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멋진 일요일>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드라마, 일본, 110분, 1947년
가난한 연인의 일요 데이트. 돈은 없고 삶은 궁색하다. 갈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남자는 무기력하게 침체에 빠진다. 여자는 가난하지만 명랑하고 자꾸 남자의 기분을 풀어주고 북돋워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도 번번이 좌절되고 차가운 겨울바람 같이 현실은 냉랭하게 몰아친다. 낭만이란 때론 위안이 되지만 얼마나 무력한가? 하지만 결국 연인은 서로의 마음을 기대어 따뜻한 행복을 느낀다.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은 어디나 비참하다. 비굴하지 않기란 어렵다. 3주 동안 담배를 못 펴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라도 주워 피우고 싶은 남자의 무너진 마음을 여자는 자꾸 일으켜준다.
그들은 결국 어둠 속에 그들만의 미완성 교양곡을 듣게 된다. 성냥팔이 소녀의 꿈처럼, 영화의 관객에게 가난한 연인을 위해 박수를 부탁하는 여자의 호소는 눈물겹다. 5,60년대를 바라본 감독의 호소로 들렸다.
나는 이들의 낭만이 시대를 통찰하거나 꿰뚫을 만큼 투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를 통찰하고 근본을 파헤치고 뛰어넘는 일도 역시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의 몫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가난한 연인의 행복과 꿈이 무가치하겠는가? 그들의 아름다움 또한 소중한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캐릭터가 참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 줄거리 =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도쿄. 친구 하숙집에 얹혀 사는 유조와 언니 집에서 열여섯 식구와 함께 사는 마사코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의 데이트가 유일한 즐거움이다. 맛있고 값도 싼 ‘히아신스’라는 이름의 커피숍을 여는 것이 꿈인 두 사람. 하지만 현실은 비참하기 그지없어,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35엔(현재의 약 3,500엔)이 전부다. 모델하우스도 구경해 보고, 세가 싸다는 아파트도 보러 가지만, 두 사람의 형편으론 그 어느 곳도 무리일 뿐이다. 유조의 친구가 경영하는 카바레에서도 냉대받고, 비를 맞으며 보러 간 연주회는 암표상이 표를 다 사 버려 매진이다. 그러나 두 연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또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