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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상여
김문억
장례식은 이렇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비록 초라하게 죽더라도 장례식만큼은 좀 화려하게 하고 싶습니다
꽃돼지도 몇 마리 잡고 아름다운 꽃상여도 꾸몄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생전에도 상여를 매우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죽기 전에도 똘말똘망한 정신으로 관 속에 들어가서 눕고 제대로 된 꽃상여를 한 번 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꽃상여를 꾸며 주었으면 합니다.
화려한 봉황 몇 마리와 내 혼백을 지켜 줄 사천왕과 바람결에 펄럭거릴 수 있는 하얀 천으로 지붕을 덮고 구비구비 흘러가는 중랑천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꽃상여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먼저 장례 위원장에는 이윤재님을 추천합니다.
이윤재님은 술도 잘하고 파격도 잘 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보면 압니다
나의 장례식에는 너무 판에 박은 듯이 반듯한 사람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훈장님 보다는 가시는 저승 길에 술도 한 사발 뿌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습니다. 대낮에 달빛도 건져 올려 서러움을 유발 시킬 수 있는 시인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리고 준비위원으로는 한석창 님을 임명합니다.
급할 때는 십발이 용달차가 가장 쓸모 있는 법입니다.
부지런히 돌고 돌아도 체구가 작으니 부딪칠 것이 없고 밧데리가 떨어져도 멈추지 않는 팽이처럼 돌고 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정부에서 중랑천을 따라 달섬까지 가려면 선소리꾼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원공 선사만큼 구성지게 멕일 사람이 없는 줄 압니다.
상여에 올라타도 무게가 없어 상여꾼의 수고가 덜어질 것입니다.
원공을 선소리 꾼으로 임명합니다.
요즈음 쓰고 다니는 회색 빛 고깔 벙거지는 꼭 쓰고 나와야 합니다
흔드는 요령은 우리 형님께 부탁하면 금속제품 공장을 경영하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잘 만들어 줄 것입니다. 금 빛 나는 것으로 주문하겠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미리 부탁을 하겠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달섬 유리집 기둥에 매 달아 주기 바랍니다. 나를 떠나 보낸 요령이 풍경 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행사 날 늦기 전에 배달 부탁한다고
조의금은 역시 은미 만큼 잘 챙길 사람 없습니다.
이 쪽 은미 말고 저 쪽 은미 말입니다
선무당 칼춤 추듯 노래방에서 휘젖던 은미 말입니다.
그는 천상병보다 더 순진무구 한 사람입니다.
펄럭거리고 휘젖는데는 막걸리에다가 웃음을 타서 마시는 은미만한 사람 없습니다.
키가 장대니 만장을 들어도 어울릴 것이요
요령을 흔들어도 어울릴 것이지만 돈 보따리를 차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입니다.
가다가 힘들어서 상여가 잠시 쉬는 동안은 혼백을 달랠 수 있는 길놀이 춤도 있었으면 합니다. 노래방에서 하던 것이면 더욱 좋습니다.
노하우 라는 것이 뭡니까
다만 달섬 문학회 행사 때 참가비 받듯이 조의금 달라고 사람을 좇아 다니면서 조르지말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받아도 조의금은 잘 내는 것이니까 서둘지 말고 접수 해 주기 바랍니다.
조문객들에게 명찰은 달아 줄 필요 없고 그냥 돈만 받으면 됩니다.
이름은 안 적어도 됩니다.
내가 갚을 일이 없는 돈이니까요.
고종목 형님이 오시걸랑 호루라기를 주어서 맨 앞 길을 터 주기 바랍니다.
가발은 벗어 놓고 오시오. 내가 손 아래지만 죽음 앞에서는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호루라기 또 하나는 이적 목사님께 주어
상여를 따라 오는 조무래기들을 좇아 주기 바랍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죽음이란 것을 알릴 필요가 없으며 그 아이들이 길을 잃을까봐서 그럽니다.
참 걱정 많아서 죽기 힘들겠네
서둘러서 꽃돼지를 몇 마리 잡아주기 바랍니다.
스마일~ 돼지면 더욱 좋습니다. 내가 가는 저승길을 돼지도 웃고 배웅한다는 뜻이니 전에 이야기 한대로 벼락맞은 돼지거나 칼로 목을 찔려 죽은 돼지는 모두 웃으면서 죽은 돼지입니다. 벼락이 떨어질 때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 사진 찍는 줄 알고 스마일~~ 하다가 벼락맞아 죽은 돼지 얼굴이 웃는 형용이며 .
목줄을 찾느라고 칼 끝으로 목 부위를 건드리는 순간 간지럼을 잘 타는 돼지가 참지 못하고 웃다가 목을 찔려 죽을 때의 형용이 스마일 돼지입니다.
물론 임신 경험이 없는 암퇘지라면 기름기가 적고 육질도 부드러워 좋을 것입니다.
절대로 염은 하지 말아 주어요
죽어서 가는 길도 쓸쓸한 것인즉 어찌하라고 그리 죽어서 힘 못 쓰는 송장을 일곱 마디씩이나 꽁꽁 묶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대로 묶지말고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을 단정하게 입혀서 반듯하게 누워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랍니다. 간절한 부탁입니다 저승가는 길이나마 편안하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날지 못하고 추락한 일들이 너무 사무치게 많았습니다. 갈대 밭 물을 질러 쑥구렁이 산을 넘고 날개를 달고 싶습니다.
대충 임원 배치가 끝난 듯 합니다.
나머지는 상여꾼이 되는데 지금껏 상여 메는 사람은 남자가 전담 했지만 그 또한 내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타고 가는 상여는 한 쪽은 남자가 메고 한 쪽은 여자가 메어야 합니다. 시와 술과 달과 여자를 좋아했던 나는 저승 길도 여자 품에서 가고 싶으며 자고로 시인이란 죽어서 가는 질(길의 오타였음. 길과 질은 천지차이)마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힘이 좋은 임경자가 젤 앞잽이를 하고 김정숙은 빠져 주기 바랍니다. 아픈 다리로 절룩거리면 상여가 제대로 율동이 맞지 않을 뿐더러 상여 전체가 절룩거릴 수도 있습니다. 그냥 상여 저 뒷켠에서 절룩절룩 따라오며 가끔 코만 한 번 씩 힝~~ 풀어내고 왕방울 눈만 끔벅거려도 멋진 역할입니다. 자고로 조연이 잘 해야 장례식도 멋 있는 법.
살아 생전 소리 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소리를 끄고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운전을 해도 라디오 한 번 틀어보지 않는 성품이었으니 어느 누구도 울지를 말기 바랍니다. 특히나 우는 소리는 정말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그냥 열심히 상두꾼의 선소리에 맞춰서 후렴이나 불러주기 바랍니다. 누가 젤 구성지게 하는지 들어볼 참입니다.
상두 노래를 부르되 쉬운 가사를 붙여주기 바랍니다.
시인의 상여라고 하여 시처럼 부르면 듣는 사람이 잘 모릅니다.
대중가사처럼 빨리 들어오면서도 약간은 유치하고 구성진 것이어야 합니다.
후렴은 지방마다 약간씩 틀리지만 우리 고향 청원군 가락으로 해 주기 바랍니다.
어~~허 어하~~~~어허 어하~~~~
간다간다 하시더니 인제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하 어허 어하
달섬문학 동지들을 어이 두고 가시니까
어허 어하 어허 어하
허공 중천 가는 달은 누가 데리고 놀거나
어허 어하 어허 어하
중랑천에 빠진 달빛은 누가 가서 건져 주나
어허 어하 어허 어하
달섬문학 시낭송회 님이 없으면 어이하리
어허 어하 어허 어하
저승가면 맘 편하게 시도 쓰고 술도 먹고
어허 어하 어허 어하
이런 가사라면 좋을 것입니다.
들어봐서 율조가 계속 안 맞으면 내가 또 지랄맞은 성깔로 벌떡 일어나서 관을 발길로 걷어차고 밖으로 뛰쳐 나올지 몰라.ㅎㅎㅎ
만장을 쓰되 높이 올리지 말고 내 작품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 되는 것으로 골라 한 구절씩 화선지에 써서 등짝에 붙여 주기 바랍니다.
달섬님은 지금까지 내가 발행한 시집을 모두 모아 보자기에 싸서 따라 오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떠날 때 내 품 속에 넣어 주기 바랍니다.
우리 식구들은 나의 사랑하는 딸 현주만 참가 시키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시를 얼마만큼 좋아했는지
어버지의 인생관은 무엇이었는지
아버지의 시 세계 근간은 무엇이었는지
마지막이라도 식구 중에서 증인으로 알 수 있도록 현주만 참가하면 좋겠습니다.
중랑천을 따라 가다가 도봉산쯤 되면 오른 쪽 둑방에서 빨간 바지를 입고 커피를 파는 한 쪽 눈이 찌뿌둥한 아줌씨가 한 분 있습니다.
천 원 짜리 커피 한 잔 하고 9 백원만 준 적 있습니다. 은미는 이자까지 쳐서 일 만원을 외상값으로 지불하되 흰 봉투에 넣어 예를 잘 갖추기 바랍니다. 겉 봉투에는
未 償還 茶 貸金 完拂 합니다.
祝 死亡 記念日에 亡者. 椒井 合掌
라고 쓰면 망자의 예가 될 것입니다.
펄럭거리지 말고 공손하게 건네기 바랍니다. 내가 이승에서 진 유일한 현금 빚입니다.
홀가분하게 가야지요.
그리고 둑방 아래로 판자촌이 있는데 조의금 들어 온 것에서 한 주먹 덥석 움켜내어 던져주기 바랍니다.
신이문 역 앞에서 한 뭉치 던져 주고 회기역 굴다리 앞에서 포장마차 하는 동네에 또 한 뭉치 던져 주기 바랍니다.
위생병원 앞에서 붕어빵을 굽는 장애인 부부에게도 좀 적선하기 바랍니다
내가 이대 병원에서 퇴직하여 마지막 퇴근하던 날 목 메어서 쳐다보지 못하고 수술 기구를 닦고 있던 그 지지배, 어쩌자고 이혼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조의금이라고 하지말고 아이들 학자금으로 좀 보내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달섬에서 수고하는 영수 아줌마 속곳 주머니에도 단단히 한 뭉치 넣어 주기 바랍니다.
내가 달섬에 갈적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야채 샐러드 안주를 써비스하여 내 비위를 잘 맞춰 주었던 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맘에 걸리는 사람이 왜 이리 많습니까
문예 위원회에서 창작기금 타 내면 시집 한 권 찍어 주겠다고 실없는 소리 했던 달섬님께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박종일 형에게 잘 이야기 하면 저승길에서 지불하는 책값이니 만치 본전에 찍어 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장호원 시장 농협 건너편에 가면 구두 짓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내가 장호원 장터에 옷 팔러 갈 적마다 자리를 마련 해 주었던 분입니다.
그 분에게도 꼭 한 뭉치 올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얀 쌀 40 키로그램을 주어서 나를 감동 시켰던 삐쭉님을 찾아 감사의 표시로 3 만원을 건네기 바랍니다. 그 분은 돈이 있는 부자입니다. 내 뜻만 전하면 됩니다. 역시 예를 갖추어 겉봉투에 이렇게 써 주기 바랍니다.
白骨難忘 이라고
한 번 경리는 내가 죽어서도 경리입니다. 나머지 돈은 은미가 간직하고 있으면서 매번 로또를 사 주기 바랍니다. 당첨되면 포크레인을 몰고 와서 지금의 달섬 건물을 헐어내고 명실상부한 달섬문학회에 어울리는 문학관 하나 번듯하게 지어서 영업도 성공하고 우리 문학회도 발전 시키겠다는 것이 내 숙원 이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을 동료들이 꼭 이루어 내기 바랍니다. 만약에 은미가 산 로또가 1 등으로 당첨 되더라도 혼자서 먹고 톡 튈 위인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길다랗고 펄럭거리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습니다.
내 상여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가능하면 겨울비가 내리거나 진눈개비가 오는 날 출상을 하기 바랍니다. 귀신이 활동하기 좋은 날이니 혼백이나마 훨훨 날아 다니며 중랑천 여울물에서 궁시렁 거리는 물귀신도 되어 보고 대머리로 앉아 있는 도봉산 만장봉을 구름 타고 한 번쯤 휘휘 돌며 이승의 마지막 유람이나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면 참 내가 죽는 날을 잘 택해야 하겠네!
죽어서 가도 시는 쓸 것입니다.
아! 정말 자유롭게 누워서 시를 쓰고 술 사발에 시를 타서 훌훌 마시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 나의 저승길 나들이에 축복의 박수를 보내주기 바랍니다.
가서 얘기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과 뭇 생명과 더불어 한번쯤 살아볼만한 좋은 세상이었다고.
더구나 인류 문명이 활짝 열린 정보화 시대까지 살고 가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고 하겠습니다
제사는 산사람을 위한 것이니 꼭 지내기 바랍니다. 지방이나 탕국 같은 것은 절대로 준비하지 말고
내가 좋아했던 꽁치나 조기새끼 몇 마리면 족합니다. 평소에 먹던대로 준비를 하되 저녁 7 시면 지내기 바랍니다. 귀신이라고 배 안 고프것냐 늦은 시간까지 못 기다립니다. 멀고 먼 저승길 나도 젯밥 빨리 얻어 먹고 첫 닭 울기 전에 돌아가야지
내 시집을 꺼내 놓고 식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시낭송을 해 주기바랍니다.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으로 제사 끝.
죄 많은 육신 냄새나는 육신은 흔적없이 잘 치웠겠지! 혹여 어느 곳이고 나의 사망을 위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라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더럽히지 말라 혹여 어느 돌짝에 이름을 새기지 말라. 죽은자를 더욱 더 초라하게 하지 말라.
위생병원 앞에서 길 놀이를 한 번 더 해 주고 하월곡은 조사를 잘 써서 낭송해주기 바랍니다. 그래도 나랑 평생을 같이했던 문학 도반 아니오.
무덤은 필요없습니다. 죽은 후에 흔적을 남길만한 일을 생전에 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가는 세월과 더불어 차츰 기억에서조차 사라질 뿐입니다.
육신이 처리되면 달섬 마당 가 후박나무 아래에 재 한 줌 묻어 주고 나머지는 중랑천 흐르는 물에 보내주기 바랍니다. 생전에 물고기를 여러마리 죽인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 고향 가기를 원하지만 저는 계속 서울에 남고 싶습니다.
생전에도 고향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족합니다. 나의 눈물과 땀과 살이 함께 나이를 먹었던 서울이 좋습니다.
시낭송을 하는 날 밤 유난스럽게 후박나무 잎새가 펄럭거리면 그대들의 시가 썩 마음에 든다는 표시인줄 알기 바랍니다.
시 안 쓴다고 구박 받던 내 친구 석창이와 소연이와 양사장님 미안합니다. 계속 잘 나오셔서 발전시키기 바랍니다.
장례식이 끝나면 송포에게 연락하여 개 한 마리 잡기 바랍니다.
나가리 뒤풀이도 성대하게 하기 바랍니다.
지하철 막차 놓치지 말고.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고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은 날.
산송장 초정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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