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4) 조조의 대패 (상편)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원소를 비롯한 제후들이 급거 낙양으로 속속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낙양으로 들어오게 되자, 아직도 곳곳에 타고 있는 불을 끄기에 바빴다.
불을 어느정도 끄게되자 조조는 총대장 원소에게 말했다.
"동탁이 지금 장안으로 도망하는 중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빨리 추격을 합시다."
"군마가 모두 피로해 있으니 이삼 일 쉬어서 추격할 생각이오."
그러자 조조는 제후들을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동탁이 도성에 불을 질러버리는 바람에 민심을 크게 잃었으니, 이때를 이용하여 공격하면 이길 것이 명확한데, 제후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그러자 몇 사람의 제후들이 이렇게 대꾸한다.
"경솔히 추격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함부로 동했다가 또 패하면 큰일이오."
"자고로 궁지에 몰린 쥐는 쫓지않는 법이오."
조조는 그런 소리를 듣고 내심 크게 비웃었다.
(쫄장부들하고는 도저히 큰일을 도모할 바가 못되는구나!....)
조조는 분연히 그 자리를 물러나와, 몸소 자신을 따르는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하후돈, 하후연 형제와, 조인, 조홍, 이전, 악진 등이 수하 장수들을 몰고 밤을 도와 가며 동탁의 뒤를 추격하였다.
그무렵, 동탁은 장안의 여정에 있는 형양(滎陽)을 앞두고, 협곡을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어느새 조조가 추격해 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 소리를 들은 동탁도 몹시 황급해 했지만, 시종들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특히 시녀들은 몸을 발발 떨며 울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유만은 시종일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동탁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승상! 조금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여기는 산이 험악해서 이곳에 복병을 숨겨두고 몰려오는 조조군을 공격하면 그들을 간단히 전멸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동탁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협곡과 암벽을 한바퀴 둘러보고 적이 안심하는 빛을 보였다.
그러면서 형양 태수 서영 (徐榮)을 불러, 곧 조조의 군사들이 접근해 올 성싶은 암벽과 절벽 곳곳에 군사들을 매복하게 하였다.
그리고 여포로 하여금 그들의 뒤를 지키게 명령하였다.
동탁 일행이 협곡을 떠난 한참 뒤에 조조는 복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협곡을 지나 동탁의 후미를 공격하려고 진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복병들은 조조군의 대열이 중간쯤에 이르자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돌과 바위와 통나무가 협곡 아래로 사정없이 굴러 떨어지고 화살이 빗발 치듯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협곡을 이미 지나온 조조의 눈에는 언덕위에 서 있는 여포가 먼저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역적놈아! 천자를 겁박해 가지고 어디를 가느냐?"
그러자 여포는 큰소리로 마주 꾸짖는다.
"이 배은망덕한 도둑놈아! 네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게냐!"
조조는 크게 화를 내며 좌우를 돌아보며 외쳤다.
"뉘 나가서 저놈을 사로잡아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후돈이 창을 꼬나잡고 말을 달려나갔다.
바로 그때, 홀연 왼편 산 언덕에서 한떼의 군사가 함성을 지르며 내달아 오는 것이었다.
산중에 매복해 있던 이각의 군사였다. 하후연이 그들을 맞서 싸우려는데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곽사의 복병이 북을 울리고 아우성을 치며 맹렬히 몰려온다.
조조는 조인을 시켜 싸우게 하였다.
어지러운 말굽 아래 먼지는 구름처럼 일어나고, 석양 빛에 무수한 창검이 부딪쳐 번쩍거렸다.
조조가 뒤를 돌아다 보니 뒤쫓던 군사들은 협곡위에 매복한 동탁의 군사들이 내던지는 돌과 바위에 전진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앞에는 좌우와 정면에서 동탁의 군사와 여포에게 협공을 당하는 처지인지라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후돈은 십여 합을 싸우다가 자신을 잃고 돌아서자, 여포가 철기(鐵騎)를 몰아 덮쳐온다.
그러면서 조조를 발견하더니,
"조조가 저 놈이다! 저놈을 잡아라!..."
하고 고함을 치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이쯤 되다 보니 조조는 갑자기 자신감을 잃었다.
그리하여 하후연의 지원을 받아가며 결사적으로 달려, 간신히 적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날이 캄캄하게 어두웠을 무렵에 어느 산모퉁이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패잔한 부하들을 수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부근에 매복해 있던 형양 태수 서영의 군사가 아우성을 치며 몰려오는 것이었다.
조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또다시 말을 몰아 도망을 쳤다.
그러자 적장 서영이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조조의 뒤를 맹렬히 추격해 왔다.
화살이 빗발치는 와중에, 문득 화살 한 대가 <딱!>하고 조조의 등허리에 꽂혔다.
순간 조조는 눈앞이 아찔해 왔다.
조조는 화살을 뽑아 버리면서도 그냥 달려갔다.
남은 힘을 다하여 쫓겨서 겨우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번에는 가까운 숲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군사들이 창검을 휘둘러 조조의 볼기짝과 등허리를 찔렀다.
"으앗!"
조조는 이때만은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말위에서 떨어질 뻔 하였다.
그러나 다행이 떨어지지는 않았고, 마상위에서 엎드려 버텼다.
등허리와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말과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날카로운 시위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조조가 타고 있던 말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바람에 조조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
그러자 저만치서 적병 서넛이,
"앗! 저놈이 조조다 1"
하고 외치며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조조는 고함을 치며 달려드는 적병 둘을 때려눕혔다.
그러나 이제는 진이 다해 꼼짝없이 잡히게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장수 하나가 비호같이 나타나며 소리를 지른다.
"이놈들아! 내 칼을 받아라!"
고함과 동시에 적병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앗! 당신은 누구요?"
"아! 형님! 저올시다. 조홍(曺洪)!. 주상(主上)께서 이게 웬일이십니까!"
달려들어 몸을 잡아 일으켜 주는 사람은 조조의 아우 조홍이었다.
그 역시 적에게 몰려 도망을 치다가 조조를 발견하고 달려온 것이었다.
"아, 홍이냐!"
"형님! 어서 빨리 정신차리고 도망을 가십시다. 여기에 이러고 있다가는 큰일납니다."
"아아, 나는 이젠 죽음 목숨이다. 내가 무슨 힘으로 도망을 가겠느냐!"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약한 생각 하지 마시고 어서 피하기나 하십시다."
"아니야! 나는 못 가겠어. 나를 내버려두고, 너나 빨리 도망을 가거라."
조조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신에 작은 상처는 관두고라도 큰 상처만 이미 네댓 군데나 입어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데다가 피를 많이 흘리다 보니 도저히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