끗하다.
그리고 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상대방 여학생이 빌미를 준 것이다. 내 아들은 오히려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아마 그 여학생이 내 아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그 전도사님을 비롯해서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간음죄 관련된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저는 우리가 내로남불에 깊이 빠져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계도 이것을 증거합니다. 2018년도 통계청 자료에 들어가 보면 성폭력 범죄가 2018년도에 32,000 건입니다. 그 중에 종교인들의 성범죄자가 8,500명입니다. 전체의 25% 가 종교인들 중에 성범죄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교를 가진 성범죄자에 8,500명 중 4,400 명이 기독교인입니다.
범죄 수치를 보면 기독교인들의 수치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보다 다 낮습니다. 근데 유독 성범죄 만큼은 기독교인의 숫자가 가장 높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교회는 깨끗하고 그리스도인은 순결하다고 생각하고 세상은 다 더럽고 추하고 음란하고 간음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내로남불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러분 먼저는 다윗처럼 자신의 간음죄를 깨달았을 때 철저히 회개하고 반성하셔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교회가 성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청정지역이고 순결하고 깨끗하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항상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보고 이런 문제를 예방하지 않으면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우리는 결코 지킬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은 바로 간음 죄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28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어떤 범죄 행위가 외부와 실상에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이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면, 음욕을 품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죄를 범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간음과 음란의 죄 대해서 우리 주님은 어떤 죄악 보다도 매우 크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으로 간음하여 이성을 보는 자는 이미 범죄했다고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29절 30 절에서 음욕을 품고 누군가를 음욕의 눈으로 본다면 그 눈을 빼버리는 것이 낫다. 음욕을 품고 손으로 그 범죄를 계획하고 준비했다면 죄를 범하지 않았더라도 그 손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 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왕이 권력의 욕심이 있어서 어떤 나라와 전쟁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 가지고 너 죄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품는 거를 갖고서 넌 죄인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시죠.
그들이 그 범죄 행위를 했을 때 죄인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음란과 간음에 죄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 주님이 단호하고 철저하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품고 손으로 눈으로 죄를 범하려고만 했어도 그것을 죄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 주님께서 태초에 인간에게 주신 육신적인 사랑의 행위와 그 마음까지 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정한 남녀간의 결혼 그리고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결코 간음과 음란의 죄를 이야기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도리어 창조질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짝지어 주신 부부의 사랑을 특별히 남성이 남편이 마치 하나님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자처럼 생각해서 아내 대신에 다른 이성을 다른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지배하려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간음은 내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간음은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그 대상을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간음죄입니다. 가장 은밀하지만 가장 거룩하게 이루어져야할 남녀의 관계를 우상이 된 한쪽의 사람이 하나님 이상의 힘과 지배력으로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간음죄요, 음란의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34 절에서 36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할 수 없음이라'
간음과 음란의 죄악은 결코 인간이 결심하고 이성으로 다지면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제발 맹세하지 마라 나는 순결해, 나는 깨끗해, 그럴 수 있어 라고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도 땅으로도 교회 이름으로도 내 머리 내 이성 인간의 위대한 휴머니티 휴머니즘 그런 것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얘기 하십니까? 네가 한 터럭도 희게 하고 검게할 수 없다 네 머리카락 하나도 검게하고 희게 하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한 존재가 나는 간음, 음란의 죄, 절대 범하지 않을 거야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것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간음과 음란의 죄는 마음에서부터 이미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간음과 음란에 대해서 죄인일 뿐이지요. 이미 죄인입니다. 결코 선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신앙의 방법은 나는 주님의 뜻을 지킬 수 없습니다 라는 것을 먼저 인정할때 도리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시작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간음과 음란의 죄에 취약하고 연약한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앙의 방법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투명하고 오픈된 삶을 사셔야 합니다.
조선시대 한 정승은 아침이 되면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고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방문을 꼭꼭 닿아놓고 있으면 아무도 보지 못하니 범죄하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승은 사적인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을 만나고, 자기를 관리했다고 합니다.
간음과 음란의 죄가 벌어지는 것은 모두 홀로 있을 때 문에 꽁꽁 닫아놓은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죠. 제 아무리 내가 목사인데 장로인데 직분자인데 라고 하지만 여러분 모두 인간일 뿐입니다. 간음의 범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어떤 질문이든, 어떤 위치에 있던, 세상의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던, 우리는 항상 오픈된 곳에 있어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이성과 함께 있는다면 이해와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어놓고 있거나 충분한 거리를 유지하고 앉아있으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더욱 조심하시고 주의하셔야 합니다. 가까운 관계로 할지라도 절대로 성적인 표현을 하셔서는 안됩니다. 나는 괜찮은데 너는 불편하니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상대방이 여러분이 표현한 성적인 표현에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즉시 중지하시고 사과하시고 반성하셔야 합니다.
내가 표현이 좀 그래, 내가 표현이 좀 서툴러 라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 않으면 됩니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충분히 다른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성적인 표현, 성희롱 적인 표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시 그런 표현을 들으신다면 그 상대방이 목사든 장로든 어떤 직분자든 교회 원로이든 상관없이 문제를 지적하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목사님이 저 장로님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교회가 시끄럽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시고 즉각적으로 불편한 성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문제 제기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족한 저희도 회개하고 반성하고 바른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교회를 지키는 것이고 목회자와 직분자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회사 일 때문에 공적인 이유로 술을 잡수시는 성도님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성적인 문제가 술 때문에 일어납니다. 먼저는 술을 가능한 끊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술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변명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술이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술에 변명하면 안됩니다.
술 때문에 그런 것이 어딨겠습니까? 다 여러분의 잘못이고,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음란과 간음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술을 끊으시고 단호한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란의 죄, 간음의 죄악이 교회 공동체 여러분의 가정에 들어오면 공동체는 곧 파괴됩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간음과 음란의 죄가 퍼졌을 때 이스라엘 역사는 항상 쇠퇴기를 걸었습니다.
가깝게 곳곳에 있는 교회와 가정들을 돌아보면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가정과 교회는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간음의 죄는 결코 인간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대로 간음의 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깨달아 항상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신다.
나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마음을 가지시고 가깝게는 아내와 남편이 서로 부부의 사랑을 지키고 교회 공동체는 이미 주어져 있는 도덕과 윤리의 삶을 지키고 상식적인 기준을 따라간다면 그 가운데 서로 존중하고 주안에 보호하는 신앙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4년 전 미국 ABC 뉴스에 미시간 주에서 하는 99세 동갑내기 부부 도날드 비비안 하트 부부의 80주년 결혼 기념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부부로 80년을 살 수 있는가? 그냥 살아도 80년을 살기가 힘든데 부부로 80년을 살았는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남편 도날드는 항상 함께 웃는 것이 좋았다.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이 오랜동안 함께 살 수 있는 힘이었다 라고 얘기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의 아내 비비안의 인터뷰 내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그 아내 비비안은 80년간 그 도날드 함께 살았던 부부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배우자를 항상 도우려고 해야하고, 잘못된 것에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간음과 음란의 죄악에서 벗어나 태초에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을 건강하고 바르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내 눈과 내 손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내 이성, 내 본능, 내 집착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 하나님을 향한 영성,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킬 때 더욱 건강한 사랑 건강한 가정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결단으로 한 주간 더욱더 순결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