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의 내용에서부터 고려 시대 수많은 후사왕들의 천도(遷都) 시도나 사원건립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리 관련 내용은 다름 아닌 풍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령 훈요의 2항에서 “사원이 들어선 자리는 도선(道詵, 827-898)이 산수의 순역을 보아 추점한 것이니 그 외에 함부로 사원을 세우면 지덕을 손상시켜 나라의 운수가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하여 사원의 입지 선정에 ‘지덕(地德)’을 언급한 것이나, 8항에서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錦江) 밖은 산형 지세가 모두 거스르는 형세로 달리고 있으니 사람의 인심도 또한 그럴 것이다”***라고 하여 인심의 결정 요인으로 땅을 보는 인간-자연환경 간의 관계설정 등은 곧 풍수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 사원을 비롯한 궁궐, 촌락, 도시, 묘지 등의 입지 선정이나 인간-환경 간의 관계는 다름 아닌 지리의 주요한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러한 지리적 관심사에 풍수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은 곧 ‘지리=풍수’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볼 때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지리전문가는 다름 아닌 풍수전문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지리전문가(풍수전문가)를 선발하는 국가의 공식시험인 지리과 과거의 시험과목 내용이 무엇이었을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시험과목으로 채택된 서책들은 동시대 중국에서 편찬된 풍수서가 거의 들어있지 않음을 볼 때 오히려 한국 고유의 지리서, 풍수서라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재로서는 고려 시대 지리과 시험과목으로 제시된 서책의 내용은 둘째 치고 서책 자체도 확인할 방도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특히 도참사상의 발전을 중심으로, 아세아문화사, 1980을 참고.
**高麗史, 卷第二, 「世家」二, 태조 26년, “諸寺院 皆道詵推占山水順逆而開創 道詵云 吾所占定外妄加創造則損薄地德 祚業不永”.
***高麗史, 卷第二, 「世家」二, 태조 26년,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 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첫댓글 우리민족은 유사이래로 전세계를 통치해왔다.
전세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네 나라뿐이었다.
징기스칸은 고려무신정권의 최충헌이고, 임진란은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일이며, 당시 일본은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스페인의 펠리페2세이고 이순신은 드레이크경이다.
명성황후는 러시아태생이며 네델란드에서 자랐다.
한국어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는 전세계 모든 언의의 뿌리이며, 모든 언어는 한국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한문도 우리의 문자이며, 모든 것이 음양의 원리가 있듯이 글도 언문인 한글과 뜻글자인 한문이 있었다.
중공은 그 이전 역사가 없다. 중공의 한족은 나라를 가져본 적이 없는 노비들이다.
고려(조선)가 아메리카에서 망한 후에, 각 대륙에 인종별로 분류되어 보내졌고, 우리민족은 한반도로 이주당해 살고 있다.
고종은 아메리카에서 한반도로 이주 당했고,
3.1운동은 우리민족이 한반도에서 계속 살아온 것으로 꾸미기 위해 만들어낸 자작극이었다.
역사조작에 전세계의 모든 정부가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정부 또한 역사왜곡에 앞장 서고 있고, 국사편찬위원회가 그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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