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전국의 휴양림을 예약하여 산행과 캠핑을 즐기는 것이 우리 부부 최애의 여가활동이 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즐겁고 만족스럽다.
이번 주는 전북 순창에 있는 회문산국립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102번 데크를 예약할 수 있게 되어
회문산 산행 후 캠핑을 위해 다시 집을 나선다.
회문산은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오전 11시 휴양림에 도착하여 여건이 된다면 야영장에 미리 텐트를 설치해놓고 산에 오르려 했지만
데크는 정해진 입실시간(14시) 이후에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하여 산행을 먼저 하기로 한다.
“산림휴양관 주차장(6번)→서어나무→능선갈림길→장군봉 갈림길→정상→헬기장→야영장→주차장”
산행보다는 쉼에 방점이 있는 아내를 위해 이번에는 최대한 짧은 코스를 선택한다.
산림휴양관이 있는 6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서어나무→서어나무 능선갈림길→장군봉 갈림길→정상→헬기장→야영장→주차장으로 돌아오는 2~3시간 정도의 코스이다.
회문산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은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순창군에 가볼만한 산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맨 처음 강천산을 이야기하고,
다음으로 출렁다리로 유명해진 체계산 그리고 최근 하늘잔도로 유명해진 용궐산을 꼽는다.
정상의 수려한 경치와 산세를 보면
회문산도 순창의 여느 산에 견주어 빠지지 않을만한 여건이라 생각되지만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이 많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아마 진입도로 일부가 확장되지 않아 등산코스 들머리인 휴양림까지 관광버스가 접근하기 어렵고,
휴양림 내 대형차량 주차도 용이하지 않아 아직 산악회 등의 단체이용객이 적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회문산(回門山)"
‘오선위기(五仙圍碁)의 우리나라 5대 명당 중 하나’
해발 837m의 회문산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과 순창군 구림면을 경계해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상 길지로 우리나라 5대 명당 중 하나라고 한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있는데 큰지붕으로 불리는 회문봉과 장군봉, 천마봉, 깃대봉이 말이 하늘을 나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으로 돌곶봉, 시루바위가 말이 안정천의 물을 먹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영산(靈山)인 신비로운 산으로 알려졌으며 조선중기 풍수지리의 대가 홍성문(洪成文)의 '회문산가 24혈'에는 이 산에 24곳의 명당과 다섯 신선이 바둑을 두는 '오선위기(五仙圍碁)'라는 명당이 있는데, 이곳에 묘를 쓰면 59대까지 복(福)을 받는다고 전한다. |
산행을 위해 산림휴양관이 있는 6번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임도 길을 따라 서어나무 방향으로 진행한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다보면 왼편으로 작은 규모의 회문산 역사관 건물이 있다.
살짝 궁금증이 유발되어 들렸다 가기로 한다.
역사관 건물은 자유 관람시설로 방문객이 직접 전등을 켠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역사관의 내부에는 궁금했던 회문산의 지명 유래 두 가지 설에 대한 설명도 있다.
<조평설> 조선시대 조평이라는 사람이 광해군 폐모론에 대한 부당함을 직언으로 규탄하다가 모함을 받아 체포되었다. 이후 석방되어 피난처로 이 곳에 들어와 후학을 양성하다가 인조 3년에 정강원종일등공신록권이 왕의 교지와 같이 내려지며 1천여정보의 산이 사패지(賜牌紙)로 하사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을 회문리로 부르고, 뒤쪽에 있는 산을 회문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성문설> 홍성문이 도통하여 지은 회문산가라는 노랫말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湖南 精神 半在 淳昌이요(호남 정신, 또는 인물의 반은 순창에서 나오고) 淳昌 精神 半在 回文이라(순창 정신, 또는 인물의 반은 회문에 있음이라) - 조선시대 홍성문 대사 -
조선조 중엽에 홍성문이라는 스님이 이 곳 동굴에 들어와 10년간을 수도했는데 그를 성문대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루는 성문대사가 수도를 마치고 기도를 드리려고 공양을 차려 놓았는데 더벅머리 총각이 갑자기 나타나 공양을 먹자고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스님이 실신했는데 얼마 후 정신을 수습하고 간신히 땅을 보는 순간 천문지리를 훤히 통달하게 되면서 당대에 으뜸가는 풍수지리 지관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스님의 이름을 홍성문으로 불렀고, 이 석문(石門)에 들어갔다 돌아올 수 있기에 회문(回門)이 되었다. 이 석문이 그 뒤 회문으로 음전되어 회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
한국전쟁 전후 회문산 일대에서 전개된 빨치산 활동과 아픈 역사를 기록한 패널도 전시되어 있는데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면 우리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 일면을 보게 된다.
회문산은 옛날부터 회문봉, 돌곳봉, 장군봉, 깃대봉 등 수많은 연봉과 골짜기들이 첩첩으로 둘러 쌓여있고 섬진강이 두팔로 감싸듯 휘감고 있어 지형적으로 방어하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으며, 한말 일제침략에 저항하던 최익현, 임병찬 등 의병대장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빨치산(한국전쟁 전후로 대한민국 영역에서 활동한 공산당 유격대, 파르티잔(Partisan) 부대) 활동의 주 무대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방이후 여순반란사건에서 패퇴한 패잔병 중 일부가 회문산에 입산하면서 빨치산 활동이 시작되었고,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에서 방준표가 조선로동당 전북도당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남쪽으로 내려온 후 회문산을 중심으로 인민유격대를 구성하고 빨치산 활동을 본격화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갈 길을 잃은 북한 인민군과 좌익동조세력이 회문산에 모여들면서 빨치산 활동이 더욱 거세졌고, 순창, 남원, 정읍, 고창 등지에서 국군과 경찰의 기습 및 약탈, 살인, 방화 등 민간인들에게 많은 재산과 인명 피해를 주게 된다.
이후 이들은 국군의 백선엽 및 박병권 장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 토벌작전에 의해 지리산 및 내변산으로 도주하며 저항하였지만, 1954년 회문산 빨치산의 핵심 인물인 방준표가 사망하면서 사실상의 회문산 빨치산이 사라지게 된다.
이후 1950.11월 강원도에서 창설된 남조선인민유격대(속칭 “남부군”)이 남하하여 회문산 쪽 지리산 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빨치산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1953. 7월 휴전되면서 갈 곳을 잃게 된 빨치산은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100만권의 책이 팔리고, 1990년에 안성기, 이혜영, 최진실 등이 열연하며 관객 70만을 동원했던 영화 “남부군”에서의 빨치산 활동무대가 바로 회문산 주변이라고 한다. |
기록관을 들렸다가 나와 울창한 나무에 가려져 하늘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길을 따라 서어나무 방향으로 계속 진행을 한다.
임도 길을 벗어나면서 본격적인 숲길로 접어들고, 중간에 만나는 회문산 정상과 서어나무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에서 서어나무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기록관에서 보게 된 아픈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로 무거워진 마음 탓인지 그늘진 숲길의 분위기가 더 어둡게 느껴지지만 곧 만나게 될 서어나무에 대한 궁금증으로 어두운 기운을 상쇄하며 걸음을 옮긴다.
“회문산의 미스터 코리아”
”헬스트리 서어나무”
숲길이 점점 좁아지며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람한 근육질의 서어나무 보호수를 만난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헬스트리 서어나무라고 할까?
건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보디빌더의 근육처럼 온몸이 울퉁불퉁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회문산의 미스터코리아 서어나무이다.
서어나무를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갈림길을 만날 때 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잠깐의 수고로움 끝에 서어나무 갈림길 이정목(정상 700m)이 서있는 능선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커다란 나무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참나물, 은꿩의다리, 뻐꾹나리 꽃들을 찾아가며 300여 미터 진행하면 장군봉 갈림길(정상 400m)에 선다.
다음에 다시 회문산을 찾게 된다면 장군봉을 다녀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하늘이 열린 해발 837m 회문산 정상에 선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정상 경치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내장산, 강천산, 지리산 노고단 등이 보인다고 하는데
애써 찾아볼 필요 없이 그냥 첩첩산중이라는 말로 내 마음은 충분하다.
정상에서 느끼는 산정무한이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하산한다.
헬기장 방향으로 내려서다보면 얼마 못가서 그림같이 아름다운 글씨체로 “천근월굴”이라 새겨진 바위를 만난다.
중국 송나라 때 시인의 싯귀 중에 나오는 글로
‘천근’은 양으로 남자의 성과 ‘월굴’은 음으로 여자의 성을 나타내어 음양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라 하는데
누가? 언제? 새긴 글씨인지 설명이 없어 더 이상은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수기를 검색해 보니 ‘동초 김석곤(1874~1948)이라는 사람이
1900년 초 모악산 수왕사에 있는 무량굴과 함께 전서체로 암각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산행 수기를 작성한 글쓴이도 풍수지리나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 꽤 조예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천근월굴 바위를 지나 조금 더 내려서면 여근목이 나타난다.
안내판에는 모악산이 ’어머니 산‘, 회문산이 ’아버지 산’으로 음기가 곳곳에 서려 있어
천근월굴 바위와 더불어 이곳 여근목에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며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 산이 불바다가 되었어도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왜 아버지 산인지? 출처, 근거 등에 대한 설명이 없어
나무의 형상만으로 왜 그럴까? 유추해보며 지나치게 된다.
헬기장에서 문바위와 돌곶봉 방향으로 진행할까 생각하다가
차량회수와 휴양림 체크인을 위해 휴양림 야영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헬기장에서 야영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새로 임도가 나면서 사실상 단절된 상태이지만
그동안 여러 번 다녀간 경험으로 임도 길을 두 번 횡단해가며 숲길을 찾아 야영장으로 내려선다.
그렇게 6번 주차장을 출발한지 약 2시간 30분의 짧은 산행을 마치고
캠핑모드의 "쉼" 상태로 들어가며 회문산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사탕만한 별들로 가득찬
"회문산 숲속의 밤"
새벽 3시 30분경 텐트에 누워 하늘을 보니 사탕만한 별들이 가득하다.
갑자기 별들을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세팅하여 한 시간 정도 별자리를 촬영해 보니 제법 만족스럽게 담겼다.
다음에는 더 멋진 별 사진을 담아 봐야겠다 생각하며 풀벌레 소리 가득한 회문산 숲속의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