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300 법칙은 보험회사 직원이 발견했다
1920년대 미국 여행보험사의 손실통제 부서에 근무하던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산업재해 통계를 분석하다가 아주 흥미로운 통계 법칙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큰 재해가 한 번 있었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작은 사고가 29번 있었고, 또 운 좋게 사고는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 한 사건이 무려 300번이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1:29:300 법칙(하인리히 법칙)은 작은 샘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75,000건의 사고 통계에서 도출된 것인데요, 이를 확률로 환산하면 작은 재해(minor injury)가 발생할 확률은 8.8%(=29/330)이고, 큰 재해(major injury)가 발생할 확률은 0.3% (=1/330)입니다. 그리고 재해까지는 아니지만 경미한 사고(no-injury accident)의 발생 확률은 훨씬 높아 90.9% (=300/330)나 됩니다.
허버트 하인리히는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1931년 『산업재해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산업안전에 대한 1:29:300 법칙을 주장했고 이를 우리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고 부릅니다. 하인리히의 책은 1931년 초판 발간 이후 1941년, 1950년, 1969년에 이어 1980년에 5판까지 인쇄하면서 산업재해예방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잡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하여 대처해야 하고, 또 초기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면 큰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지어질 당시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옥상에 76톤이나 되는 설비장치를 설치해 원래 설계하중의 4배를 초과했고, 마땅히 들어가야 할 철근이 무더기로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실시공과 허술한 관리로 천정에 금이 가거나 옥상 바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 등 숱한 징후들이 포착됐습니다. 바로 300의 잠재적 요소였습니다. 또 붕괴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에어컨의 진동으로 고객신고가 잦았고 벽의 곳곳에 균열이 생겨 붕괴 위험이 있다는 내부직원의 신고와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도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29의 작은 사고였습니다. 결국 이런 무신경이 1천여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대형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사고는 도미노처럼 일어난다
허버트 하인리히는 ‘하인리히 법칙’뿐만 아니라 사고의 연쇄적 발생을 보여주는 ‘도미노 이론(domino theory)’도개진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보다 원천적인 요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제1요인은 인간의 유전적 내력이나 사회 환경입니다. 완고함, 탐욕, 기타 성격상 바람직하지 못한 특징은 유전에 의해 물려받을 수 있는 기질입니다. 또한 열악한 환경은 나쁜 유전적 특징을 더욱 강화하고 예방 교육을 방해합니다.
제2요인은 인간의 결함입니다. 무모함, 신경질, 흥분, 무분별, 안전에 대한 무지처럼 인간의 후천적인 결함은 불안전한 행동을 야기하거나 기계적, 물리적 위험을 일으킵니다.
제3요인은 인간의 불안정한 행동이나 기계적, 물리적 위험입니다. 경보 시스템 없이 기계를 작동하거나 안이하게 안전장치를 제거하고 건물 설계 자체를 잘못하면 바로 사고 발생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발생한 사고들이 모여서 작은 재해를 일으키고 나아가 도미노처럼 연달아 큰 재해를 초래합니다.
이러한 연쇄 현상을 막기 위해선 근본적 요소인 인간의 유전적 내력과 결함, 사회 환경을 바꾸면 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인간의 불안정한 행동이나 기계적, 물리적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세 번째 세워져 있는 중간 칩을 제거해야 모든 칩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페덱스와 조셉 주란의 1:10:100 법칙
하인리히 법칙이 재해 발생 건수에 대한 법칙이라면 재해 비용에 대한 법칙도 있습니다. 불량이 생겼을 때 즉시 고치면 1의 원가밖에 들지 않지만, 책임 소재에 대한 문책이 두려워 불량 사실을 숨기고 불량제품이 그대로 기업의 문을 나서면 10의 비용이 들며, 이것이 고객 손에 들어가 클레임이 되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1:10:100 법칙은 물류 기업 페덱스(FedEx)에서 개발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품질경영 전문가인 조셉 주란(Joseph M. Juran)도 기업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예방 비용, 평가 비용, 실패 비용을 나누어 1:10:100 법칙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예방 비용은 처음부터 품질 불량이 나오지 않도록 품질관리 활동이나 교육에 투입하는 비용이고, 평가 비용은 제품을 검사해 품질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입니다. 그리고 실패 비용은 소비자가 불량 제품을 이미 사용한 후에 기업이 실패 해결에 쏟아 붓는 비용을 말합니다. 실제로 미국 로체스터에 있는 IBM 사업장에서 이 세 가지 비율을 조사해본 결과, 1:13:92로 나왔습니다.
위 법칙들은 일상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가 조금씩 시려오는 걸 무시하다가 결국 충치가 생기기도 하고, 잦은 기침을 방치해 호흡기질환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별거 아니라 여겼던 소화불량이 알고 보니 암의 경고증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시동이 자주 꺼지거나 이상소음이 나는 등 평소와 다른 증상이 보인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저자이자 촌철살인의 대가인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다.”
Writer. 김민주
現 ㈜리드앤리더 겸 이마스(emars.co.kr) 대표운영자
저서: 『시장의 흐름이 보이는 경제 법칙 101』 외 다수
서울대,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수료
첫댓글 진인사대천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