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송동[晩松洞]
경기도 양주시 양주2동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만송동(晩松洞)이라는 땅 이름은 회만리(回晩里)의 ‘만’자와 송랑리(松浪里)의 ‘송’자를 합해서 나왔다. 회만리는 회만이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으로, 마을 중앙에 야산이 자리하고 있어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를 갈 때 돌아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신라와 당나라의 싸움이 벌어진 매초성 전투에서 당나라 군대가 대패하고 말을 돌린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송랑리는 소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만송동의 옛 이름은 만송리이다. 만송리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에 처음 확인된다. 이곳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까지 고주내면 회만리와 송랑리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이후, 회만리 전체에 송랑리 일부를 병합하여 새롭게 주내면 만송리로 정하였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회만리가 회탈리(回脫里)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2000년 10월 1일 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양주읍 만송리가 되었다가,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이 양주시로 승격되면서 양주시 양주2동 관할의 만송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남쪽의 천보산 줄기로 둘러싸인 산지와 북쪽의 넓게 펼쳐진 농토로 대별된다.
현황
만송동은 양주시 양주2동의 중부에 위치한다. 2010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총 4,103가구에 1만 419명[남자 5,136명, 여자 5,28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만송1통부터 만송10통까지 10개 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굴정동(窟井洞)·메루지[면우지(棉右池)]·송랑리(松浪里)·오리골[오리동(梧里洞)]·작은덕고개·중말[중촌(中村)]·해동·회만동(回晩洞) 등이 있다. 메루지에는 죽산 안씨 연창위 종가가 있다. 현재 남쪽 산자락에 레이크우드CC와 MBC문화동산 등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고, 북쪽에 펼쳐진 농토는 아늑한 전원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동쪽은 포천시 소흘읍, 서쪽은 양주시 양주2동의 고읍동 및 광사동, 남쪽은 의정부시 자일동, 북쪽은 양주2동의 삼숭동과 접한다.
참고문헌
『양주군지』(양주문화원, 1992)
『양주 땅 이름의 역사』(양주군·양주문화원, 2001)
양주시청(http://www.yangju.go.kr/)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만송동유물산포지 [晩松洞 遺物 散布地]
경기도 양주시 만송동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물 산포지.
위치
만송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만송동 오리골마을의 북쪽 구릉 사면의 평탄한 경작지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7년 12월 양주군의 요청에 따라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작하여 1998년 9월 30일까지 조사를 마쳤으며, 조사 보고서인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간행하였다. 이때 고려 및 조선 시대의 토기나 백자완, 숫돌 등이 채집 보고되었다. 2006년에는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출토 유물
만송동 유물 산포지에서는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생활 유물인 토기 구연편(口椽片)과 백자완(白磁碗), 와구부(瓦溝部)[기왓고랑]만 남은 수키와, 옹류의 토기 저부편(低部片), 소형 숫돌 등이 수습되었다.
현황
조사 당시 만송동 유물 산포지는 양주시 만송동 오리골마을 북쪽 구릉 사면을 평탄하게 경작한 경작지 위에 형성되어 있었으나 현재 국도 3호선 건설 공사로 인해 구릉 서사면의 대부분이 절개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고려 및 조선 시대의 생활 유물로 보아 만송동 유물 산포지 일대가 일찍부터 삶의 터전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양주군, 1998)
『문화유적분포지도』-양주시(양주시·상명대학교 박물관, 2006)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2023-03-16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