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마을의 상엿집
/ 김용재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다.
내가 시골에 있는 외가에 가게 된 것은 1년 반 만이다. 아빠의 승용차로 가려던 계획을 바꿔 기차로 떠났다. 그것은 순전히 엄마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기차를 타는 여행이 뭐 낭만이 넘친다나?
새마을호 기차가 익산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조금 넘었다.
“우와! 익산도 많이 변했구나!”
정거장을 빠져나온 엄마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아빠가 앞장서서 서둘렀지만 엄마의 발걸음은 두리번거리느라 거북이였다.
버스승강장에서 30분쯤 기다리고 있으니 외가로 가는 시내버스가 왔다. 내가 앞서서 승차했다. 차 안은 한산했다.
버스는 시내를 굽이굽이 감돌아서 시외로 빠져나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푸른 목장처럼 파도가 넘실거렸다. 창밖으로 여기저기를 바라보는 엄마는 나보다 마음이 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쯤 달린 버스는 무학 마을에 있는 외가의 대문 앞에서 멎었다. 여기가 버스 종점이었다.
외가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버스 문이 열리자 우르르 다가왔다. 두 마리의 검둥이와 누렁이도 나와 꼬리를 흔들었다.
“오매나! 내 새끼 윤재가 요로콤 커버렸디여? 장정 됐네!”
외할머니가 나를 껴안더니 볼에 뽀뽀까지 했다. 외할아버지 외삼촌 외숙모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거렸다. 진수 형과 은경이 누이는 내 양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외갓집 식구들은 정이 펄펄 넘쳤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 밖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이 한낮의 땡볕을 가려 마당까지 길게 덮고 있었다.
외증조할아버지가 꾸부정한 모습으로 마루에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저 윤재여요.”
“오냐오냐, 어서 오너라. 덥다 얼런 말캉으로 올라와. 옳지 너그들도 왔구나! 다 와야 시(셋) 식구뿐이지? 너무 단초럽다.”
외증조할아버지는 내 손을 먼저 잡더니,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외증조할아버지의 손은 장작개비처럼 까칠까칠했다.
너른 집의 방방마다 문이 활짝활짝 열려 있었다. 뒤란과 옆에 있는 나무 위에서 매미가 억세게 울어댔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큼직한 소쿠리와 쟁반에 먹을 것을 가득 담아왔다.
“배고프겠다. 점심 먹기 전에 이걸 좀 먹어라.”
외숙모가 옥수수 껍질을 벗겨 내 코밑에 들이대었다.
찐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먹음직스럽게 썬 수박과 참외, 토마토가 그릇마다 가득했다. 여럿이 빙 둘러앉았다. 외할머니께서도 또 내게 잘 익어 속이 뻘건 수박을 주었다.
“수박이 다디달 거다 먹어봐라.”
“할머니, 고마워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아이고 내 새끼, 인사성도 밝네.”
외할머니는 내 엉덩이를 토닥이었다.
수박이 꿀맛이었다. 참외도 먹고, 토마토도 먹었다.
그 사이 대청마루에 점심상을 차려놓았다.
“자, 점심 먹자. 도시에서 귀한 손님이 왔는데 반찬이 별로라 어쩌지?”
외삼촌이 겅중거리면서 외증조할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밥상 앞에 먼저 앉았다.
진수성찬이었다. 통닭도 두 마리나 있었다. 마치 잔칫집의 잔칫상 같았다. 외갓집 식구들과 와글와글 어울리면서 점심밥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매미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한낮이 지나고 4시쯤 되었을 때였다.
“윤재야, 잠자리 잡아야지?”
아빠의 말에 나는 배낭을 열었다. 미리 준비해 온 3개의 잠자리채와 채집망을 꺼냈다.
“이건 진수 형 것, 요것은 은경이 네 것이다.”
잠자리채를 나눠주자 진수 형과 은경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들 것까지 사왔구나. 윤재야, 고맙다.”
“오빠, 고마워.”
“고맙긴. 잠자리 잡으러 갈까?”
“나 따라와.”
진수 형이 앞서고, 나와 은경이는 뒤를 따랐다.
동네 뒷산으로 갔다. 숲 속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었다. 산비둘기들도 구르르구르르 울었으며, 꿩이 꿩꿩 연거푸 울었다. 이름다운 전원에서 교향곡을 듣는 듯했다. 어느 쪽에서 들리는지 귀를 기웃기웃했다.
“윤재야, 이쪽으로 와. 여기 잠자리 많다.”
나는 진수 형이 부르는 쪽으로 뛰어갔다. 들깨 꽃이 허옇게 핀 깨밭 옆이었다. 수많은 잠자리들이 하늘 낮게 날고 있었다. 진수 형은 잠자리채를 마구 휘저었다.
“잡았다. 또 잡았다!”
“윤재 오빠, 난 왕잠자리도 잡았는걸?”
나도 성급한 마음으로 잠자리채를 휘익휘익 저었지만 잠자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형, 내 잠자리채에는 왜 안 잡히지?”
“무조건 휘두르지 말고 한 마리씩 정조준해!”
진수 형의 말대로 했더니 한 마리가 잡혔다.
“한 마리 잡았다!”
“윤재 오빤 고추잠자리를 잡았는데?”
은경이가 옆에서 확인해주었다. 나는 난생처음 잡은 고추잠자리를 보고 신이 났다. 하늘을 훨훨 나는 기분이었다.
셋은 해가 서편으로 기울 때까지 잠자리를 잡았다. 온몸이 땀으로 멱 감았다. 채집망이 반절이나 차도록 잠자리를 잡았다.
셋은 노래를 부르면서 메밀밭 쪽으로 내려왔다. 하얀 꽃이 아름다웠다.
“저게 상엿집인데 그 옆으로 가자.”
“오빠, 그리로 가려고? 난 무서워서 안 갈래!”
은경이가 벌벌 떨었다. 나도 상엿집이란 말에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윤재야, 너 한번 안 가볼래?”
“형, 나도 싫어!”
“널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럼 저리로 가자.”
나와 은경이가 반대하자 진수 형은 발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집에 돌아오니 해 그림자가 마당까지 깔려 있었다.
“많이 잡았니?”
아빠가 채집망을 요리조리 굽어보면서 잠자리를 세었다.
“야! 많이 잡았다. 스물세 마리나 되는데?”
밤이 되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기장을 쳤다. 평상 위에도 모기장을 쳤다. 반달이 중천으로 떠올랐다.
내가 상엿집 이야기를 꺼냈다.
외증조할아버지께서 상엿집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지금은 마을에서 사람이 죽어도 상여를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모두 상여에 시신을 싣고 산으로 가서 장례를 지냈다. 마을마다 또는 이웃끼리 상엿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무학 마을의 상엿집은 1백 년이나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무섭고 흉측스럽다고 철거하자고 했는데, 외증조할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어 중요민속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상여에 죽은 자의 넋이나 귀신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섭게 여기고 있어, 그것을 덜기 위해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상엿집을 두었다. 홀로 있는 상엿집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옆에 큰 나무를 심어놓았다.
“할아버지, 좋은 걸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더 자상히 알라먼 직접 가보는 것도 좋은디…….”
외할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나는 상엿집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낮에 진수 형이 가보자고 할 때 안 간 게 후회스러웠다.
이튿날이었다.
엄마아빠는 바쁜 일이 생겨 일찍 떠났다. 나는 사흘만 더 있다가 올라가기로 했다.
아침부터 찌는 듯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쾌청했다. 진수 형과 은경이의 뒤를 따라 냇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새끼 붕어 몇 마리만 잡았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높은 나무에 붙어 맴맴 울어대는 매미를 잡기로 했다. 그런데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소리를 듣고 다가가면 포르르 날아가곤 했다.
나는 메밀밭 너머의 상엿집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랐다. 고개를 빼고 기웃거렸지만 상엿집은 보이지 않았다.
“진수 형, 그 집 한번 가볼 수 없을까?”
“그 집이라니?”
“거 있잖아, 어제 가보려 했던…….”
“응, 따라와.”
진수 형은 눈치가 빨랐다. 진수 형은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었다. 은경이가 맨 뒤를 따랐다.
“오빠, 지금 상엿집에 가는 거야?”
“괜찮아. 궁금히 여기는 윤재에게 보여주려고 하니 너도 따라와.”
“난 집으로 갈 거야.”
“괜찮다니까! 오빠들이 있잖아.”
은경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징징대다가 마지못해 따랐다.
앞서가던 진수 형이 우뚝 섰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침을 꼴깍 삼켰다. 커다란 팽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아래에 을씨년스런 집이 한 채 보였다.
“형, 저게 상엿집이야?”
“…….”
진수 형은 아무 말도 없었다.
“오빠, 난 무서워!”
은경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또 징징댔다. 나는 가슴이 섬뜩했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가슴도 떨리고 턱도 떨렸다.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따라왓!”
진수 형은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내가 진수 형의 옷깃을 붙잡자 은경이도 내 옷을 잡았다.
허름한 흙돌담집의 벽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낡아빠진 기와지붕 위로 망초와 명아주가 듬성듬성 서 있었다. 귀신이라도 금방 뛰어나올 것 같았다.
진수 형이 벽 구멍으로 얼굴을 대고 들여다보았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았다.
“잘 안 보인다.”
진수 형은 얼굴을 떼고 상엿집을 휘돌았다.
“여기 문이 있다!”
진수 형의 말에 은경이의 손목을 힘껏 잡은 나는 조심조심 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양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이 안 잠겼구나! 들어갈 수 있겠다.
“형! 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오빠! 지금 본정신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모르니?”
“안 돼!”
은경이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렇지만 진수 형은 양철 문고리를 잡고 화들짝 열었다.
“와앗!”
셋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알록달록한 무늬와 형형색색으로 된 상여가 금방 밖으로 뛰어나올 자세였다. 상여 위로 얹혀 있는 연분홍 포장도 빛바랜 채 울고 있었다. 상여 주변에서 수많은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것 같았다.
진수 형은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니네들도 들어와 봐!”
손을 꼭 잡고 무서움에 떨고 있는 나와 은경이는 엄동설한 강추위에 떠는 모습 그대로였다.
“오빠, 난 집으로 갈래!”
“혼자 가면 귀신이 네 등에 따라붙을걸?”
“아이 무서워!”
은경이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나를 붙잡고 등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니까 밖에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
할 수 없이 나와 은경이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을 굳게 먹자.”
내 말에 위안이 되었던지 은경이도 내 팔을 움켜쥔 채 상여를 살폈다.
상여의 네 면은 연꽃과 꽃구름으로 그림이 가득했다. 비록 색깔은 바랬지만 귀신이 좋아할 그런 그림으로 치장된 상여를 빙 둘러 보는데 ‘찰칵’ 양철 문이 닫혔다.
“아이 깜짝이야!”
셋은 한꺼번에 소릴 질렀다. 문이 닫히자 대낮인데도 상엿집 안은 깜깜해졌다. 셋은 한데 뭉쳐 꼭 껴안았다.
“엄마, 엄마!”
은경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갑자기 무슨 돌풍이 불었나?”
“오빠, 그게 아니라 귀신이 문을 닫은 게 아냐?”
“그럴 리가…….”
진수 형이 문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하나 둘 셋!”
진수 형이 있는 힘을 다해 온몸으로 문을 밀었다. 문은 꼼짝도 안했다.
“어라? 이상하네! 너희들 이리와. 함께 힘을 모아 문을 열자.”
나와 은경이는 소경의 발걸음으로 더듬더듬 했다.
“어깨를 문에 바짝 대!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함께 문을 연다. 알았지?”
나는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닫혀진 문에 어깨를 밀착시켰다.
“자, 하나, 둘, 셋!”
셋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했다.
양철 문이 산산조각이 나며 열렸다. 셋은 똑같이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눈앞에서 번갯불이 반짝이었다.
“아야야야!”
셋의 외마디 소리에 팽나무에서 짹짹거리던 참새들의 소리가 뚝 멈췄다.
글 : 김 용 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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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용재 작가님, 올려 주신 동화 잘 읽었습니다.
올해는 더욱 건강하셔요.
오메야ㅡ 넘 재밌어요.
큰형님 동화 정말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계속 좋은 동화 많이 써주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