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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4-10/14절
* 飛龍비룡 辛鐘洙신종수 總務총무님 提供제공.
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4절
p.442 【經文】 =====
過此以往, 未之或知也, 窮神知化, 德之盛也.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는 或혹 알 수 없으니,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이 德덕의 盛大성대함이다.
中國大全
p.442 【本義】 =====
下學之事, 盡力於精義利用, 而交養互發之機, 自不能已. 自是以上, 則亦无所用其力矣, 至於窮神知化, 乃德盛仁熟而自致耳. 然不知者, 往而屈也, 自致者, 來而信也, 是亦感應自然之理而已. 張子曰, 氣有陰陽, 推行有漸爲化, 合一不測爲神. 此上四節, 皆以釋咸九四爻義.
아래로부터 배우는 일은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고 씀을 利이롭게 함에 힘을 다하여 서로 기르고 서로 밝히는 機기틀이 저절로 멈출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여기부터 위로는 또한 힘을 쓸 곳이 없으니,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여 造化조화를 알게 됨은 바로 德덕이 盛大성대하고 仁인이 무르익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은 가서 굽히기 때문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와서 펴기 때문이니, 이 또한 感應감응하는 自然자연한 理致이치일 뿐이다. 張子장자는 “氣運기운에 陰음과 陽양이 있어서 漸次점차 밀쳐 流行유행하는 것이 化화이고, 하나로 合합하여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神신이다”라고 하였다. 以上이상의 네 句節구절은 모두 咸卦함괘(䷞) 九四爻구사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44 【小註】 =====
朱子曰, 窮神知化, 德之盛, 這德字, 只是上面崇德之德. 德盛後, 便能窮神知化, 便如聰明睿知 皆由此出, 自誠而明相似. 又曰, 精義入神, 以致用也, 利用安身, 以崇德也. 過此以往, 未之或知也, 窮神知化, 德之盛也, 只是這一箇. 非於崇德之外, 別有箇德之盛也, 做來做去, 做到徹處, 便是.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이 德덕의 盛大성대함이다”에서 ’德덕‘字자는 위의 “德덕을 높인다[崇德숭덕]”의 ‘德덕’일 뿐이다. 德덕이 盛大성대해진 뒤에야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알 수 있으니, 바로 “聰明총명하고 슬기로움이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주 141]는 것이나 “참됨을 말미암아 밝아진다”[주 142]와 비슷하다.”
또 말하였다.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神妙신묘함에 들어감은 이것으로 씀을 이룸이고, 씀을 利이롭게 하여 몸을 便安편안히 함은 이것으로 德덕을 높임이다.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는 或혹 알 수 없으니,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이 德덕의 盛大성대함이다”는 但只단지 하나일 뿐이다. 德덕을 높이는 以外이외에 別途별도로 德덕의 盛大성대함이 있는 것이 아니니, 이리 저리 行행하여 徹底철저함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다.”
141) 『明儒言行録명유언행록』:程子論恭敬曰, 聰明睿智, 皆由此出. |
142) 『中庸중용』 〈21章장〉 |
○ 未之或知, 是到這裏不可奈何. 窮神知化, 雖不從這裏出來, 然也有這箇意思.
“或혹 알지 못한다”는 이에 이르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은 비록 여기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또한 이러한 意味의미가 있다.
○ 神化二字, 雖程子說得亦不甚分明. 唯是橫渠推出來, 推行有漸爲化, 合一不測爲神. 又曰, 一故神, 兩在故不測, 兩故化.
‘神化신화’ 두 글자는 비록 程子정자라도 아주 分明분명하게 說明설명한 것은 아니다. 오직 張橫渠장횡거만이 밝혀냈을 뿐이니, 미루어 行행하는 데 漸進점진함이 있는 것이 變化변화이고, 合一합일하여 豫測예측할 수 없는 것이 神妙신묘함이다.[주 143]
또 말하였다. “하나이므로 神妙신묘하고, 兩양쪽에 있으므로 헤아리지 못하며, 둘이므로 變化변화한다.”
143) 『張子全書장자전서』卷권2 |
○ 窮神知化, 化, 是逐些子挨將去底. 一日復一日, 一月復一月, 節節挨將去, 便成一年. 神, 是一箇物事, 或在彼, 或在此, 當其在陰時, 全體在陰, 在陽時, 全體在陽. 都只是這一物, 兩處都在, 不可測, 故謂神. 橫渠言一故神, 兩故化. 又註云, 兩在故不測, 這說得甚分曉.
“窮神知化궁신지화”의 ‘化화’는 조금씩 밀쳐 가는 것이니, 하루에 하루를 反復반복하고 한 달에 한 달을 反復반복하여 節節절절이 밀쳐가서 한 해를 이루는 것이다. ‘神신’은 하나의 것이 저기에 있기도 하고 여기에 있기도 한 것이니, 그것이 陰음에 있을 때에는 全體전체가 陰음에 있고, 陽양에 있을 때에는 全體전체가 陽양에 있다. 모두가 이 하나의 것일 뿐이지만, 두 곳에 모두 있어 헤아릴 수가 없으므로 神신이라 이른다. 張橫渠장횡거가 “하나이므로 神妙신묘하고, 둘이므로 變化변화한다”고 하고, 다시 注주에서 “兩양쪽에 있으므로 헤아리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아주 分明분명하다.
○ 此章, 解咸九四, 據爻義看, 上文說貞吉悔亡, 貞字甚重. 程子謂聖人感天下, 如雨暘寒暑, 无不通, 无不應者, 貞而已, 所以感人者, 果貞矣, 則吉而悔亡. 蓋天下本无二理, 果同歸矣, 何患乎殊塗, 果一致矣, 何患乎百慮. 所以重言何思何慮也. 如日月寒暑之往來, 皆是自然感應如此, 日不往則月不來, 月不往則日不來, 寒暑亦然. 往來只是一般往來, 但憧憧之往來者, 患得患失, 旣要感這箇, 又要感那箇, 便自憧憧忙亂, 用其私心而已. 屈信相感而利生焉者, 有晝必有夜, 設使長長爲晝而不夜, 則何以息, 夜而不晝, 安得有此光明. 春氣固是和好, 只有春夏而无秋冬, 萬物何以成, 一向秋冬而无春夏, 人何以生. 屈信往來之理, 所以必待迭相爲用, 而使利所由生. 春秋冬夏, 只是一箇感應, 所應復爲感, 所感復爲應也. 春夏是一箇大感, 秋冬則必應之, 而秋冬又爲春夏之感. 以細言之, 則春爲夏之感, 夏則應春而又爲秋之感, 秋爲冬之感, 冬則應秋而又爲春之感, 所以不窮也. 尺蠖不屈, 則不可以信, 龍蛇不蟄, 則不可以藏身. 今山林冬暖, 而蛇出者往往多死, 此則屈信往來感應必然之理. 夫子因往來兩字, 說得許多大, 又推以言學, 所以內外交相養, 亦只是此理而已. 橫渠曰, 事豫吾內, 求利吾外, 素利吾外, 致養吾內, 此下學所當致力處. 過此以上, 則不容計較. 所謂窮神知化, 乃養盛自致, 非思勉所及, 此則聖人事矣.
이 章장은 咸卦함괘(䷞)의 九四구사를 解釋해석하였는데, 爻효의 뜻에 依據의거하여 본다면 앞서 “바르면 吉길하여 後悔후회가 없어질 것이다[貞吉悔亡정길회망]”라고 하였으니 ‘貞정’字자가 매우 重要중요하다. 程子정자는 “聖人성인이 天下천하에 感應감응함은 흐림과 갬, 추위와 더위가 通통하지 않음이 없고 應응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바를 뿐이다”라고 하니, 사람에 感應감응하는 것이 果然과연 바르기에 吉길하여 後悔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大體대체로 天下천하에 理致이치는 本來본래 두 가지가 아니어서 結局결국 돌아감이 같을 것이니 어찌 길이 다름을 근심하겠으며, 結局결국 이룸이 하나일 것이니 어찌 百백 가지 念慮염려로 근심하겠는가? 그래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라고 거듭 말한 것이다. 해와 달, 추위와 더위의 가고 옴과 같은 것은 모두 自然자연하게 感應감응함이 이와 같은 것이니, 해가 가지 않으면 달이 오지 않고, 달이 가지 않으면 해가 오지 않으며, 추위와 더위도 또한 그러하다. 가고 옴은 다만 一般的일반적인 가고 옴이지만, 私心사심을 가지고 오가는 것은 얻고 잃음을 근심하여서 이것에 感應감응하려 하면서 다시 저것에 感應감응하려 함이니, 바로 스스로 私心사심을 가지며 心亂심란하여 私心사심을 쓰는 것일 뿐이다. “굽힘과 폄이 서로 感應감응하여 利이로움이 나온다”는 것은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음이니, 假令가령 繼續계속해서 낮이면서 밤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쉬겠으며, 밤이면서 낮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빛을 있게 할 수 있겠는가? 봄 氣運기운이 참으로 좋더라도 봄과 여름만 있고 가을과 겨울이 없다면 萬物만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으며, 한결같이 가을과 겨울이고 봄과 여름이 없다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굽히고 펴며 가고 오는 理致이치는 반드시 番번갈아가며 서로 作用작용하여 利이로움이 따라 나오게 한다. 봄과 가을, 겨울과 여름은 다만 하나의 感應감응일 뿐이니, 對應대응하는 것이 다시 느끼게 되고, 느끼는 것이 다시 對應대응하게 된다. 봄과 여름이 한 番번 크게 느끼면 가을과 겨울이 반드시 對應대응하고, 가을과 겨울은 다시 봄과 여름을 느끼게 된다. 仔細자세하게 말하면, 봄이 여름을 느끼게 되면 여름은 봄에 對應대응하면서 다시 가을을 느끼게 되고, 가을이 겨울을 느끼게 되면 겨울은 가을에 對應대응하면서 다시 봄을 느끼게 되니,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자벌레는 굽히지 않으면 펼 수 없고, 龍용과 뱀은 蟄居칩거하지 않으면 몸을 감출 수 없다. 只今지금 山林산림의 겨울이 따뜻해도 뱀이 나온다면 때때로 죽는 것이 많으니, 이는 굽힘과 폄, 감과 옴이 感應감응하는 必然필연의 理致이치인 것이다. 孔子공자가 감[往왕]과 옴[來래] 두 글자에 依據의거하여 말한 것이 매우 많고 크지만, 다시 學文학문으로 미루어 말하였으니 안과 밖이 서로 기르게 되는 것도 但只단지 이 理致이치일 뿐이다. 張橫渠장횡거가 “일을 내 안에서 미리 알아 내 밖이 利이롭기를 求구하고, 平素평소에 내 밖을 利이롭게 하여 내 안 기르기를 다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아래로부터 배움[下學하학]’에 힘을 다하여야 할 곳이다. 이밖에는 견주어 살핌을 容納용납하지 않는다. 이른바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은 바로 기름이 盛大성대하여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며 생각하고 힘써서 미칠 바가 아니니, 이는 聖人성인의 일인 것이다.
○ 天下何思何慮一段, 此是言自然而然. 如精義入神, 自然致用, 利用安身, 自然崇德.
“天下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의 段落단락은 自然자연스럽게 그러함을 말한 것이다.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神妙신묘함에 들어간다’면 自然자연스럽게 씀을 이루고, ‘씀을 利이롭게 하여 몸을 便安편안히 한다’면 自然자연스럽게 德덕을 높일 것이다.
○ 天下何思何慮一句, 便是先打破那箇思字, 卻說同歸殊塗, 一致百慮. 又再說天下何思何慮, 謂何用如此憧憧往來, 而爲此朋從之思也. 日月寒暑之往來, 尺蠖龍蛇之屈信, 皆是自然底道理, 不往則不來, 不屈則亦不能信也. 今之爲學, 亦只是如此. 精義入神, 用力於內, 乃所以致用乎外, 利用安身, 求利於外, 乃所以崇德乎內, 只是如此做將去. 雖至於窮神知化地位, 亦只是德盛仁熟之所致, 何思何慮之有.
“天下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의 句節구절은 먼저 저 ‘생각함[思사]’을 없애고, 다시 돌아감이 같아도 길이 다르며, 이룸이 하나여도 念慮염려가 百백 가지임을 말한 것이다. 再次재차 “天下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를 말함은 ‘어째서 이와 같이 私心사심을 가지고 오가면서 이렇게 벗만이 따를 생각을 하는가’라고 한 것이다. 해와 달,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오며, 자벌레와 龍용과 뱀이 굽히고 폄은 모두 自然자연한 道理도리이니, 가지 않으면 오지 않고 굽히지 않으면 또한 펼 수 없다. 只今지금 學文학문을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을 뿐이다.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神妙신묘함에 들어감”은 안으로 힘을 쓰지만 바로 밖으로 씀을 이루는 것이며, “씀을 利이롭게 하여 몸을 便安편안히 함”은 밖으로 利이로움을 求구함이지만 바로 안으로 德덕을 높이는 것이니, 다만 이와 같이 해나갈 뿐이다. 비록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알게 되는 것도 但只단지 德덕이 盛大성대하고 仁인이 무르익어 이룬 것일 뿐이니,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함이 있겠는가?
○ 雲峰胡氏曰, 天下何思何慮一語, 所以破思慮之感, 息憧憧之思也. 天下間, 凡一往一來, 皆感應自然之常理, 非唯日月寒暑如此. 以吾之學言之, 精義以致用, 利用以崇德, 亦有自然屈信之理. 至於窮神知化, 而德之盛, 皆自然而已矣, 皆非思慮所及. 故曰天下何思何慮.
雲峰胡氏운봉호씨가 말하였다. ““天下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라는 한 마디는 생각하고 念慮염려하는 感應감응을 없애고, 私心사심을 가진 생각을 그치게 한 것이다. 天下천하에 가고 오는 모든 것은 모두 感應감응하여 저절로 그러한 恒常항상된 理致이치이니, 오직 해와 달, 추위와 더위만이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學文학문으로 말한다면,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씀을 이루고, 씀을 利이롭게 하여 德덕을 높이니, 또한 自然자연스럽게 굽히고 펴는 理致이치가 있다. 甚至於심지어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알게 되어 德덕이 盛大성대한 것도 모두 저절로 그럴 뿐이어서 모두 생각하고 念慮염려하여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天下천하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念慮염려하리오”라고 하였다.”
韓國大全
【박치화(朴致和) 「설계수록(雪溪隨錄)」】
○ 天地之間, 屈信感應而已. 故曰過此以往, 未之或知也.
天地間천지간은 굽히고 펴며 感應감응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는 或혹 알 수 없다”고 하였다.
○ 精義崇德之極, 便能窮神知化, 故曰德之盛也.
義理의리를 精密정밀하게 함과 德덕을 높임이 至極지극하면 곧 神신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알 수 있기 때문에 “德덕의 盛大성대함”이라고 말하였다.
○ 神者, 造化妙處, 窮神則知造化之所以然, 故曰窮神知化.
神신이란 造化조화의 神妙신묘한 곳이니 神신을 窮究궁구하면 造化조화가 그렇게 된 理由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에 “神신을 窮究궁구하며 調和조화를 안다”고 말하였다.
○ 朱子訓解以爲精義入神, 利用崇德, 過此以往, 莫知其所以然, 所謂聖神也, 故曰未之或知也.
朱子주자가 풀이하기를 “義理의리를 精密정밀히 하여 神妙신묘함에 들어가고 利用이용을 利이롭게 하며 德덕을 높이니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는 그것이 그렇게 된 理由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聖성스럽고 神妙신묘함을 알 수 없기 때문에 “或혹 알 수 없다”고 말하였다.
○ 不知者, 往而屈, 釋未之或知也, 自致者, 來而信, 釋窮神知化, 德之盛也.
“알 수 없는 것은 가서 굽히기 때문이다”는 “或혹 알 수 없다”를 解釋해석한 것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와서 펴기 때문이다”는 “神신을 窮究궁구하고 變化변화를 안다”를 解釋해석한 것이니, 德덕의 盛성함이다.
○ 精義利用, 而不知其所以然. 故不知屬往而屈也.
義理의리를 精密정밀히 하고 利用이용을 利이롭게 하나 그렇게 되는 理由이유를 모른다. 그러므로 “알 수 없음”은 ‘가서 굽힘’에 屬속한다.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正義, 言精義入神以致用, 利用安身以崇德, 此二者皆人理之極, 過此二者以往, 則微妙不可知, 故云未之或知也. 過此以往, 則窮極微妙之神, 曉知變化之道, 乃是聖人德之盛極也.
『周易正義주역정의』에서 말하였다.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神妙신묘함에 들어가 쓰임을 이루고’, ‘쓰임을 利이롭게 하여 몸을 便安편안히 해서 德덕을 높이는’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람이 지켜야할 理致이치의 至極지극함이니, 이 두 가지를 지난 以後이후는 微妙미묘하여 알 수 없기 때문에, “或혹 알 수 없으니”라고 하였다는 말이다.[주 144] ‘이를 지난 以後이후’는 微妙미묘한 神신을 다하고 變化변화의 道도를 밝게 알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매우 盛大성대한 聖人성인의 德덕이다.”
○ 程子曰, 窮神知化, 化之妙者神也.
程子정자가 말하였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고 變化변화를 아는 것이니 變化변화의 神妙신묘함이 ‘神신’이다.”
○ 朱子曰, 過此以往, 未之或知, 亦只是雖欲從之, 末由也已之意.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이를 지난 以後이후로는 或혹 알 수 없으니”는 다만 그것을 따르고자 해도 말미암을 길이 없다는 뜻이다.”
144) 『周易正義주역정의』에 “過此以往,未之或知也者,言精義入神以致用,利用安身以崇德,此二者皆人理之極. 過此二者以往,則微妙不可知,故云未之或知也”라 하였으므로 ‘言精義入神以致用’의 ‘言언’을 여기까지 걸어 번역하였다.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窮神於內, 知化於外, 乃養盛自致. 張子曰, 推行有漸爲化, 合一不測爲神.
마음에서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여 몸 밖에서 造化조화를 아는 것이 곧 “기름이 盛大성대함을 스스로 이룸”이다. 張子장자가 말하기를 “미루어 行행하는 데 漸進점진함이 있는 것이 變化변화이고, 合一합일하여 豫測예측할 수 없는 것이 神妙신묘함이다”[주 145]라고 하였다.
145) 『張子全書장자전서』卷권2 |
【박윤원(朴胤源) 『경의(經義)•역경차략(易經箚略)•역계차의(易繫箚疑)』】
○ 窮神知化, 是極層地位, 其氣象意思, 可得以形容歟. 窮神之神, 與上文入神之神, 同歟異歟. 上文精義利用, 分言知行, 而至此則神化是行, 窮知是知歟. 精義利用, 當用工夫, 而窮神知化, 着不得工夫, 故曰過此以往, 未之或知也. 此是顏子雖欲從之, 末由也已之境界歟. 前章神而化之, 卽黃帝堯舜之窮神知化之事歟, 西銘以窮神知化爲繼述, 惟踐形之, 聖人爲能, 而中人以下, 不能與焉歟.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造化조화를 앎”은 至極지극한 次元차원의 境地경지이니, 그 氣象기상의 뜻을 形容형용할 수 있을 것이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함”의 ‘神妙신묘함’은 윗글의 “神妙신묘함에 들어감”의 ‘神妙신묘함’과 같은가 다른가? 윗글의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쓰임을 利이롭게 함”은 知지와 行행을 나누어 말하였으나, 이 글에서는 神妙신묘함과 造化조화가 ‘行행’이고 窮究궁구함과 앎이 ‘知지’일 것이다. 義의를 精密정밀히 하여 쓰임을 利이롭게 함은 마땅히 直接직접 工夫공부를 하는 것이나,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고 造化조화를 앎은 直接직접 工夫공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지난 以後이후로는 或혹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이 顏子안자가 “비록 따르고자 하나 어디로부터 말미암을지 모르겠다”[주 146]고 한 境地경지일 것이다. 「繫辭下傳계사하전」二章2장의 “神妙신묘하여 化育화육함”은 곧 黃帝황제와 堯요‧舜순의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고 造化조화를 앎”의 일일 것이며, 「西銘서명」에서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고 造化조화를 앎”을 “뜻을 잘 繼承계승하고 일을 잘 技術기술함”[주 147]이라 하였으니 타고난 形體형체를 實踐실천하는 것은 聖人성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어서 中人중인 以下이하는 參與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146) 『論語논어‧子罕자한』:……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
147) 『張子全書장자전서‧西銘서명』에 “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라 하였고, 朱熹의 「西銘解」에 “孝子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 聖人知變化之道, 則所行者無非天地之事矣, 通神明之德, 則所存者無非天地之心矣. 此二者, 皆樂天踐形之事也.”라 하였다. |
【심취제(沈就濟) 『독역의의(讀易疑義)』】
不知者神也, 自致者化也. 上傳所謂神以知來, 則來者非化耶.
알 수 없는 것은 神妙신묘함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變化변화이다. 「繫辭上傳계사상전」에서 말한 “神妙신묘함으로 未來미래를 안다”[주 148]는 ‘未來미래’라는 것이 變化변화가 아니겠는가?
148) 「繫辭上傳계사상전」 11章장:聖人성인이 이것으로 마음을 씻어 隱密은밀함에 물러나 숨으며, 吉凶길흉에 百姓백성과 더불어 근심을 같이 하여 神妙신묘함으로 올 것을 알고 知慧지혜로 간 것을 간직하니, 그 누가 여기에 參與참여할 수 있겠는가? [聖人, 以此洗心, 退藏於密, 吉凶, 與民同患, 神以知來, 知以藏往, 其孰能與於此哉.] |
【윤행임(尹行恁) 『신호수필(薪湖隨筆)‧계사전(繫辭傳)』】
窮神知化, 學問之極功也, 故子張於西銘, 以是爲事天之實. 窮神知化, 是大學第五章工夫.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여 造化조화를 아는 것”은 學文학문을 하는 窮極궁극의 工夫공부이기 때문에 張子장자가 「西銘서명」에서 이것으로 하늘을 섬기는 實際실제로 삼았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고 調和조화를 앎은 『大學대학』 第五章제5장의 工夫공부이다.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咸之道, 止於同類. 同類旣已感應, 天下從以觀化之矣. 窮神知化, 觀之道也. 咸精而不神, 觀神而不精, 咸專而不徧, 觀徧而不專, 咸感而不化, 觀化而不感, 咸知而相應, 觀不知而相化.
咸卦함괘(䷞)의 道도는 同類동류에 그친다. 同類동류가 이미 感應감응했다면 天下천하가 따라서 보고 變化변화한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여 變化변화를 아는 것이 觀卦관괘(䷓)의 道도이다. 咸卦함괘(䷞)는 精密정밀하나 神妙신묘하지 않고 觀卦관괘(䷓)는 神妙신묘하나 精密정밀하지 않으며, 咸卦함괘(䷞)는 專一전일하나 두루 하지 못하고 觀卦관괘(䷓)는 두루하나 專一전일하지 못하며, 咸卦함괘(䷞)는 感應감응하여 變化변화하지만 觀卦관괘(䷓)는 變化변화하나 感應감응하지 못하고, 咸卦함괘(䷞)는 알고서 서로 感應감응하지만 觀卦관괘(䷓)는 모르면서 서로 變化변화한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過此以往, 言自致用崇德而前去也, 未之或知, 言其盛之不可測也. 君子之學, 內外相感而交養, 莫非一理, 卽同歸一致者也. 過此以往, 則神不求窮, 而自至于窮, 化不求知, 而自至于知. 此乃聖人盡性至命之事, 而德之盛, 旡以加矣. 何嘗憧憧思慮而求之哉.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란 씀을 이루고 德덕을 높이는 데서부터 앞으로 감을 말하고, “或혹 알 수 없음”이란 盛大성대함을 測量측량할 수 없음을 말한다. 君子군자의 배움은 몸의 안팎이 서로 感應감응하고 서로 길러주어 한 가지 理致이치 아님이 없으니 곧 “돌아감이 같고 理致이치는 하나”라는 것이다. 이를 지나간 以後이후는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기를 求구하지 않으나 저절로 窮究궁구함에 이르고, 造化조화를 알기를 求구하지 않으나 저절로 앎에 이른다. 이것은 바로 聖人성인이 本性본성을 다하고 天命천명에 이르는 일이니 德덕의 盛大성대함이 더할 나위 없다. 어찌 私心사심을 가지고 생각하여 求구한 적이 있었겠는가?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주 149]
一致而百慮, 或作百慮而一致. 咸爲下篇之首, 故孔子於彖辭, 特加詳焉, 以明天地感應之道. 咸之九四, 舊爲心之部位, 顧爻辭未足以發其精蘊, 故於此, 特因餘意發揮之, 無遺憾. 窮神知化四字, 爲其總括處. 神爲敎化之標本, 天道之主宰, 聖人雅素之言, 不及於神何也. 蓋聖人敎人, 使之易曉, 就人身上拈出一箇心字, 心卽神也. 然對學者, 而言神則未易領會, 言心則反省而知能從事於操存矣. 窮神者, 盡心之謂也, 聖人於易中, 多般說神字.
“理致이치가 하나인데 생각이 百백 가지”를 어떤 이는 “생각이 百백 가지인데 理致이치는 한 가지”로 쓰기도 한다. 咸卦함괘(䷞)는 下經하경의 첫머리이기 때문에 孔子공자가 咸卦함괘(䷞)의 「彖辭단사」에서 特別특별히 仔細자세함을 더하여 天地천지가 感應감응하는 道도를 밝혔다. 咸卦함괘(䷞)의 九四구사는 옛날에 心臟심장의 位置위치로 여겼는데, 다만 爻辭효사가 精密정밀하고 蘊蓄온축된 뜻을 發現발현하기에 不足부족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特別특별히 豐富풍부한 뜻을 드러내어 遺憾유감이 없게 하였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하며 調和조화를 안다”는 말이 그것을 豐富풍부한 말이다. ‘神妙신묘함’은 敎化교화의 標本표본이며 天道천도를 主宰주재함이 되는데, 孔子공자가 平素평소에 ‘神신’을 言及언급하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聖人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에 쉽게 깨닫게 하기 위하여 身體신체 中에서 ‘心심’을 指摘지적하여 說明설명하였으니 ‘心심’이 바로 ‘神신’이다. 그러나 배우는 者자를 相對상대로 ‘神신’을 말하면 쉽게 理解이해하지 못하고, ‘心심’을 말하면 돌이켜 살펴서 지켜 保存보존함에 偏僻편벽할 줄 안다. ‘神妙신묘함을 窮究궁구함’이란 마음을 다함을 이르니, 聖人성인이 『周易주역』에서 神신을 말한 데가 많다.
149) 경학자료집성DB에 「繫辭下傳계사하전」 三章3장에 編輯편집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영인본의 體裁체재에 依據의거하여 「繫辭下傳계사하전」 第五章제5장으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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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5절
p.447 【經文】 =====
易曰, 困于石, 據于蒺藜.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子曰, 非所困而困焉, 名必辱, 非所據而據焉, 身必危, 旣辱且危, 死期將至, 妻其可得見邪.
『周易주역』에서 말하였다. “돌[石석] 때문에 困難곤란하며 가시나무[蒺藜질려]에 자리하였다. 제 집에 들어가도 제 아내를 보지 못함이니, 凶흉하다.”
孔子공자가 말하였다.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데 困難곤란하니 이름이 반드시 辱욕되고, 자리할 곳이 아닌데 자리하니 몸이 반드시 危殆위태하리니, 이미 辱욕되고 또 危殆위태하여 죽을 時期시기가 將次장차 이를 것이니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蒺藜질려: 남가새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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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7 【本義】 =====
釋困六三爻義.
困卦곤괘(䷮) 六三爻육삼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p.447 【小註】 =====
或問, 非所困而困焉, 名必辱, 大意謂石不能動底物, 自是不須去動他. 若只管去用力, 徒自困耳. 朱子曰, 此爻大意, 謂不可做底, 便不可入頭去做. 又曰, 且以人事言之, 有着力不得處. 若只管着力去做, 少間去做不成, 他人便道自家无能, 便是辱了名.
어떤 이가 물었다.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데 困難곤란하니 이름이 반드시 辱욕되다”는 大意대의가 “돌은 움직일 수 없는 物件물건이여서 原來원래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니, 萬若만약 다만 힘쓰려 한다면 한갓 스스로 困難곤란할 뿐이다”라고 한 것입니까?”
朱子주자가 答답하였다. “이 爻효의 大意대의는 할 수 없는 것은 애―初초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말하였다. “暫時잠시 사람의 일로 말한다면 힘을 쓸 수 없는 곳입니다. 萬若만약 그저 힘써서 해본다면 바로 허탕 치게 되어 다른 사람들이 无能무능하다고 할 것이니, 바로 이름을 辱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 南軒張氏曰, 有應於上, 將以求名, 今困于石, 此非所困而困焉名必辱也. 有依於下, 得以安身, 今據于蒺藜, 非所據而據焉身必危也. 在困之時, 名辱身危, 有死之理, 此身不行道, 雖妻且不可見, 宜乎凶也.
南軒張氏남헌장씨가 말하였다. “위로 呼應호응함은 이름을 求구하려 함인데 只今지금은 돌 때문에 困難곤란하니,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데 困難곤란하니 이름이 반드시 辱욕된다’는 것이다. 아래를 依支의지함은 몸을 便편히 하려 함인데 只今지금은 가시나무에 자리하니, ‘자리할 곳이 아닌데 자리하니 몸이 반드시 危殆위태롭다’는 것이다. 困곤의 때에는 이름이 辱욕되고 몸이 危殆위태하여 죽을 理致이치가 있으며, 이 몸이 道理도리를 行행하지 못하여 아내조차도 볼 수 없으니, 凶흉한 것은 當然당연하다.”
○ 誠齋楊氏曰, 君子有不幸之困, 无以致之, 在陳畏匡是已. 故名不辱而身不危. 小人无幸免之困, 爲不善以致之, 以其非所據而據. 是以非所困而困, 尙可得而保其名, 保其身, 保其家, 保其妻子乎.
誠齋楊氏성재양씨가 말하였다. “君子군자는 願원치 않은 困難곤란함이 있어도 이에 到達도달함은 없으니, 陳진나라에 있듯이[주 150] 匡광에서 警戒경계하듯이[주 151] 하여 그친다. 그러므로 이름이 辱욕되지 않고 몸이 危殆위태롭지 않다. 小人소인은 僥倖요행이 謀免모면하는 困難곤란함이 없더라도 좋지 않은 行實행실로 이에 이르게 되니, 자리할 곳이 아닌데 자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데 困難곤란하니, 하물며 그 이름이나 몸이나 집안이나 妻子처자조차 保存보존할 수 있겠는가?”
150) 『論語논어‧公冶長공야장』:子在陳曰, 歸與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
151) 『論語논어‧子罕자한』:子畏於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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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
易曰, 困于石, 據于蒺藜.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周易주역』에서 말하였다. “돌[石석] 때문에 困難곤란하며 가시나무[蒺藜질려]에 자리하였다. 제 집에 들어가도 제 아내를 보지 못함이니, 凶흉하다.”
朱子曰, 石指四, 蒺藜指二, 宮謂三, 而妻則六也. 按, 本卦九四陽剛, 有石象, 九二亦陽剛, 又坎體, 坎爲叢棘, 有蒺藜象. 三其所居, 卽宮也. 朱子又曰, 六三陽之陰, 上六陰之陰. 故將六三言之, 則上六爲妻也.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돌은 四爻사효를 가리키고 가시나무는 二爻이효를 가리키며, 집은 三爻삼효를 말하고 아내는 六육이다.
내가 살펴보았다. 본 困卦곤괘(䷮)를 보면, 九四구사가 굳센 陽양이니 돌의 象상이 있는 것이고 九二구이도 陽剛양강이며 또 坎감의 몸-體체인데, 坎감은 叢棘총극이 되니 가시나무의 象상이 있는 것이다. 三爻삼효는 그가 있는 곳이 바로 宮궁이다.
朱子주자가 또 말하였다. “六三육삼은 陽양의 자리에 있는 陰爻음효이고, 上六상육은 陰음의 자리에 있는 陰爻음효이다. 그러므로 六三육삼을 가지고 말하면 上六상육이 妻처가 되는 것이다.”
【박치화(朴致和) 「설계수록(雪溪隨錄)」】
○ 危困之極, 妻亦不得以保有也, 故曰妻其可得見耶.
危殆위태롭고 困難곤란함이 至極지극하며 아내도 保全보전해 둘 수 없기 때문에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困六三爻義. 名必辱, 就進取上言, 身必危, 就安身處言.
困卦곤괘(䷮) 六三爻육삼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이름이 반드시 辱욕됨”은 나아가 取취하게 되는 일로 말하였고, “몸이 반드시 危殆위태로움”은 몸을 便安편안히 하는 일로 말하였다.
【심취제(沈就濟) 『독역의의(讀易疑義)』】
易曰困于石以下諸爻, 皆言能屈伸不能屈伸, 而君子則能屈伸也, 小人則不能屈伸也.
‘易曰困于石역왈곤우석’ 以下이하의 여러 爻효는 모두 ‘굽히고 펼 수 있는지’ ‘굽히고 펼 수 없는지’를 말하였으니 君子군자는 굽히고 펼 수 있으며, 小人소인을 굽히고 펼 수 없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困六三爻辭之義. 居險而無應援, 故謂非所困而困也, 乘剛而處不正, 故謂非所據而據也.
이 글은 困卦곤괘(䷮) 六三爻辭육삼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險험함에 있으면서 應援응원이 없기 때문에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데 困難곤란하다”고 하였고, 剛강한 陽양을 타고 處처한 곳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자리할 곳이 아닌데 자리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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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6절
p.448 【經文】 =====
易曰,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子曰, 隼者, 禽也, 弓矢者, 器也, 射之者, 人也. 君子藏器於身, 待時而動, 何不利之有. 動而不括, 是以出而有獲, 語成器而動者也.
『周易주역』에서 말하였다. “公공이 새매[隼준]를 높은 담 위에서 쏘아 잡음이니, 利이롭지 않음이 없다.
孔子공자가 말하였다. “새매는 날짐승이고, 활과 살은 器具기구이고, 쏘는 이는 사람이다. 君子군자가 器具기구를 몸에 간직하고 때를 기다려 움직인 것이니, 어찌 利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움직여서 막히지 않기 때문에 나가서 잡음이 있으니, 器具기구를 만들어 움직임을 말한 것이다.
* 隼준: 새매, 수리과,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천연기념물 |
中國大全
p.448 【本義】 =====
括, 結礙也. 此, 釋解上六爻義.
‘括괄’은 얽혀 막힘이다. 이는 解卦해괘(䷧) 上六爻상육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48 【小註】 =====
朱子曰, 張敬夫說易, 謂只依孔子繫辭說便了. 如說公用射隼, 至成器而動者也, 只如此說便了, 固是如此, 聖人之意, 只恁地說不得. 緣在當時只理會得象數, 故聖人明之以理. 又曰, 公用射隼, 孔子是發出言外之意.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張敬夫장경부는 『周易주역』을 說明설명하여 “孔子공자의 「繫辭傳계사전」에 依據의거하여 말하면 그만이다”라고 하였다. 萬若만약 “‘公공이 새매를 쏨’으로부터 ‘器具기구를 만들어 움직임이다’까지는 但只단지 이와 같이 말하면 그만이다”라고 한다면, 眞實진실로 이와 같겠지만 聖人성인의 뜻이 이와 같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當時당시에는 (『周易주역』을) 但只단지 象數상수로만 理解이해했기 때문에 聖人성인이 理致이치로 밝힌 것이다.”
또 말하였다. “‘公공이 새매를 쏨’은 孔子공자가 말 밖의 숨은 뜻을 펼친 것이다.”
○ 漢上朱氏曰, 藏可用之器, 待可爲之時, 動无結礙, 出則有獲. 唯乘屈信之理而其用利者, 能之.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쓸 만한 器具기구를 간직하고 할 만한 時期시기를 기다렸기에, 움직이면 막힘이 없고 나오면 잡음이 있다. 오직 굽히고 펴는 理致이치를 타서 씀을 利이롭게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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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待時 [至] 不括
때를 기다려…막히지 않기 때문에
韓氏曰, 括結也. 君子待時而動, 則旡結閡之患. 小人至謂也.
韓氏한씨가 말하였다. “括괄은 맺음이다. 君子군자가 때를 기다려 움직이면 맺히거나 닫히는 患亂환란이 없으니, 小人소인이 이름을 이른다.
晦齋先生曰, 小人旡忌憚, 賊仁害義, 而略旡恥畏. 小則妒賢嫉能, 妨政害治, 大則專擅威福, 弑君簒國, 甚可懼也. 蓋其心唯知趨利避害, 故見利而後, 勸於爲善, 畏威而後, 懲於爲惡. 苟能懲之小, 使不至於大, 則小人之福也.
晦齋先生회재선생이 말하였다. “小人소인은 꺼리는 것이 없으니, 仁義인의를 害해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작게는 어진 이를 妬忌투기(妒투)하고 有能유능한 이를 嫉妬질투하여 政事정사를 毁謗훼방하고 다스림을 害해치며, 크게는 威嚴위엄과 福복을 專橫전횡하여 임금을 弑害시해하고 나라를 簒奪찬탈하니, 매우 두려울 만하다. 그 마음은 오직 利이로움을 따르고 害해를 避피할 줄만 알기 때문에, 利이로움을 보인 뒤에야 善行선행을 하는 데 勸勉권면되고, 威嚴위엄으로 두렵게 한 뒤에야 惡行악행을 함이 懲戒징계된다. 眞實진실로 작은 일에서 懲戒징계될 수 있어 큰일에 이르지 않게 한다면 小人소인의 福복이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解上六爻義. 括結礙也, 不括, 卽象傳所謂解悖也.
解卦해괘(䷧) 上六爻상육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括괄은 맺고 막힘이니, ‘막히지 않음[不括불괄]’은 「象傳상전」에서 말한 ‘풀어 버림’[주 152]이다.
152) 『周易주역‧解卦해괘(䷧)』上六상육:「上傳상전」에서 말하였다. ““公공이 새매를 쏨”은 거슬림을 풀어버리는 것이다.[象曰, 公用射隼, 以解悖也] |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주 153]
弓矢者, 器也,
활과 살은 器具기구이고
153) 경학자료집성DB에서는 「繫辭下傳계사하전」 ‘通論통론’으로 分類분류했으나, 內容내용에 따라 이 자리로 옮겼다. |
互坎互離, 爲弓矢之象. 互卦, 故曰藏器於身也.
互卦호괘인 坎卦감괘(䷜)와 互卦호괘인 離卦이괘(䷝)는 활과 화살의 象상이 된다. 互卦호괘이기 때문에 “몸에 器具기구를 간직한다”고 하였다.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君子不爲可求而不求, 致困六三之凶, 求之而不越分位, 如解上六之獲.
君子군자는 求구할 수 있음에 求구하지 않아 困卦곤괘(䷮) 六三육삼의 凶흉함을 이루는 일을 하지 않고, 求구하나 分數분수와 자리를 넘지 않아 解卦해괘(䷧) 上六상육의 얻음과 같이 한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解上六爻辭之義. 夫子別發一義, 與小象解悖不同. 括猶括囊之括, 言閉結也.
이 글은 解卦해괘(䷧) 上六爻辭상육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孔子공자가 別途별도로 하나의 뜻을 發說발설하였으니 「小象傳소상전」의 “거슬림을 풀어버림”[주 154]과는 같지 않다. ‘막힘[括괄]’은 “자루를 묶음”의 ‘묶음’과 같으니 묶고 닫는다는 말이다.
154) 『周易주역‧解卦해괘(䷧) 上六상육‧小象傳소상전』:“公공이 새매를 쏨”은 거슬림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象曰, 公用射隼, 以解悖也] |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주 155]
韓曰, 括結也. 君子待時而動, 則無結閡之患也.
韓氏한씨가 말하였다. “‘括괄’은 맺음이다. 君子군자는 때를 기다려 움직이니 맺고 닫히는 근심이 없다.”
155) 경학자료집성DB에 「繫辭下傳계사하전」三章3장에 編輯편집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영인본의 體裁체재에 依據의거하여 「繫辭下傳계사하전」第五章제5장으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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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7절
p.449 【經文】 =====
子曰, 小人, 不恥不仁, 不畏不義. 不見利不勸, 不威不懲, 小懲而大誡, 此小人之福也. 易曰, 屨校滅趾, 无咎, 此之謂也.
孔子공자가 말하였다. “小人소인은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義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利益이익을 보이지 않으면 奬勵장려되지 않으며 威嚴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懲戒징계되지 않으니, 적게 懲戒징계하여 크게 操心조심하게 하는 이것이 小人소인의 福복이다. 『周易주역』에 “刑형틀(校교)을 신겨서(屨구) 발꿈치를 못쓰게 함이니 허물이 없다”고 하니, 이것을 말함이다.”
* 校교: 1. 學校학교 2. 將校장교 3. 部隊부대, 軍營군영 4. 울타리, 바자울(바자로 만든 울타리) 5. 차꼬(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刑具형구), 刑具형구의 總稱총칭 6. (器物기물의) 다리 7. 헤아리다, 따져보다 8. (數수를) 세다 9. 가르치다, 敎習교습하다 10. 本본받다, 模倣모방하다 11. 比較비교하다, 견주어 보다 12. 調査조사하다, 審査심사하다 13. 校正교정하다, 바로잡다 14. 갚다, 報復보복하다 15. 빠르다, 迅速신속하다 |
中國大全
p.449 【本義】 =====
此, 釋噬嗑初九爻義.
이는 噬嗑卦서합괘(䷔) 初九爻초구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49 【小註】 =====
厚齋馮氏曰, 不以不仁爲恥, 故見利而後, 勸於爲仁. 不以不義爲畏, 故畏威而後, 懲於不義.
厚齋馮氏후재풍씨가 말하였다.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므로 利益이익을 보인 뒤에야 仁인을 하는 데에 奬勵장려된다. 義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威嚴위엄으로 두렵게 한 뒤에야 義의롭지 못함이 懲戒징계된다.”
○ 漢上朱氏曰, 小人, 不恥不仁. 故不畏不義, 陷於死亡, 辱及其先, 恥孰大焉. 雖愚也, 而就利避害, 與人同. 故見利而後勸, 威之而後懲. 小懲大誡, 猶爲小人之福, 况眞知義乎.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小人소인은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義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에 빠지고 辱욕됨이 先祖선조에 미치니. 이보다 큰 부끄러움이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어리석어도 利益이익을 나아가려하고 災害재해를 避피하려는 것은 남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利益이익을 보인 뒤에 奬勵장려되고, 威嚴위엄을 보인 뒤에 懲戒징계된다. 적게 懲戒징계하여 크게 操心조심하게 함도 오히려 小人소인의 福복이 되거늘, 하물며 참으로 義의를 아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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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화(朴致和) 「설계수록(雪溪隨錄)」】
○ 小懲其罪, 以爲大誡, 小人之福也.
그 罪죄를 조금 懲戒징계하여 크게 操心조심하게 하니 小人소인의 福복이다.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名辱身危, 民之爲非, 故末乃正辭以禁戒也. 隼者健而高飛, 非在墉可射之物, 今云在墉者爲攫物也, 其爲宮墻之災可知. 君子有藏器射獲之利, 則其機不可失也. 此乃正辭以禁戒也. 不恥不畏, 不勸不懲, 民之爲非也, 小懲大誡, 乃正辭以禁戒也. 睦㮮周易稽疑, 引說苑云, 不威下脫小字, 不懲下脫大字. 郭京易擧正云, 不勸之勸, 作動, 無益不爲, 無傷[주 156]不去, 民之爲非也. 不可掩解, 乃正辭而禁戒也.
이름이 辱욕되고 몸이 危殆위태롭게 되는 것은 百姓백성이 잘못된 行動행동을 하기 때문이므로 結末결말에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하고 警戒경계하였다. ‘새’는 剛健강건하고 높이 나니 담에서 맞출 수 있는 物件물건이 아닌데 只今지금 “담에 있는 者자에게 잡힌 物件물건이 된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집안의 災殃재앙임을 알 수 있다. 君子군자가 器物기물을 保管보관하여 맞춰 잡는 利이로움이 있으면 그 機會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하고 警戒경계함이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勸勉권면하지 않고 懲戒징계하지 않음은 百姓백성이 잘못된 行動행동을 하는 것이고, 작게 懲戒징계하여 크게 警戒경계하게 함은 바로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하고 警戒경계함이다. 明명나라 朱睦㮮주목결이 編纂편찬한 『周易稽疑주역계의』에서 『說苑설원』을 引用인용하여 不威불위아래에 ‘小소’字자가 빠져있고 不懲부징아래에 ‘大대’字자가 빠져있다고 하였다. 郭京곽경의 『周易擧正주역거정』에는 不勸불권의 勸권이 動동으로 되어있으니, 利益이익이 없으면 行행하지 않고 害해로움이 없으면 버리지 않는 것이 百姓백성이 잘못된 行動행동을 하는 것이다. 掩蔽엄폐하거나 容恕용서해서는 안 되니 바로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함이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噬嗑初九爻義.
噬嗑卦서합괘(䷔) 初九爻초구효의 뜻을 풀이하였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噬嗑初九爻辭之義. 可耻者不仁, 而小人則甘心於不仁, 可畏者不義, 而小人則甘心於不義, 見以利, 然後勸於善, 制以威, 然後懲其惡. 故小有懲于前, 則大有誡于後, 此乃小人之福也.
이 글은 噬嗑卦서합괘(䷔) 初九爻辭초구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不仁불인인데도 小人소인은 不仁불인을 마음으로 달가워하고, 두려울 만한 것이 不義불의인데도 小人소인은 不義불의를 마음으로 달가워하여, 利이로움을 본 뒤라야 善선에 勸勉권면되고, 威嚴위엄에 制裁제재 받은 뒤라야 惡악함이 懲戒징계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작게 懲戒징계함이 있으면 뒤에 크게 警戒경계함이 있게 되니, 이것이 바로 小人소인의 福복이다.
156) 傷상:경학자료집성 DB와 影印本영인본에 ‘備비’로 되어 있으나, 「繫辭下傳계사하전」 五章5장의 “小人소인은 작은 善선을 有益유익함이 없다고 하지 않으며 작은 惡악을 害해로움이 없다고 버리지 않는다. [小人, 以小善爲无益而弗爲也, 以小惡爲无傷而弗去也]에 根據근거하여 ‘傷상’으로 바로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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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8절
p.450 【經文】 =====
善不積, 不足以成名, 惡不積, 不足以滅身, 小人, 以小善爲无益而弗爲也, 以小惡爲无傷而弗去也. 故惡積而不可掩, 罪大而不可解, 易曰, 何校, 滅耳, 凶.
善선을 쌓지 못하면 이름을 이루지 못하고, 惡악을 쌓지 않으면 몸을 亡망치지 않을 것이니, 小人소인은 작은 善선을 有益유익함이 없다고 하지 않으며 작은 惡악을 害해로움이 없다고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惡악이 쌓여서 가릴 수가 없으며, 罪죄가 커져서 풀 수가 없으니, 『周易주역』에 “刑형틀을 씌어서 귀를 못 쓰게 함이니 凶흉하다”고 하였다.
中國大全
p.450 【本義】 =====
此, 釋噬嗑上九爻義.
이는 噬嗑卦서합괘(䷔) 上九爻상구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50 【小註】 =====
漢上朱氏曰, 精於義者, 豈一日積哉. 彼積不善而滅其身者, 不知小善者大善之積也.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義의에 精密정밀한 者자가 어찌 하루만 쌓겠는가? 저 善선하지 않음을 쌓아 제 몸을 亡망치는 사람은 작은 善선이 큰 善선을 쌓는 것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 融堂錢氏曰 積字, 宜玩, 凡善惡, 未有不由積而成也.
融堂錢氏융당전씨가 말하였다. “‘積적’字자를 잘 살펴야 하니, 모든 善惡선악은 쌓음을 通통하여 이뤄지지 않는 것이 없다.”
○ 誠齋楊氏曰, 夫子釋噬嗑初上之辭, 謂懲惡在初, 改過在小.
誠齋楊氏성재양씨가 말하였다. “孔子공자가 噬嗑卦서합괘(䷔) 初爻초효와 上爻상효의 爻辭효사를 解釋해석하여, 惡악을 懲戒징계함은 처음에 달렸고 過失과실을 고침은 작을 때에 달렸다고 한 것이다.”
○ 建安丘氏曰, 惡小而不能懲, 則罪大而不可解. 猶滅趾不防, 而至於滅耳也, 烏得而不凶.
建安丘氏건안구씨가 말하였다. “惡악이 작다고 懲戒징계할 수 없다면, 곧 罪죄가 커져서 풀 수가 없을 것이다. 발꿈치를 못 쓰게 함으로 防止방지하지 않아서 귀를 못 쓰게 함에 이름과 같으니, 어찌 凶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韓國大全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噬嗑上九爻義. 凡善惡未有不由積而成也.
噬嗑卦서합괘(䷔) 上九爻상구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무릇 善선과 惡악은 累積누적되지 않았는데 이루어지는 境遇경우는 없다.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善惡之事, 皆積小而致其大. 詳見升之大象下義.
善선과 惡악의 일은 모두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룬다. 升卦승괘(䷭)「大象傳대상전」아래 뜻에 仔細자세히 보인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噬嗑上九爻辭之義. 不耻不仁, 故以善小爲旡益而弗爲, 不畏不義, 故以惡小爲旡傷而弗去也.
이 글은 噬嗑卦서합괘(䷔) 上九爻辭상구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不仁불인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善선이 작은 것을 有益유익함이 없다고 여겨 하지 않고, 不義불의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惡악이 작은 것을 傷害상해될 것이 없다고 여겨 없애지 않는다.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주 157]
姚曰, 象云聰不明, 言其不知, 戒罔念聞也.
姚信요신이 말하였다. “「上傳상전」에서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주 158]고 한 것은 모른다는 말이니 생각 없이 듣는 것을 警戒경계한 것이다.”
157) 경학자료집성DB에 「繫辭下傳계사하전」 三章3장에 編輯편집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영인본에 依據의거하여 「繫辭下傳계사하전」 第五章제5장으로 옮겼다. |
158) 『周易주역‧噬嗑卦서합괘(䷔)』 上九:象曰, 何校滅耳, 聰不明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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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9절
p.450 【經文】 =====
子曰, 危者, 安其位者也, 亡者, 保其存者也, 亂者, 有其治者也. 是故, 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 易曰, 其亡其亡, 繫于包桑.
孔子공자가 말하였다. “危殆위태할까 念慮염려함은 그 자리를 便安편안히 하는 것이고, 亡망할까 念慮염려함은 그 存在존재를 지키는 것이고, 어지러울까 念慮염려함은 그 다스림을 維持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君子군자가 便安편안해도 危殆위태함을 잊지 않으며, 存在존재해도 亡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自身자신이 便安편안하여 國家국가를 지킬 수 있으니, 『周易주역』에 “그 亡망할까 亡망할까 하여야 우거진 뽕나무에 매단 듯하다”고 하였다.”
中國大全
p.451 【本義】 =====
此, 釋否九五爻義.
이는 否卦비괘(䷋) 九五爻구오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51 【小註】 =====
或問, 危者, 以其位爲可安而不知戒懼, 故危, 亡者, 以其存爲可常保, 是以亡, 亂者, 有其治是自有其治, 如有其善之有, 是以亂. 朱子曰, 某舊也如此說. 看來保字說得較牽强, 只是常有危亡與亂之意, 則可以安其位, 保其存, 有其治.
어떤 이가 물었다. “危殆위태한 것은 그 자리를 安住안주할 만하다고 여기고 두려워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危殆위태한 것이고, 亡망하는 것은 그 存在존재를 恒常항상 지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亡망하는 것이며, 어지러운 것은 그 다스림을 維持유지함이 스스로 그 다스림을 維持유지한 것이라 하기 때문이니 “善선함이 있다고 여기면”[주 159]의 ‘있다고 여김[有유]’과 같기 때문에 어지러운 것입니까?”
朱子주자가 答답하였다. “제가 예전에도 이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보아하니 ‘지킨다[保보]’고 한 것이 좀 억지인 듯하지만, 危殆위태함과 亡망함과 어지러움의 뜻을 恒常항상 留念유념한다면 자리를 便安편안히 하고 存在존재를 지키고 다스림을 維持유지할 수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159) 『書經서경‧商書상서』:有其善, 喪厥善, 矜其能, 喪厥功. |
○ 臨川吳氏曰, 自處於危者, 乃自安其位之道也, 凛乎若將亡將亂者, 乃所以常保其存, 常有其治也. 九五否將休矣, 而不忘戒懼如此, 蓋於安存治之時, 而能不忘危亡亂之禍. 是以身之位得以安, 而國家可保其久存長治也.
臨川吳氏임천오씨가 말하였다. “스스로 危殆위태함에 머무는 것은 스스로 자리를 便安편안히 하는 方道방도이고, 亡망할까 어지러울까 두려워하는 것은 恒常항상 그 存在존재를 지키고 다스림을 維持유지하는 理由이유이다. 막힘이 그치려 하는 九五구오의 때에 이와 같이 잊지 않고 두려워함은, 大體대체로 便安편안하고 保存보존되고 다스려지는 때에도 危殆위태하고 亡망하고 어지러운 災禍재화를 잊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一身일신의 자리가 便安편안할 수 있고, 國家국가를 오래도록 保存보존하고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 張子曰, 明君子之見幾.
張子장자가 말하였다. “君子군자가 幾微기미를 살피는 것을 밝혔다.”
韓國大全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危與亡與亂者, 乃所以得安而存而治也. 彼忘而不得免焉者, 民之爲非而自陷者. 故正辭而禁戒也.
危殆위태롭고 亡망하고 어지러운 것은 곧 便安편안하고 保存보존하고 다스려질 수 있는 方法방법이다. 저들이 잊고서 禍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百姓백성이 잘못된 行動행동을 하여 스스로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하고 警戒경계한다.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否九五爻義
否卦비괘(䷋) 九五爻구오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自古及今, 未嘗不存於憂患而亡於安樂.
예로부터 只今지금까지 憂患우환에서 保存보존되고 安樂안락에서 亡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否九五爻辭之義. 安危以身言, 存亡以家言, 治亂以國言. 所以下文曰身安而國家可保也.
이 글은 否卦비괘(䷋) 九五爻辭구오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便安편안함’과 ‘危殆위태로움’은 몸으로써 말하였고, ‘保存보존함’과 ‘亡망함’은 집안으로써 말하였으며,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나라로써 말하였다. 이 때문에 아래 글에 몸이 便安편안하여야 나라가 保存보존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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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10절
p.451 【經文】 =====
子曰, 德薄而位尊, 知小而謀大, 力小而任重, 鮮不及矣. 易曰,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言不勝其任也.
孔子공자가 말하였다. “德덕은 얇은데 地位지위가 높으며, 知慧지혜는 적은데 꾀함이 크며, 力量역량은 적은데 所任소임이 무거우면 (禍화가)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周易주역』에 “솥(鼎정)이 발이 부러져 公공의 밥을 엎으니 그 刑罰형벌이 무거워서 凶흉하다”고 하니, 所任소임을 堪當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景福宮경복궁 勤政殿근정전과 德壽宮덕수궁 中和殿중화전의 鼎정 |
- 두샘의 덕수궁 탐방 5 만세(萬歲)와 만세(萬世) 왕국(王國)과 황국(皇國) https://www.newstonight.kr/137699 |
中國大全
p.452 【本義】 =====
此, 釋鼎九四爻義.
이는 鼎卦정괘(䷱) 九四爻구사효의 意味의미를 解釋해석한 것이다.
p.452 【小註】 =====
漢上朱氏曰, 位欲當德, 謀欲量知, 任欲稱力, 三者各得其實, 則利用而安身. 小人志在於得而已. 以人之國, 徼倖萬一, 鮮不及禍. 自古一敗塗地殺身, 不足以塞其責者, 本於不知義而已.
漢上朱氏한상주씨가 말하였다. “자리를 德덕에 맞추고자 하고 꾀함을 知慧지혜에 맞추고자 하고 所任소임을 力量역량에 맞추고자 하여 세 가지가 各各각각 그 實質실질을 얻는다면, 씀을 利이롭게 하고 몸을 便安편안히 할 것이다. 小人소인은 뜻이 얻음에 있을 뿐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뜻밖의 幸運행운과 萬만에 하나를 바라니[주 160] 災禍재화가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 예로부터 完全완전히 亡망해 自身자신이 죽어도 그 責任책임을 다할 수 없는 것은 義의를 알지 못함에 根本근본한다.”
160) 『莊子장자‧在宥재유』:此以人之國僥倖也, 幾何僥倖而不喪人之國乎. 其存人之國也, 無萬分之一, 而喪人之國也. |
○ 融堂錢氏曰, 古之人君, 必量力度德而後授之官, 古之人臣, 亦必度力度德而後居其任. 雖百工胥史, 且猶不苟, 况三公乎. 爲君不明於所擇, 爲臣不審於自擇, 以至亡身危主誤國亂天下, 皆由不勝任之故, 可不戒哉.
融堂錢氏융당전씨가 말하였다. “옛날의 임금은 반드시 力量역량과 德덕을 헤아린 뒤에 벼슬을 주었고, 옛날의 臣下신하도 반드시 力量역량과 德덕을 가늠한 뒤에 그 所任소임을 맡았다. 비록 百工백공과 胥吏서리라 하더라도 苟且구차히 하지 않았거늘, 하물며 三公삼공이겠는가? 임금이 되어 가려내는 것에 分明분명하지 못하고 臣下신하가 되어 스스로 가려냄에 仔細자세하지 않아 自身자신을 亡망치고 君主군주를 危殆위태하게 하며 나라를 그르치고 天下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모두 所任소임을 堪當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警戒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誠齋楊氏曰, 聖人亦豈責天下之人, 皆德厚而不薄, 皆知大而不小, 皆力多而不少哉. 亦責其貪位而不量已, 過分而不勝任, 以至覆人之餗敗己之身爾.
誠齋楊氏성재양씨가 말하였다. “聖人성인이 또한 어찌 天下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德덕이 두텁고 얇지 않으며, 知慧지혜가 크고 작지 않으며, 力量역량이 많고 적지 않기를 要求요구하겠는가? 또한 자리를 貪탐하면서 自己자기를 헤아리지 않고, 分數분수에 넘치면서 所任소임을 堪當감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밥그릇을 뒤엎고 自己자기의 몸을 亡망치게 됨을 責望책망할 뿐이다.”
韓國大全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位尊謀大任重, 民之爲非也. 不勝其任, 乃正辭而禁戒也.
자리가 높고 計策계책이 크며 任務임무가 重중함이 百姓백성이 잘못된 行動행동을 하는 것이다. 任務임무를 堪當감당하지 못하니 곧 말을 바르게 하여 禁止금지하고 警戒경계함이다.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德薄 [至] 任也
德덕은 얇은데…所任소임을 堪當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案, 德有厚薄, 知有大小, 力有輕重, 量度以授之任, 則天下旡可棄之才矣. 苟使不明不審, 尸居貪位, 則雖刑渥之刑, 而何能救覆餗之禍乎.
내가 살펴보았다. 德덕에는 두터움과 얇음이 있고 앎에는 큼과 작음이 있으며 힘에는 가벼움과 무거움이 있으니 이것을 헤아려 所任소임을 맡긴다면 天下천하에 버릴 만한 재주가 없을 것이다. 萬一만일 賢明현명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者자가 尸童시동처럼 앉아 자리만 貪탐낸다면 무거운 刑罰형벌을 내리더라도 어떻게 밥그릇을 엎는 禍화를 救濟구제할 수 있겠는가?
尸童시동 |
- INSIDE THE CAPUCHIN CATACOMBS OF PALERMO https://www.youtube.com/watch?v=wY_8gqSPPM0&t=11s |
-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市 카푸친 카타콤베대성당 內에 있는 납골당 https://blog.naver.com/shawnlover/221539029956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釋鼎九四爻義
鼎卦정괘(䷱) 九四爻구사효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此釋鼎九四爻辭之義, 鮮不及者, 言不及於禍者鮮矣.
이 글은 鼎卦정괘(䷱) 九四爻辭구사효사의 뜻을 解釋해석하였다. “미치지 않음이 드물다”는 것은 禍화에 미치지 않을 者자가 드물다는 말이다.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주 161]
虞曰, 鮮少也, 及於刑矣.
虞飜우번이 말하였다. “鮮선은 드물다는 뜻이니, 刑罰형벌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161) 경학자료집성DB에 「繫辭下傳계사하전」三章3장에 編輯편집되어 있으나 경학자료집성 影印本영인본의 體裁체재에 依據의거하여 「繫辭下傳계사하전」 第五章제5장으로 옮겼다. |
* 出處: daum, Naver, Google, 바이두, 한국주역대전(韓國周易大全)DB, 한국경학자료시스템 等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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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13절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2-EAZ-2101&callType=dir&dirRsh=주역대전%24십익%24계사하전:第五章제5장%3a편명%24繫辭下傳:第五章제5장(第五章)%3a&dataID=AKS-2012-EAZ-2101_DES@082_013 |
주역대전 : 繫辭下傳:제5장(第五章)_14절 http://waks.aks.ac.kr/rsh/dir/rview.aspx?rshID=AKS-2012-EAZ-2101&callType=dir&dirRsh=주역대전%24십익%24계사하전:第五章제5장%3a편명%24繫辭下傳:第五章제5장(第五章)%3a&dataID=AKS-2012-EAZ-2101_DES@082_014 |
*****(2024.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