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가 홀연하게 산을 감싸 흐르는 것을 조금은 운치 있다고 여길 만한 날에
산행을 나선다. 멀리 충북 괴산에 있는 칠보산으로 가는 길.
새벽부터 심상찮았던 빗줄기가 출발시간이 되어도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맑은 날에도 어찌될지 모른다며 꼬박꼬박 비옷을 챙기던 남편이
(이날만은) 무모하리만치 자신있는 목소리로 "윗지방엔 오지 않는다."한다.
저런 자신감, 어찌 믿겠는가. 상황에 따라 꼼꼼해지는 나는 아예 덤으로 우산까지 챙긴다.
저토록 확신을 할 땐 박자나 맞추면 되는 법.
그럼에도 비 맞을 상상은 들지 않았고 대신 멋진 구름풍경을 머릿 속에 그려 넣었다.
흐림에 어울리는 운치있는 구름이 산허리를 신비롭게 감쌀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비는 그곳으로 가는 사이 이미 오지 않기로 합의를 본 듯 서서히 개었다.
덤으로 가져간 우산..? 그건 차에 내버려 두었다.
- 산행코스 -
떡바위 - 청석고개 - 칠보산(778m) - 활목고개 - 강선대 - 쌍곡폭포 - 절말 - 용소 - 쌍벽 - 떡바위
이것은 어떤 징조인가? 산의 입구를 철통같이 보안하듯
전국 각지에서 출몰한 원색 산객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산행 들머리는 서울로 입성하는 톨게이트를 방불케 한다.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산은 그야말로 대박 문전성시.
서울 사람, 경기도 사람, 강원도 사람, 경상도 사람...
긴 줄은 줄어들지도 않고 정체로 막혀 있는데 버스들은 연신 사람들을 부려놓는다.
우리가 확실히 중부 내륙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이 다양한 지방색이 말해주고 있었다.
팔도 사람 구경하러 산으로 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 산은 틀림없이 나만 모르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물론 북녘땅의 그 '칠보산'일리가 없으므로) 같은 이름 다른 산쯤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입구를 뚫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개미행렬에 놀란 눈, 놀란 두뇌로 시작부터 이런 질문을 던지기 바빴다.
'이 산이 이토록 유명한 산이었나?'
유명하지 않고서야 거의 북한산 급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올 리 없다는 게 내 상식선이었다.
버스에서 부려진 개미떼들이 한결같이 서로 놀라는 눈치로 대열에 합류하는데,
이 산의 지명도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지했던 나의 놀람은 오죽했으랴.
입구에서부터 거의 서 있기만 하던 인파는 약 15분이 흐른 후 서서히 발을 움직일 수 있었다.
물론 그후로도 줄기차게 그 개미행렬은 산을 옮기고 있었지만...
그 산에 대해선 귀동냥으로도 들은 바가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북녘의 '칠보산'이 떠올랐을 뿐이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기억이 간직한 그 산은 시원한 여름 계곡도 아니요, 보석처럼 박힌 암릉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닌 명산의 나무들을 모두 2등으로 만들 만큼 멋진 자태의 소나무들로
산은 이미 천연기념물 전시장이나 다름없었다.
소박한 암릉과 걷기 좋은 오솔길 사이로 지치지 않고 멋을 창출해내던 소나무 행렬.
그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한결같이 칠보산의 소나무를 자신있게 소문낼 것 같았다.
입구의 숨통을 간신히 통과하고 나니 아름다운 초록숲과 오솔길이 나타난다.
하늘은 초록 이파리 위에서 별처럼 노닐었다.
가끔은 그 위로 몇 방울의 비가 뿌려지는 듯했다. 방금 저 소리가 비 소리인지,
그냥 이파리에 얹혔던 것이 바람에 떨어지는지를 귀기울이게 만드는 소리였다.
아마도 비는 수고롭게 흘린 땀방울과 맞먹을 소량이었겠지만 초록 숲을 흔드는 괜찮은 여운을 남겼다.
땅에 떨어져 사람을 적시지 않고 오직 소리로만 자신의 위치를 전달시키니
초록 이파리들은 그때 초록 우산이었다.
사람끼리 살다가 산으로 들면 그곳 현자의 몸짓들에 배울 바가 있어
스스로도 느끼지 못할 사이 그 몸짓을 흉내낼 것이다.
선혜언니가 소나무의 팔을 흉내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산에서 자연 동화된 때문이다.
굳이 소나무가 사람을 받아들여 요가한다고 하지 않듯이 오직 산에 오면 산의 주인을 따르게 됨이다.
참으로 멋진 소나무의 행렬로 산은 점점 솔의 기운을 입어가고 있었다.
잠시 오르막 계단 어디쯤에서 바위 위에 작은 홈을 파고 선 소나무를 보았다.
그 단단한 삶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계단참에 꼬인 인파들 사이에서 묘기에 가까운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저를 담느라 노력하는 인간의 역할을 소나무는 보고자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위 위에 강인하게 뿌리를 박은 소나무는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한다.
대체 어떤 나무가 저토록 왕성하게 잔가지 하나하나에까지 예술을 심어
뒤틀릴수록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지,
그런 자신감에 찬 나무가 있기나 한지...
소나무는 드문드문, 그러나 절묘한 위치에서 산안개와 함께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는 산안개가 만들어놓은 여백의 힘이 소나무 주위에 작용했다 말할 수 있다.
끼리끼리 아름다운 소나무도 좋지만 그들을 홀연히 돋보이게 하는 힘은 하얗게 도화지로 깔리는
산안개 덕이니. 그날은 멋진 산안개가 내 사진 속으로 찾아온 날이다.
스스로 빛나는 사물이 있어도 든든히 믿고 의지하는 배경이 있기 마련.
안개는 가까운 나무와 그 나무가 그려내는 수묵을 담는 하얀 도화지 역할이다.
스르르 밀려왔다 산 한번 흐트려놓고 지나가는 나그네지만
홀연히 몸을 꼬는 소나무를 담기 위해 이보다 더한 여백의 장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수식도 삼간 듯 소나무 홀로 고결하다.
인간사의 고통 고난이란 이 멋스럽게 뒤틀린 소나무 앞에서 무릇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산에 들면 사람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단 것을 알게 하는 이들.
그날 나는 소나무에 완전 붙들렸던 것 같다. (그 어느때보다 소나무 예찬을 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으리)
이제 소나무에서 받은 기운 잠시 내려놓고 다시 산행으로 이어가야겠다.
'버선코 바위'라 하였지만 어느 부분이 버선코를 닮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하였다.
뒷걸음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야 똑 같았을텐데, 누구는 버선코를 보고 누구는 그저 둥그런 바위만 본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 했던가.
난리난 아수라장이 조그마한 정상석 주위로 끓어 넘쳤다.
산의 입구부터 시작된 인파들이 산에서 증발하지 않는 이상 정상석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임에
웅성웅성 왁자지껄.. (사실 그 단어는 너무나 점잖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그 말이 딱이다.)
그토록 왕성한 정상석 쟁탈전은 생전 처음이다. (하필 정상석도 정말 작고 귀엽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과연 정상석 눈도장에 목말라서 이러고 있는 걸까?
자세히 보니 그들은 다른 산악회 사람들 틈에 낑겨 그냥 얼굴만 들이밀기도 하고
방을 빼지 못해 얼결에 함께 또 찍히기도 하고.. 숫제 아무나들과 어울려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었다.
부대끼는 몸부림이 좋아 너도 나도 정상석 탈환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되어버린 듯,
야단법석이 재밌어서 이리 기웃 또 저리 기웃.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어울렁 더울렁 즐거운 찰나를 보내고 있었다.
정상석 주위에서 맴돌았던 덕분에 하산길은 다시 만원행렬이다.
몇 시간만에 익숙해졌는지, 이게 현실이려니 하며 인간띠 잇기놀이를 그저 즐긴다.
가파른 철계단에서 무료하게 서서 기다리지만 말고
자신도 이렇게 어엿하다고 멋부린 바위가 말을 걸어왔다.
감상에 빠질세라 가파르고 좁은 폭의 계단이 나타나 주위를 환기시킨다.
하산길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아직 밥도 먹지 못한 신세.
식탁으로 쓰일만한 장소엔 수많은 인파들이 이미 점령한 상태거나 행군 중이었으니
배 고프다고 칭얼대는 동생, 저녁 식사로 예약한 시간이 5시 30분이란 말에
그렇다면 더욱 빨리 먹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똑똑한 몇몇이 가세해
잠시 도를 닦았던 풍경이 무료해지기도 했다.
에구, 그러거나 말거나 밥 좀 어긋나면 어떻나, 하며 알아서 조절하는 힘을 발휘한다.
소나무와 바위의 비경이 한 폭 그림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즐기거나 감상하지 못하면 풍경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공손하거나 점잖기만 한 예의보다 가끔은 마냥 즐거운 예의, 환호할 줄 아는 예의도 좋지 않은가.
이렇게 느낌을 알리는 것도 예의라면 예의일까.
헤어진 줄 알았던 일행들은 결국 각자의 점심을 먹은 후 계곡에서 만났다.
이번 산행은 즐거운 계곡 물놀이를 겸했던 만큼 짧은 산행코스에 긴 놀이시간이 필수이다.
이제부터 이 산의 또다른 매력인 계곡으로 넘어갈 차례.
7월 더위에 계곡산행일까 하여 여벌옷 하나쯤은 챙겼어야 하지만,
지난 여름 계곡 입수에서 신통찮은 헤엄 실력에 식겁한 경력 때문인지
남편은 여벌옷을 챙겨야 하냐고 묻는 내게 챙기지 말라고 시원하게 한마디 하였다.
나 또한 정보에 어두웠기에 계곡산행이 아닌가보다 생각하였으며,
계곡이었어도 절대 물에 어설프게 빠지고선 나 죽네, 하며 연타석 어푸거리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날씨도 꾸무럭, 비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으니 이런 날 무슨 계곡입수?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나 혼자 물놀이 한번 못하고 만 얌전한 외톨이 신세.
스스로 옛시절의 선비처럼 탁족의 시간만 겨우 가졌을 뿐, 그 어디에도 즐거운 물놀이의 기억이란 없다.
오직 활달한 선혜언니가 계곡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나와 같은 신세의 원추리 한 송이. 계곡을 가로질러 가 안아주었다.
즐거운 표정이야말로 여름 계곡에 대한 예의.
계곡입수를 엿보는 신세로는 마찬가지지만 돌단풍은 그나마 무리를 지었다.
나는 산행 말미에 이르도록 양말 벗어 발만 담근 의식 말고는
과감한 계곡 입수도 없이 산을 빠져 나왔다.
정작 마지막 쌍곡폭포에 이를 때쯤에는 슬쩍 입수라도 해볼까 싶었으나
어림없이 위험해 보여 구경만 실컷 한 꼴이 되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포화상태였다.
우리를 실어나른 버스는 한갓진 곳까지 밀려났는지 한참 끝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저마다의 계곡과 멋진 소나무를 버리고 돌아와야 할 시간.
늦은 점심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장소를 이동해야 한단다.
배가 너무나 안고팠지만, (인간이 마음 먹고 하려 할 때 못할 것이 없단 말을 이때에 써도 될런지)
결국엔 저녁밥까지 먹어냈다.
너무나 오랜만에 산행후기를 올린다.
이 무렵 나는 조금 바빠 시간에 쫓겼다지만 글과 마음의 여유를 동시에 잃어버렸음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저녁밥을 먹고 배부름이 미안해지는 시간에
그래도 이 산행기를 기다린다며, 격려를(나에겐 계속하라는 질타를) 해주신 고마운 말씀 덕분에
나는 공백을 메꾸려 시간을 쪼갰다.
많은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해지는 시간을 이렇게 늦으나마 올리노라니,
빗방울 사이로 칠보산 소나무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산행 후기의 매력은 나에게 오히려 감사한 일임을 깨닫는 작업임을 다시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