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대승리(전동 성당 발상지) (순례지/성지)
간략설명:여기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는가?
지번주소: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276
천호 성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대승리는 전주 지역 선교의 요람인 전동 성당이 세워지기 전 복음의 씨앗이 움튼 곳이다.
훗날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크고 아름다운 전동 성당을 세우기 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보두네(Baudounet,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859-1915년) 신부가 1889년 봄부터 1891년 6월 23일까지 2년여 간 이곳에서 사목 활동을 했다.
무명 순교자들의 묘가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천호 성지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소양교를 건너 좌회전을 하면 26번 국도가 나온다. 동양 초등학교를 지나자마자 화심교 앞에서 좌회전해 2킬로미터 남짓 가면 '대승가든'이라는 간판이 서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 아랫길로 약 600미터 정도 가면 바로 보두네 신부가 사목을 하던 자리가 나온다.
전동 성당은 본당 설립 1백주년을 맞아 1990년 6월 이 부지를 매입해서 다음해 12월 8일 '전주 전동 천주교회 발상지'라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이곳 대승리의 역사와 부지를 매입하게 된 경위가 간단하게 적혀 있어 찾는 이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비 뒤편으로는 대나무숲이 울창해 보두네 신부와 당시 신앙의 선조들이 지녔던 대쪽같이 굳건한 신앙을 전해 주고 있는 듯하다.
보두네 신부가 고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조선에 첫발을 디딘 것은 1885년 8월이었다. 불과 1년 전인 1884년 9월 사제품을 받고 불같은 신앙으로 고행의 길을 떠나온 그는 입국 후 충청도를 거쳐 경상도로 갔다가 마침내 전라도 지방까지 발길을 옮겼다.
입국한 지 무려 10년이 지나서야 조선에서 박해가 멎어 비로소 그는 전라도의 중심인 전주를 선교의 요지로 선정할 수 있었다. 그 때가 바로 1891년으로 보두네 신부는 그 이전 2년 동안 대승리에서 사목을 했던 것이다.
1894년 동학란을 피해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임지로 내려온 그는 폐허가 된 교회를 재건키로 하고 가지고 있던 말까지 모두 팔아 성당 건립에 충당했다. 전동 성당이 지금까지 사람들로부터 감탄의 눈길을 받는 것은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보두네 신부와 선조들이 쏟았던 정성에 기인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