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앓는 딸 둔 청각장애 천문자 할머니
1남 3녀 자식들과도 연락 힘들어 생계 ‘막막’
62세 딸, 남편·시댁 스트레스에 화병 앓아 고통
“저기 보세요. 또 찾아 왔잖아요. 온다. 온다. 아이고, 저기 온다” 힘없이 누워 잠자던 딸 숙희 씨가 갑자기 눈을 뜨며 허공에 외쳤다. 어머니 천문자(87)씨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야야, 도대체 누가 온다 그라노?”, “누구긴 누구에요, 문 뒤에 저기 있잖아요. 아이고, 계속 날 따라와서는 못 살게 굴어요. 저기 온다. 온다. 엄마, 빨리 내보내요” 숙희 씨는 팔을 내밀어 허우적댔다. 어머니 천 씨가 울먹이며 말렸다. “숙희야, 제발 정신 차려라. 누구를 내보내라 그래?” 그렇게 밤을 꼬박 새버린 딸과 어머니, 둘의 주름진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정신장애 2등급. 천 씨 없인 못 사는 딸 오숙희(62)씨는 막연한 두려움일지 모를 그곳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천 씨는 그런 딸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예?… 뭐라 그랬습니까” 되묻는 일상
환갑이 넘었을 만큼 나이가 지긋해진 딸 숙희 씨는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고, 혼자 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돼버렸다. 멀쩡하게 있는 듯 하다가도 혼자 깔깔대고 웃다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울게 된다고 하니 옆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어 옆에서 계속 달래기도, 같이 운적도 많았다. 어쩔 때는 왜 우냐고 윽박질러 보기도 하고….
“아이 참, 그만 해. 왜 이렇게 못 알아먹어!” 천 씨가 하소연을 하는 중에도 숙희 씨는 큰 소리로 어머니의 말을 가로 막는다. 당신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선 듣기 싫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천 씨가 계속 말을 이어가자 이번에는 눈을 부릅뜨고 물건을 들어 던지겠다는 표현을 한다. 결국 엄마 천 씨는 거기서 말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잠잠해지자 얘기도 이어졌다.
“때리고, 밀고, 안 되면 물기도 해. 다리도 시원치 않아 서 있기도 힘든데, 힘으로 밀면 넘어지지 별 수 있어. 그러고 있자니 갑자기 귀가 안 들리더라구…. 근데 그래도 어떡해. 남 같으면 평생 원수질 일이지만 내 딸인 걸” 증세가 심해졌을 때 그를 말리는 천 씨에게 숙희 씨가 휘두른 폭력으로 청각이 상실됐고 얼마 되지 않아 청각장애 4급을 판정 받았다. 그럼에도 보청기는 불편해 그냥 빼고 지낸다는 천 할머니는 취재진과의 대화 내내 “예? 예?… 뭐라 그랬습니까” 라면서도 연신 괜찮다고만 되풀어 말한다.
●지지 않는 ‘마음의 병’에 정신병원 입원
특정기간 병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어 관리가 힘들 때면 천 씨는 딸을 어쩔 수 없이 연중 3회에 걸쳐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물론 천 할머니는 자신의 1남 3녀 중 큰 딸인 숙희 씨의 정신장애가 어디서 왔는지 잘 안다. 먼저 시집 간 숙희 씨에게 언젠지 기억도 못할 만큼 꽤 오래 적부터 말끝마다 ‘쓸모없는 ×’, ‘아니 그것도 못해’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해대던 시댁 말이다.
특히 달마다 20만원만 쓱 쥐어주고 생활비로 쓰라는 남편 때문에 아이 둘을 키우며 항상 돈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래도 여자라서, 엄마라서 강할 수 있었다. 갖고 있는 건 몸뚱이뿐인데, 이 몸뚱이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처럼 열심히 살면, 아이들도 어떤 역경을 맞든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여자와 놀음에 빠진 남편은 연락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결국 이혼으로 어머니 천 씨와 새 삶을 시작했지만 그런 딸은 자주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했다. “마음 고생 몸 고생,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는데 가정이 그렇게 무너지니 스트레스가 컸나 봐. 그러더만 증세가 심해져 화병이 났는지 가슴을 치면서 힘들어 했어. 정신이 온전치 못해 자기도 모르게 막말을 퍼붓고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폭력을 휘두르는데 가슴이 미어지더라구….”
●자식들마저 외면해 장애 딸 손발 돼
“엄마에게 청각장애를 입혀 나도 많이 슬펐어요. 근데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막 짜증을 부리고 엄마를 때린 거에요. 한 번은 엄마가 경로당에 간 새에 혼이 찾아와서 내가 나가려고 하면 사람처럼 나를 밀고 들어와서 ‘이년! 이년!’ 하면서 발을 잡고 놓아주질 않으니 이방 갔다가 저방 갔다가,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도망치느라 힘들었어요. 엄마 없을 때만 찾아오니까 엄마랑 꼭 같이 붙어있을 거에요” 그런 숙희 씨를 보고 있자니 천 할머니의 마음도 까맣게 타들어 간다.
또 할머니는 자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이렇게 됐다는 자책도 했다. 슬하에 있는 1남 3녀 중 숙희 씨 말고도 멀리 사는 두 딸의 형편이 어렵고, 그나마 울산에 거주하는 아들은 지병이 있어 본인 약값을 대는데도 살림이 빠듯하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인 천 할머니네 역시 생활고에 시달려 생활수급비 45만원 중에 방세 10만원을 빼고 나면, 딸 치료비와 고질적인 무릎관절염, 심장질환 등 약값에 공과금 납부도 해야 하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가끔 외손들한테 사정이 어려우니 손을 벌리며도와달라고 연락한 적도 있지만, 웬만하면 자식들에게 부담되는 말을 하지 않는 천 씨의 성격이기에 그 전화는 마치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처럼 들린다.
●멀기만 한 행복, 생활고 현실 감내
나이 육십둘이 된 딸이지만 천 씨가 손발이 되어 언젠가 자신이 없어도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치료를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꾸준히 병원을 데려가는 등 중증장애인인 딸을 희망으로 돌보고 있다.
여기에 숙희 씨의 두 딸마저도 점차 발길을 끊어 뒷바라지하는 것도 천 씨 몫이 된지 오래. 식사 준비부터 빨래까지 모든 일을 그가 도맡아 하며 무한정의 사랑을 베풀고 있다. “우리 숙희가 건강하고 마음이 편할 때는 며칠 걸러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그러더라구…. 그럴 때면 건강했던 예전 모습이 떠올라서 얼마나 마음의 짐이 되는지, 죽는 게 두렵진 않지만서도 눈을 감아도 늘 딸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생전 약한 소리,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았다는 그가 오죽 힘들고 답답했으면 이렇게 속마음을 쏟아 놓으실까, 속으로 되새기고 되새긴 어머니 천 씨만의 복잡한 심경이 담겼다.
“시집가서 잘 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되버렸으니… 굶어도 같이 굶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내가 없으면 누가 돌봐주겠어요. 풍족하게 살진 못해도 가슴으로 키워 온 내 새끼잖아요”
그래도 “자식이야말로 내 존재의 이유…”라 말하는 천 씨는 오늘도 딸과 해질녘 집 앞 저수지를 돌며 다짐한다.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달라고, 평생 서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살아가겠다고….
글=신유리 기자/사진=허영란·이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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