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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Pocky와 함께 한 시간
전명혜(뉴욕)
거북이는 오래전부터 장수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근히 거북이를 좋아한다. 김홍도 화가의 그림에도 초가집 마당에서 절구 찧는 여인네 옆에 거북이가 있다. 나는 첫 월급으로 어머니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심하다 금으로 만든 거북이를 사드린 적이 있다.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느리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한 거북이가 결국 성공한다는 선입관이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서 아마도 거북이 모양의 장신구를 샀을 것이다.
동네 전봇대에 때때로 이사로 인한 가구 세일, 거라지 세일,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전단 등이 붙어 있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Lost Bird”라는 사인과 함께 앵무새 사진이 붙어있었다. 사흘 전에 새를 잃어버려 애가 탄 주인이 붙인 것이다. “사진 속의 새는 스스로 음식을 구하지 못하니 발견한 분은 모이를 주기 바라며, 돌려주면 후사하겠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날아다니는 새를 잡을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본래 주인에게 잘 돌아가기를 바랐다.
전단 속 새 사진을 보니 전에 집에서 키웠던 거북이가 떠올랐다. 독수리 같은 큰 새는 거북이에게 무서운 적이다. 확 낚아채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라 시멘트 바닥을 향해 정확히 조준해 떨어뜨려 먹이로 삼는다고 들었다. 잔디밭에 풀어놓고 자유로이 놀게 하고 싶어도 조심스러웠다. 하늘에서 새가 갑자기 나타나 채 갈까 봐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야 했다. 때로는 거북이가 풀과 똑같은 색깔로 변해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눈에 쉽게 안 띄어 찾느라 허둥대기도 했다.
거북이가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건 큰딸 생일날이었다. 둘째가 선물한 상자를 풀어보니 살아있는 작은 거북이가 나왔다. 선물 상자가 약간 흔들린다고는 느꼈지만, 설마 살아있는 동물이 그 안에 들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거북이를 구두 상자에 넣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뚜껑과 사방 벽에 살짝 구멍을 낸 뒤 포장하니 감쪽같았다. 느린 언니가 거북이를 닮았다고 생각한 둘째 딸의 기발한 발상이었다. 깜짝선물 거북이는 마루를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거북이 몸은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컸지만 약간 징그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거북이 이름을 포키(Pocky)라고 지어주었다. 거북이에게까지 성심껏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보고 요즘 애들의 상상력은 정말 못 말린다고 생각했다. 컴퓨터 초기 화면도 포키로 바뀌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포키를 위해 갖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인색했던 애교까지 동원해서 아빠를 설득해 큰 어항을 들여와 넓은 해안처럼 놀 수 있게 하고 그 안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복잡한 장치를 설치하였다. 작은 자갈과 제법 큰 바위를 깐 어항에서 초록색 해초 사이를 거북이가 늠름하게 헤엄치며 노는 모습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금붕어도 대여섯 마리 넣어주었다. 밥을 먹을 때나 대소변을 볼 때는 세숫대야에 옮겨 놓았다. 하루에도 몇 번 어항에 넣었다 꺼냈다 했고, 마룻바닥에서 기어다니게도 하였다. 거북이가 잘 먹지 않을 때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입에 넣어 주었다.
큰 어항을 청결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어항의 이끼를 닦고 물을 갈아주어야 한다. 어항 속 물을 다 빼고 새로 넣는 일은 큰 작업이었다. 거북이를 위해 방과 화장실 구석에 조그만 담요도 깔았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운동하라고 통나무와 물통을 갖췄다. 거북이 살림살이가 제법 많아졌다. 조그만 거북이 하나 키우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마루에서 엉금엉금 기던 거북이가 저녁밥 짓는 냄새가 나면 덜커덩거리면서 바삐 부엌 쪽으로 왔다. 그러고는 서서 일하는 내 발등에 자기 배를 얹어 놓았다. 마치 ‘식사할 때 나를 잊지 마세요.’ 하는 것 같았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등을 쓸어주면 ‘더 시원하게 긁어주세요.’ 하면서 등을 위로 높이 곧추세웠다. 쓰다듬어 주면 좋아서 목을 길게 빼고 바늘귀처럼 작은 눈으로 나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를 썼다. 가끔 부엌 구석에 놓여있는 스테인리스 쓰레기통에 비친 자기모습을 보며 쪼아 대기도 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아마도 다른 거북이로 착각하고 인사하는 듯했다.
거북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거북이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감정이 없을 거라는 상식도, 거북이 지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한 것도 틀렸다. 강아지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지능이 많이 모자라지도 않았다. 느리지 않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외출할 때 가끔 화장실 안에 넣고 문을 닫고 나오는데, 그곳에 갇히지 않으려고 내 걸음보다 빨리 달려 나왔다. 문을 닫기도 전에 도착한 거북이가 닫히는 문 사이에 끼어 다칠까 봐 조심해야 했다. 외출했다가 돌아와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또 덜커덩거리면서 뛰어오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거북이가 기뻐하며 나를 맞이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현관으로 오는 것이다. 다섯 개쯤 되는 층계를 따다닥 뛰어내리다 뒤집히기 일쑤다. 그럴 땐 허공에 네 발을 허우적대며 등으로 밀고 구석까지 가서 벽을 의지해 다시 원 상태로 뒤집는다. 그리고 반갑게 나를 맞는다.
어느 날 거북이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다. 아프면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잘 놀지 않기에 금방 알 수 있다. 거북이를 위해 갑각류를 전공한 의사를 찾아가 치료받았지만, 포키는 회복하지 못했다. 처음 식구가 되었을 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8년을 함께 살다 보니 거북이와 의사소통이 되었고 정도 들었다. 포키는 내가 가는 곳마다 열심히 따라다녔다. 내가 바쁘게 걸으면 포키도 바쁘게 걸었다. 나는 거북이가 배고플 때, 반길 때의 몸짓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세태를 풍자한 말 중에 “토끼가 낮잠도 안 자고 지랄이야!”라는 신조어가 있다. 영리한 학생이 게으름도 안 피우고 열심히 공부하니 느린 학생은 도저히 못 따라간다는 말일 것이다. 옛날 우화는 요즘 같은 경쟁 시대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일은 쉽지 않다. 거북이는 나 같다. 나는 느리고 특별한 재능도 없지만,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양사언의 시조를 떠올리며 남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나 다운 삶일 것이다. 음악가의 길, 화가의 길, 문학도의 길에도 천차만별의 수준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뒷마당에 고이 잠들어 있지만, 포키를 기르며 거북이와 대화가 가능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은 포키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포키와의 이별 후 앞으로는 동물은 키우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상실의 아픔은 강아지나 거북이나 다를 게 없다는 걸 체험했기 때문이다.
포키와 나와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느리지만 꾸준히 나의 길을 걸어가며 문득 포키를 떠올릴 때면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
전명혜
Aug. 17, 2025
수필
국어선생님
전명혜 (뉴욕)
학교가 인간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내 경우가 그랬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아버지가 나와 같은 학교의 국어 선생님으로 계셨다.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계시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가 훌륭하시다고 칭찬했지만, 내가 선생 자녀임을 아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그때부터 친구들에게 선생님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늘 마음을 졸였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드러내지 않도록 전전긍긍했다.
아버지는 내가 있는 반을 가르치시지는 않았다. 학생 수가 많아 아버지가 “얘가 내 딸입니다.”라고 일부러 인사시켜야 다른 선생님도 내가 우리 아버지 딸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지금은 평준화가 되었지만, 그 시절 교육제도는 명문 중고등학교가 존재했고 여기에 합격하려는 열기가 대단했다. 당시 중학교 진학 시험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문제지를 사용했기에, 각 초등학교의 학력 수준을 쉽게 판가름할 수 있었다. 좋은 초등학교란 참교육의 의미를 뜻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많은 학생이 명문중학교에 합격하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되었다. 좋은 초등학교에 다녀야 많은 학생이 명문 중,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좋은 대학, 일류 기업에 입사하는 길로 이어졌다. 좋은 초등학교에 가기 위해서 친척 집에 위장전입도 종종 하였고, ‘치맛바람’이 이즈음 시작했을 성싶다. 우리 어머니는 변두리에 내 집 장만을 할 형편이 되었지만, 자식들을 명문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혜화동 전셋집을 선택했다. 우리 형제들은 혜화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한참 뛰어놀아야 하는데, 공부에 대한 부담이 컸다. 시험과, 문제집에 시달렸고 과외수업이라는 학교 수업 외의 공부를 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진학을 위해 문제집 한쪽이라도 더 풀어야 했던 그때, 난 학교 공부와는 관련이 없는 책들에 파묻혀 있었다. 책을 가장 많이 읽고 독서를 좋아했던 시기는 초등학교 때였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 구독 신청해 주신 ‘소년 한국일보’ 신문을 통해 어느 날 문득 활자가 보여 주는 새로운 세상에 눈이 떠졌고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반대로 교과서 공부는 재미없었고 소설 읽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소설을 손꼽아 기다렸다. 비슷한 시기에 외삼촌께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신 『안데르센 동화집』은 나를 더 사로잡았다. 그 책은 신비한 환상과 꿈꾸게 하였고, 난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했다. 주변에 읽을만한 다른 책이 많지 않아, 읽고 또 읽어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아버지 서재에서 어른 책까지 몰래 가져다 읽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어 본 어머니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겉에는 교과서로 위장하고 안에는 소설책을 넣어 부모님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나이에 안 맞는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못난 소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시험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교과서 외의 책을 읽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책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꿈과 희망을 키웠으며 독서를 통해 얻는 지식과 경험은 지금까지도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중학교 3학년 초였다. 실력 고사를 치렀을 때 과목별 최고 점수와 이름을 게시판에 공개하였고, 국어 과목에서 전체 1등으로 내 이름이 있지 않은가? 순간 너무 놀랐고 당황스러웠고 기쁘지 않았다. 순전히 실력으로 얻은 성적이었지만,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괜히 불안했다. '혹시 친구들이 아버지가 문제를 미리 알려줬다고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후로는 너무 좋은 점수를 받을까 봐 국어 공부를 게을리하기도 했다. 문법의 변칙이나 고어 등 배워야 하고 외워야 할 일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적이 중간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독서 힘이었을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이라는 시간 내내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지냈다. 학교에서는 아버지와 우연히 마주칠지 긴장하면서 다녔다. 성적이 너무 나쁜 과목은 아버지가 나를 수치스럽게 여길까 봐 중간 정도는 되도록 공부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영어를 가르친 총각 선생님의 인기가 최고일 때 나도 동경했지만, 감정을 함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잠잠하게 지냈다. 어릴 적 습관으로 지금도 발표해야 하는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는 편이다. 졸업 후 몇 십년이 흘렀어도 동창생이 나의 아버지에게 배웠다고 하면 움찔한다. 혹시 아버지로 인한 불유쾌한 기억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걱정되었다가 네 아버지가 담임을 하셨을 때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잘 넘겼어! 하면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이렇게 아버지가 같은 학교에 계셨던 상황은 시간이 흘러도 나의 인생에 그림자처럼 때때로 영향을 미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해 하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좋은 초등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말하면 농담으로 듣고 모두 까르르 웃지만 진실이다. 미국에서 자란 어린아이들의 글짓기나 미술 작품을 보면 자유롭고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다 못해 부럽다. 창조력을 키워주는 미국의 교육 덕택이라고 비교하게 되고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제는 아버지가 국어 선생님이자 시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아버지처럼 글을 쓰면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야 막 시작하면서 잘 쓰고 싶다면 너무 큰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세상살이가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존재인 책을 멀리하며 타성에 젖어 살기도 했다. 젊은 날처럼 예리하게 표현하거나 느끼는 것이 못할지라도 문학가의 꿈을 늦게나마 키우고 싶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자,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일 것이다.
전명혜(뉴욕)
Aug 17, 2025
전명혜 profile (for the portrait photo)
<월간문학> 수필 신인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저서: 공저, 수필집 <작가라는 이름으로>
경희 사이버 대학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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