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3편 세상꽃>
⑤ 오막살이 봄꽃-13
그리하여 딸을 여덟이나 낳은 집에서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를 둘 수가 있게 되었던 거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고씨분인이 일구월심하여 성심성의로 말을 잘 들었기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경산은 생각하였다.
그때 경산은 박명규 내외의 잠자리 요령이라던가, 고씨부인의 정성들이는 자세와 마음가짐, 심지어는 정원의 관상수와 과목들 하나하나의 위치와 가꾸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일러주었다.
인간사의 득실(得失)과 길흉이란 하늘의 도리를 본받은 땅의 도리를 사람이 본받아서 몸소 지성을 다하여 실천할 때에 비로소 생성(生成)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하기에 그 방법이란 특별하지도 않았고, 어렵지도 않으면서 사람이 일상으로 보통 살아가는 데에서 삶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혜일뿐이었다.
경산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무진은 사바와 불문의 법계와 선계뿐 아니라 유교의 경전에까지도 두루두루 섭렵하였던 대사이며, 법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경산에게 깊고 높고 넓은 어려운 학문의 원리를 어렵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쉽고 순하게 터득할 수 있는 정각(正覺)의 길을 터주려고, 단지 십년의 짤막한 단기수도로 사바의 사도가 되도록 힘썼던 거였다.
그러나 경산은 입문에서 탈속까지 허탈만 가지고 있었기에, 당시에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터득하였는지를 감히 깨닫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차츰 연륜을 쌓아가면서 지혜가 샘솟듯이 마구 용출하는 거였다.
그로부터 인생사에서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펄펄 넘치었다.
“그럼, 서울마나님께서 저희에게 명령하여주십시오.”
장찬지가 문득 손을 모으고 조아리면서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오늘은 여기에 와서 부군한테 우선 몇 가지를 일러주려고 했소.”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점심상을 다 차리었는지, 골뜸댁이 밥상을 들어다가 둘 사이에 놓아주는 거였다.
딸이 일곱이나 된다더니 하나도 거실에 비치는 아이가 없었다. 다만 저쪽 구석방에서 조무래기들이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는 소리와 젖먹이가 보채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리어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하였다. 역시 여자아이들은 조용한 것인가. 거기에 남자아이가 끼어있다면 이렇듯이 집안이 절간 같지는 않을 거였다.
골뜸댁은 또 밥상 하나를 아이들이 있는 구석방으로 들이어갔다.
팥을 드문드문 넣고 지은 쌀밥이 벌건 팥물이 들어 윤기를 자아내었고, 물씬한 갈비찜에다가 잉어찜까지 올라있고, 참기름으로 무친 쑥갓나물이며 아욱국 같은 게 구미를 돋우었다.
“반찬은 없으나 시장하실 텐데 어서 드십시오.”
경산이 명령만 내리면 어떤 일이든 실천하겠다는 결의에 차있던 장찬지가 밥상이 앞에 놓이자, 경산에게 어서 드시라고 권하였다.
좀 뒤에는 골뜸댁도 밥사발을 들고 그리로 다가왔다.
“모처럼 오셨는데, 입맛에 맞으실라나 모르겠어유.”
“훌륭하오. 골뜸댁의 음식솜씨가 대단하군요.”
“제가 잘하는 음식은 잉어찜 붕어찜이여유. 두리 살 때 뱀장어 가물치 메기 같은 것도 흔했지만유. 잉어와 붕어는 제가 요리를 맡았거던유. 오늘은 이이가 잡아온 걸 제가 요리한거유.”
“으음, 바깥분이 직접 잡은 거군요.”
경산은 갈비찜을 먹다가 문득 천복이 생각이 나서 목으로 넘어가지가 않았다. 장날은 정읍댁이 정희네 식당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집에 돌아올 적에는 음식을 가지고와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맛볼 수는 있었지만, 여느 때는 고기를 별로 사먹지 않고 비듬나물 된장찌개를 질리게 먹을 뿐이었다.
한창 크는 아이인지라 이러한 소고기갈비찜 같은 걸 많이 먹여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약한 편이라서 자연히 그러한 생각이 드는 거였다.
상을 물리고, 숭늉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 경산은 장찬지에게 물었다.
“내외가 어느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잡니까?”
“서쪽이죠? 여보! 우리가 머리를 서쪽에 두고 자오?”
장찬지는 서쪽이라고 하더니 의문이 드는지,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골뜸댁에게 물었다.
“머리 쪽은 서쪽이어유.”
“서쪽이랍니다.”
그는 골뜸댁의 말을 받아서 서쪽이라고 하였다.
“서쪽은 여자의 방위요, 그러한 까닭에 남자의 정기가 음(陰)으로 감돌아서 역순환하기에 반드시 음물이 생성하는 겁니다.”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는군요.”
경산이 서쪽은 여자방위라서 음물이 생성된다고 하자, 장찬지는 얼 만큼 이해가 가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방위의 각기 특성을 알지 못하는 이상 그러한 줄로만 알아차릴 밖에는 없었으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당장 오늘부터라도 고치세요.”
“그럼 어느 쪽이 좋은가요?”
경산이 잠자리의 방위를 고치라고 하니, 장찬지가 어느 방위로 고쳐야 좋을는지를 묻는 거였다.
첫댓글 제가 알던 장찬지는 낚시를 좋아하고 풍류를 아는 장년의 남자였습니다
아들 딸을 구별하여 낳으려고 고민한 적도 없구요
옥천군 이원면 장찬리에 낚시터 장찬지(장찬저수지)가 있는데
이십여년전 밤낚시를 하면서 하룻밤을 즐겼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장찬지는 머리를 어느 방위로 두어야 할까요?
그날밤 짜릿한 맛을 영원히 간직하게 되었네요.
다음 회에 북쪽으로 두고 자라고 가르쳤나 봅니다.
방위? 같은 장소에서도 매우 중요하죠.
방위는 보이지 않는 자연입니다.
중국의 역사문화가 만들어놓은 방위논리는 과연 놀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