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신학적 의미
1) 시온과 시온의 백성
이사야 예언서가 전개되는 중심은 시온과 시온의 백성이다. 이사야 예언서는 시작과 함께 타락하고 죄로 가득한 시온의 모습을 비판하였다. 물론 그 책임은 시온 자신에게 있지 않고, 시온의 백성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는 첫머리에서 시온의 백성을 향해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고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앎을 가지라고 강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부합하여 히즈키야는 시온의 백성이 본받아야 하는 모범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외부의 큰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가 하느님을 믿고 의지했고, 하느님께서는 시온을 구해 주셨다 아울러 시온의 백성이 고백하는, “그곳에 사는 이는 아무도 ‘나는 병들었다’ 하지 않고”(33,24)라는 신탁은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 이야기(38장)를 통해 실현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시온을 보호하고 시온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신학적 주제는 역사적 사건 가운데 전개되는 시온과 백성의 구원 이야기에서 구현된다.
2) 하느님을 향한 믿음
하느님을 믿는 것은 제1부(1-39장)의 중심 주제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누구든지 옳게 설 수 없기 때문이다(7,9참조). 제4편은 유다 왕국이 역사적으로 체험한 기원전 701년의 산헤립의 침략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러므로, 제4편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면 위협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 인물이 히즈키야 임금이다. 그는 산헤립의 위협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구원을 직접 체험한다. 예루살렘, 곧 시온의 백성이 하느님을 옳게 믿게 되면 시온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시온 신학의 가르침이 제시된다.
시온의 위협과 함께, 히즈키야가 중병에 걸려 죽음의 위협에 놓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기서도 히즈키야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병에서 치유되어 생명이 연장된다. 시온이 산헤립의 군사적 위협에 놓인 것처럼, 시온의 백성 히즈키야도 죽음의 위협에 놓인다. 이 위협을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믿음’이라는 주제는, 시온이 어둠의 힘으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지만 하느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지니면, 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 사건으로 분명하게 증명한다. 이 신학적 주제는 이사야 예언서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전개된다.
3) 역사적 사건에서 증명되는 하느님의 왕권
하느님의 왕권은 선행하는 제1-3편에서 각각 한 번씩 직접 언급되었다(6,5 ; 24,23 ; 33,22). 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다스림이라는 주제를 펼쳐가는 제4편에서는 하느님의 왕권이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대왕이신 아시리아 임금님”(36,4.13)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임금님으로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느님의 왕권이 축소되거나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제4편은 역사적 사건을 전하는 본문에서 히즈키야와 산헤립의 대결 구도를 보여주는 가운데 임금이라는 호칭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느님을 임금님이라고 표현한다면, 산헤립, 히키즈키야, 혹은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과 같은 수준으로 보이기에 의도적으로 임금이라는 호칭을 하느님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대왕으로 등장하는 산헤립의 무력한 죽음, 하느님의 천사에게 아시리아 군대가 몰살당하는 장면은, 하느님이 대왕 산헤립보다 더 힘 있고 능력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와 같이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의 왕권은 신학적이고 사변적인 주제로 머물지 않고 역사에서 전개되고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