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이를 먹는 사람
김대희
“할아버지 생일 축하해요 ”
유치원 손자가 내민 카드를 받아 든 남편은 환하게 웃었다.
그림속 남편은 앞머리는 훤히 벗겨져 넓은 이마가 드러나 있고, 양옆과 정수리에 남은 머리카락만이 듬성듬성 세월의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어느새 ‘시니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처음 만났던 그 청년의 모습이 남아 있다.
내가 스물다섯이던 1986년 여름,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의 권유로 선을 보게 되었다. 결혼은 아직 먼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주변의 권유에 못 이 겨 시내 커피숍으로 나갔다. 새로 산 핸드백에 빨간 구두까지 신고, 괜히 더 긴장된 마음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정장을 입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눈은 크고 아주 맑고 선하게 보였다. 첫인상부터 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날이 하도 더워 냉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냉면을 먹으려니, 후루룩 소리라도 날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조심스럽게 젓가락들 들었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음식이 아니라 나를 더 바라보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싫지 않기도 했다.
그날 우리는 앞산 케이블카도 타고, 천천히 산길도 걸었다. 바윗길을 오르던 순간, 그가 조심스럽게 내민 손을 잡았는데, 그 순간 어색함 보다 따뜻함이 먼저 느껴졌다.
하지만 그 뒤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소개해준 분은 좋은 집안이라며 그쪽 집안에서 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싶어 속상했다.
며칠을 망설이다가, 자존심을 버리고 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집안 사정이 있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는 자주 만났고, 마음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는 천천히 알아가고 싶었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결혼하자고 했다.
결국 우리는 3개월 만에 서두르게 되었고, 양가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되었다.
결혼생활이 늘 꽃길만은 아니었다.
직장 문제로 여러곳을 옮겨 다니기도 했고, 서로 부딪히는 날도 많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힘들고 서운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버텼다.
서운함보다 정을 먼저 쌓았고, 이해하려 애 썼다.
좋아서 시작한 인연이니, 이 결혼은 내가 꼭 지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젊은 날, 손만 잡아도 설레던 그 마음은 세월이 흐르며 모양은 바뀌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지금 남편은 손자의 재롱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아내인 내가 없을 때 손자들이 온다고 하면 손수 고기를 사와 서 직접 구워주는 사람, 그런 남편의 옆에 앉아 있으면, 지난날들이 조용히 떠오른다.
한때는 멋있던 청년이
이제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되었고, 수줍던 처녀였던 나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돌아보면, 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함께 같이 늙어갈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때론 미워도, 그래도 끝내 내 곁에 남아 줄 사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며
그가 퇴근하기를 기다린다.
2026.4.30
첫댓글 참 부러운 짝이네요.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부부는 서로 마추어 가면서 사는 거라 합니다. 늘 좋을 수도 늘 나쁠 수도 없는 것이 부부 입니다. 조금 속이 상해도 이해하며 살며는 좋은 날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