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사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눈으로 밝은 빛과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만 밝아지면 영의 눈은 어두워지게 된다. 하나님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형체와 은혜는 육신의 눈으로 실감할 수 없다. 하지만 살아계신 전능의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 육의 눈으로 볼 때 이보다 막연한 것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최상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위한 것이다. 사방이 어둠에 휩싸이고 캄캄하여도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시는 위한 십자가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전능의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생의 풍랑을 잔잔하게 될 수 없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피하리이까’ jr'B; (1272 바라흐 jr:b]a,) 통과하다. 도망하다. 지나가다.
할 수 없는 상황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적당하게 그 위기가 지나가기를 바란다. 감당하기 벅찬 일에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거나 두려움과 염려로 도망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성령 충만 이후 제자들은 더 이상 도망하지 않았다. 우리도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어려움의 문제를 통과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과 좌절의 막다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의 힘으로 지나갈 수도, 도망할 수도, 통과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유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우리는 문제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나 현실은 문제없이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우리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보호하신다. 삶과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 영광의 즐거움을 느끼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기에 날마다 은혜를 사모하여야 한다.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영광의 즐거움에 참여하여야 한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극동방송의 프로그램 중 중보기도 요청하는 분들을 위한 시간이 있다. 이분들의 음성은 답답한 심정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토로(마음에 품고 있다가 드러내어 말함)한다. 한결같이 그 사정들이 안타깝고 애처롭다. 하지만 방송을 담당하는 목사님의 기도에 믿음으로 크게 ‘아멘’하며 위로와 소망을 갖는다.
이웃이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힘겨워하고 있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질과 경제적 도움을 주면 좋으나, 그러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 기도로 함께하며 곁에 있어 주어야 한다. 사람이 잘되고 형통할 때는 주변에 함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을 때는 오래 함께하였던 사람도 그 곁을 떠난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고 어느 곳이나 우리와 함께하고 돕는다.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하늘에’ !yIm'v; (8064 샤마임 NFD !yIm'v;) 하늘. 창공.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시며 통치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빈다. 이는 창공을 향해 외치는 헛된 소리에 불과하다. 하늘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사람들의 경배 대상이 아니다. 우리 경배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거하여도, 높은 창공에 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곳에서 함께하신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은 복 중의 큰 복이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라고 말씀한다(시 19:1). 우리는 하늘에 오를지라도 그곳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낙심과 근심의 얼굴이 아닌, 평온함과 소망으로 충만하여야 한다. 어느 곳이든지 우리의 손을 붙잡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시 89:5 여호와여 주의 기사를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대해 하늘이 찬양한다고 말한다. 찬양은 이 땅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하늘은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한다. 높은 곳에 있을지라도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 믿음은 참여하는 것으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운동선수가 대충으로 훈련하고 큰 상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은 남보다 큰 노력과 수고로 하나님 나라의 상을 받아야 한다. 더 열심의 수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므로 하나님의 큰 상을 받아야 한다.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길고 긴 터널이 있다. 끝이 없을 것 같으나 멈추지 않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밖에서 비취는 빛이 보이므로 터널이 끝난다.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꼬일 대로 꼬이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어둠만이 계속되는 동굴에 갇힌 듯하다. 이를 보고 ‘죽음과 같은 인생’이라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함께하신다.
시 139:8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펼찌라도’ [x'y" (3331 야차 C.VHIXCS h[;yXia'w]) 눞히다. 펼치다. 놓다.
야고보는 극심한 고난과 시련이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이를 견딜수 있는 인내를 달라고 기도한다(약 1:3).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펼쳐질 때 그 고난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고난으로 우리를 높이신다. 사탄은 고난의 난이도를 높게 하여 우리 인생이 지옥이 되게 한다. 그러할수록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우리와 더욱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넓게 펼쳐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성령 충만에 의한 기쁨과 평안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주기철 목사는 수많은 못이 박힌 길을 걷는 고통에도 영혼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죽음보다 더 강한 천국의 기쁨이 그 마음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행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음부는 죽은 자가 거하는 곳이다. 우리가 그곳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문제로 인한 두려움, 자신의 자만과 교만, 영적 외로움은 죽음의 시련과 고난을 겪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에 있든지, 음부에 있든지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 항상 함께하심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