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루터의 구원 간증
1507년 7월 2일, 고향을 떠나 학교 돌아가는 길에서 무시무시한 폭풍우를 만났다. 천둥소리를 듣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한 번 루터 곁으로 벼락이 떨어지자 루터는 그 자리에 나뒹굴며 죽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무시무시한 하나님이 자신의 목을 꺾어 지옥에 던져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함께 가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그 해 7월 17일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어거스틴 수도회 소속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발견할 수 있나?’라는 영적인 유혹 문제를 풀기위한 기나긴 영적 투쟁의 결과였다.
젊은 수도사 루터가 고민하는 문제는 구원의 문제였다. 내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 있는가? 나같이 추한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바로 루터의 마음과 생각을 억압했던 문제였다. 루터는 하나님께 열심히 고해를 했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다 고백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까 늘 두려워하였으며, 중세적인 공로 신학 체계 아래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 늘 영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그의 담당사제에게 괴로움을 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루터가 너무 자주 찾아오니 담당 신부는 ‘제발 죄를 모아서 한꺼번에 가져오라’고 말할 정도로 루터는 철저하게 회개하였다. 그럼에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젊은 신부가 수도원장 앞에서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었다. ‘제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는 애원했다. 그런데 수도원장은 ‘빈곤과 순결과 순종이 항상 너를 따라야 한다.’라고 억양을 높여가며 말했다. 독일 농부의 아들인 젊은 마르틴 루터는 엄숙하게 그러할 것을 맹세했다. 그러고 나서 모직 속옷에 검정 가운을 입고, 짧은 고깔 달린 웃옷을 걸치고, 검정 벨트를 차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얼마나 열심히 애썼던가! 한 번에 며칠씩 금식했다. 밤에 담요도 걸치지 않고 고해성사를 하여 거의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한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문을 구슬프게 외웠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만일 수도승이 수도원 생활을 통해 천국에 갔다면, 나도 천국에 갔을 것이다... 내가 만일 좀 더 오래 밤을 새우고, 기도하며, 읽고, 노동하면서 그 상태를 유지했다면 그렇게 순교하게 되었을 것이다.’
루터가 속해 있던 지역의 어거스틴(Augustine)파 수도회 수장인 존 슈타우피츠 박사가 그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리스도는 곧 죄 사함이다.’그가 젊은 수도승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너를 도와줄 수 있으려면 네가 실제로 지은 죄의 목록이 있어야 하지.’
루터는 자기 죄를 열거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그것은 평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기 위해 라틴어로 된 붉은 가죽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1508년 어느 날, 그는 수도원 탑의 작은 방에서 로마서를 읽고 있었다. 1장 17절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최초의 섬광이 비쳐왔다.
롬 1:17 / 이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 곧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해 줄 자로 만드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진실하게 나를 의지하기 때문에 살 수 있다(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입니다(합 2:4).
그는 마음속으로 그 말을 자꾸자꾸 되뇌어 보았다. 믿음만으로 충분할까? 그는 과연 그러한지 의심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수도원장으로부터 그가 다른 수도승과 함께 어거스틴파 수도승들 중에서 대표로 개혁을 호소하기 위해 로마로 가도록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루터는 그 소식을 듣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틀림없이 그 거룩한 도시에서, 마음속으로 그토록 갈망해 왔던 영적 평안을 찾게 될 것 같았다.
루터는 그 도시를 처음 보았을 때, 땅에 엎드려 부르짖었다. ‘오, 거룩한 로마여!’ 그는 면죄를 받기 위해 그 도시에 있는 성당은 모두 찾아갔다. 마침내 그 유명한 상크타 상크토롬(Sancta Sanctorum)에 왔다. 그 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빌라도의 심판석까지 밟고 올라가셨다는 28개의 높다란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루터는 교황 레오 4세가 지정된 기도문을 외우면서 그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는 순례자에게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9년 동안의 면죄를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루터는 닳아빠진 계단을 기어오르면서 기도문을 읊조렸다. 기도문 사이사이에 그는 마음에 떠오르는 죄를 하나하나 자백했다. 그런데 갑자기 탑 속에서 읽은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 진리는 그의 내면 자아를 흔들어 놓았다. 그는 잠간 머뭇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빛은 밝아 왔지만 영적인 어두움은 여전히 그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었다.
독일로 돌아와서 루터는 성경 말씀을 좀 더 깊이 탐구했다. 그는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몇 시간이고 묵상했다. 엄숙한 의식으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그에게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것은 그에게 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박사가 되었을 때에도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시편에 대해서 강의한 다음 로마서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다시 한 번 새롭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와 씨름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의’라는 문구를 아주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심판하는 데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라고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빛이 쏟아져 들어와 그의 어두운 마음을 구석구석 밝혀 주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것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을 선포하시는 수단임을 알았다.’
‘나는 내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느꼈다. 모든 성경 말씀이 다르게 보였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의를 미워하는 대신 몹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루터가 탄생하였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설교로 전 유럽에 불을 붙였다. 선행과 수행으로써 자기를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거짓교리에 빠져 있던 루터를 선행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다는 올바른 진리로 인도한 것은 바로 로마서 1장 17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선행과 열심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나아왔던 루터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올바른 진리로 인도하신 것이다.
● 우리의 신앙상태는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선행과 종교적인 열심을 보고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라는 착각 or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의를 얻는 길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 사역의 완전함을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임을 올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히 11:1, 6 /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6) 여러분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이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요한 웨슬레의 구원 간증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인물의 한 사람으로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들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난 날에 대해서 애기했는데, 자신의 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그 날의 시간과 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의 일이었다.
요한 웨슬레는 증조부로부터 3대째 목사를 이어온 집안에서 모태 교인으로 태어났다. 요한은 열아홉 남매 중 15번째였다. 그가 하나님의 손길을 처음 느꼈던 것은 아직 어렸던 6세 때로, 집에 불이 났는데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구출 받았던 때이다. 훗날에 그는 가끔 자기를 가리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슥 3;2)와 같다고 말하곤 했다. 웨슬레는 소년 시절에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만 잘 지키면 구원받는 줄 알았고 또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청년이 되어서도 그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했는데, 남보다 경건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온갖 선행에 힘썼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한 두 시간씩 꼭꼭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써 지켰고, 매주 성찬식에 참석하였다. 말에나 행실에나 단 한 번도 실수가 있을까 하여 언제나 조심하였다. 그러나 웨슬레가 구원의 근거로 열거한 조목 가운데 과연 그리스도가 언급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자신의 경건, 자신의 노력, 자신의 기도와 성결뿐이었다.’
나이가 들자 웨슬레는 교역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다. 거기서 신학도가 되었고, 여전히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찾아보았고, 빈민굴에 가서 가난한 사람을 병든 사람을 돌봐 주었고, 최선을 다했다. 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부지런히 자신을 경계했다.’
몇 년 뒤 웨슬레는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른 적이 있었다. 그런 온갖 선행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웨슬레의 마음은 평안이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받아주시지 않을 것 같았다. 도저히 확신이 없었다. 안심하고 소망을 걸어볼 데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마침내 웨슬레는 옥스퍼드 대학의 전 과정을 수료하고 성직자로 임명되었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더욱 경건한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학의 추천으로 아메리카로 향했다. 대서양을 건너는 그 지루한 항해 중에도 종교 생활을 방심하지 않았다.
4시부터 5시까지 명상과 기도 / 5시부터 7시까지 성경 / 8시부터 9시까지 기도회 / 9시부터 12시까지 성경 연구 / 12시부터 13시 까지 간증 시간 / 14시부터 16시까지 전도 / 16시부터 17시까지 저녁 기도회 / 17시부터 18시까지 명상과 기도 / 18시부터 19시까지 성경 / 19시부터 20시까지 저녁 예배 / 20시부터 21시까지 설교
매 시간을 오직 자기의 신념에 충실하게 생활하려 한 것이다. 그는 전도를 하고 세례를 주고, 성찬식을 베풀었다 그는 참으로 신심이 두터운 종교가였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거기서 오는 기쁨과 평강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하나의 무거운 짐이었다.
항해 도중 그들의 탄 배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다. 웨슬레는 죽음의 대한 공포를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같은 배에 탄 25명의 모라비아교인들은 한 사람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웨슬레는 그들의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7시에 모라비아교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들의 생활속에는 깊은 경건이 스며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들의 겸손은 배에 탄 다른 사람들을 솔선수범해서 돌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무 보수없이 남을 돌보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사랑하시는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 더한 일도 하셨는데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온유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불만 불평이 나오질 않았다. 돛이 산산 조각이 나고, 배엔 모두 물바다가 되었다. 아수라장인 가운데 그들은 조용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는 그들 중 한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무섭지 않습니까?’, ‘참말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죠, 무섭지 않습니다.’
웨슬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신과는 너무나 먼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구원을 받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무리와 처음 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그 가운데 미국에 도착해서 구원받은 그 무리인 선교사 아우구스트 슈팡겐베르크 목사를 알게 되었다. 웨슬레는 그 선교사에게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그 선교사는 조용히 웨슬레에게 말했다.
“당신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당신 속에 그 증거가 있나요?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가 있나요?”(롬 8:16) 웨슬레는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매우 당황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웨슬레는 궁리 끝에 “그 분이 세상에 구주이신 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야 그렇죠. 그러나 그 분이 당신을 이미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웨슬레는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슈팡겐베르크는 “당신은 자기 자신은 알고 있소?”라는 말 한마디만 덧붙이고 대화를 끝내버렸다. 그 때 웨슬레는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그 대답이 확신이 없는 것이어서 내심 불안했다.
웨슬레는 2년 동안 자기의 선교임무를 성실이 수행하려 했으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미국 선교 여행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의 일기장에도 기록된 것처럼 자기 영혼의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서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인디언들을 건지기 위해 나는 미국으로 왔다. 아~! 그러나 나는 누가 건질까? 이 믿지 않는 마음에서 나를 건져줄 자가 누구냐! 나의 종교는 한 여름날의 종교다,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만 없으면 나는 자신이 있고 거칠게 없다. 그러나 죽음이 나의 면전에 나타나 내 심령에 풍파가 이는구나!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들이 철학을 공부했는가? 나도 했다. 그들이 신학을 아는가? 나는 여러 해 연구했다. 그들이 영적인 것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가? 나도 그리 할 수 있다. 보라! 난 내 소유의 전체를 받쳐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또 먹었다. 넘치게 수고하고 고난도 달게 받았다. 난 나의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안락과 명성을 버리고, 내 생명의 맨 주먹을 걸고 더위에 그을리고 피곤에 지쳤으며, 힘이 들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 생각하고 기쁨으로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가?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과연 자녀인가? 또 의로운가? 앞으로도 내가 계속 이 마음을 끌고 갈 수 있는가? 과거는 그렇다 치고, 지금도 그렇다 치고, 미래를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결코 아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공로가 나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에 대해 신뢰가 없다.”
이런 고백 속에는 그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영국에 도착한 그는 바로 구원 받은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페터 뵐러라는 이름의 목사였다. 그와 내적인 문제를 주고받은 결과, 웨슬레는 자기에게 구원 받은 믿음이 전혀 없음을 고백했다.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마침내 시인한 것이다.
결국 목사도 아니요, 선교사도 아니요, 그리스도인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한 죄인의 위치로 되돌아 온 것이다. 얼마나 간절히 믿음을 추구해 왔던가! 그러나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구원 얻는 믿음에 대해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젠 다시 설교하지 말아야겠다. 자기 자신도 분명히 모르면서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 후 웨슬레는 율법적인 행위는 그만두었지만, 그의 불안은 더욱 더 깊어져만 갔다.
그 때 하나님은 페터 뵐러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주셨다.
‘나는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주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주신 연민의 정이 이미 십자가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야말로 당신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십니다. 그가 당신 속에 들어와 사시는 것을 느끼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불신앙의 죄에서 풀려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아들이 하신 일을 믿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를 믿으십시오.’
죽음을 앞둔 한 죄인이 감옥에 갇혀 있다. 선행을 쌓고, 자기의 공로를 쳐다본다는 것은 이 죄인에겐 불가능하다. 마땅히 죽어야 할 몸이고, 사형을 면할 도리는 전혀 없다. 완전히 무력한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바로 이 죄인에게 유일한 희망은 무엇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그 구원만이 ….
이제는 웨슬레도 구원이 인간의 공로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것이 단 번에 된다는 사실이 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떻게 그것이 순식간에 이루어 질 수 있지? 당장 사람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육의 비참한 처지에서 의(義) 가운데로 그리고 성령의 기쁨 가운데 들어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성경의 모든 사실이 모두 순간적으로 구원 얻은 그것만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이성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이전 같으면 모두 ‘이단’이라고 당장 일갈해 버릴 수 있었지만, 그의 맘은 이미 갈등하고 있었다. 주일 날 그는 구원받은 무리들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을 믿는 순간에 주신 것과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와 공포에서 성결과 평안으로 이르게 하신 일들을 간증하였다.
오직 나의 부르짖음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는 것뿐이었다. 웨슬레는 새로 발견한 이 믿음을 자기 교단에서 두려움 없이 전파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은 그러한 믿음을 발견하지도 못했으면서 누구든지 믿는 순간에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짐을 거리낌 없이 외쳤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교회는 하나 둘씩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어느 교회에서도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진리를 가르쳤건만 진리와 그 전파자는 배척되었다. 웨슬레는 1738년 5월 24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경험을 했다. 구원받은 모임이 있어 가보았다. 페인트공인 홀런드씨가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그 사람이 말할 때 이상하게 그의 마음에 감동이 왔다. 그는 그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죄를, 바로 내 죄를 사(赦)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그가 처음으로 마음속에 일어난 사실을 간증했다. 요한 웨슬레는 산 믿음의 열매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쉼과 평강이었다. 그것은 죄에서부터 해방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평강 그것이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3)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 십자가에서 세상 모든 죄를 해결하신 것을 믿는 그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 후에 즉 죄 사함 후에 마음에 성령이 계셔서 평강과 쉼뿐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웨슬레는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의 따돌림이나 핍박이 문제되지 않았다. 마음 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쉼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마음 안에 주님이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평안, 바로 그것이었다.
스펄젼의 구원 간증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은 1834년 6월 영국 남부의 에섹스주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1568년부터 찰스 스펄젼이 태어나던 때까지 12대를 걸쳐 전통적인 청교도 신앙을 지켜왔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청교도 목사였다. 이 때문인지 그의 부모들은 어릴 적부터 ‘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순회 설교자였던 찰스의 아버지는 어느 주일 아침에 자기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마음이 울적하였다. 자신을 정죄하는 이러한 생각을 못이긴 채 집으로 돌아온 찰스의 아버지는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큰 방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자녀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특히 찰스의 순서가 되자 특별히 기도를 했다.”
찰스 스펄젼은 어렸을 때부터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자주 읽었는데, 전 생애 동안 무려 100여 번이나 탐독했다고 한다. 6살 어릴 적에 목사관 2층의 어두침침한 방에서 천로역정의 복사판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표지가 목판화로 되어 있었다. 아래층으로 가지고 와서 밝은 불빛에서 본 표지의 그림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7살부터 15살까지 콜체스터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청교도들이 쓴 책을 많이 읽었다. 박스터의 ‘비회심자에 대한 부르심(call to the unconverted)’, 제임스의 ‘갈급한 탐구자’, ‘죄인에 대한 경고’ 등이다. 찰스는 다른 학생들보다 정신 연령이 높아 조숙했다. 그래서 그는 죤 번연의 ‘풍성한 은총(Grace abounding)’에 나오는 긴 문장들을 외웠다가 친구들에게 즐겁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1850년 1월 6일(32세) 확실히 거듭남을 경험하기까지 그는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의 심히 괴로운 시기, 즉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나에게서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어떤 죄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성실하고 부정직한 참담한 말을 하는 다른 소년들과 똑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펴볼 때 그는 하나님을 거스른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결국 그는 그 자신을 율법 가운데로 인도해 주는 모세를 만났다. 하나님의 선한 법 곧 십계명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십계명을 대하고 자신을 비추어 보았을 때 지극히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자신이 확실히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빛을 잃은 태양과 같았고, 그가 지은 죄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이 존재하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해답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은 더욱 더 답답해갔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론을 꾸며 가며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헛수고였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은 그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너무도 답답해서 콜체스터의 모든 교회들을 찾아가 뭔가 해답을 얻기를 원했으나, 어떤 설교자도 그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설교자들의 설교는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까?’하고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 행위의 열심만을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설교가 끝날 때는 '좋은 말씀 잘 들었다' 하는 생각뿐이지 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펄젼은 당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고민에 빠져 있던 스펄젼에게 인생을 바꾸는 순간이 다가왔다. 1850년 1월 6일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듣고 깊은 은혜를 받게 된 것이다. 스펄젼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요즈음 그 때를 가끔 생각하는데, 만일 그 날 아침 그처럼 대단한 눈보라가 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혀 버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예배당에 들어갔다. 예배당에는 20여명 채 못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목사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아마 양복점 직공이거나 구두 수선공처럼 보이는 이가 강단에 올라갔다. 그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준비된 원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이사야 45:22이었는데, 그 사람은 그 본문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였다. 스펄젼은 그 작고 초라한 예배당에서 평범한 사람의 설교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성령님의 도우심이었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기에 ‘앙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앙망한다는 것, 즉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결코 어렵거나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기 위해서 한 다리를 들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 같은 곳에 다니며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 아이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보아야 아무 소용도 없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십시오. 지금 당장 그를 바라보십시오!”
힘을 주어 말씀을 전하던 그 사람은 한 순간 숨을 돌리고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기에 매달렸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있다. 나를 바라보라! 오오~ 나를 바라보라!’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그 사람은 강당 바로 밑에 앉아 있던 스펄젼을 바라보았다. 그는 스펄젼을 향하여 “청년이여! 당신은 왜 그렇게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소?” 라고 물었다. 스펄젼은 무척 당황했다. 그 설교자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소!’ 그리고 힘을 주어 그는 말했다.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시오! 지금 바라보시오!’ 스펄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 꽉 차 있던 구름은 걷히고, 그의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추었다. 그는 진실로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하고도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고 왔던 죄의 무거운 짐이 바로 나의 어깨 위에서 영원히 굴러 떨어져 버렸을 때, 그는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순례자와 같은 환희에 도취되었다. ‘이제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주님! 십자가에서 그 모든 것이 해결 됐었군요. 나의 그 무거웠던 죄가 모두 다 ….’
스펄젼은 거듭남의 체험에 대해 ‘뉘우침의 포도주 통에서 짜낸 포도주는 실로 값진 것입니다. 회개의 광산에서 채굴한 금이야말로 정금인 것입니다. 깊은 고통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러한 진주들이야 말로 참으로 찬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고 자기의 목에 오랏줄이 묶여 있었던 자는 죄 사함을 받고서 구세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져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사람인 것입니다.’라고 했다.
1850년 1월 6일, 그는 확실히 구원을 받은 후 온 종일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거듭남이 확실하다는 것을 거듭 느꼈다. 부모님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펄젼은 1850년 어머니 생일날 침례를 받았다. 그는 재킷과 바지를 입은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물속에서 나온 후, 그는 그의 마음에 여러 가지 공포들이 그 물 속에 잠긴 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위에서 보았듯이 스펄젼은 대단히 종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경건한 분위기 가운데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부정직한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경건하게 보이는 삶을 살았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거듭나기 위해 먼저는 사람들 보기에 경건해 보이는 삶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법 앞에서 심각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했다. 거듭남은 스펄젼처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났던 일이 결코 아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거듭남은 집안의 종교적인 배경이나 개인의 경건한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데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서 출발한다.
스펄젼이 이렇게 심각한 죄인임을 깨닫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게 하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완전한 사역을 의지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셨고, 바로 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자신의 죗값이 모두 다 지불되었다는 사실을 의지하는 자에게 바로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 내 편에서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죄인일지라도 나의 죗값을 모두 지불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구원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스펄젼이 설교자로부터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외침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에 비쳐주신 놀라운 구원의 메시지였다.
■ 거듭나지 않았는데 거듭났다고 착각하는 자들이 매우 많다!(찰스 스펄전)
중생은 구원에 있어서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거듭났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말 거듭났으면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중생하지 않았으면서 자기 혼자 중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단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해서 그가 정말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두라. 기독교 국가에서 태어난다든가 기독교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으로 인정되는 것, 이런 것은 중생이 거기 첨부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신비스러운 일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가 알고 느낄 수 있는 변화이다. 즉 거룩한 행위에 의해 알려지고 은혜로운 체험에 의해 느낄 수 있는 변화이다. 중생은 초자연적인 위대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행할 수 있는 어떤 작용이 아니다. 대신 가슴 속에서 역사하고, 영혼을 새롭게 하며, 그 전인(全人)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새로운 원리가 그 사람 안에 불어넣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이름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 본성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체를 깨끗이 씻겨 옷을 입히는 것과 그 시체를 살아나게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이다. 그런데 전자는 인간이 할 수 있고 후자는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여러분! ‘거듭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오 주 예수님,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제 영혼의 아버지십니다. 주님의 영이 제 안에 이 새롭고 거룩한 영적 생명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오늘까지 ‘죄와 허물로 죽어’있을 것입니다. 저의 천국 생활은 전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버지 덕분입니다. ‘제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인 바 되었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십니다.”
주여, 우리가 지극히 중요한 이 사실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중생하지 않은 것은 곧 구원얻지 못한 것이요, 용서받지 못한 것이요,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스펄젼의 아침 묵상 -
로이드 존스의 회심
로이드 존스는 어릴 때부터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다. 그가 느낀 능력의 주체는 숙명론이나 운명론이 아닌 모든 사건의 과정을 이루시는 인격적이며 초자연적인 권세였다.
그는 어린 시절 다니엘 로우랜드(Daniel Rowland, 1730년대에 부흥을 이끌었던 목사)가 목회한 바 있던 랭게이토 교회를 다녔는데, 당시는 로우랜드가 목회하던 시절만큼 뜨겁지 않았고 냉랭했다. 이 교회에 대한 로이드의 추억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목사님은 도덕적이고 율법주의적인 분이셨고, 옛 교장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그가 복음을 설교한 경우가 한 번도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복음에 대한 개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예배당에서 사경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당대의 걸출한 설교자들을 초청한 적도 없다. 비록 그 마을에 로우랜드의 동상이 있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그곳에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저 전통에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였다.”
20대 초반에 들어갈 때쯤 그는 그동안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자기가 이제까지 사실상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아주 여러 해 동안 사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그러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나는 교회의 멤버였다. 우리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였고, 예배에 정규적으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런던으로 이사 온 이후 의사시절 로이드 존스가 다니던 채링 크로스 교회의 목사였던 Peter Hughes Grifith는 자기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로 전제하고 설교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의 설교는 이성이나 양심에 거의 호소력이 없었다. 그는 성경과 신학을 설교하기보다는 예화와 일화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그저 감정을 자극하기만 했다.
이런 설교를 듣던 로이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나로 하여금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그러한 설교였다. 또한 회개하게 하고 나에게 중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설교였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언제나 듣는 설교는 우리가 모두 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정 하에서 작성된 설교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거기 회중석에 앉아 있을리 없다는 전제에서 행해지는 설교 말이다.
여러 해 동안 모든 교단을 통틀어서 웨일즈에서 가장 잘 한다고 알려진 설교들의 설교를 들었지만, 그들 중에 한 사람의 설교도 내 양심을 건드리지 못하였다. 인기있는 설교자들 대부분은 어떤 사람도 회개케 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숙련되고 수사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논의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면 그것만으로 만족하였던 것이다.
1923년 초기에 두드러지게 복음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자기의 이해에 무언가 보탬이 되는 설교들을 듣기 시작했다. 당시 채링 크로스 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 교회로 옮겼었는데, 그 교회의 존 휴튼(John Hutton)이라는 목사였는데 그의 설교가 어찌나 회중들을 사로잡는지 로이드 존스는 후에 이 설교자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이 사람의 설교는 정말 내게 큰 호소력을 가진 것이었다. 나는 그가 그 교회를 목회하는 동안 설교를 듣기 위하여 매주일 아침에 꼭 참석하게 되었다.”
휴튼의 설교가 사상이나 효과적인 면에서 한결같이 균형잡힌 것은 아니었다. 강해적인 설교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로이드 존스의 사고에 뭔가를 더하여 주었다.
‘그의 설교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깊은 감동을 주었다’라고 회상한다. 휴튼의 설교를 듣게 된 젊은 의사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의도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이 행동하시고 간섭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특별히 의사로 일하면서 인간의 문제가 신체나 지식에 있지 않고 도덕적이며 영적인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영적 빈곤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문제는 내가 그릇된 일을 한다는데 있지 않고 내 자신 즉 존재의 중심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데 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런던의 빈민가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이스링톤의 불결한 지역에서 수련을 하던 중에 그의 생각에 극적인 영향을 주는 일들을 경험하였다. 내과진료를 통해 술 취함과 성적 부도덕의 참혹한 결과를 본 그는 런던에 거주하는 가난한 자드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상류층 인사 가운데도 상당수가 안식하지 못한 채 술과 성생활의 방종으로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의사생활 가운데 그가 관찰한 세상에 대한 분석은 자기 자신의 죄악성에 대해 느끼는 심각성의 정도가 강해지는 데 기여했다. 그는 죄라는 것은 그러한 죄행들이 일반적으로 부도덕하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것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욕심 자체가 무언가 잘못이 있음을 간파하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마음의 욕심’이라고 불렀는데 - 곧, 교만과 질투와 시기, 악의와 분노와 원통함 등-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죄라고 하는 질병의 모든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진단은 더 나아가서 성경과 그의 체험을 통해 자기는 실제로 하나님께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였음을 알았다. 그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의 지배적인 원리를 발견하였다. 자기 마음에만 관심을 갖고,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그러한 원리가 자기의 타락한 본성의 궁극적인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바르지 못한 관계에서 나오는 열매임도 알게 되었다.
“죄란 마음과 영혼과 네 모든 생각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세와 삶에 대하여 정반대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계명을 지키고 있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바로 죄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훌륭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고 있지 아니하다면,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그는 이 진리에 대해 자신의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만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나 내가 행한 것이나 말한 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죄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의 노예이며, 마귀의 노예이며, 육신의 노예였음을 하나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영원한 형벌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 모든 문제와 모든 아픔의 진정한 원인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죄를 사랑하는 악하고 타락한 본성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은 저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제 문제는 내가 악한 일들을 했다는데 있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의 존재 근원에서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몇 일간이나 몇 주 내에 그에게 온 것이 아니었다. 그가 회심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그것은 점진적인 일이었다.
25세가 되던 해에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후일에 이렇게 고백하였다.
“지난 날 동안 나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단 한 번도 신자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나의 참 필요는 죄를 깨닫게 하는 설교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런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들었던 설교는 언제나 우리 모두가 신자라는데 근거한 설교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