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산~일영봉 산행기
잿빛 안개가 사위(四圍)를 흐릿하게 색칠을 한 도시의 아침 풍경은 하루 일을 나서는
생활인이나 산행을 나서는 무직자들이나 두루 반가운 일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생기를 잃기 쉬우며 활기까지 떨어뜨리게 마련이고,
가뜩이나 피로에 지친 시력은 주위 분위기에 편승하여 명암과 피아의 구별에 혼란을 불러오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도 있으며,게다가 흐릿한 조명은 답답증을 호소하고 축축하고 눅눅한 환경에
우울과 짜증을 솟아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무슨 내용을 살펴보는지 거북이처럼 목을 주욱 늘여빼고 스마트폰의 액정을 열심히
들여다 보는 대부분의 군상들,바글거리는 인파속에 대화는 뜻 모를 심연으로 사라지고
고독은 도시의 거리를 문명의 이기들이 장악한 정적과 고독과 무관심의 강물이 되어
비감함을 묻은 채 쉼없이 그리고 소리없이 너울거린다.
몇 주 전 고령산 산행 때의 겪은 전력(前歷) 덕분에 들머리에의 도착시간 과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진다(350번 버스).
오늘 산행(개명산 형제봉~국수봉~응봉~일영봉)의 들머리인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의
권율장군 묘소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20분 쯤이 된다.
임진왜란의 영웅 권율은 금산의 배티고개에서 전주로 진격하는 1만여 왜군을 대파하였고,
오산 독산성(세마대)에 진을 치고 왜군이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으며,
서울을 회복하려고 행주산성으로 진을 옳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2800명의 군사로써
3만의 왜군을 물리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올렸다.
빙 둘러싼 야트막한 울타리를 돌아 정문으로 다가서니, 육중한 대문은 빗장으로 단단하게
채워져 있다.다시 담을 따라 우측으로 이동을 하니 음식점 왼편 뒤란으로 부시럭거리며
숲쪽으로 다가서니, 음식점 아낙이 그곳으로는 묘소로 이르는 길이 없으니 정문으로나
가보시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우린 이미 그곳을 다녀왔으니 입을 닥치시라 속으로 한마디 일갈하고, 본 체 만 체하고
담장이 끝나는 근방에서 일지매 월담하듯이 잽싸게 담을 넘는다.이미 여러 차례 이러한
사태가 종종 이루어 진 모양인지 작은 길이 닦여있다.
월담을 강행하였으니 주위 환경은 금새 묘소 분위기로 바뀐다.
묘소는 산자락을 따라 3단으로 이루어 졌다.
맨 윗쪽 상단에는 권율장군의 부친인 권철을 모셨고,그 아래 중간 턱에는 권율의 형인
권순의 묘소로 삼았으며, 군율장군의 묘소는 맨 아래에 모셨다.
그의 묘 좌우에는 전(前)부인 창녕조씨와 후(後)부인인 죽산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상석 그리고 향로석과 동자석 1쌍이 있고,좌우로는 망주석과 문인석 1쌍도
있다.정문에서 바라 볼 때 우측으론, 비각과 권율장군 신도비과 차례로 자리하고 있으며
좌측으로 묘지 아래로는 재실이 자리하고 있다.
3단으로 꾸며놓은 묘소들 우측으로 형제봉으로 향하는 산길이 나 있으며 초입에는
산행안내를 맡은 이정표가 형제봉을 가리킨다.다갈색의 가랑잎으로 수놓은 산길은
이따금 두툼한 목재로 꾸며놓은 계단길로 바뀌기도 한다.목재 계단은 방부처리와
방충처리를 하지 않았는지 곳곳이 부식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PP로프를 이용한 오르막의 산길이 나타나는가하면 내리막 길의 미끄러운 산길이
산객의 빈틈을 매섭게 파고든다.가랑잎속에 감추어진 미끄럽고 날카로운 얼움덩이들이
허연 이빨을 드러낸 산길을 조심스레 이어가는 다섯 노마들,뿌연 사위는 아직도 심통을
거둘줄을 모르고 늙은 산객들의 심기를 사뭇 불편하게 만든다.
이때,뿌연 운무에 덮힌 숲길 좌측 등성이로 잿빛의 장방형 구조물이 실루엣을 드러낸다.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자리하고 있는 송암천문대다.
장방형의 건축물 우측으로 불쑥 솟아있는 돔 형태의 천문대 시설을 뒤로하면 이윽고
노송들이 끌밋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고 작은 돌탑이 한구석에 몸을 사리고 있는 무명봉에
오르게 된다.형제봉과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개명산 멧부리 실루엣이 잿빛 색깔로 화답한다.
개명산 형제봉은 여기서 0.6km 남았다고 이정표에는 적고있다.
해발 546.8m의 형제봉에는 커다란 화강암 빗돌이 우뚝하다.인근의 고양동에서 왔다는
중년의 한 사내는 아직도 힘이 남아도는지 팔굽혀 펴기를 열심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산객들을 보고 멋적은 자세를 취한다.
쌉살하고 구수한 커피 한 잔에 발품의 노고를 달래본다.시간은 정오를 넘긴 시각이다.
이제라도 우윳빛 운무가 걷힌다면 그동안 시무룩하던 심기도 달래질게고 축처졌던 눈매도
생기가 돋아날텐데 사위에 가득한 운무는 미동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심통만 늘어났는지 바람의 세기만 더욱 날카로워져 간다.
헬기장으로 꾸며진 삼거리봉에 닿는다.이정표가 가리키는 바에 따르면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목암동( 2.6km)을 가리키고 있으며,좌측으로는 일영리(2.4km)를 가리키고 있다.
다음 일정이 국수봉을 올라야 하니 이곳에서는 우측으로 난 목암동 방면의 산길을
따라야 국수봉에 닿을 수 있으며 거기까지 갔다가 또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일영리 방면으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이곳에서 빈 뱃구레를 채워야 한다.
아까부터 먹는 타령을 하는 만고강산이 반가워한다.싸늘한 바람이 인정머리없이 불어댄다.
후드를 잔뜩 뒤짚어 쓰고 겸손한 상차림이지만 맛있게 복강(腹腔)채우는데 여념이 없다.
양(量)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한 잔을 권하며 너스레를 빠뜨리지 않는 청아대장의 표정에
여유와 느긋함이 잔뜩 묻어있다.헬기장 삼거리봉을 뒤로하면 국수봉까지는 높낮이의 굴곡이
완만하여 산책거리 코스나 다름없는 느긋한 산길이다.20여 분 정도 소요가 됐을까?
국수봉 멧부리에는 짙은 갈색의 목재로 집 모양과 대문 형태의 모형물을 설치해 놓았고
그 옆으로는 까만 오석으로 만든 정상빗돌이 서 있다.해발 408m.
빗돌 한쪽은 개명산 국수봉이라고 써 있으며, 뒷면에는 개명산 주당봉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 빗돌에 써 있는 이름을 살펴보면 명칭이 두 개인 셈인데,무슨 곡절과 연유가 있는 것인지.
다시 조금 전 오찬을 즐겼던 삼거리 헬기장 봉우리로 발길을 돌린다.바람 결이 오전보다
날카로워 졌다.쟈켓을 꺼내 들치고 후드까지 깊숙이 눌러쓴다.바람이 이렇게 불어와도
사위는 아직도 뿌연 심통을 거둘줄 모르며 옹고집을 부린다.
헬기장 삼거리를 뒤로하면 이내 공동묘지 옆을 지나게 된다.신세계공원묘지,산등성이
우측으로 대단위로 조성되어 있는 공동묘지다.묘지마다 가지가지 색깔을 머금은 조화가
다채롭다.영혼의 안식처이자 귀신(?)들의 삶의 현장이다.
먹는 타령에 이어 군밤타령으로 노마(老馬)들(청아,달거,신바람,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만고강산의 타령이 숲길에 울려퍼진다.휘적휘적거리고, 두런두런거리며 화기애애하니,
노마들의 산행은 이런 탓에 해지는 줄 모르고 날 새는 줄 모르는가 보다.
해발 316m의 응봉을 특징짓는다면 돌탑 두 개의 존재다.존재를 밝히는 주요 표시물인
이름표식이나 빗돌이 존재하지 않고있다.이정표에는 일영리가 1.1km 남았다고 귀뜸한다.
시나브로 고도를 낮추어 나가는 산길은 신설중인 도로(장흥~송추)의 지하도로 이어진다.
응봉을 끝으로 개명산의 산자락을 뒤로하는 발걸음은 쉼없이 일영봉을 향한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면 이내 세멘트 도로로 이어지며, 곧바로 장흥면 소재지인 일영리다.
산자락을 따라 성기게 들어선 농가를 뒤로하면 차도가 나오고,좌측으로 차도를 따르면
장흥면 소재지 번화가로 들어서게 된다.10여 분을 차도를 따르다가 번화가를 벗어날
무렵이면 오른 쪽으로 석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나는데,곧바로 다리를 건너가면
곧장 황토숯가마로 향하는 길을 따라야 한다.
비탈진 아스팔트 도로를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요양원을 지나게 되고 우측으로는
참숯가마를 지나게 된다.이윽고 "장흥숲길"이라는 간판이 입산객을 반긴다.
참숯가마에서 풍기는 참나무 타는 냄새가 숲길에 가득하게 퍼지며 코끝을 자극한다.
해가 저무는 방향으로 응봉이 짙은 잿빛의 실루엣으로 성큼 다가오고
응봉 중턱에 자리한 청련사 전경이 아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영봉을 오르는 산길이 가파르다.알몸을 드러낸 나목들이 차가운 하늬바람에
부르르 몸을 떤다.가뿐 숨을 몰아쉬며 된비알을 올라서니 일영의 멧부리는 저만치서
다시한번 인내를 강요한다.시나브로 내려섰다가 올러서야 할 된비알을 기신기신 올라서니
일영의 멧부리는 헬기장이다.해발 443.8m의 일영봉에서의 조망은 화려했을 것이 틀림없다.
해가 뜨는 쪽에서 해가 떠 있는 방향으로 펼쳐있는 사패산과 도봉산 그리고 북한산으로의
파노라마 능선이 장쾌함을 입산객들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뿌연 운무에 갇혀있는 파노라마 능선의 아쉬움을 희미한 잿빛 실루엣이 대신한다.
하늬바람이 모질게 옷깃을 파고든다.
하산은 일영봉 북쪽능선을 따르기로 한다.귀경과정의 차량시간에 따른 조치다.
20여 분 북쪽능선을 따르면 콘크리트로 구축이 된 군의 진지 곁을 지나게 되고
머지않아 삼거리가 나오는데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반갑다.
좌측의 내리막인 권율장군묘소 방향을 따르면 얼마지나지 않아 좌측으로 조각
아뜰리에로 내려서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우리 일행은 직진을 해야 한다.
이윽고 돌머리삼거리 방향으로 발길을 이어나간다.현대랜드 입구,눈썰매장과
참숯가마와 수영장 그리고 한옥펜숀등의 시설을 갗춘 유원지다.곧바로 석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100여 미터 이동을 하면 돌고개 삼거리다.
초가지붕의 음식점 옆으로 버스정류소가 있는데 버스 도착시간은 4시10분이다.
버스가 이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20분 가량이 남아있는데,온종일 고집을 거두지 않고
심술을 부리고 있는 뿌연 운무와 쌀쌀맞은 하늬바람의 행태는 여전하다.
그 고집을 꺾으려면 신(神)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매(靈媒)를 섭외하여야 하는데... 무당이나 박수? 아니면 목사나 신부?,
그렇지 않으면 스님이나 이맘?...
(세상만사, 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불가능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