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사회의 다름을 이해하는 일
지난 50년간의 한국 역사는 남 북한 분단의 역사다.
남북한 정부의 적대관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양 체제의 현격한 이질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통일은 서로 다른 경제체제와 법과 제도 속에서 발전해온 남북한의 이질성 극복을 수반하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의미한다.
독일 통일 이후 통일의 경제적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 이후 진통을 지켜보면, 통일의 경제적 비용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비용이다. 하지만 사회적 비용은 계산하기 어렵고 더욱더 치명적이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좌절, 도피, 범죄, 혼란, 가족 파괴등이 수반되어 사회적 손실은 사회에 짐이되고 건강성을 위협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양 국민이 "얼마나 같은 국민 혹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느냐" 가 관건이다.
남북한 사회의 지배 논리
북한 사회는 스탈린주의를 기본 논리로 삼고 있다. 스탈린적 '현존 사회주의'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순수한 공동체적 요소에 기초하기보다는 오히려 관료적 통제를 기본 요소로 삼는다.
결국 북한은 개인의 분산된 경쟁을 극도로 억제하고 자발적인 연대와 사에 대한 공의 우선을 강조하는 종적인 통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군사화를 가져왔으며 국민들에게 전투성과 헌신성, 복종을 요구했다. 집단주의 논리 속에서 개인은 존립의 정당성을 갖지 못할 뿐더러 개인이나 특정 분파적인 집단의 형성 자체가 금지된다.
북한에 연좌제와 신체형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통제방식이 전근대적으로 보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남한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을 육성하고, 국가는 대기업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시장을 개척하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후원자 또는 보조자가 아니라 사실상 주관자로서 개입해왔다. 남한의 시장질서는 출발부터 전근대적 가족주의 논리와 강하게 결합이 되어 있는 사회다. (엘리트 형성, 기업의 소유구조, 직장에서의 승진, 사회적인 기회구조가 가족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등 전근대적 공동체요소가 지배한다.)북한은 사회 논리가 국가의 논리에 의해 식민화 되었으며 남한의 시장질서는 국가 논리, 공동체 논리와 결합되어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질서의 남북한식 변형
남북한의 분단과 상호 적대관계는 하버마스가 말한 내적인 축적 위기와는 다른, 그 자체가 이미 '외생적인 위기'상황이고 남북한은 모두 외적 위기에 대처하는 일종의 안보국가, 전쟁국가 라고 볼 수 있다. 분단 체제의 남북한은 내부의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를 국가 바깥으로 돌릴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는 엘리트 주도의 '수동적 혁명'과 물질적 유인을 통해서 미봉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남한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사회가 구축되었으나 경제 성장의 과실은 중간층이나 노동자계층에게도 부분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북한은 다른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초기 단계의 활력을 상실하고 1960년대 전쟁 위기 대처를 위해 군사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면서 70년대 점차 침체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도입은 북한과 같은 조건에서는 체제 위기를 불러오는 위험한 대안이므로 방법은 이데올로기를 변형하는 것이었다. 당과 김일성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국가주석제를 도입하였다. 수령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지며 종교적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권위주의적 성격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유교질서는 아버지, 스승, 왕, 연장자로 권위를 분할했는데 모든 권위가 국가와 최고통치자에게 집중되거 가공할만한 국가 숭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남한은 해방후 헌법, 정치적 절차에서 보자면 자유민주주의 이상에 근접해 있었으나, 516이후 1972년 유신헌법과 1980년 제 5공화국 헌법에서 국가 질서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이 확대되며서 국가주의적 요소가 강해졌다. 예를들어 전진한 선생님의 의견을 반영한 '이익균점권'은 1948년 헌법의 내용으로 노조의 단체 행동권을 보장할 뿐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기업가가 아닌 노동자들이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헌법이 그 이후 축소된다. 남한의 헌법은 48년의 제정때와 달리 72년을 거치며 국가 통제적이고 집단주의적 성격을 강화하게 된다.
72년 유신 헌법은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과 외양적으로는 가장 근접한 형태를 보여준다. 다만 84년을 기점으로 개방화 자유화로 나아가며 북한과는 차별화 된다.
남북한은 어떤 인간형을 요구하는가.
북한은 유교적 기독교적 가치관을 철저하게 파괴한 뒤에 사회주의적 집단주의를 정착시켰다 . 북한은 수령에 대한 충성, 사회와 동료에 대한 인정, 의리, 헌신, 미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인간형을 강조한다. 초기에는 집단을 위한 활동으로 노동을 자유롭고 영광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전형적인 공동체 모델의 새로운 인간이었으나 변질되었다.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집단주의보다 의리와 인정을 중요시하고 공을 위해 사를 양보하는 한국식의 유교적 인간형에 가깝다.
남한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인간형을 강조한다. 국가 이념에 충실한 인간형을 요구했지만 획일적이지 않고 다차원적으로 착종되어 있다. 사적 이익을 집착하는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북한과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기적인 인간형이 암암리에 장려되어 온 측면도 있다.
인간형의 내면화
북한은 집단주의의 내면화가 가장 중요한데 이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남한은 집단적 가치나 공동체 의식보다는시장에서의 물질적 보상과 개인적 성공을 가장 중요한 행동 준거로 삼는다. 그러나 아직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비해서는 덜 시장지향적이고 덜 개인 중심적이다. 일자체보다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요구보다 가족의 요구를 우선한다. 출세또한 개인의 성공 이전에 가족의 성공을 의미한다.
북한의 시장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그룹, "은폐된 저항" 그룹과 남한의 새로운 세대의 지향은 국가 논리로부터 벗어나려는 공통점이 있다.
남북한에게 민족은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들의 사회를 민족이라는 이상의 중간항으로 본다. 북한의 주체는 소련과 중국 사이의 자주적인 노선을 걷는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북한이 강조하는 민족적 자존심과 정체성의 기반은 혈연적 요소와 문화적 전통 등 종족적인 측면을 일차적인 민족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거대가족'으로서의 의미를 지고 있다.
북한에게 민족은 반외세, 민족해방, 민족자주 등의 정치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나 남한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에는 정치적 의미가 거의 없다 .북한에서 민족은 공식적인 이데올로기이고 국가의 존립근거다. 그러나 젊은 세대로 내려오면서 남한, 북한 모두 민족은 상상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남북한
사회질서 논리의 측면에서 북한은 가족주의 요소와 와다 하루키가 말하는 유격대적 요소의 결합체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했음에도 현재까지 건재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시장논리를 극도로 축소하고 공동체 논리와 국가 논리를 극대화한 사회체제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시장 전제주의가 국가주의 및 가족주의와 결합한 권위적 자본주의의 유형이다.
남한의 자본주의 질서와 북한의 사회주의 질서는 냉전 질서와 군사적 대결,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질서와 시장지향적인 공업화 및 그것에 대한 반정립으로서의 폐쇄적이고 자립적인 공업화 노선의 귀결로 설명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노동규율 위반이 국가 규율과 법을 어기는 범죄행위가 되며 남한에서는 노동조합의 쟁의 등이 국가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가 된다. 북한, 남한,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역시 사를 억제하고 개인을 앞세우는 것을 꺼리는 유교문화의 영향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 냉전과 국가 위기를 핑계로 끊임없이 대중에게 복종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북한과 남한사회를 특징짓는 중심적 개념은 가족이다. 남북한이 공통적으로 지닌 가족주의, 인간 존중 등 공동체 논리의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발전시키겨 그것을 21세기적 가치와 결합할 것인가를 탐색해야 한다. 남북한 이질화의 극복은 남북한 사회의 발전적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