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진설에도 말이 많다. 여북 해서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 말라」는 말이 나왔으며.
「깎아 놓아라 굴러간다」는 풍자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에 조(棗)(대추조)를 찾아보면 「조동율서(棗東栗西)」라고 되어있으나 예문(禮文)에는 없는 말이다. 또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나 이것도 찾아 볼 수 없다.
예문(禮文)에는 조서률차(棗西栗次)라 했을 뿐이다. 퇴계(退溪)는 「어동육서(魚東肉西)로 생동숙서(生東熟西)와 적유삼종(炙有三種)(어축치(魚縮雉))이며. 어육(魚肉)은 천산(天産)이라 양(陽)이니 기수(奇數)요. 과곡(果穀)은 지산(地産)이라 음(陰)이니 우수(偶數)라 약가빈난변(若家貧難辨) 칙의음양수(則依陰陽數)하여 멸품(滅品)도 미유불가(未有不可)」라 하였다. 치적(雉炙)은 계적(鷄炙)으로 대용한다. 또 사계(沙溪)는 「상례비요(喪禮備要)의 진설도(陳設圖)는 판본(板本)의 오야(誤也)」라 하였고 . 퇴계(退溪)는 묘사(墓祀)에는 진찬례(進饌禮)가 없으나 반갱(飯羹) 불용(不用)도 무방하다고 하였지만, 구봉(龜峰)은 원야례(原野禮)에도 반갱(飯羹)이 있으니 반갱(飯羹)을 아니 써서는 안되며, 종헌(終獻)때 계반개(啓飯蓋)하고 삽시(揷匙) 후에 부복하라고 하였다.
진설 요령은 집사자(執事者)의 좌(左)가 서(西)요 우(右)가 동(東)이다. 따라서 젯상의 앞이 남(南)이 되고 뒤가 북(北)이 된다. 남(南)에는 제상 앞 중앙에 향탁을 놓고, 그 동(東)편에 주준상(酒樽床), 서(西)편에 축(祝)탁을 놓는다. 향탁 위에는 후면 중앙에 모사를 놓고 그 뒷줄에 합동로서(盒東爐西)로 향합과 향로를 놓고. 주준상 위에는 강신잔반(降神盞盤), 퇴주그릇 주전자 술병을 놓고, 향탁 앞에 배석(拜席))이며 북면(北面) 중앙에 신위(神位)인데 고서비동(考西?東)이다.
제수진설에도 말이 많다. 여북 해서 「남의 제사에 곶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참견 말라」는 말이 나왔으며.
「깎아 놓아라 굴러간다」는 풍자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대한한사전(大漢韓辭典)에 조(棗)(대추조)를 찾아보면 「조동율서(棗東栗西)」라고 되어있으나 예문(禮文)에는 없는 말이다. 또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나 이것도 찾아 볼 수 없다.
예문(禮文)에는 조서률차(棗西栗次)라 했을 뿐이다. 퇴계(退溪)는 「어동육서(魚東肉西)로 생동숙서(生東熟西)와 적유삼종(炙有三種)(어축치(魚縮雉))이며. 어육(魚肉)은 천산(天産)이라 양(陽)이니 기수(奇數)요. 과곡(果穀)은 지산(地産)이라 음(陰)이니 우수(偶數)라 약가빈난변(若家貧難辨) 칙의음양수(則依陰陽數)하여 멸품(滅品)도 미유불가(未有不可)」라 하였다. 치적(雉炙)은 계적(鷄炙)으로 대용한다. 또 사계(沙溪)는 「상례비요(喪禮備要)의 진설도(陳設圖)는 판본(板本)의 오야(誤也)」라 하였고 . 퇴계(退溪)는 묘사(墓祀)에는 진찬례(進饌禮)가 없으나 반갱(飯羹) 불용(不用)도 무방하다고 하였지만, 구봉(龜峰)은 원야례(原野禮)에도 반갱(飯羹)이 있으니 반갱(飯羹)을 아니 써서는 안되며, 종헌(終獻)때 계반개(啓飯蓋)하고 삽시(揷匙) 후에 부복하라고 하였다.
진설 요령은 집사자(執事者)의 좌(左)가 서(西)요 우(右)가 동(東)이다. 따라서 젯상의 앞이 남(南)이 되고 뒤가 북(北)이 된다. 남(南)에는 제상 앞 중앙에 향탁을 놓고, 그 동(東)편에 주준상(酒樽床), 서(西)편에 축(祝)탁을 놓는다. 향탁 위에는 후면 중앙에 모사를 놓고 그 뒷줄에 합동로서(盒東爐西)로 향합과 향로를 놓고. 주준상 위에는 강신잔반(降神盞盤), 퇴주그릇 주전자 술병을 놓고, 향탁 앞에 배석(拜席))이며 북면(北面) 중앙에 신위(神位)인데 고서비동(考西?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