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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생애 편) 시복추진 심포지엄 [연재6] 생애
제4주제
‘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의
성덕의 명성 -생애와 죽음과 죽음 이후
박일영(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1. 서론: 김수환 추기경 시복시성의 의미1)
2031년에 맞이하게 되는 <조선교구 설정 200주년>에 대한 준비 과정의 하나로 김 수환 추기경[1922-2009]의 시복, 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240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 속에 103위의 순교성인들이 있지만, 피의 순교를 하지 않은 분들 중에서는 우리가 신 앙의 공식적 본보기로 삼을만한 성인이 아직 한 분도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평생 에 걸친 삶의 모범을 널리 인정받아 성인품에 오르는 한국인이 나타날 경우, 이는 한 국 천주교회의 영예나 기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고유의 종교성이 그리스 도교와 바람직하게 융합한 한국의 영성(K-spirituality)을 전 세계에 전파함으로써 한 국 천주교회의 위상을 현양하고 한국의 국격을 드높이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으로 상징되는 한국 천주교회는 오랜기간 고난에 억눌리는 사람들 편에서서 발언하고 행동했는바, 그러한 방향설정의 근거와 바탕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를 따르고 닮으려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 왔다. 그와같은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한국 천주교회의 태도는 단지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현대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적 지주를 찾아 방황 하는 이들에게 믿고 따를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는 데 더 큰 비중이 있다고 하겠 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황청에서는 2019년 10월 전교의 달을 대표하는 인물로 한국 의 김수환 추기경을 선정하여 소개한 바 있기도 하다.
인간이 된 하느님은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신다. 그분은 교회의 담을 넘어서서 활동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전체 한국 사회를 쇄신하는 수단[누룩]이 되어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으로 대표되던 시기 한국의 천주교회는 활동 방향과 과제를 바로 거기서 찾았던 것이다. 김 추기경의 말처럼 교회는 “사회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 이 렇게 될 때 한국 교회는,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의 말처럼, 전 세계교회에 더 나은 더 신빙성 있는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내가 서구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비서구인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그러니까 한국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신들이 장차 우리에게 선교사로 올 수 있는 그러한 그 리스도교를 발전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어느 한 방면에서는 진실한 그리스도교의 살아 있는 모범을 보여줄 수 있게 말입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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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1월 13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에 제출한 ‘김수환 추기경 시복시성 건의문’을 수정하여 발췌.
2) Karl Rahner, "Ein europäischer Christ spricht zu einem koreanischen Christen", Missio-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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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모습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교회는 역동적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역 동적인 교회로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창조 업적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한국의 전체 사회를 선도해 가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으니, 거기에는 의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2베드 3, 13). 그리스도교 선교의 올바른 목적은 구원의 복음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증인이 되는 데 있다.
바로 이러한 업적을 근현대 한국천주교회사 내지 한국의 근현대사 안에서 가장 두 드러지게 실천한 인물로 김수환 추기경을 첫손가락에 꼽지 않을 수 없다. 87년의 생애 속에서 김 추기경이 일관되게 보여준 영웅적 성덕과 그의 선종과 선종 이후에도 지속되는 명성[평판]은 한국 천주교회를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와 세 계만방에 끼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비교불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의 선종 소식을 듣자마자 조문이 가능했던 3일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명동성당에 차려진 빈소를 다 녀간 조문객들이 40만 명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나, 유력한 여론조사기관에서 매년 발표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한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명약관화하게 보여주고 있다.3)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 시성은 향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더 나아가 보편교회와 인류공동체에서 올바른 삶과 신앙의 본보기를 찾는 선의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추진해야 할 과업이다.
2. 생애에 걸쳐 드러난 성덕의 명성
이하에서는 김 추기경의 생애에 걸쳐 드러난 덕행에 대한 국내의 평판4)에 국한하여 시 복시성 심사 절차에서 적용되는 질문 서식에 의거하여 다루고자 한다.5) 생애 동안이 성덕의 명성에 대하여는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6)를 중심으로 기왕에 분석된 내용을 활용하고7), 이에 덧붙여 발표자가 수집한 증언 자료들을 통하여 보완하는 작업을 하였다.
2.1. 향주 삼덕에 대한 명성
향주삼덕이란 그리스도교의 덕목들 중에서 하느님에 대한 세 가지 덕[向主三德; 對 神德]인 믿음[信德], 희망[望德], 사랑[愛德]을 말한다.8) 이러한 덕목에 해당하는 김 추기경의 명성[평판]을 믿음, 희망,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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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al Werkhefte für die missionarische Kirche, Ⅰ/82 (1982), 34쪽. 발표자의 번역.
3) https://www.good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63122
4) 해외에서의 평판에 대해서는 별도로 발표되는 ‘김수환 추기경의 해외에서의 명성’에 맡기기로 한다.
5)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시복시성 절차 해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1, 311~319쪽에 있는 ‘라. 하느님의 종의 구체적인 덕행’과 ‘사. 성덕의 명성(평판)’ 참조.
6) 구술 회고록인 이 책은 평화방송·평화신문에서 2004년에 초판을, 2009년에 증보판을 출간하였다. 괄호 속의 숫자는 이책[증보판]의 쪽수를 가리킨다.
7)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안건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 위원회 구성을 위한 제4차 준비모임(2024년 1월 10 일) 회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8) 『가톨릭교회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995: 1833항. 1840항~1844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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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信德]
- 조부 김보현9)의 순교 이후, 조모 강말손의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 김영석[1869-1929]과 열심한 교우 집안이었던 달성 서씨 모친 서중하[1882-1955] 사이에 5남 3녀의 막내로 태 어났다(51).10) 부모는 살림집을 공소로 내어놓을 만큼 깊은 신앙을 가졌다. 김 추기경이 지닌 신앙의 뿌리는 이처럼 순교의 영성이다(50,76. 355).11)
- 형이 소신학교에 간 후로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았다. 밤이 되면 어머니는 보통 한두 시간씩 기도를 바쳤는데, 소년 김수환은 옆에서 뜻도 모른 채 꾸벅꾸벅 졸면서 중얼중얼 댔다. 그때 기도하다가 엄마 등 뒤에서 잠드는게 특기였다(54). 이와 같이 어린 시절 몸에 밴 기도의 습관은 평생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12)
- 소신학교 시절에는 ‘성인전’들을, 대신학교 시절에는 『준주성범』(遵主聖範 Imitatio Christi)을 탐독하고 거기 소개된 덕목들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히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에 깊게 심취되어 평생 기억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미미한 존재를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을 충분히 드러내는 분입니다... 기쁨과 고통 등 모든 것이 사실은 하느님 사랑에서 나옵니다.”(64, 122). 이렇게 형성된 김 추기경의 ‘가난의 영성’은 그와 더불어 그를 따르는 성직자들에게도 깊이 각인된다.13)
- 사제 서품 성구: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 3). “평생 착한 목자로 살 수 있을까? 오히려 죄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겠는가?”라는 성찰 끝에 결국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겸손한 믿음으로 선택한 성구이다(135).14)
- 마산 주교직과 서울 대주교직 사목 표어: ‘Pro Vobis et Pro Multis’(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미사경본의 성혈 축성 경문에서 인용하였다.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이에게 밥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목표어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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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정숙, 「김수환 추기경의 성소 못자리」,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영성 연구』,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제12회 심포지엄 자료집, 2022, 14~15쪽에는 김 추기경 조 부의 이름이 김보현이 아니라. 김익현(金翼鉉)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에, 서울특별시 은평구청에서 2024년 1월 26일에 발부한 김수환 추기경의 부친 김영석의 제적등본에 의하면, 김요안(金要安)으로 기 재되어 있다.
10) 위의 글, 18쪽에는 4남 2녀라고 한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11) 전숭규 신부, 「저녁노을을 좋아하셨던 김 추기경님」, 『그리운 김수환 추기경』, 제1권,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 2013, 21쪽: “내 선조도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옹기를 구워 장에다 팔고, 그 걸로 생계를 꾸려 가면서 신앙을 지키셨어. 저 옹기를 보면, 조상님들 생각이 나.”
12) 희자 작은 자매, 「푸근하고 정겹게 찾아오셨던 김 추기경님」, 위의 책, 232쪽: 개인적으로 기억에 항 상 남아있는 것은 이분이 기도의 힘을 참으로 믿는 분이시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13) 이성운 신부, 「신앙생활의 거목 김수환 추기경」, 위의 책, 제3권, 2015, 251쪽: 가장 많이 말씀하셨던 게 ‘영성’과 관련된 것이었고, 또 많이 말씀하셨던 건 ‘가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가난의 영성’이요. “사제는 가난해야 한다.”고 참 많이 말씀하셨어요.
14) 신명자 이사장, 「밥이 되고 싶어 하신 김 추기경님」, 위의 책, 제1권, 2013, 113쪽: 추기경님이 사제 품을 받으실 때 택하신 성구가 “하느님, 저는 죄인이오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마지막에 하느님 앞에 가시는 그날까지 오로지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당신 앞에 죄인입니다.”라는 구절 말고 어떤 문구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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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정했다. 서울대교구장 착좌식 강론에서 “우리는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를 생활로써 증거 해 달라.’고 하는 사회 요구를 명심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는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189). 이러한 김 추기경의 열정은 그의 후배 고위 성직자에게도 깊고 강한 인상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15)
2) 희망[望德]
- 본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최덕홍 주교의 죽음(1954년)과 모친 서중하의 죽음(1955년)을 젊은 신부 시절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그분들의 선종(善終)과 천상영복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150. 152).16)
-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는다. 선후배 사제나 아는 분들 병문안을 가면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분께 맡기세요.’라고 위로한다. 나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내 것은 적어지고, 그분께 모든것을 맡기려는마음이 강해진다. 내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남은 시간을 잘 살다가 하느님 품에서 잠들게 해달라는 것이다... 미구(未久)에 맞이할 죽음을 거치면 – 부족하고 자격도 없지만 –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은 당신의 그 영원한 생명으로 나를 받아주실 것이다.”(420. 463).17)
3) 하느님을 향한 사랑[愛德]
- “주여,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저의 사랑도 재지 않겠습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저를 받아주소서. 모든 것이 당신 것이오니 있는 그대로 당신께 맡깁니다.”(309).18)
- “모든 사람이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사랑을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은 큰 사랑만 있는 게 아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고, 옆 사람에게 따뜻한 미소 한번 지어 보이는 것도 사랑이다. 마음에서 미움을 털어버리고 화해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런데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 준 일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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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구요비 주교, 「가난과 정의의 편에 서신 참된 목자」, 위의 책, 제5권, 2018, 323. 324쪽: 그때[1970 년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김 추기경과 첫 만남] 견진미사 강론을 열정적으로 하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 다.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아주 열정적으로 말씀하셨지요... 교회가 “세상 안 으로 들어가야 된다!” 하고 간절하게 호소하셨어요.
16) 김윤선 수녀, 「자비로우신 스승 김수환 추기경」, 위의 책, 제3권, 2015, 134쪽: 말년에 가서는 “이제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니까, 누가 어떻게 하든지 하고 싶은 대로 다 맡길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저는 추기경님께서 은퇴하신 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시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사신 것 같아요.
17) 전숭규 신부, 「저녁노을을 좋아하셨던 김 추기경님」, 위의 책, 제1권, 2013, 36~37쪽: 생애 마지막 순 간까지도 추기경님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그 것은 곧 너의 멸망이다.” 이렇게까지 다짐을 하셨어요.
18) 민순신 선생, 「포콜라레 활동, 용기, 그리고 아버지 같으신 분」, 위의 책, 제6권, 2019, 123쪽: 사람 들의 존경과 사랑이 자기한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느님께로 넘기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당신을 보면서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느님을 향해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원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마음은 하늘에 계시고, 거기에 나침판을 맞추고 사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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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도 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래도 고해성사나 기도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면서 살아왔기에 사랑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336).19)
- “생각해 보면 나는 죄인이다. 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고개도 들 수 없는 대죄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죄와 허물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당신의 그 풍성한 용서의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셨다. 달리 말하면 나는 죄로 말미암아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믿게 되었다.”(464).20)
4) 이웃을 향한 사랑[愛德]
- 1951년 첫 발령을 받은 안동 본당 주임신부 당시, 전쟁 피해로 주민들의 집은 불타버렸 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실정이었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구제회[NCWC] 한국 지부장으로 있는 안 제오르지오 주교21)를 찾아가서 거액의 원조금을 받아, 성당 보수 작업 비용과 주민들을 위한 긴급 보조금으로 사용하였다. 지원금은 고해소에서각 가정의 형편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138).22)
- 1956년 이후 독일 유학 중, 동포 광부와 간호사들의 다양한 고충을 해결해 주었다. “학업에 지장이 많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보고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웬만하면 요청에 응하려고 했다.”(168).23)
-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화해와 평화를 강조하고, 특히 억압당하는 북 한 동포를 위한 기도 중에 매 미사 파견에 세 번째 십자 표시는 그들을 향해 있었다. “목자로서 북한교회에 대한 미련을 떨쳐본 적이 없다. 지금도 아쉬운 점은 내게 맡겨진 사목지 평양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서 반세기 넘도록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을 찾고 싶다... 북에 국수 공장을 세우고 배편을 통해 식량을 실어 나른 것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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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정인식 주치의, 「아버님처럼 가까이 모신 김 추기경」, 위의 책, 제2권, 2014, 320쪽: 제가 보기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정말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이고, 두 번 째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지요.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 앞길을 비춰주는 그런 혜안이 일반 지도자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0) 강영자 수녀, 「네가 평생이 어렵고 험난한 길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 위의 책, 제5권, 2018, 299쪽: 교 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 었어요... 그랬더니 추기경님께서 깜짝 놀라시면서 “방금 뭐라고 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시고는 “용서해라. 교회를 용서해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래도 교회를 사랑해야 해. 죄인들이 모인 곳 이 교회야.”라고요.
21)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소속 George Carroll 몬시뇰(1906-1981).
22) 김 추기경이 고해소에서 어려운 처지의 신자에게 돈을 나누어준 사례는 1950년대 초 안동에 이어서 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나타난다. 발표자가 2024년 5월 30일 인터뷰한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의 오 의철 교수에게서 들은 일화이다. 1980년대 초 고달픈 군대생활 중 김 추기경에게 고해성사를 볼 기 회가 있었는데, 훈계나 꾸지람 대신에 추기경의 손이 쑥 나오더니 용돈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빵 사 먹어라! 네 덕분에 내가 편하게 산다! 고맙다!”
23) 이해인 수녀, 「시인을 꿈꾼 추기경님과 그분을 존경한 시인 수녀의 우정」, 위의 책, 제1권, 2013, 208~209쪽: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해 깨어 계셨고,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골고루 다 잘해 주 려고 하신 따뜻한 사랑을 저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따뜻함과 겸손함과 유난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 도 배우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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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차원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나 역시 식량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주려는 마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언젠가 북한 식량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문사,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옥수수 죽도 떠먹어보았다.”(395. 435).24)
- 1989년 세계성체대회 정신에 따라 예수님처럼 서로 밥이 되어 주는 삶, 먹히는 삶, 남들에게 내어주기 위해 부서지고 쪼개지고 나눠지는 빵(성체)과 같은 삶을 살도록 초대하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이에 동참하는 취지로 안구(眼球) 각막 기증서에 서명하였고, 실제로 20년 후 이 약속을 지켜 사후 두 사람에게 빛을 주고 떠났다(382).25) 2.2. 초자연적 덕행에 대한 명성 초자연적 덕행이란 그리스도교의 덕목들 중에서 인간에 대한 덕[四樞德; 對人德]인 분 별(현명), 정의, 굳셈(용기), 극기(절제)의 네 가지 덕목을 의미한다.26) 김 추기경의 생 애에 걸쳐 드러난 이와 같은 덕행에 해당하는 명성[평판]을 살펴본다.
1) 분별(현명)
- 독일 유학 중 ‘그리스도[교] 사회학’27) 전공, 유학 중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진행 소식에 감동과 경청, 귀국 후 《가톨릭신문》을 통해서 전달, 1966년 마산 교구장 착좌 강론, 1968년 서울대교구장 착좌 강론을 통해 교회의 변화와 쇄신, 세상 속의 교회를 향한 공의회 정신의 구현을 위한 노력을 다짐하고 실천해 나간다(163. 175. 190. 194. 211. 244).
- ‘인간’은 평생의 화두였다. “내 생각을 지배하는 가장 큰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 이다.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기에 그 권리와 존엄성은 언제 어디 서든지 지켜지고 보호받아야 한다. 이 같은 신념은 내게 절대적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 다.”(198).28)
- 1970년 필리핀에서 열린 첫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의 대륙별 실천을 위한 노력으로 보편교회와 개별교회 사이 중간의 지리적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상설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 창설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관철시켰다(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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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김상진 신부, 「교황님 방한과 남북화해 추진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신 분」, 위의 책, 제8권, 2024, 97~132쪽 참조. 서울세계성체대회에 중국 신자들을 초청하는 임무를 부여하였으며, 북한 나진에 국제 가톨릭의료재단 명의로 병원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추천서를 써 주었다.
25) 주천기 교수, 「봉사의 삶을 일깨워 주신 김수환 추기경」, 위의 책, 제3권, 2015, 191~207쪽 참조: 김 추기경의 안구 이식 수술을 집도한 전후 사정과 그에 감화를 받은 의료봉사활동.
26) 『가톨릭교회교리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1995: 1833항~1838항 참조.
27) 이러한 학문분야를 독일어권에서는 그리스도교 사회론(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영어권에서 는 그리스도교의 사회적 가르침(Christian Social Teaching), 한국에서는 ‘사회교리’(social doctrin e of the church)라고 한다. 김 추기경의 지도교수였던 Josef Höffner의 대표적 저서 명칭이기도 하 다. Josef Höffner, Christliche Gesellschaftslehre, Berckers Theologische Grundrisse, Band 1, Butzon & Bercker, 1965: 4. Auflage. 요셉 회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박영도 역, 분도출판 사, 1979로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28) 두봉 주교,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과 생명 사랑」, 앞의 책, 제1권, 2013, 153쪽: 추기경님은 “사람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하셨어요. “사람의 가치는 우선 마음이다. 행복하게 산 다는 것은 남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면 할수록 행복하게 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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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는 영상시대이다. 복음 선교에 매스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은 우리 권리이자 의 무다. 이 시대에 주어진 가장 좋은 선교수단은 TV다... 평화방송, 평화신문은 어느덧 자리를 잡고 명실상부한 가톨릭 종합미디어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복음이 전파와 활자에 실려 산간벽지까지 퍼져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383).
- 평소 개신교, 불교 등 이웃종교들과 다양한 교류 협력 사업을 하였다. 특히 2000년도에는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심산상’을 수상하고 심산의 묘소에 참배한 것이 한국종교사에서특별한 의미를 갖는 유교와 가톨릭의 종교간 대화와 개방 성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445).29)
2) 정의
- 1967년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총재 주교 자격으로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에 개입하여 노동자의 인권 옹호를 위한 한국교회의 사회 문제에 대한 최초의 발언을 이끌어내었다. 이 담화문은 한국 천주교회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눈을 돌린 사건 이었다(198).30)
- 심도직물 사태 이후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운동에 힘을 보태었다.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을 해결하는 일에 힘을 보태었고, 오원춘 사건으로 알려진 농민 운동에도 힘을 보태었다(291, 297).31)
- 1987년 1월 14일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다. 1월 26일 봉헌된 추도미사 강론에서 김 추기경은 정권의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정권에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라고 묻고 싶습니다. 이 정권의 뿌리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게 있습니까. 총칼의 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이를 계기로 진상 규명 촉구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게 됨으로써 한국사회 민주화의 변곡 점이 되었다(36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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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추기경으로서 아시아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신 분」, 위의 책, 제8권, 2024, 85~86쪽: [심산상 수상 관련] 추기경님이 오케이 하셨어요... 상금을 드렸더니 그거를 받으신 다음 에 나중에 정중하게 다시 돌려드렸대요... 김창숙 묘 참배... 선뜻 응하셨다는 거예요. 그때 이분의 그릇을 생각했죠. 통찰력이며 이 사회를 보는 눈,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 다 생각이 있으셨던 거야.
30) 문요안나 수녀,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총재, 김수환 주교」, 위의 책, 제5권, 2018, 48쪽: 우리 [강화] 본당에 다니는 신자들이 공장에 다니면서 JOC도 하고 그랬어요.
31) 두봉 주교, 「김수환 추기경의 인간과 생명 사랑」, 위의 책, 제1권, 2013, 162쪽: 가장 뚜렷한 발언을 하시던 안동 ‘오원춘 사건’도 그렇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때였습니다. 그때는 확실히 교회 말고는 감히 발언할 수 있는 곳이 없었죠. 그래서 김 추기경님은 그때 ‘분명하게, 뚜렷하게!’ 말씀하셨어요.
32) 박원순 시장, 「수녀원 지하실로의 초대 그리고 인권 변호사들에 대한 지지」, 위의 책, 제6권, 2019, 148~149쪽: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추기경님이 응원해 주셔서 큰 이슈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후에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 두 개 사건이 전두환 정권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 었는데, 그게 바로 김수환 추기경님이 확실하게 딱 정리를 해주신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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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굳셈(용기)
- 일제 강점기 소신학교 시절, 황국 신민으로서 소감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나는 황국 신민이 아니어서 소감이 없음”이라고 답을 써서 제출했다. 비록 큰 야단을 맞았지만 굳셈 (용기)의 대표적인 사례이다(69). 나중에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를 위한 활 동에서 보이는 용덕(勇德)도 이와 같은 성품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33)
- 교회의 현실 참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면서 교회가 세상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는 공의회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다(242. 272).34) 이후 군부 정권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35)
-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신부들, 수녀들, 그 뒤에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 수녀를 밟고 지나가십시오.”(370).
4) 극기(절제)
- 박정희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거나 과격한 표현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또 나름대로 지킨 원칙 중의 하나는 외국에 나가서 정부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일인데 다퉈도 국내에서 다퉈야지 그걸갖고 밖에서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42).
-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성직자가 혈육의 정에 연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친척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얼마간이나마 정을 주기 시작한 것은 칠순 이후 부터이다.36)
2.3. 복음적 덕행에 대한 명성
1) 가난(청빈)
- 성직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서슴없이 “가난한 신자들과 울고 웃었던 [안동과 김천] 본당 신부 시절”이라고 한다(1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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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또 하나의 정부’」, 위의 책, 제4 권, 2016, 302쪽: 그러니까 거기 가면 추기경님께서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통하는 통로가 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지친 영혼을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커다 란 ‘또 하나의 정부’이셨던 것 같아요. 생전에도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34) 이단원 선생, 「젖은 발로 걸어온 밤길에 만난 모닥불」, 위의 책, 제4권, 2016, 186쪽: 제2차 바티칸 공 의회라는 교회 쇄신을 기치로 한 세계사적 대장정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불태웠다고 볼 수 있지요.
35) 이삼열 이사장, 「나, 수녀원에 가서 기도하고 왔어요. 암울한 시대, 추기경님의 CBS 대담」, 위의 책, 제6권, 2019, 232. 238쪽: 그래서 ‘광주항쟁으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도 5공 독재를 7년간 했는데, 또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걸 저지해야 하는데 감히 누가 나와서 이야기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분이 김수환 추기경님이세요. 그때 저와의 대담을 통해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거죠... 추기경님께서 ‘나하고 이제 역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텐데,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며칠 동안 수녀원에 들어가서 기도를 했다.’하시더라고요.
36) 김 추기경의 친척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하여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다. 2014년 12월 27일, 대전, 김호권과 김영자 부부 인터뷰; 2019년 2월 9일, 서울, 김병기 인터뷰; 2023년 1월 14일, 대구, 박철수 인터뷰; 2023년 10월 29일, 서울, 박성대 신부 인터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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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기경 서임 후 받은 고급 승용차 선물을 며칠 사용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귀족이 된 모습을 통렬히 반성하고 되돌려 보낸다.38) 김 추기경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야 보이는 곳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힘없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성찰하였다.
2) 순명
- 소박한 가정을 꾸미고 싶었던 본뜻과는 달리 사제직의 출발은 모친의 권고와 희망에 따 른 것이었다. 겉으로는 어머니에 대한 순명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하느님께서 발목을 놓아 주시지 않아서 성직자의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주님, 사실 저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다른 길은 보여주지 않으시고 오로지 이 길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뜻에 따르겠습니다.”(57).
3) 정결
- 일본에서 귀국 후, 형님 김동한 신부가 사목하던 부산 범일동 성당을 방문하였을 때, 본당에서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근무하던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이 해프닝이 오히려 자신의 사제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갖게했다(118).39)
4) 겸손
- 아호는 ‘옹기(甕器)’이다.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박해 시대에 옹기가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되었고, 기능상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소박한 그릇이고, 속 성상 깨지기 쉽기에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겸손에 대한 성찰에서 선택된 이름이다. 2002년 북방선교 시대를 개척할 사제 양 성을 목적으로 ‘옹기장학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이 아호가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 되었다(50.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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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박경남 여사, 「전쟁으로 가난했던 시절 아낌없이 베풀어주신 분」, 위의 책, 제8권, 2024, 64쪽: [안동본 당 주임신부 시절 식복사를 했던]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걸 보시더니, “그래 안나야, 이러고 사나?” 그러셨대요... 그러면서 빨간 장화를 저를 주라고 하시면서 사주시더래요. 전 그 빨간 장화를 한 번도 못 신어 봤어요. 아까워서요. 이걸 감히 어떻게 땅에 디뎌요.
38) 2016년 10월 16일~31일, 성심여대 초대학장 주매분 수녀와 이메일 인터뷰: 당시 김 추기경의 승용 차를 얻어 타고 수녀원으로 돌아온 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김 추기경에게 보냈다고 알려 왔다. “이 차 안에서 본 서울거리는 보통 자동차나 버스에서 본 것과 다르다. 보통 차 안에서 본 거 리에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남녀노소 제각기 다른 모양이지만, 저희가 속하는 세상으로 보인다. 저 차를 타고 보니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작게 보였으며, 차를 탄 저희는 그들과 다른 세상 에 속한 것 같이 느꼈다.”
39) 김수환 추기경의 조카 김병기, 「언제나 사랑과 정의를 가르치고 지키신 분」, 위의 책, 제8권, 2024, 22~23쪽: 부산 범일동에 계시다가 그 때 신학교에 다시 가느냐 마느냐 하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거기에 젬마 아줌마라고 있었어요... 그분이 추기경님에게 연정을 품었던 것 같아요... 젬마 아줌마가 간호 장교로 군대를 갔다 왔어요... 추기경님은 그때 신학교 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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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선종 2년 전 85세의 황혼기에 그린 자화상의 제목은 <바보야>이다. ‘하느님이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살아서 그렇다.’고 스스로 설명한다
(431).40)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김 추기경이 스스로 밝히고 있으며 수많은 증인들에 의하여 확인되는 덕행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거룩한 바보의 겸손함, 가난 속의 정신적 풍요, 쉽게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용기, 고통을 이겨내는 끈질긴 인내심, 기도하는 인간,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위한 노력,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서는 개방 성과 균형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하는 벗. 또한, 김 추기경이 지녔던 사회 영성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인간 존중과 공동선에 대한 추구,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세상 속의 교회에 대한 지향, 정의의 실현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평화의 정착.
3. 죽음과 죽음 이후 성덕의 명성41)
여기서는 김 추기경의 선종과 선종 이후 사회 전반의 반향, 언론보도, 영상 제작, 기념 사업 등을 통해 드러난 성덕의 명성에 대하여 다룬다.42) 그 외에 문학, 음악, 회화, 조각, 연극, 영화 등 예술작품을 통하여 드러나는 김 추기경의 성덕에 대한 평판을 확인하는 작 업은 추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1. 장례 전후의 반향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과정에서 교회와 사회가 보여준 미증유의 반향과, 장례에 대한 언론의 보도, 그리고 장례 절차를 담은 여러 언론기관들의 영상을 정리하였다. 이를 통하여 김 추기경의 성덕에 대한 교회 안팎의 명성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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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 자화상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글과 그림을 김 추기경의 모교인 동성고등학교 100주년 기념전시 회에 출품하도록 기획한 장본인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판화과 교수 출신 임영길 작가에 대한 증언 채취는 2024년 6월 18일에 경기도 파주시 지목로(문발동) 작업실에서 진행되었다.
41)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시복시성 절차 해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1, 318~319쪽: ‘사. 성덕의 명성(평판)’ 중 ‘죽음과 죽음 이후’에 한정하여 다루기로 한다.
42) 단행본이나 정기간행물에 나타난 김 추기경의 성덕의 명성은 ‘김수환 추기경 관련 사료 연구’ 등을 통하여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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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례 일정
2009년 2월 16일 선종부터 22일 삼우제에 이르기까지 김 추기경의 장례 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6일 오후 6시 12분 | 선종 |
16일 오후 7시 25분 | 각막기증 수술 |
16일 오후 9시 40분 | 명동대성당에 안치 |
16일 오후 10시 ~ 19일 밤 12시 | 빈소 조문 (조문객: 약 40만 명) |
19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 입관 예절 (주례 : 정진석 추기경) |
20일 오전 10시 명동대성당 | 교황장 장례미사 (주례 : 정진석 추기경) |
20일 교구 용인공원묘지 | 하관 예절 (주례 : 정진석 추기경) |
22일 12시 명동대성당 | 삼우제 추도미사 (주례 : 정진석 추기경) |
22일 12시 용인공원묘지 | 삼우제 추도미사 (주례 : 염수정 주교) |
2) 장례 보도43)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소식 및 생애 조명: 언제 어떻게 선종하였는지 상세히 보도하고 그간의
삶을 조명
▸ 운구에서 안장까지 장례 절차 및 진행 관련 보도
▪ 장례 절차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을 교황특사로 임명하여 교황장으로 거행
▪ 종교 지도자의 장례식으로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사가 장례미사를 생중계
▸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일반 시민, 종교계, 정·재계, 해외 인사들, 연예계)을 인터뷰하여 반응을
전함
▸ 신드롬 급 추모 열기
▪ 5일간의 장례 기간[실제 조문기간은 3일] 중 조문객 약 40만 명
▪ 국내뿐 아니라 해외 각지에서도 분향소를 마련하여 애도하고 인터넷에서도 추모 페이지 개설
▸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 사실이 불러일으킨 반향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등록한 각막
기증을 포함한 장기 기증 의향서가 폭발적으로 증가
▸ 입양에 대한 관심 고조
▸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운동
▸ 웰다잉 바람.
3) 장례 영상
▸ <가난한 옹기장수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연소 추기경에 오른 김수환. 그가 세상에 남긴 사랑의 의미> (58분), KBS,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xMdIX3k3EqE
▸ <다큐멘터리 3일. 지상에서의 마지막 선물. 2009 겨울 명동성당의 기록>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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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 1~3』,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2009를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 회에서 정리한 내용을 재구성하였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 1: 방송 뉴스(2009년 2월 16일~4월 7 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 2: 뉴스통신사(2009년 2월 16일~4월 8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뉴스 3: 종합일간지 (2009년 2월 16일~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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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미디어,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zarcEZqZ53Y
▸ <사랑하라, 고맙습니다. 인간 김수환> (41분), EBS 다큐,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aD3OZIoBBRg
▸ <우리 시대의 목자, 김수환 추기경> (52분), MBC, 2009
https://www.youtube.com/watch?v=-jpGWTPqeCM
▸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장례미사 1, 2> (70분, 70분), CPBC, 2009
▸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영상> (59분), CPBC, 2009
▸ <김수환 추기경에 관한 마지막 보고서> CPBC, 2009
▪ 1부 - <앗숨(AD SUM): 네, 여기 있습니다> (48분)
https://program.cpbc.co.kr/tv/ksh_last_report/vod/3775946/22000602500
▪ 2부 - 사제 김수환, 시대와 함께 호흡하다 (49분)
https://program.cpbc.co.kr/tv/ksh_last_report/vod/3775946/22000602501
▪ 3부 - 바보, 김수환 (45분)
https://program.cpbc.co.kr/tv/ksh_last_report/vod/3775946/22000602502
3.2. 선종 이후의 언론 보도
3.3. 선종 이후의 영상 제작
▸ <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 특집 다큐. 사랑하라 사랑하라> (44분), KBS미디어, 2011
▸ 감독 강성옥, <바보야> (73분), 2011
https://program.cpbc.co.kr/tv/baboya/vod/6325946/22000605126
▸ 감독 전성우, <그 사람 추기경> (121분), 비디오여행, 2014
https://program.cpbc.co.kr/tv/thatman_cardinal/main
▸ <선종 10주기. 우리 안의 바보, 김수환>, CPBC, 2019
▪ 1부- 우리가 함께 한 시간 (47분)
https://www.youtube.com/watch?v=YVggeX18s70&t=1685s
▪ 2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49분)
https://www.youtube.com/watch?v=XfHHAhBm160&t=293s
▪ 3부- 바보 김수환이 이 세상에 남긴 것 (44분)
https://www.youtube.com/watch?v=2_eYup3_Rl0
3.3. 선종 이후의 영상 제작
1) 시기별 기념사업
▸ 선종 1주기 추모 미사: 2010.2.16., 서울 명동대성당, 정진석 추기경 주례
▸ 선종 1주기 추모 미사: 2010.2.16, 대구 계산주교좌성당, 조환길 대주교 주례
▸ 선종 1주기 추모 사진전: 2010.2.16.~28, 서울 명동대성당 들머리
▸ 선종 1주기 유품 전시회: 2010.2.16.~5.23, 서울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 선종 1주기 추모 음악회: 2010.2.18, 서울 예술의 전당
▸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추모 미술작품전: 2010.2.18.~27, 서울 평화화랑
▸ <김수환 추기경 선종 1주기 추모 음악회>, 2010.2.20, 대구 시민회관
▸ 선종 1주기 추모 미사: 2010.2.21, 용인 천주교공원묘지, 염수정 주교 주례
▸ 선종 10주기 사진전: 2019.2.11.~23, 명동 1989광장
▸ 기념 심포지엄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 2019.2.14,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 선종 10주기 미사: 2019.2.16, 명동대성당, 염수정 추기경 주례
▸ 선종 10주기 유품 전시회: 2019.2.16~6.30,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 토크 콘서트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2019.2.17,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 선종 10주기 기념 음악회: 2019.2.18., 명동대성당
▸ 김수환 추기경 서체 봉헌식 및 발표회: 2019.2.22, 가톨릭출판사 마리아홀
▸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특별미사: 2019.3.05., 명동대성당
▸ 세미나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사상」: 2019.3.08., 서울대교구청 501호
▸ 탄생 100주년 버스킹 <김수환 어게인>: 2022.2.16, 가톨릭평화방송과 김수환추기경연구소
공동기획
▸ 탄생 100주년 사진전: 2022.5.9.~7.31, 서울대교구, 대구대교구 순회 전시
▸ 릴레이 토크 콘서트 <서로에게 밥이 되겠습니다. 총4회>: 2022.5.16.~6.6, 가톨릭평화방송과
김수환추기경연구소 공동기획
▸ 탄생 100주년 기념 미사: 2022.6.5, 명동대성당, 정순택 대주교 주례
▸ 탄생 100주년 기념 시비 제막식: 2022.6.5, 명동대성당 들머리
▸ 탄생 100주년 기념 미사: 2022.6.6, 대구 성모당, 조환길 대주교 주례
▸ 탄생 100주년 기념 미사: 2022.6.6, 군위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장신호 주교 주례
▸ 탄생 100주년 연극 <추기경 김수환>: 2022년 7월, 전국 4개 도시 순회공연
▸ 탄생 100주년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전: 2022. 10.25. ~ 10.31, 경북도청
▸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제12회 심포지엄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 영성 연구.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라6,2)」: 2022.12.3,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2) 기관별 기념사업
(1)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 교구 역사관 전시: 김수환 추기경 관련사료 (말씀 판화, 임영길 作) (계획 중) ‚‚ 가톨릭출판사
▸ SNS를 통한 김수환 추기경 관련 저서 콘텐츠 연재 (2024. 5.)
▸ 김수환 추기경 관련 도서 김병규, 『봄날은 본디 따뜻하다』 (가톨릭출판사, 2016) 유튜브 오디
오북 제작
▪ 1편: https://www.youtube.com/watch?v=vA5q8QDyS3o
▪ 2편: https://www.youtube.com/watch?v=ri9tlsfKY1g
▸ <가톨릭 고전 독후감 공모전> 대상 도서에 김수환 추기경 관련 도서 2종 포함:
『김수환 추기경의 신앙과 사랑 1, 2권』 , 『봄날은 본디 따뜻하다』 (2024.9.3. ~ 2024.11.17.)
ƒƒ 문화홍보국
▸ 시복 추진 관련 보도 자료 작성 및 국내외 배포
▸ 명동성당 도슨트 투어 참가자에게 상본 배포 (예정)
„„ 주교좌 명동대성당
▸ 김수환 추기경 서거 15주년 추모 음악회: <2025년 희년을 바라보며, 나팔을 불어 희망의
기쁨을 선포하는 해>, 2024.11.11. 명동대성당.
(2) 한국교회사연구소
▸ 『화보집 김수환』, 2001.
▸ 『서울대교구 200주년 기념 역대 교구장 유물 자료집: 김수환 추기경』, 2020.
▸ 김수환추기경연구소와 공동 주관으로 심포지엄 개최: 2022.
(3) 옹기장학회
▸ 2002년 설립
▸ 2010년 김 추기경 선종 1주기를 맞아 서울대교구 공식 기념사업으로 전환
▸ 북방[북한과 중국]과 아시아 선교 희망 신학생들에게 매 학기 장학금 지급
▸ 매월 넷째 월요일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 혹은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추모 미사 봉헌
(4) 재단법인 바보의나눔
▸ 2010년 설립
▸ 인종, 국가, 종교, 이념에 관계없이 도움이 필요한 곳을 위해 나누는 순수 민간 모금 및 배분
전문 사회복지기관
▸ 매년 2월 16일[선종일]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추모 미사 봉헌
(5) 김수환추기경연구소
▸ 2010년 가톨릭대학교 부설 연구소로 설립
▸ 김수환 추기경의 가르침을 시민 사회로 확장
▸ 추모 음악회 개최 (2010~ )
▸ 세미나, 콜로키엄, 심포지엄 개최 (2010~ )
▸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수기 공모 (2012)
▸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연구를 위한 증인 인터뷰(2012~ )
▸ 총서 및 단행본 발간(2012~ )
▸ 시민[成人] 영성교육: 김수환추기경아카데미 (2012~ )
▸ 청소년 인성교육: PEACE-LTB (2012~ )
▸ 청소년 상담교육: 생각-사이다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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