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격만 올리고 유엔의 중재로 중동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석유시장은 이제 완전히 OPEC이 석유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1차 오일쇼크를 겪은 석유 수요국들도 엄청나게 오른
석유가격 등에 불만에 가득 찬다
미국의 핸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주도로
세계 석유 공급 위기의 공동대응 등 석유를 함께 비축하고 비상시 석유를 공유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OECD회원국을 중심으로
국제에너지기구 (IEA)가 설립된다
하지만 IEA도 설립초기에는 OPEC처럼 잘 단합이 되지 않는다
석유시장을 주도하는 OPEC의 감산과 수요국의 사재기 등으로 전쟁 전 대비 3배 이상으로 오른 채 공급부족의 불안한
심리가 유지되며 1차 오일쇼크는 진정되었다
이 무렵 주요 석유 주요 생산국인 이란에서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비가 백색혁명을 무리하게 주도하여 이란 국민의 반감을
산다
78년에는 데모대를 진압하다가 이란의 (검은 금요일의 학살)을 일으켜 정권에서 축출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진다
당시 이란은 세계 2위 석유 생산국이었다
데모에 참여한 흥분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란의 정유시설은
올 스톱된다
동시에 사우디도 감산에 돌입한다
세계 석유가격은 다시 2배 이상 폭등한다
결국 79년 팔레비는 해외로 망명한다
반정부 혁명으로 63년 해외로 추방당했던 호메이니가 국민의 엄청난 환대를 받으며 이란에 귀국한다
영국의 도움으로 수립된 팔레비 왕조가 막을 내리고 호메이니 정부가 시작된다
이것이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다
호메이니는 이집트 망명시절 이웃 이라크의 후세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막상 정권을 잡자 호메이니는 이슬람 종교 원리주의에 심취하여
이슬람 시아파의 대장으로 역할에 집중한다
주변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의 내에 있는 시아파들을 선동한다
시아파인 대장 이란과 수니파 대장 사우디가 서로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다
특히 인접한 후세인의 불만이 폭발한다
80년 이란을 기습공격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된다
이란의 정유시설이 파괴되고 석유수출은 중단된다
세계 석유가격은 이란 혁명 발생전 대비 3배 이상 폭등한다
78년~80년 국제유가의 폭등이 2차 오일쇼크 석유
파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