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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의 ’설날 널뛰기’.
김준근 金俊根
생몰년 미상 生沒年 未詳
한말 풍속화가. 호는 기산(箕山).
출신배경과 사승관계(師承關係)는 미상이다.
1886년 부산 초량에 살면서
고종의 초청으로 내한한 제독 슈펠트(Shufeldt, R. W.)의 딸에게
우리나라의 민속과 풍속을 그려주었다.
1889년에서 1890년 사이에 선교사 게일(Gale, J. S.)을 부산에서 알게 된 뒤
1892년 게일이 선교임무를 띠고 원산에 체류하였을 때,
그를 따라 원산에 가서 한역 《텬로력뎡》의 삽화를 맡아 그렸다.
이로 미루어볼 때 기독교인으로서 구미의 외국인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그들에게 한국의 풍속을 그려주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가 남긴 풍속도들은
1889년 북경 주재 네덜란드 공사관의 서기관인 라인(Rhein, J.)에 의하여 수집되었으며,
1894년경에는 제물포의 세창양행(世昌洋行)이 60점이 넘는 그의 그림을 구하여
독일 함부르크로 보낸 것 등이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묄렌도르프(Molendorf, P. G. von)도 그의 그림들을 수집하였다.
19세기 후반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민속을 다룬 300점이 넘는 그의 풍속화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조선 말기의 풍속화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
기산 김준근의 솟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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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金俊根)
조선 말기
풍속
종이에 담채
28.5 × 35㎝
독일함부르크인류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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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장이>는 간단한 반주에 맞추어 곡예를 하는 광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긴 막대 끝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사람,
나무컵처럼 생긴 그릇으로 공을 올리고 내리며 재주를 부리는 사람 등
광대들의 여러 모습을 담았다.
그의 풍속화는 민속적인 내용의 다양한 소재를 특징으로 하며
선염(渲染) 기법을 사용한 다채로운 색을 썼다.
그러나 표현된 인물의 모습은 얼굴윤곽을 뚜렷하게 표현하긴 하였으나
무표정한 얼굴에 모두 비슷한 형태를 지녀
김홍도 풍속화가 주는 생생함을 느낄 수 없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김준근의 ‘액막이 무속 의식’.
하멜은 조선인들이 의사보다는 장님이나 무당에게 더 많이 의존하는 것을 보았다.
글항아리 제공
작 가 : 김준근 단오추천 (추천=그네 추:革+秋, 천 革+ 遷)
제 작 연 대 : 19세기
소 장 처 : 개인소장
재 료ㆍ크 기 : 종이에 채색, 31.0×38.7㎝
단오날 그네 타는 장면을 그린 「단오날 그네타기」는
그의 독창적인 화풍이 정립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 왼쪽에 있는 “조선 원산항 김준근” 이라는 관서로 보아
원산항에서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우선 밝고 명랑한 색상에 주목하게 된다.
보라색, 황색, 주황색, 분홍색, 연녹색, 청색 등
지금까지 풍속화에서 볼 수 없었던 다채로운 색상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로 펼쳐진 안정된 구도 속에서
그네 타는 움직임이 오히려 조용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돈되어 있다.
특히 왼쪽에 약간 구부러져 올라간 네 그루 소나무의 어울림을 배경으로 한 구성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소나무가 그네의 지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물을 보면 얼굴이 크고 이마가 넓으며 하관이 빠른 계란형의 얼굴이며
신체 비례는 5~6등신으로 짤막하다.
얼굴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로 비슷하여
한가족같이 보일 정도로 보편적으로 표현하였다.
옷주름에는 가는 선묘를 사용하였고 윤곽선과 주름 가장자리에는 음영을 넣었다.
화면 왼쪽에 조선 원산항에서 김준근이 그렸다."는 제발(題跋)이 써있다.
조선이라고 나라명을 밝힌 것은 이 작품이 외국인을 위해 제작한 것을 의미한다.
원산항은 19세기 말에 외국인을 위해 개방한 개항장이고,
여기서 김준근은 외국인에게 팔 풍속화첩을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류의 풍속화를 필자는 개항장 풍속화라 부른다.
김준근. 장가가고. 19세기말. 비단에 채색. 30×36.
이미지 제공 갤러리현대 연합뉴스 www.yonhapnews.co.kr
조선회화: 쌍륙
'기산풍속화첩 (箕山風俗畵帖)' 중에서
김준근 (金俊根: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19세기 후반 작품
종이에 담채
18cm x 25.5cm
독일 함부르크 인류학박물관 소장
한말의 풍속화가. 호 기산(箕山). 성장 배경은 알 수 없다.
1889년 경 부산에서 살 때 선교사 J.S.게일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92년 게일을 따라 원산에 가서 한역 《텬로역뎡(天路歷程)》의 삽화를 맡아 그렸다.
그 외에도 19세기 후반 생업·놀이·형벌·의례 등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민속을 담은 300여점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한국을 다녀간 학자나 선교사들을 통하여 서양에 전해졌다.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잘 알려졌으며,
95년에는 독일 함부르크민속박물관에서 그림이 전시되기도 하였다.
국내에는 숭실대학박물관의 풍속첩이 있고,
독일의 함부르크민속박물관 소장 《기산풍속도첩》이 있다.
쌍륙놀이는 장기와 윷놀이의 특성이 혼합된 놀이다.
쌍륙은 중국 한나라의 서역 개척후에 전래된 서역의 유희로
동생이 죄를 지어 옥에 갇혀 참형에 처하게 되자
이때 홀로 여러 무리를 치는 것을 쌍륙(악삭)놀이로 보아 왕에게 풍자한 것이 그 기원이다.
백제시대 때부터 즐겼던 놀이로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민속화에서도 그 놀이모습을 볼 수 있다.
인도지방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쌍륙은
동쪽으론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고,
서쪽으론 중동지방을 거쳐 유럽, 아프리카지 역까지 전파됐다.
나라별로 놀이방법이 약간 차이가 있으나
지금은 통일된 놀이방법으로 세계선수권까지 개최될 정도이다.
우리의 전통 놀이방법과 비슷한 국제규칙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각각 주사위 2개와 자기 말 15개씩을 일정한 방법으로 판 위에 배열한 후
주사위 2개씩을 던져 나온 숫자만큼 자기 말을 이동시켜 판을 돌아 나간다.
상대보다 먼저 자신의 말을 모두 판 밖으로 나가게 해야 이기게 되는데
도중에 상대방의 말을 잡거나 못 가게 막는 등 서로 견제하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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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때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이 남긴 '태장치고'(곤장치고)라는 제하 형벌 풍속화.
첫댓글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잘 알수 있게 그려놓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