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님께
용기 있는 고백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은 결코 “못난이의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심이 한 단계 깊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진실한 싸움의 기록이라 생각합니다.
어수계와 본존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부처의 길을 진심으로 걷고자 하는 간절함입니다. 저가 1975년 입신했을 때와 똑같은 마음이라 생각됩니다.(참고로 저는 입신 후 15년이 훌쩍 넘은 1990년에 어수계를 받고 그해 본존님을 하부 받아 모시고 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잠시 “지금 당장”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불법은 “마음은 급하지만, 도는 급하지 않다”는 깊은 이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승현님은 그 급한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고 바로잡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심의 힘입니다.
글 속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찌 여길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이 한 생각이 이미 큰 공덕입니다. 왜냐하면 불법은 환경(신도, 동개신도회, 인연)과 함께 성불로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동개신도회를 선택하고 남았다는 것, 이것 자체가 쉽지 않은 신심의 결단입니다.
또 승현님이 쓴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련정종 신심, 우리의 신심은 오롯이 대한인의 것입니다. 대한인의 것을 지키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불법의 원리인 ‘수방비니(隨方毘尼)’의 실천 선언입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는 일본에 태어나셨지만 그 불법은 일본만의 것이 아닙니다. 각 나라에 유포될 때에는 그 나라의 인연과 기근에 맞게, 그 나라 사람의 손으로, 그 나라 방식으로 꽃 피워야 합니다.
지금의 동개신도회는 완성된 조직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성인의 불법을 어떻게 유포하여 발고여락의 마음이 꽃피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사명 속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승현님의 고민은 사실 많은 신도들이 겪는 고민입니다.
“언제 받을 수 있을까?”
“왜 아직 안 될까?”
그러나 지금 동개신도회가 나아가는 길은 받기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신앙입니다. 즉, 내가 자격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광포의 주체가 되는 것, 이것이 연합회에서 말한 “우리가 중심이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조건”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제목을 멈추지 않는 것, 동개신도회와 함께하는 것, 광포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이 세 가지가 쌓일 때 자연스럽게 길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글은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자신을 증명하는 신심의 증거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동개신도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함께 고민하고 함께 걸어갑시다.
당신은 이미 당당한 동개신도회의 신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동적인 답변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많은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고락이 있어도 제목을 부르며 나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답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분히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이되면 수방비니의 원리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손득춘 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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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