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을 의지하고 삽시다
다음 번에 큰스님께 건당을 받고 싶으신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공부를 하러 오셨다.
“공부는 대면수업을 다만 얼마라도 해도 인연이 되지. 요즘은 인터넷으로 ‘스님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 하긴 하는데 그거 가지곤 안되지.”
하고 큰스님이 반겨주셨다.
꼼꼼하게 작성해서 프린트해 오신 수행이력서를 보시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제대로 적어서 보낸다’고 하셨다.
“많이 줄여서 삼분의 일도 안 썼습니다.”
하고 스님들이 활짝 웃으셨다.
큰스님이 스님들 사시는 절과 본사와 은사스님을 물으셨다.
대전 보현정사에서 오신 경조스님은 박사학위 논문을 가져오셨고, KBS 인간극장에도 나온 적이 있다고 하신 봉화산사의 송준스님은 절에서 개발하여 특허를 내었다는 홍도라지 조청을 가져오셨다.
“가능하면 스님들 공부하는 시간에는 참석하도록 해요. 안오면 원봉스님 책임이라. 원봉스님이 공부하러 오라고 하면 재깍 와요. 아주 점잖은 리더예요.”
스님들 뒤에 서 계신 원봉스님을 보면서 큰스님이 당부하셨다.
*
늘 커피를 가져오시는 부산 무량사 성오스님은 보온병만 전달하곤 하셨는데 이번에는 속가 이모님 가족과 같이 오셔서 인사를 하셨다. 스님의 막내이모라고 소개하신 보살님은 거사님이 돌아가셔서 49재를 마치고 책보시를 하고자 해서 큰스님을 찾아오셨다고 했다.
“큰스님밖에 오래된 씨앗이 없을 것 아닙니까?”
하셨다.
“법공양에 잘 보태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제 스님 의지하고 삽시다. 부처님 의지하고 삽시다.”
하고 큰스님이 위로하셨다.
*
인사를 하러 들어온 BBS 김경훈 PD에게 큰스님이 ‘애기 부처님들이 잘 계시는지, 말을 잘 듣는지’ 물으셨다.
“제가 말을 잘 듣습니다. 오늘도 잠깐 싸울 뻔했지만.”
“다 자기 살 대로 산다. 절대 막 간섭하고 할 거 없어. 저 할 대로 가고 저 살대로 가고, 건강하게만 잘 키워.”
큰스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김경훈PD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큰스님이 애기일까지 어떻게 그렇게 잘 잘 아시는지 공부를 하면 그런 것도 다 알게 되는지 여쭤보았다. 애기는 안 키워봤어도 큰스님을 포함해서 모두가 아기라고 말씀하셨다.
*
용학스님이 오시자 큰스님은 몸을 비누방울 보호하듯이 잘 보호하라고 하셨다.
“황룡원 끝내고 나니까 좀 편안해요. 마지막엔 한 네 시간 해서 마쳤습니다.”
용학스님이 경주 황룡원에서 기신론 강의를 이번에 끝냈다고 하셨다.
“워낙 자세하게 하니까 스님은.”
큰스님이 용학스님에게 앞으로 강의 계획들을 묻고, 또 두 분이 함께 알고 계신 스님들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華嚴經 卷第四十六
[差別因果中 明果]
[妙覺]
佛不思議法品 弟三十三之一
*佛德의 體用을 總顯함*
四. 說法
스님들 공부하는 이 화엄법회가 늘 이렇게 참석하시는 분들은 무심히 아무 감동없이 참석하시지만 또 멀리서 벼르고 별러서 상당히 시간을 많이 소비하면서 오신 분들도 있다. BBS TV에 우리 강의가 나가는데, 오늘은 그 강의를 늘 보다가 몇 년을 별러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차도 한 번 놓치고 부랴부랴 온다고 왔는데, 법회 5분 전에 딱 도착한 아주 신심있는 불자가 한 분 계신다.
저기 보살님에게 박수 한 번 보내자.
“고맙습니다.”
이 법회는 귀하게 생각하면 아주 귀한 법회다. 그 귀한 법회에 여러분들이 주인공이다. 그렇게 생각하시기 바란다.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익히 알지만 더구나 이 부처님 말씀을 가지고 특히 그 중에서도 화엄경을 가지고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고 귀하게 생각하고 가치있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너무 쉽고 익숙하다 보니 그러한 가치를 망각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간혹 있다.
‘부처님 법이 이 세상에서 존귀하고 소중하고 값지다’는 것을 잘 알고도 있더라도 그 사실을 되뇌이고, 되뇌이고, 되뇌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것이 된다. 자신이 인연 맺고 자신이 갖고 있는 그 불법이 그만치 소중한 것이 되고, 그만치 값진 것이 된다. 누가 값을 매겨줘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
오늘은 156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저 밑에 8자재답이라.
8. 自在答
(1) 自在를 總明함
佛子야 諸佛世尊이 有十種自在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諸佛이 於一切法에 悉得自在하사 明達種種句身味身하야 演說諸法에 辯才無礙이 是爲諸佛의 第一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敎化衆生에 未曾失時하야 隨其願樂하야 爲說正法하사 咸令調伏하야 無有斷絶이 是爲諸佛의 第二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能令盡虛空界無量無數種種莊嚴한 一切世界로 六種震動하야 令彼世界로 或擧或下하며 或大或小하며 或合或散호대 未曾惱害於一衆生이 其中衆生이 不覺不知하며 無疑無怪가 是爲諸佛의 第三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以神通力으로 悉能嚴淨一切世界하사 於一念頃에 普現一切世界莊嚴하시니 此諸莊嚴이 經無數劫토록 說不能盡이라 悉皆離染하야 淸淨無比어든 一切佛刹嚴淨之事를 皆令平等하야 入一刹中이 是爲諸佛의 第四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見一衆生의 應受化者하고 爲其住壽하사 經不可說不可說劫하며 乃至盡未來際토록 結跏趺坐하사대 身心無倦하야 專心憶念하사 未曾廢忘하고 方便調伏하야 而不失時하나니 如爲一衆生하야 爲一切衆生도 悉亦如是가 是爲諸佛의 第五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悉能徧往一切世界一切如來所行之處하사대 而不暫捨一切法界하며 十方各別한 一一方에 有無量世界海하고 一一世界海에 有無量世界種이어든 佛以神力으로 一念咸到하사 轉於無礙淸淨法輪이 是爲諸佛의 第六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爲欲調伏一切衆生하사 念念中에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사대 而於一切佛法에 非已現覺이며 亦非當覺이며 亦不住於有學之地하고 而悉知見하야 通達無礙하사 無量智慧와 無量自在로 敎化調伏一切衆生이 是爲諸佛의 第七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能以眼處로 作耳處佛事하며 能以耳處로 作鼻處佛事하며 能以鼻處로 作舌處佛事하며 能以舌處로 作身處佛事하며 能以身處로 作意處佛事하며 能以意處로 於一切世界中에 住世出世間種種境界하사 一一境界中에 能作無量廣大佛事가 是爲諸佛의 第八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其身毛孔에 一一能容一切衆生하사 一一衆生이 其身悉與不可說諸佛刹等호대 而無迫隘하며 一一衆生이 步步能過無數世界하야 如是展轉盡無數劫토록 悉見諸佛이 出現於世하사 敎化衆生하사 轉淨法輪하야 開示過去未來現在不可說法하며 盡虛空界一切衆生의 諸趣受身威儀往來와 及其所受種種樂具가 皆悉具足호대 而於其中에 無所障礙이 是爲諸佛의 第九自在法이요 一切諸佛이 於一念頃에 現一切世界微塵數佛하사 一一佛이 皆於一切法界衆妙蓮華廣大莊嚴世界蓮華藏師子座上에 成等正覺하사 示現諸佛自在神力이어시든 如於衆妙蓮華廣大莊嚴世界하야 如是於一切法界中不可說不可說種種莊嚴과 種種境界와 種種形相과 種種示現과 種種劫數인 淸淨世界에 如於一念하야 如是於無量無邊阿僧祇劫一切念中에 一念一切現하며 一念無量住하사대 而未曾用少方便力이 是爲諸佛의 第十自在法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은 열 가지 자재한 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법에 모두 자유자재하여 갖가지 구절의 무더기와 의미의 무더기[句身味身]를 분명하게 통달하며 모든 법을 연설하는 데 변재가 걸림이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첫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그들의 소원을 따라 바른 법을 설하여 모두 조복시키되 사이가 끊어지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둘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온 허공에 가득하여 한량없고 수없는 갖가지로 장엄한 일체 세계를 여섯 가지로 진동케 하는데, 저 세계들을 들어올리고 아래로 내리고, 크게 하고 작게 하고, 한데 합하고 각각 흩어지게 하되 한 중생도 시끄럽게 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중생들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의심도 없고 놀라지도 않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셋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일체세계를 깨끗하게 장엄하는데, 잠깐 동안에 일체 세계의 장엄을 두루 나타내며, 이 모든 장엄을 한량없는 겁이 다하도록 말하더라도 다할 수 없으며, 모두 물들지 아니하고 비길 데 없이 청정하며, 일체세계의 장엄한 일이 다 평등하게 한 세계 안에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넷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교화를 받을 만한 한 중생을 보고는 그를 위하여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겁 동안에 살아계시며[住壽], 오는 세월이 끝날 때까지 가부좌하고 앉아서 몸이나 마음이 게으르지 않으며, 전심(專心)으로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방편으로 조복하되 때를 놓치지 아니하며, 한 중생을 위함과 같이 일체중생을 위하여서도 또한 그와 같이 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다섯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세계에 있는 일체 여래의 수행하던 곳에 두루 가서 잠깐도 버리지 아니하며, 일체 법계에 시방이 각각 다르고, 낱낱 방위마다 한량없는 세계 바다가 있고, 낱낱 세계 바다에 한량없는 세계종(世界種)이 있는데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잠깐 동안에 모두 이르러 가서 걸림 없고 청정한 법륜을 굴리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여섯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조복시키기 위하여 생각 생각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마는, 일체 부처님의 법에 대하여 이미 깨닫지도 않았고 장차 깨닫지도 않으며, 또한 배우는 지위에 있지도 아니하면서 모두 보고 알아서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한량없는 지혜와 한량없는 자유자재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일곱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능히 눈으로써 귀로 하는 불사(佛事)를 짓고, 귀로써 코로 하는 불사를 짓고, 코로써 혀로 하는 불사를 짓고, 혀로써 몸으로 하는 불사를 짓고, 몸으로써 뜻으로 하는 불사를 지으며, 능히 뜻으로써 일체세계에서 세간과 출세간의 갖가지 경계에 머무르며, 낱낱 경계에서 한량없이 광대한 불사를 짓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여덟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몸에 있는 모공(毛孔)마다 낱낱이 일체중생을 수용하였으며, 낱낱 중생마다 그 몸이 말할 수없는 여러 세계와 동등하지마는 비좁지 아니하며, 낱낱 중생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무수한 세계를 지나가되 이와 같이 수없는 겁 동안 가면서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태어나고 중생을 교화하고 청정한 법륜을 굴리며 과거 미래 현재의 말할 수 없는 법을 열어 보이는 것을 모두 보며, 온 허공에 있는 일체 중생들이 여러 갈래에 태어나는 일과 행동하는 위의와 오고 가는 일과 그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도구를 모두 구족한 것을 보지마는 그 가운데 조금도 장애가 없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아홉째 자재한 법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한 생각 동안에 온갖 세계의 작은 먼지 수같이 많은 부처님을 나타내고, 낱낱 부처님이 일체 법계의 묘한 연꽃 위에 있는 광대하게 장엄한 세계에서 연화장(蓮華藏) 사자좌에 앉아서 평등한 정각을 이루어 모든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신통의 힘을 나타내었느니라.
묘한 연꽃 위에 있는 광대하게 장엄한 세계에서와 같이 일체 법계에 있는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장엄과 갖가지 경계와 갖가지 형상과 갖가지 나타냄과 갖가지 겁의 청정한 세계에서도 그러하였느니라.
한 생각 동안에서와 같이 이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아승지 겁의 일체 생각 동안에도 그러하며, 한 생각 동안에 일체 것을 나타내고, 한 생각 동안에 한량없이 머물지마는 그러나 일찍이 조그만 방편의 힘도 쓰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열째 자재한 법이니라.”
*
자재법(自在答)
*
자재(自在)를 총명(總明)함
자재에 대한 것을 총체적으로 밝힌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 제불세존이
유십종자재법(有十種自在法)하시니 : 열 가지 자유 자재한 법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소위일체제불(所謂一切諸佛)이 : 소위 일체제불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모든 법에 의해서
실득자재(悉得自在)하사 : 모두 모두 다 자유자재함을 얻으사
명달종종구신미신(明達種種句身味身)하야 : 밝게 통달했다. 무엇을 통달했는가? 가지가지 구신과 미신을 밝게 통달했다. 구신 미신 간혹 이런 이상한 낱말이 나온다. 신(身)은 이 몸뚱이다. 몸은 어떻게 보면 오장육부도 있고 삼백육십 골절이 있고 백조세포가 있고 분해해서 이야기하기로 하면 많은 것이 모여있는 덩어리다. 몸은 무더기이고 덩어리라는 뜻에서 신(身)자를 많이 쓴다.
신(身)이라고 하는 그 말 한 마디 속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360 골절이라든지 오장육부라든지 백조세포라든지 얼마나 여러가지가 있는가? 몸은 그런 여러가지가 있다. 그래서 몸이 고물이 되면 곳곳에서 탈이 나기 시작해서 애를 먹기도 한다.
구신(句身)하면 예를 들어서 십력이다 청정이다 열반이다 자재다 이런 말 속에 많은 의미와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고 미신(味身)도 그렇다. 맛의 무더기, 맛의 덩어리다. 이런 해석이 온전치 않지만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된다.
예를들어 제행무상하면 그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말덩어리 하나 속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분석해서 설명하기로 하면 책 한 권도 쓸 수가 있다. 구신이니 미신이니 하는 것이 ‘의미의 덩어리’ 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밝게 통달했다. 모든 깨달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통달하고 있다.
우리는 말 한마디 하면 겨우 그 한마디를 가지고 하나의 해석밖에 못한다. 소견이 뛰어나고 안목이 밝은 사람들은 그것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구태의연하게 ‘옛날 경전의 말씀이다, 옛날 말이다’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발달한 현대사회의 사조를 가지고도 충분히 그것을 설명해 내고 적용시켜서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가 발달해도 부처님 깨달음의 말씀은 전부 적용이 된다. 우리가 분석해서 적용시킬 줄을 모를 뿐이다. 그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연설제법(演說諸法)에 : 제법을 연설함에
변재무애(辯才無礙)이 : 변재가 끝이 없다. 안 그렇겠는가? 제대로 깨달은 사람들, 불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제행무상이라고 하는 한 낱말만 가지고도 다양하게 설명이 가능하다. 무아를 가지고서 진아를 얼마든지 설명할 수가 있고, 진아를 가지고 무아를 얼마든지 설명할 수가 있다. 치우쳐서 이해하는 사람들은 늘 진아와 무아가 충돌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문제점을 그런 것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참 딱할 때가 많다.
제대로 알면 아무 충돌될 것도 없고 진아를 참으로 설명 잘해주는 것이 무아다. 또 무아를 설명 잘해주는 것이 진아다. 그런 이치가 있는데 그것이 마음에 계합이 안되니까 한 가지에만 치우쳐서 우리가 이해하고 설명한다.
제법을 연설함이 변재가 무애한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일자재법(第一自在法)이요: 제1자재법이다. 첫째가는 자재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교화중생(敎化衆生)에 : 중생을 교화하는 데
미증실시(未曾失時)하야 : 일찍이 때를 잃지 아니해서
수기원락(隨其願樂)하야 : 그가 원하고 즐겨하는 바를 따라서
위설정법(爲說正法)하사 :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정법을 설해서, 때를 놓치지 않고 시의적절하게 이야기한다고 하는 것도 또한 불교를 설명하고 포교하는 데 중요한 방법이다. 그래서
함령조복(咸令調伏)하야 : 정법을 설해서 다 하여금 조복하게 해서
무유단절(無有斷絶)이 : 끊어짐이 없게 하는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제이자재법(第二自在法)이요 : 두 번째 가는 자재한 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능령진허공계무량무수종종장엄(能令盡虛空界無量無數種種莊嚴)한 : 능히 진허공계 무량무수종종장엄으로 장엄한
일체세계(一切世界)로 : 일체 세계로 하여금
육종진동(六種震動)하야 : 육종으로 진동해서, 육종진동이 우르르 쾅쾅하는 것도 제가 자주 이야기했다. 안이비설신의가 육종이든지 색성향미촉법이 육종이든지 간에 이것은 법문을 들었을 때, 우리가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감동하고 느끼는 것을 육종진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또 그것을 18상으로 이야기하자면, 18계가 무엇인가? 18계는 우리 삶의 전영역이다. 18계를 빼놓고는 우리가 아무 것도 없다. 주관이든 객관이든 의식의 문제든 그 18계 속에 다 있다. 그 속에 다 있으니까 6종 18상으로 진동을 했다면 그만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감동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영피세계(令彼世界)로 : 저 모든 세계로 하여금
혹거혹하(或擧或下)하며 : 들거나 놓거나 하며
혹대혹소(或大或小)하며 : 혹은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혹합혹산(或合或散)호대 : 혹은 합하기도 하고 혹은 흩어지기도 하되
미증뇌해어일중생(未曾惱害於一衆生)이 : 일찍이 한중생도 괴롭게 하거나 피해를 주지 아니해서
기중중생(其中衆生)이 : 그 가운데 있는 중생이
불각부지(不覺不知)하며 : 불각부지 한다.
그렇게 6종으로 진동해서 모든 세계를 들었다 놨다 혹은 크게 했다가 혹은 작게 했다가 합했다가 흩었다가 함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한중생, 그 어떤 머저리 같은 한 중생도 중생이 그 사실을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무의무괴(無疑無怪)가 : 의심함도 없고 의심할 까닭도 없고, 괴히 여기는 이도 아무도 없다.
부처님, 깨달은 사람에게는 그런 도리가 있다.
시위제불(是爲諸佛)의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삼자재법(第三自在法)이요 : 제3 자재법이다.
화엄경은 장황하고 길다 싶다가도, 공부를 해보면 공부해볼수록 그 구절 하나하나의 내용이 뛰어나다. 그렇게 뛰어난 맛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화엄경, 화엄경 하는 것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이신통력(以神通力)으로 : 신통력을 가지고
실능엄정일체세계(悉能嚴淨一切世界)하사 : 일체 세계를 다 청정하게 장엄해서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한 생각 사이에
보현일체세계장엄(普現一切世界莊嚴)하시니 :일체세계 장엄을 널리 다 나타내시니
차제장엄(此諸莊嚴)이 : 이것은 모든 보살이
경무수겁(經無數劫)토록 : 무수겁을 지내도록
설불능진(說不能盡)이라 : 설명을 한다하더라도 다 하지 못한다.
실개이염(悉皆離染)하야 : 그래서 다 물듦을 떠나고
청정무비(淸淨無比)어든 : 또 청정하기가 비교할 바가 없거든
일체불찰엄정지사(一切佛刹嚴淨之事)를 : 일체세계를 엄정하는 일들을
개령평등(皆令平等)하야 : 다 하여금 평등하게 해서
입일찰중(入一刹中)이 :한 세계 가운데 들어가게 하는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사자재법(第四自在法)이요 : 제4자재법이다. 네 번째 자재한 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견일중생(見一衆生)의 : 한 중생의
응수화자(應受化者)하고 : 응당히 교화함을 받을 사람을 보고는
위기주수(爲其住壽)하사: 그를 위해서 수명에 머문다. 주수라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에 머문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불가설불가설겁(經不可說不可說劫)하며 : 불가설 불가설 겁을 지내며
내지진미래제(乃至盡未來際)토록 : 내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결가부좌(結跏趺坐)하사대 : 가부좌를 맺고 앉아서
신심무권(身心無倦)하야 : 몸과 마음이 게으름이 없으며
전심억념(專心憶念)하사 : 오로지 하는 마음으로써 기억하고 생각해서
미증폐망(未曾廢忘)하고: 일찍이 한 번도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방편조복(方便調伏)하야: 방편으로 조복해서
이불실시(而不失時)하나니 : 때를 잃지 아니하나니
여위일중생(如爲一衆生)하야 : 한 중생을 위하는 것과 같이 해서 일체중생을 위함도 실역여시다. 한 중생에게 그런 공을 들였다. 그런 오랜 세월동안 가부좌를 틀고앉아서 몸과 마음이 게으르지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고 했는데 그 한 중생을 위해서 하듯이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도 : 일체 중생을 위해서 하는 것도
실역여시(悉亦如是)가 : 또한 이와 같다.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오자재법(第五自在法)이요 : 제5 자재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실능변왕일체세계일체여래소행지처(悉能徧往一切世界一切如來所行之處)하사대 : 일체 세계 일체 여래가 행한 바의 곳에 두루두루 다 가서
이부잠사(而不暫捨)하며 : 한 세계도 잠깐도 버리지 아니하며
일체법계(一切法界)가 : 일체법계가
시방각별(十方各別)한 : 시방에 각각 다른
일일방(一一方)에 : 낱낱 지방에
유무량세계해(有無量世界海)하고 : 한량없는 세계 바다가 있고
일일세계해(一一世界海)에 :낱낱 세계 바다에
유무량세계종(有無量世界種)이어든 : 세계의 종이 또 있다. 한 지방에 세계의 바다가 있고, 세계의 바다에 또 한량없는 세계종이 있다.
요즘 천문학에서 알려진 바대로 이야기하자면, 그전에는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우리은하계’ 우리가 속해 있는 있는 은하계 정도였다. 그 은하계는 밤하늘에서 육안으로 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은하계가 수천 수만 수억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은하군이라고도 하고 무슨 세계종이라고도 하고, 여러가지 말로 표현한다. 그렇게 표현하고 별별 이름을 다 지어서 붙여도 지금 우주 공간에서 허블 망원경으로 파악한 별들은 다 이름 붙일 수가 없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세계가 있다. 그러한 것을 종(種)이라는 말도 쓰고, 무리 군(群)자 군이라는 말도 쓰고, 여러가지로 표현한다. 그렇게 하거든
불이신력(佛以神力)으로 :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일념함도(一念咸到)하사 : 한 순간에 다 거기에 이른다. 이것은 인공위성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빛의 속도로 가는 것도 아니다. 빛의 속도로 가봐야 태양 그 거리가 얼마나 먼가? 이 세상에서 우리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속도중에서 제일 빠른 것이 빛의 속도라고 해서 광속(光速)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빛의 속도로 가는 것이 몇 년 몇 십년 몇 백년 몇 억년 그렇게 간다. 빛의 속도로 가도 몇 억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먼 거리가 지금 파악이 다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광속정도가 아니라 염속(念速) 아니면 심속(心速) 생각의 속도, 마음의 속도 그런다. 그런 속도로는 순식간에 간다.
태양까지 빛은 8분 걸리는 거리지만, 저기 저 은하계를 가로 질러 가는데 빛의 속도로 달려도 몇 백년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은하계를 가로지르는데 그렇게 걸리는데 염속, 심속, 마음의 속도, 생각의 속도로는 1초도 채 안걸린다. 많이 잡고 1초라고 하자. 그것밖에 안걸린다. 그런 개념이 현실화되는 일만 남았지만, 사실 마음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현실화될 필요도 없다. 그런 것이 화엄경 전편에 깔려 있으니까 우리 불교공부 하는 사람, 특히 이 화엄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쉽게 다 이해한다
그래도 화엄경의 우주관이라고 하는 것을 누군가 제대로 연구해서 현재에 파악된 우주과학과 연관시켜서 글을 써도 상당한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불이신력(佛以神力)으로 일념(一念)에 함도(咸到)라고 했잖은가. 부처님의 신력으로써 한 생각 사이에 한 순간에 다 거기에 이르러서
전어무애청정법륜(轉於無礙淸淨法輪)이 : 무애 청정 법륜을 굴리는 것이, 거기에 가서 교화를 해야지 뭐하러 가는가? 중생교화 하러, 무애청정법륜을 굴리러 간다.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육자재법(第六自在法)이요 : 제6 자재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위욕조복일체중생(爲欲調伏一切衆生)하사: 일체 중생을 조복하고자 해서
염념중(念念中)에 : 염념중에
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사대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사되
이어일체불법(而於一切佛法)에 : 일체 불법에
비이현각(非已現覺)이며 : 이미 깨달았거나 현재 깨달음도 아니고
역비당각(亦非當覺)이며 : 또한 앞으로 깨달을 것도 아니다. 일체 불법에 대해서 이각 현각도 아니고 당각도 아니다. 이미 깨달은 것도 아니고 현재 깨달은 것도 아니고 또한 앞으로 깨달을 것도 아니다.
역부주어유학지지(亦不住於有學之地)하고 : 또한 배움이 있는 경지에 머문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이실지견(而悉知見)하야 : 모두 모두 알고 보아서
통달무애(通達無礙)하사 : 통달해서 걸림이 없으사
무량지혜(無量智慧)와 : 한량없는 지혜와
무량자재(無量自在)로 : 한량없는 자재로써
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이: 일체 중생을 교화 조복하는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칠자재법(第七自在法)이요 : 제7 자재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능이안처(能以眼處)로 : 능히 눈으로써
작이처불사(作耳處佛事)하며 : 귀의 불사를 짓고
능이이처(能以耳處)로 : 능히 귀로써
작비처불사(作鼻處佛事)하며: 코의 불사를 짓고, 이것은 육근혼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능엄경에도 있는 이야기다.
능이비처(能以鼻處)로: 능히 코로써
작설처불사(作舌處佛事)하며 : 혀의 불사를 짓고
능이설처(能以舌處)로 :능히 혀로써
작신처불사(作身處佛事)하며 : 몸의 불사를 지으며
능이신처(能以身處)로 : 능히 몸으로써
작의처불사(作意處佛事)하며 : 의식의 불사를 지으며
능이의처(能以意處)로 : 능히 의식으로써
어일체세계중(於一切世界中)에 : 일체세계에
주세출세간종종경계(住世出世間種種境界)하사: 세상과 출세간의 가지가지 경계에 머무사
일일경계중(一一境界中)에 ; 낱낱 경계에 가운데서
능작무량광대불사(能作無量廣大佛事)가 : 능작 무량 광대 불사를 짓는 것, 육근을 혼용하면서 불사를 짓는 것이다. 이것을 조금 건방지게 해석하면 눈은 눈으로 보는 것도 불사고, 어떤 경우는 눈을 감는 것도 불사다. 눈을 감고 안보는 것도 불사다.
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불사고 안들을 말은 안듣는 것도 불사다.
혀는 좋은 말을 하는 것도 불사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도 불사다. 안이비설신의의 모든 작용이 전부 불사로서의 작용이다. 전부 불사로서의 작용이다.
화엄경이 아니고는 이런 내용을 못 본다. 능엄경에도 조금 나오기는 하는데 이 화엄경 하고는 비교도 안된다. 대단한 내용이다.
낱낱 경계 가운데서 능히 무량광대불사를 짓는 것, 그것을 세상에서 짓든지 출세간에서 짓든지 간에, 그것도 다 걸림이 없는 것이다.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팔자재법(第八自在法)이요 : 제8 자재법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기신모공(其身毛孔)에 : 그 몸의 모공에
일일능용일체중생(一一能容一切衆生)하사: 낱낱이 능히 일체중생을 수용한다. 여러분들 손등을 한 번 보기 바란다. 거기에 모공이 얼마나 여러 개가 있는가. 그런데 그 많고 많은 모공에 일체중생을 낱낱이 수용해서
일일중생(一一衆生)이 : 낱낱 중생이
기신실여불가설제불찰등(其身悉與不可說諸佛刹等)호대: 그 몸에 다 불가설 불찰 세계로 더불어 같다. 그 몸이 불가설 불찰로 더불어 같다. 그것도 낱낱 중생이나 모든 중생이 동등하게 그렇다. 그 모공에 있는 세계 또 중생이 그렇게 많고 많지만
이무박애(而無迫隘)하며 : 조금도 좁거나 비좁지 아니하며
일일중생(一一衆生)이 : 낱낱 중생이
보보능과무수세계(步步能過無數世界)하야 : 걸음걸음에 능히 무수세계를 지나서
여시전전진무수겁(如是展轉盡無數劫)토록: 이와 같이 전전이 계속 계속 무수세계를 다하도록 해서
실견제불(悉見諸佛)이 : 모든 부처님이
출현어세(出現於世)하사 : 세상에 출현하사
교화중생(敎化衆生)하사 : 중생을 교화하고
전정법륜(轉淨法輪)하야 : 청정한 법륜을 굴리사
개시과거미래현재불가설법(開示過去未來現在不可說法)하며 : 과거 미래 현재 불가설법을 개시함을 다 보며
진허공계일체중생(盡虛空界一切衆生)의 : 모든 허공계에 있는 일체중생의
제취수신위의왕래(諸趣受身威儀往來)와 : 모든 갈래,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천신이든 뭐가 됐든 간에 제취의 모든 중생들이 몸을 받는 것과 그들의 위의와 또 왕래하는 것과
급기소수종종낙구(及其所受種種樂具)가 : 그리고 그 받는 바 여러 가지 즐길 거리, 자동차다 비행기다 컴퓨터다 그 나름대로 즐길거리가 많다. 그것을
실개구족(皆悉具足)호대 : 다 낱낱이 구족했으되
이어기중(而於其中)에 : 그 가운데서
무소장애(無所障礙)이 : 장애가 없는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구자재법(第九自在法)이요 : 제9 자재법이다.
이 화엄경이 아니면 우리가 부처님의 이런 세계를 어떻게 눈여겨보기나 하겠는가? 또 자세히 보면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상당히 실감이 난다. 거기에 동참을 한 것 같아서 환희심도 난다. 이것이 얼마나 근사한가?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어일념경(於一念頃)에 : 일념경에 한생각에
현일체세계미진수불(現一切世界微塵數佛)하사 : 일체 세계 미진수와 같은 부처님을 나타내시사
일일불(一一佛)이 : 그 낱낱 부처님이
개어일체법계중묘련화광대장엄세계연화장사자좌상(皆於一切法界衆妙蓮華廣大莊嚴世界蓮華藏獅子座上)에 : 다 일체법계의 중묘련화로써 여러 가지 묘련화로써 광대 장엄 세계가 연화장 사자좌 위에서
성등정각(成等正覺)하사 : 등정각을 이루사, 낱낱 부처님이 그 일체 세계의 묘련화 광대장엄세계의 묘련화 사자좌 위에서 정각을 이루었다. 그래서
시현제불자재신력(示現諸佛自在神力)이어시든 : 모든 부처님이 자재한 신력을 나타내 보이시거든
*
여어중묘련화광대장엄세계(如於衆妙蓮華廣大莊嚴世界)하야 : 중묘 연화 광대장엄세계와 같아서
여시어일체법계중불가설불가설종종장엄(如是於一切法界中不可說不可說種種莊嚴)과 :이와 같이 일체법계 가운데 불가설 불가설 종종 장엄과
종종경계(種種境界)와 : 종종경계와
종종형상(種種形相)과 : 종종형상과
종종시현(種種示現)과 : 종종시현과 나타내 보임과
종종겁수(種種劫數)인 : 종종겁수인
청정세계(淸淨世界)하고: 청정세계에
*
여어일념(如於一念)하야 : 한 생각과 같아서
여시어무량무변아승지겁일체염중(如是於無量無邊阿僧祇劫一切念中)에 : 이와 같이 무량무변아승지겁 일체염 중에
일념일체현(一念一切現)하며 : 일념가운데 일체가 나타나며, 한 순간에 일체가 다 나타나며
일념무량주(一念無量住)하사대 : 일념가운데 한량없이 머무시며
이미증용소방편력(而未曾用少方便力)이 : 일찍이 소방편력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시위제불(是爲諸佛)의 :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제십자재법(第十自在法)이니라 : 제10 자재법이다.
소방편력도 활용하지 않는다. 미증용이다. 소방편력, 어떤 방편도 동원하지 않고 다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열 번째 자재한 법이다.
그동안에도 화엄경의 가르침은 대단했는데 ‘부처님의 자재한 법’ 이 대목에 오니까 더 눈부신 내용들이 나왔다.
(2) 圓滿自在法
佛子야諸佛世尊이有十種無量不思議圓滿佛法하시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切諸佛이一一淨相에皆具百福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一切佛法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一切善根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一切功德하며一切諸佛이皆能敎化一切衆生하며一切諸佛이皆悉能爲衆生作住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淸淨佛刹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一切智智하며一切諸佛이皆悉成就色身相好하사見者獲益하야功不唐捐하며一切諸佛이皆具諸佛平等正法하며一切諸佛이作佛事已에莫不示現入於涅槃이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는 열 가지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는 원만한 부처님의 법이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의 깨끗한 낱낱 형상마다 백 가지 복을 갖추었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부처님의 법을 모두 성취하였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선근을 모두 이루었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온갖 공덕을 모두 성취하였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모두 교화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중생들의 주인이 되느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청정한 세계를 모두 성취하였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체 지혜의 지혜를 모두 성취하였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육신의 잘생긴 몸매를 성취하여 보는 이마다 이익을 얻어 헛되지 아니하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바른 법을 갖추었으며,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이 불사를 짓고 나서 열반에 듦을 나타내 보이지 않는 이가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
원만자재법(圓滿自在法)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이: 모든 부처님 세존이
유십종무량부사의원만불법(有十種無量不思議圓滿佛法)하시니 : 열 가지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원만 불법이 있다.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인가.
소위일체제불(所謂一切諸佛)이 : 이른바 일체 모든 부처님이
일일정상(一一淨相)에 : 낱낱이 청정한 상에, 예를 들어서 부처님 손금하면 손금 한 가닥만 가지고도 그것이 낱낱 정상(淨相)이다.
발바닥에 금이 하나 그어져 있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부처님의 상호이기 때문에 청정한 상호다. 거기에
개구백복(皆具百福)하며 : 백 가지 복의 의미가 갖추어져 있다.
내가 한때 금으로 만(卍)자 금걸이를 해서 목에 걸고 다니는 운동을 한창 한 적이 있다. 우리가 부처님의 복상을 흉내낼 수 있는 것이 딱 그것 한 가지다. 다른 것은 수술을 하든지 해야 똑같아지겠지만 만(卍)자 목걸이를 걸면, 부처님 가슴 만(卍)자 자리에 목걸이가 와서 자연스럽게 부처님의 가슴 만(卍)자 흉내를 우리가 낼 수가 있다. 간혹 연예인, 가수들 이런 사람들이 만(卍)자 목걸이 달고 나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 것을 보면 반갑다. 더러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백 가지 복상을 거기에 다 갖추었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개실성취일체불법(皆悉成就一切佛法)하며 : 일체 불법을 다 성취했으며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 부처님이
개실성취일체선근(皆悉成就一切善根)하며 : 일체선근을 성취했으며, 일체선근, 부처님이 뛰어난 지혜와 자비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이라고 하는 좋은 일은 다 선별해서 선행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이 선행하는 것은 우리 중생들이 아등바등 노력해서 하는 선행과는 또 차원이 다르다.
부처님이 일체선근을 다 성취했다.
어른이 하는 것과 아이들이 하는 것이 다르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실성취일체공덕(皆悉成就一切功德)하며 : 개실성취일체공덕하며, 부처님이 공덕을 성취했다면 ‘부처님은 어떤 공덕을 성취했을까?’ 알고 싶을 것이 아닌가?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능교화일체중생(皆能敎化一切衆生)하며 :일체 중생을 다 능히 교화하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실능위중생작주(皆悉能爲衆生作主)하며 : 중생을 위해 주인노릇을 한다. 작주(作主)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간에 우리를 보살피는 우리의 주인이 있다. 불교는 이런 식의 이야기는 잘 안하는데 간혹 이런 그물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한다. 편안하지 않은가? 어떤 다른 종교처럼 그렇게 덮어놓고 그것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간혹 이렇게 능위중생하여 작주한다고 했으니까, 간혹 이럴 때 그런 말이 나온다.
염불이 왜 그렇게 먹히는가?
평생 참선하며 살던 선사들도 열반에 가까워 오면 염불로 많이 돌아선다고 한다.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답도 없는 참선을 해봐야 도대체 의지가 안된다. 화두를 놓아버리면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의지가 된다. 그래서 노년에는 염불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를 우리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다.
사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중국이나 대만 같은 데는 염불이 성하다.
*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실성취청정불찰(皆悉成就淸淨佛刹)하며: 다 청정 불찰을 성취하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일체제불이
개실성취일체지지(皆悉成就一切智智)하며 : 일체 지혜와 지혜를 성취하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실성취색신상호(皆悉成就色身相好)하사: 일체제불이 색신과 상호를 성취하사
견자획익(見者獲益)하야 : 보는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법당에 부처님을 나무로 모셨든지 철로 모셨든지 돌로 모셨든지 간에 부처님이라고 하고 딱 모셔놓으면 무슨 부처님으로 됐든 부처님이라고 믿고 거기에 공덕을 짓는다. 그런데 공덕을 짓고 복을 짓고 하는 것은 짓는 그 사람의 것이다. 그 공덕을 짓는 사람 것이지 부처님 것이 아니다. 그런 도리가 있지 않은가?
견자획익하야 이익을 얻어서
공불당연(功不唐捐)하며 : 공덕이 헛되지 않는다.
돌로 깎았다든지 나무로 했든지 흙으로 했든지 간에 또 부처님이 잘났다든지 못났다든지 간에 그 돌아오는 공덕은 부처님을 위하는 사람, 예배를 드리는 사람, 부처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을 들이는 그 사람 것이다. 공불당연이다. 공이 헛되지 아니한다. 이것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된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개구제불평등정법(皆具諸佛平等正法)하며 : 모두들 평등한 정법을 다 갖추었으며
일체제불(一切諸佛)이 : 일체제불이
작불사이(作佛事已)에 : 불사를 지은 뒤에
막불시현입어열반(莫不示現入於涅槃)이 : 참 불사를 지은 뒤에는 모두 열반에 든다. 열반에 드는 것도 열반불사다. 열반에 드는 것도 또한 좋은 불사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그 사실 하나 가지고 또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공을 닦고 발심을 하고 감동을 자아내는가?
내가 옛날에 건강할 때, 인도 성지순례를 갔는데 부처님 열반당에 가니까 부처님 열반상을 모셔놓고 가사를 덮어 놓았다. 그것을 부처님 열반상이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 찾아간 사람은 다 아는데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엉엉하고 통곡을 한다. 누가 울라고 안해도 ‘여기가 부처님 열반하신 장소다. 그런 부처님 모습을 저렇게 조각을 해서 모셔놓았다’하는 것을 몇 날 며칠 걸어오면서 다 아니까 그걸 보고 통곡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만 가자고 해도 우는 것이 좋아서 안간다.
속에 있는 모든 감정들, 인간관계에 얼키고 설킨 모든 감정들을 거기에 다 털어 놓고 엉엉하고 막 우는 것이다.
성지순례를 다 돌고 나서 ‘어디가 제일 감동적이었느냐’ 하고 물으니까 ‘아 그 열반상 거기가 좋더라’ 한다.
부처님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왔는데, 아무도 설명도 하지 도 않았고 설명도 할 필요도 없지만 거기서 감동을 받고 왔다는 것이다.
감동했으니까 울고, 울었으니까 더 감동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순례지 중에 열반당 그 자리가 제일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렇게 된다.
막불시현입어열반이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시위십이니라. 모든 불사를 짓고 나서는 결국은 열반으로서 불사를 보여주는 것이고 제일 감동적인 불사를 또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요즘 와불상을 많이 조성한다.
|
첫댓글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_()()()_
_()()()_
큰스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