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참 덥다.
하지만, 나는 여름이 좋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고 부채질을 계속하며 거리를 다니지만 그래도 여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자두와 수박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 ㅋ)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짧고 임팩트있는 연극 한 편을 보았다.
75분 공연의 2인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제목이 일단 맛깔스럽다.
내가 늘 집에서 만드는 식사인데, 연극으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다.ㅋ
약간 어리버리한 만화가의 집에
능청맞고 마침표 하나 안 찍고 술술~~ 썰(?)을 푸는 도서판매 영업사원의 등장으로 극은 시작된다.
아주 지능적인(?) 전략으로 만화가의 집으로 들어간 영업사원.
특유의 달변으로 만화가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대학교에 갓 입학해서 당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당시 돈암동에 살았던 나는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 입구 역에서 한 남자에게 붙잡혔다(?).
어리숙하고 (좋은 표현으로하자면, 순진무구^^;;)
사회경험 전무한, 한마디로 맹~한(?) 대학 신입생였던 내가 그 남자의 표적이 된 것이다.
암튼 나는 그 남자의 말에 속아서 도서 전집을 할부로 구입하고 말았다 ㅠ.ㅜ
나중에 집으로 배달된 책들은 어디 도서관 구석에서나 박혀있을 법한 구닥다리(?) 한물간 책들이었다.ㅍ,ㅠ
울 부모님은 그 상황을 보시고 입을 딱 벌리셨고. 흑~
암튼 나는 아이들 가르친 알바로 벌은 용돈들을 반 년 넘게 꼬박꼬박 은행 지로로 냈다.
그 수업비(?)는 평생 내게 큰 교훈을 줬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나쁜 사람도 많다는 것을.ㅍ.ㅠ
암튼 그렇게 영업사원은 기를 쓰며 만화가에게 백과사전 세트를 팔려고 애쓴다.
온갖 감언이설과 변죽으로 만화가를 올렸다~ 내렸다~를 하며 결국 계약서에 싸인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그냥 웃고 보는 코믹 분위기였다.
그런데 만화가가 카드를 가져간 친구를 기다리며 함께 밥을 먹자고 하면서 극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연극 앞부분에서 영업사원과 만화가가 주고 받던 코믹한 대사들이 복선이었음을 극 중반에서부터 알게된다.
말.
이 연극은 무심코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과 파동에 대한 고찰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악인가, 선인가?
무심코 내뱉는 말과 행동이 어떤 인간관계로 확장되거나 소멸되는가?
극 중반부터 펼쳐지는 반전이 드러나며 섬뜩했다.
(완전 납량 특집! 찜통 더위에 제대로 만난거다. 헉!)
제목만 봐서 따뜻한 휴먼 스토리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연극이 진행되는 75분 안에,인생에 대한 사유가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오롯이 배여있다.
"인생에는 가고싶은 길과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기다림이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알을 세는 거죠." - 영업사원 말.
"가정식 백반을 먹고 싶었어요. 가정식 백반은 가족끼리 먹는 거잖아요. 나는 그래서 가정식 백반을 누군가와 꼭 먹고 싶었어요."
- 만화가 말.
나는 대사들을 일일히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저 대사들은 내 맘에 꽂혔다.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것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알을 세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소 위로가 되었다.
(가슴은 턱 하고 막히지만^^:;)
내가 늘 집에서 만드는 집밥(?)이 누군가에게는 꼭 하고픈, 하고 싶은 상황이라는 것이 짠했다.
아, 특히 더울 때 식사 준비하는 것에 짜증을 내곤했는데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사춘기 절정의 아이들과 전투(?) 치르면서
무수히 내뱉었던 언어의 화살과 창과 총알들과 대포탄과 공갈탄(?)이
얼마나 무서운 파괴력을 가졌는지도 이 연극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2012년 7월 더위 속에서 보았던 이 연극은
내게 경고했다.
"말 함부로 하지 마!"
첫댓글 사춘기 아이를 기르시나 봐요^^ 날마다 소리지르고 전투중 이지만 집밥을 해서 먹이시는 엄마 파랑새님이 계시는 한 아이들은 무사할거란 생각을 해 보아요. 그리고 언젠간 감사할거란 생각도..^^♥
요즘은 제가 사춘기 아이들에게 사육(?) 당하고 있다는 느낌.^^;; 암튼 방학동안만이라도 묵언(?) 수행하려고 부단히 애쓰는 중임다.ㅠ.ㅜ
넘 더워서 아무생각안나는 요즘, 느낌 좋~은 연극한편 보는것도 좋으련만..
파랑새님 나도 요즘 수박이 막 땡겨서 열심히 먹는데, 마구 잡살이 찌네요^^
이 연극 함께 본 친구 왈. "파랑새야~ 넘 살 빼려고 하지마~ 울 학교 썜들이 그러더라~ '살'이야말로 '자연 보톡스'라고~" ㅋㅋㅋ 특수교육 교사인 친구 말이었어요..... 이 날 이후 나의 살(?)들을 사랑하게 된 파랑새였슴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