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식은 그날 이후 회사도 출입처도 가기 싫었다. 집을 나서면서 출입처 간다고 한 뒤 길을 헤맸고 회사도 출입처에서 곧바로 현장 퇴근한다고 하면서 그냥 그렇게 보냈다. 술도 많이 마셨다. 정말 이럴려고 일선 기자로 나섰던가. 제대로 된 기자가 되기란 이렇게 힘든 것인가. 기자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기자정신인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 날이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갑자기 종식의 아내가 종식을 깨운다. " 당신 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알고 있었어요." 갑자기 잠에서 깬 종식은 이 친구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윗니가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한두개가 아니고 윗니 전체가 그랬다. 아내가 알고 걱정할까봐 차마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 당신 며칠 전부터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가 많이 내려 앉았네요. 이래가지고 일을 제대로 하겠어요. 당장 내일 치과에 갑시다." 종식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종식은 아내몰래 치과에 가서 이를 다 뺀 뒤 틀니를 하려고도 생각했었다. 안 그래도 출근하면 냉냉하게 대하는 회사 분위기때문에 잠시 회사에 들러 자리에 앉았다가 그냥 퇴근 하는 그런 날이 요즘 대부분이었다. 아내에게 틀니 이야기를 했더니 펄쩍 뛴다. " 당신 미쳤어요. 당신 아직 51살이에요. 막내가 아직 중학교 초년생이에요. 방송기자가 이가 성하지 못해 발음을 못하면 뭘하고 먹고 살려고 그래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더 이상 고집 피우지 말고 일단 내일 휴가를 내고 치과에 가요. 나 정말 화가 나요. 당신 그렇게 몸관리 안해 50대 초반에 뭐 틀니를 하고 다니겠다, 말이면 다 말이에요." 아내는 울고 있었다. 종식은 정말 한탄한다. 그놈의 기자가 뭔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이제 집사람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게 하는 것일까. 종식은 기자가 된 것이 이렇게 비참할 수 없었다.
다음날 부인과 아이들이 다닌다는 치과를 찾았다. 종식도 이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 치과 선생보기도 민망스러웠다. 종식의 이를 살펴본 치과의사는 말한다. " 아이구 이 치아로 어떻게 버티셨어요. 많이도 아팠을텐데요.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잇몸이 녹아 내립니다.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그래도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치료해 드릴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치료를 제대로 받도록 해보시죠."
다행히 치과가 종식의 방송국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회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었다. 엄청난 돈이 들어가야할 상태였다. 그의 부인이 말한다. " 당신. 당신 몸이 최고라는 것을 왜 몰라요. 그깟 회사일보다 당신 건강이 더 중요해요?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요. 그리고 당신 아니면 방송국이 무너진답디까. 기자가 없어진답디까. 당신이 살고 봐야하는 것 아네요. 그 이에 그 통풍에. 당신 몸이 정상인줄 알아요? 그리고 경비는 내가 막노동을 해서라도 마련해 볼테니 당신은 치료나 잘 받아요." 종식은 그냥 울고 싶었다. 자신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지 너무나 절실히 깨닳았기 때문이다. 아내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퇴직금가운데 일부를 미리 정산해 치과비용을 대야겠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또 다시 인사발령이 있었다.경제팀장은 또다른 팀장으로 가고 새 경제팀장에 종식의 대학교 과후배가 왔다. 이젠 더이상 이 팀에서 있기는 어려울 것같았다. 당시 경제팀에는 자체적으로 제작해 방송하는 15분짜리 뉴스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파트에서 편집 요원으로 근무하면 안되겠느냐고 새 팀장에게 건의했다. 새 팀장은 이제 그러지 말고 다른 팀으로 가라는 그런 말을 했다. 이제 어느 팀도 자신을 받아주기 쉽지 않다는 것을 종식은 잘 알았다. 어느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그런 느낌을 갖는다. 아마도 해설위원실로 가라는 그런 의도인것 같다. 이제 종식은 그런 발령이 나도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당분간 리포트를 제작할 그런 몸 상황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날 밤 특집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운 경제팀장이 전에 맡았던 일요일 매거진 뉴스의 데스크로 와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식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제 데스크니 팀장이니 이런 보직 정말 맡기 싫었다. 하지만 특집팀장은 거절해도 소용없다 이미 본부장과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한다. 종식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야말로 가라면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가 아주 성치않은 상황에서 아무데면 어떤가. 이제부터 자신은 기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선기자로 가면서 정말 대기자로 퇴직할 때까지 현장에서 버티겠다고 결심한 것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마감을 지을 것이면 왜 경제팀으로 와서 팀장이나 팀원들에게 피곤함을 줬을까. 그리고 듣고도 능력이 없으면 그냥 버릴 것이지 왜 다른 기자에게 뉴스거리를 제공해 결국 인사조치를 받게 했을까. 그당시 그냥 해설위원실로가서 시간을 보냈으면 됐을테데 무슨 공명심으로 이런 일을 자초하는가 생각하니 한없는 자괴감이 드는 종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