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지기는 1954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1955년 부곡국민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8월말에 대구로 전학을 가서 고향소식은 학교 방학 때에나 고향을 찾아서 고향의 변화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런데 부곡경로회가 제가 13살 되던 해인 6학년이 되던 1959년에 부곡리경로회가 설립되고 부곡리의 경로잔치는 어릴적에는 볼 수가 없었다. 단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나 고향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기억 이외에는 동네행사를 구경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학교 교단에서 물러나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야 자유의 몸이 되어 2년간을 그간 쉬지 못했던 휴식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지요.
그런데, 나의 자유로운 시간도 2009년도 9월부터 누렸지만, 2년이나 지나서 멀쩡하시던 아버지의 병환으로 병원을 드나들면서 나의 휴식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너무 허리가 아프시다고 병원을 자주 다녔던 일이 쉽게 고쳐지지를 않아서 전신MRI를 스켄하고서야 병이 깊어서 돌이킬 수 없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가족이 번갈아 가면서 당번을 서고, 호스를 꼽고 요양병원으로 후송하고 그러고는 내가 당번을 하던 날 너무나 숨쉬는 것이 힘들어 하셔서 가래를 청소하고 주무시는 모습을 보고는 차로 유턴하여 병원앞을 지나는데, 연락이 와서 임종을 하셨단다.
2011년 6월 24일로 더 이상 아버지의 살아계신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아버지 만큼은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러 계시기를 빌었지만, 그 빌었던 마음이 너무 경망스러웠는지 하느님은 들어주지 않았다. 늘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지 못한 걸 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리며, 그래도 피붙이 부모 중에 제일 가볍게 응석을 부렸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이 고향 경로잔치에는 내가 대신 참석하는 서글픈 신세가 되었다.
오늘도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한 어르신이 두어분 계셨지만, 아버지처럼 마음내키는 응석을 부릴 분들이 아니라서 한켠으로 쾽하니 빈자리를 느끼며 즐거워야 할 잔치에 속이 아려왔다.
어머니를 모신 상여를 따라 4살인지 5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상주가 되어 따라나섰던 기억도 없는데, 어릴적에 함께 했던 친구가 그때의 광경을 얘기해 주어서 그랬었는지 아닌지 가물거리기만 하다. 단지, 어머니의 제사에 술잔을 올린 기억은 희미하지만, 상주라고 제삿상 앞에서 술잔을 올리고 절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의 저편에 내동댕이 처버리고 싶다.
동네에서 치르는 경로잔치는 나의 기억에 남는 것은
2003년 5월 20일 부곡리 경로잔치
2008년 5월 18일(일) 부곡국민학교 총동창회 및 주민초청 경로잔치
2012년 10월 14일(일) 부곡국민학교 총동창회 및 지역주민 초청 경로잔치
2013년 5월 10일 부곡리 경로잔치
2014년 5월 10일 부곡리 경로잔치가 지나간 부곡의 경로잔치 행사였고,
2024년 5월 11일(토) 마을주민 건강증진 터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유래없는 대성황의 경로잔치를 오늘 열었다.
오랜만에 마을 주민 모두가 한자리에서 맛난 음식과 유흥과 선물이 주어졌고 즐거운 하루 흥겹게 보내게 되었다.
더 많은 행사의 모습이 있지만, 자료 게시가 한정이 되어 뒤풀이 모습을 올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부곡리동장님, 경로회 석장골과 아랫마을 회장님과 총무님, 그리고 전임 동장님 사회를 보시느라 모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