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Ἐγὼ Ἰωάννης, ὁ ἀδελφὸς ὑμῶν καὶ συγκοινωνὸς ἐν τῇ θλίψει καὶ βασιλείᾳ καὶ ὑπομονῇ ἐν Ἰησοῦ, ἐγενόμην ἐν τῇ νήσῳ τῇ καλουμένῃ Πάτμῳ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Ἰησοῦ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엔 테 들맆세이)과 나라(바실레이)와 참음(휘포모네)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개역개정)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함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엔 테 들맆세이(ἐν τῇ θλίψει)는 심령 속의 지성소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라고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바실레이는 하나님 나라 왕국을 의미한다. 휘포모네(ὑπομονῇ)는 하나님 보좌 아래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이 같은 자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신도들은 심령 속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εγω ιωαννης ο και αδελφος υμων και συγκοινωνος εν τη θλιψει και εν τη βασιλεια και υπομονη ιησου χριστου εγενομην εν τη νησω τη καλουμενη πατμω δια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και δια την μαρτυριαν ιησου χριστου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Ἐγὼ Ἰωάννης, ὁ ἀδελφὸς ὑμῶν καὶ συγκοινωνὸς ἐν τῇ θλίψει καὶ βασιλείᾳ καὶ ὑπομονῇ ἐν Ἰησοῦ, ἐγενόμην ἐν τῇ νήσῳ τῇ καλουμένῃ Πάτμῳ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Ἰησοῦ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함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분석)스테파누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었으나,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예수로만 표현되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어야 한다. 심령 속의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이 말은 요한이 핍박을 받자,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서『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 말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은 성도의 심령이 세워지면 곧바로 핍박이 도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밧모섬과 같이 일곱 적들이 둘러싸는 모습이다. 그래서 성도는 넘어지기도 한다.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된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여기도 환란은 들리세스 로서 심령 속의 호 로고스에게 들어가라는 압박을 의미한다. 핍박이 오면 바로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찾으라는 말이다. 인내는 휘포모네인데, 성도가 보좌에 머무는 인내이다. 영적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만 필요한 것이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가 이런 상태로서 들맆세스와 휘포모네가 필요한 상태임을 말해주신다. 성도들은 심령 속의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이 이를 알려주는 말이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갇혀있는데,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성도가 핍박이 올 때,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거 인내하면서 간구하면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10-11. ἐγενόμην ἐν πνεύματι ἐν τῇ κυριακῇ ἡμέρᾳ καὶ ἤκουσα ὀπίσω μου φωνὴν μεγάλην ὡς σάλπιγγος λεγούσης· ὃ βλέπεις γράψον εἰς βιβλίον καὶ πέμψον ταῖς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ς, εἰς Ἔφεσον καὶ εἰς Σμύρναν καὶ εἰς Πέργαμον καὶ εἰς Θυάτειρα καὶ εἰς Σάρδεις καὶ εἰς Φιλαδέλφειαν καὶ εἰς Λαοδίκειαν.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개역개정)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주의 날은 여호와의 날이다. 주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실 때에 음성이 들려오는 바로 그때가 주의 날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일요일에 주의 날이라고 모이는 그런 날이 아니라는 의미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호 로고스의 음성이 들여오면 바로 그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8절에서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바람은 성령을 의미한다. 그 날 바람이 불때는 여호와의 날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온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성도에게 여호와의 날이 될 때 옛사람은 불타서 죽고, 성전이 세워져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한 자만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5-29절『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성령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실때 영적으로 살아나야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귀신이 쫒겨나가는 것이다. 나팔이 불어지는 것은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성도의 심령을 울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죽었던 영이 깨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하는 대부분의 말씀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로 오염된 설교가 나무나 많은 것이다. 생명의 소리가 아니라, 그저 인간들이 부르짖는 소리일 뿐이다.
몸을 돌이켜 어떤 소리인지 알아보려는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며 네가 경험한 것을 글로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림을 보여주셨고, 그것을 글로 써서 대표적인 일곱 교회에 보낸 것이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편지를 쓰는 것은 살아있는 영(성령)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육의 마음 판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전이 되는 사람 만이 영을 살릴 수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며, 산자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성도:성전)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임재할 때 핍박이 오며, 하나님은 들맆세스(보좌에 들어가려고 미는 압박)와 휘포모네(보좌에 머무는 인내)하게 해 주신다. 그 핍박은 요한이 밧모섬에 갇힌 것과 사도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혀있을 때를 생각해본다. 성도 역시 심령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마음 판에 기록하고 그것을 전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긴 사람이 되며, 그런 사람 만이 그리스도의 편지를 쓸 수 있다. 그것을 생명책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어 생명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도는 주의 날에 심령 속에 성전이 되고, 생명책이 되고 그 생명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샘솟듯이 편지로 나가, 영적으로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