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 구상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남북 간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김정은 일가의 일거수 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발언이 또 논란이 됐다.
지난 11월 24일 김 부부장은 윤석열 대통령을 '천치바보'로 지칭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왜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 댓고 '서울'을 '과녁'으로 묘사하며 또 한 번 경악케 했다. 김여정은 지난 8월에도 "윤석열 그 인간자체가 싫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담대한 구상'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한반도는 북한의 도발과 한미의 군사 대응으로 하루가 다르게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극단적으로 치닫는 한반도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라 할 수 있는 소위 '담대한 구상'을 분석하고 그 한계와 대안을 제안해 보려 한다.
윤 정부가 내놓은 담대한 구상, 대안없이 외쳤던 ‘통일대박’과는 다르지만
통일부에 따르면,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우리의 경제‧정치‧군사적 조치의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통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는 제안"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선순환으로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은 크게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북한 비핵화와 경제·정치·군사적 상응 조치를 동시적·단계적으로 이행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 둘째, 역대 정부에서 이룬 남북 합의 정신을 존중하면서 그 성과는 이어받아 원칙 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를 추진한다. 셋째, 국민과 국제사회가 함께하는 평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통일·대북정책은 두 가지 점에서 이전의 보수 정부와 차이를 보인다. 첫 번째로, 기존의 남북 합의에 대한 관점이다. 남북 간 합의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이행하는" 구조와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또한 지난 5월 청문회를 통해 기존의 남북 합의를 존중할 것이며 '이어달리기'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은 이전의 보수 정부가 선(先)비핵화를 고집하거나, 대안 없이 '통일대박'을 외쳤던 것과 다른 차별성을 보인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담대한 구상은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 보인다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하고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고 "북한 비핵화와 경제·정치·군사적 상응조치를 동시적·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갈 것"이라 밝히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남북 합의를 존중하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동시적·단계적 상응 조치를 제안하는 동시에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한 단계적 조치를 언급한 점은, 분명 이전의 보수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변화이다. 적어도 텍스트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 ‘담대한 구상’, 윤 정부는 실제로 이행할 의지 있나
필자는 윤석열 정부의 한반도 전략에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무턱대고, 단지 보수 정부이기 때문에 덮어 놓고 담대한 구상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내용 자체를 놓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음 대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담대한 구상은, 이전의 보수 정부와 다르며 이전의 진보 정부를 일정부분 계승하겠다는 의지조차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분석한 결과, 문제는 담대한 구상의 내용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 번째로, 남북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남북 간 서로에 대한 신뢰 회복 없이는, 아무리 좋은 대북정책이 만들어진다 해도 유명무실할 뿐, 소용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은 단순하게도 '기존 남북 합의'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복원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남북은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나눴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다. 윤 정부 또한 한반도에서 군사훈련과 무력 대응을 중단하고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최우선으로 재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가 한반도 비핵화에 실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스냅백(조건부 이행)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으며, 불가피하다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서 벗어나 남북이 스스로의 합의를 이행하는 결단도 내려야 한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즉, 윤석열 정부가 이 '담대한 구상'을 실제로 이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된다. 먼저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통일부 버전과 대통령실 버전으로 행위 주체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활용되고 있다. 보수의 포용정책을 추구하는 권영세 장관과 통일부의 관점과 달리, 대통령실과 여당의 분위기는 제재를 통한 굴복, 선(先)비핵화론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담대한 구상은 비핵화와 남북관계를 선순환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반드시 선순환의 고리에 연결해야 한다. 북한은 1993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 비핵화의 대가로 북미관계 정상화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북미관계 정상화와 관련된 어떤 조치도 이행한 바 없다. 과연 윤석열 정부는 담대한 구상을 이행하기 위해 미국을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심으로,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현실화 되길 바란다
담대한 구상은 최소한 '텍스트상으로는' 필자의 입장, 그리고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윤석열 정부가 이 구상을 있는 그대로 이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남북,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담대하게' 취할 준비가 되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으로 담대한 구상이 현실화되길 바란다면, 아니 그런 의지가 있다면, 먼저 행동해야 한다.
단지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무력도발을 하면, 한미동맹의 강력한 힘으로 '담대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은, 필자가 이해한 담대한 구상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먼저 한반도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하자. 그리고 남북 간, 북미 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먼저 행동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과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도 요청하자.
이것이 진정 담대한 구상이며 행동이다.
윤 정부 '담대한 구상', 말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