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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위안 음식
- 부대찌개
재료 이국적인데 맛은 토속적
의정부식은 국물 많아 흥건
송탄식은 뻑뻑하고 자작하게
치즈·두부 등 추가 새 별미로
- 갱시기
경상도서 흔히 먹던 김치국밥
멸치육수에 김치국물·콩나물
식은밥 넣어 팔팔… 해장에 딱
감기 걸려 골골거릴때 생각나
한국에서 자란 당신이 어째서 ‘솔 푸드(soul food)’ 타령을 하는가? 솔 푸드. 만약 누군가 자신의 ‘솔 푸드’가 뭐니 어쩌고 역설한다면 그이의 조상은 서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틀림없다.
이른바 솔 푸드는 보편적으로 ‘추억의 음식’쯤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은 틀린 말이다. 솔 뮤직(soul music)과 마찬가지로 ‘흑인 음식’이란 뜻이다. 정확하게는 미국 남부 흑인 노예의 음식문화가 솔 푸드다. 옥스퍼드 상급생 사전(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미국 남부 흑인들이 먹어온 음식 종류(The type of food that was traditionally eaten by African Americans in the southern US)’라 정의한다. 알렉스 헤일리 원작 소설 ‘뿌리’의 쿤타킨테처럼 북미에 노예로 팔려온 서아프리카 출신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농장에서 일하며 현지 식재료 등을 이용해 만들어 먹던 독특한 식문화를 솔 푸드로 분류한다. 당연히 어렸을 때 먹던 우리 음식을 솔 푸드라 부르면 틀린 일이다.
무엇이 솔 푸드인가. 대표적 솔 푸드로는 오크라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검보(Gumbo), 포크 피트(돼지족발), 메기 튀김, 허시파피(튀긴 옥수수 반죽 도넛) 등이다. 신기한 것은 지금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바비큐와 윙이 이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바비큐가 솔 푸드에 포함되는 것은 순전히 당시 흑인 노예들이 살던 환경 탓이다. 주방이 아예 없는 숙소에서 살다 보니 백인 농장주들이 먹고 남긴 허드레 고기(하지만 갈비나 족발 등 꽤 맛있는 부위였다)를 가져다 땅을 파고 불을 피워, 꼬치나 장대에 올려 구워 먹었던 것에서 바비큐가 탄생했다. 여기다 서아프리카식이나 카리브식 향신료를 고기에 뿌린 것이 지금의 다양한 바비큐 소스로 발전했다. 원래 이름은 중남미 카리브해 음식인 ‘바르바쿠아(Barbacua)’였지만, 이후 미국 흑인 노예들은 ‘바비큐’로 불렀다. 현재도 미국 내 바비큐로 유명한 지역은 텍사스, 켄터키,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등 흑인들이 많이 살았던 남부 지방이다.
바비큐 이외에도 인기 있는 솔 푸드가 적잖다. 우선 한국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프라이드치킨, 특히 윙(날개 튀김)이 그렇다. 지금은 저마다 치킨 브랜드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만, 예전엔 주인이 먹고 남은 다리와 날개 등 허드레 부위를 기름 솥에 몽땅 털어 넣고 튀겨 먹었던 것에서 시작했다. 행크 윌리엄스와 카펜터스가 노래했던 ‘잠발라야(jambalaya)’나 노래 속 가사에 등장하는 검보 수프, 민물가재 등도 루이지애나 아카디안의 추억 음식이다.
이처럼 허드레 식재료를 사용하다 보니 솔 푸드는 아무래도 ‘가난했던 옛 시절에 먹던 음식’ 정도로 사용됐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에서 그렇다. 일본 저널리스트 우에하라 요시히로는 ‘차별받은 식탁’을 쓰며 그런 의미로 솔 푸드란 단어를 수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에선 김치나 부대찌개(사진)를 솔 푸드로 소개하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사실 한국에서 솔(松) 푸드란 송편(松葉餠) 정도밖에 없는 셈이다.
우리에게도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동질감을 가진 집단이 함께 만들어 먹던 음식이 있다. 이를 ‘애환이 담긴 음식 또는 위안을 주는 음식(comfort food)’이라 한다면 더욱 의미가 맞을 법하다. 한국에선 그런 의미로 부대찌개가 가장 어울린다. 아니 가장 대표적인 ‘위안의 음식’이다.
지금 중년 세대까지는 부대찌개에 애환이 담겼다고 보긴 어렵다. 바비큐나 치킨처럼 그저 맛있는 별미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역사를 거스르자면 매우 아프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기 전, 모두가 궁핍하던 시절에 시작됐다. 처음엔 쓰레기를 음식화한 ‘꿀꿀이죽’이 있었다. 주재료는 군납 식품의 잔반. 내용물은 주로 햄, 소시지, 미트볼, 베이크드 빈스에 남긴 빵과 우유까지 부어 바깥에 내놓으면, 이걸 가져다 김치를 넣고 죽처럼 끓여 먹은 데서 유래했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해 이제 겨우 음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부대찌개다.
미군들이 남긴 음식물 중 골라낸, 또는 밀반출한 깡통인 이른바 ‘부대고기’로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 메뉴의 반열에 올랐다. 꿀꿀이죽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음식이다. 그야말로 꿀꿀이죽은 음식쓰레기를 끓여 겨우 허기만 채울 수 있는 용도였지만 부대찌개는 다르다. 나름 진귀하고 어엿한 음식이었던 게다.
어렵던 시절, 군납 통조림과 다진 고기 등을 빼내 와 ‘고기’를 볶아서 먹은 게 시작이었다. ‘부대고기’가 먼저였다는 사실. 지금도 부대고기는 부대볶음, 모둠 스테이크 등의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많이들 팔고 있다. 그러다 더 많은 이가 먹기 위해 물을 붓고 찌개를 끓인 것이 부대찌개의 시원이다. 이후 밥과 함께 먹는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들이 부대 근처에서 성업했던 것. 의정부, 송탄(평택), 동두천, 이태원 등 미군 부대가 주둔한 지역에서 거의 동시에 부대찌개가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바로 1960년대 후반이다. 지역별로 태동에서 발전까지 독자적으로 이룬 터라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다. 의정부식은 비교적 국물이 흥건하게, 송탄식은 뻑뻑하고 자작하게 끓인다. 이 초라한 족보의 음식은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치즈, 두부, 떡, 라면 등 다양한 재료가 첨가돼 새로운 별미로 자리를 잡았다.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릴 정도.
2010년 발간한 론리플래닛 한국 편은 부대찌개를 최고의 한식으로 꼽은 바 있다. 외국인들은 가끔 이 음식에 스팸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지만, 먹어본 후엔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결국 스팸을 생산하는 호멜사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스팸을 응용한 주요 요리로 부대찌개를 소개했다. 그런데 부대찌개를 직역(Army base stew)한 것이 흥미롭다. 참고로 국립국어원은 2014년 부대찌개를 소시지 스튜(sausage stew)로 표기하자고 한식명 로마자 표기 및 번역 표준안에서 결정했다. 아무래도 부대찌개의 주인공은 ‘소시지’인 게 틀림없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이와 비슷한 음식이 러시아의 솔랸카(солянка)와 포르투갈의 페이조아다(Feijoada)다. 솔랸카는 토마토 페이스트와 오레가노 등 향신료로 간을 한 고기육수에 소시지, 햄, 고기다짐, 양배추, 피클 등을 넣고 끓인 수프 요리다. 페이조아다는 포르투갈과 그 식민지였던 브라질에서 즐겨 먹는 스튜지만 사실 브라질식 페이조아다가 부대찌개와 생겨난 스토리가 더욱 비슷하다. 브라질식 페이조아다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 노예들의 음식이다. 주인이 먹고 남긴 돼지 족발이나 꼬리, 혀, 코, 귀, 내장 등을 재료로 한 요리다. 요리라기보다는 검은콩을 넣고 한솥 푹 끓여낸 죽이라 딱 부대찌개와 원리가 같다. 지금은 브라질을 대표하는 대중요리가 됐다. 부대찌개처럼.
궁핍하던 시절, 추억과 애환을 담은 위안의 음식이라면 ‘갱식이(갱시기)’도 있다. 대구를 포함한 경북과 경남 내륙에서 갱국, 밥국, 국식이(경남) 등으로 부르는 음식이다. 말은 다르지만 뜻은 똑같다. 갱(羹)은 국을 뜻한다. 식(食)은 밥, 즉 밥으로 끓인 국이다. 국을 끓일 때 밥을 넣어 죽처럼 만든다.
그리 어렵지 않으나 맛있게 하기도 어렵다. 일단 김치가 맛있으면 8할은 성공이다. 멸치 몇 개를 던져넣은 국물에 김칫국물을 붓고 콩나물 등 푸성귀와 식은 밥을 넣어 팔팔 끓이면 된다. 라면이나 가래떡, 국수를 넣어 양을 늘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개밥’이란 오명을 쓰기도 하지만, 냉장고 청소엔 퍽 도움이 된다. 이 지역 출신 30대 이상이라면 갱식이에 저마다 사연이 묻어 있다. 아버지가 술 마신 다음 날, 감기에 걸려 골골대던 때, 아니 겨우내 이것만 먹고 버텼단 이도 있다. 깊은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대구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청와대 조리장을 불러다 갱식이 끓이는 법부터 가르쳤다는 말도 내려온다. 음식에는 저마다 추억이 있고, 반대로 추억 속에서 생각나는 음식도 있다. 그것을 솔 푸드라 부르든 힐링 푸드라 부르든 간에 우린 가끔 추억을 먹고 싶을 뿐이다. 강력히.
■ 어디서 먹을까
갱시기 - 합천 옥천분식
부대찌개 - 의정부 오뎅식당
파주·동두천에 노포 즐비
애환이 담긴 음식은 우리에게도 사실 많다. 노예 못잖은 식민시대와 전화를 겪은 대한민국의 뼈저린 근현대사 탓이다. 조선 시대 그 귀하던 밀가루가 원조 덕으로 하루아침에 구황 식품이 돼버렸다. 증량을 위해 모든 음식에 밀가루를 넣었다. 칼국수, 수제비를 비롯해 어죽(어탕국수), 심지어 곰탕·설렁탕에도 국수를 넣어 밥을 아꼈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 중 부대찌개는 대표적으로 많이들 팔고 있지만(심지어 체인점도 많다), 원래 가정식이던 갱시기(국시기·사진) 등은 취급하는 곳을 잘 찾아볼 수 없다. 합천에 가면 국시기를 파는 집이 있다. 합천읍 우체국 앞 ‘옥천분식’이다. 뭐 거창하게 볼 건 없다. 딱 어머니가 아버지 해장용으로, 자식 중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끓여주던 맛이다. 모양새나 맛이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아침 해장엔 그만이다. 마른 멸치를 넣고 끓여 시원한 국물에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었다. 여기다 대파와 식은 밥, 수제비를 넣고 또 모자라면 국수나 라면, 떡을 넣어 준다.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집이 따로 있을 정도로 부대찌개를 잘하는 집은 워낙 많다. 상권이 거대한 서울은 물론이다. 지방을 따지더라도 원조를 자처하는 의정부 오뎅식당을 비롯해 김네집이나 최네집, 숯고개 등 송탄에도 부대찌개 집이 즐비하다. 파주와 동두천에도 당연히 오랜 시간 지역민과 입맛을 같이해 온 노포가 많다. 파주와 가까운 일산에도 의정부식 부대찌개를 잘하는 집이 있다. 덕이동 큰 길가에 ‘전통의정부부대찌개’로 상호를 올리고 오랜 세월 영업해 온 집이다. 매운탕처럼 시원한 국물맛에 놀라고 소시지와 햄을 듬뿍 담아주는 푸짐한 인심에 한 번 더 놀란다. 사리를 많이 넣어도 국물이 탁해지지 않을 정도로 맑고 개운하다. 지독하게 맵거나 과할 정도로 텁텁한 찌갯집이 많은데 이곳은 딱 옛 맛을 낸다. 국물이 찌개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집이라 일부러 찾아갈 만도 하다.
외국의 애환 음식을 찾는다면 이태원에 추하스코와 페이조아다를 파는 코파카바나 그릴이 있고, 노예생활이 없었기에 그리 특별한 추억마저 없다면 통닭을 즐겨도 된다. 수원이나 대구를 가면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