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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편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입술을 문으로 비유하면서 수문장이 되셔서 자기 입을 지켜달라고 간구합니다. 자기 입술에서 무익하고 어리석고 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간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말을 한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의 차이가 큽니다. 말은 그 말하는 사람의 운명까지도 바꾸고 상대방에게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효력도 갖는 것입니다.
말을 하기 전까지는 생각들의 구름이 마음 속에서 아직 구체적인 형체를 이루지 않고 떠돌아다닐 뿐입니다. 그러나 입으로 내는 순간 그것들은 어떤 형체를 이루게 됩니다. 감정도 그렇습니다. 슬픔, 기쁨, 낙심, 좌절, 분노, 미움 등도 말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아직 어떠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말로 표현되는 순간 그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그 감정이 파급됩니다. 그 감정이 돌이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 감정이 오랫동안 그 사람에게나 그것을 들은 사람에게 남아 있습니다. 어떤 깨달음과 사유도 그것이 말로 표현되고 글로 표현되고 문장으로 표현되면 그것은 오랫동안 남아서 곱씹을 수 있는 사색의 꺼리로 남게 됩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도 말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돌이킬 수 있고 인생의 길을 결정하기 전에 더 오랫동안 숙고하면서 돌이킬 수 있지만 그것이 분명한 언어로 밖으로 표현되면 그것은 예상치 못한 연쇄적이고 화학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켜서 인생의 길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6:2 말씀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2 이하의 말씀에서는 사람의 입술과 혀가 가져오는 효력에 대하여 강력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야고보서 3:2~8)
여기서 야고보 선생은 사람의 혀가 가지는 엄청한 중요성, 말이 인생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 그리고 그 혀를 제어하고 훈련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그 혀가 가지는 치명적인 독소와 재앙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매우 치명적인 슬픈 사건이 사람의 입술의 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가까이 도착하여 가네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다가 사십 일 후에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받았을 때에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아들이고 갈렙과 여호수아의 믿음의 보고를 거부하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하면서 그 정탐한 땅이 거주민들을 삼키는 땅이요 그 백성들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고 네피림 후손 곧 장신족들을 그곳에서 보았는데, 그들에 비하여 자기들은 메뚜기 같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 광야에서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면서 밤새껏 통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수기 14:2~4)
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던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백성들을 만류하면서 말하기를,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실 것이요 그들을 그 땅으로 분명히 인도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권면의 말을 듣자 백성들은 더 무섭게 화를 내면서 두 사람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나타나서 백성들이 주춤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세에게 이르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죽이시면 주의 백성들을 들은 여러 열국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맹세한 땅에 인도해들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광야에서 죽였다고 말할 것이니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라고 아뢰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으시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백성의 죄를 사해주시기를 다시 한번 간곡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고 말씀하신 후에, 그 백성들이 그렇게 많은 이적을 보고서도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멸시하며 그렇게 통곡하며 말한 것을 인하여 노하시면서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 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가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특별히 여기서 주목할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한 그 말을 들으시고 그 말한 대로 그들에게 시행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뿌린 말의 쓰라린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그들이 뱉은 말대로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가를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말들을 내뱉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분위기조차 조심해서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성령의 역사를 멸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일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전에 먼저 그 일하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십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에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이신 우리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서 이르신 여리고 성 정복 작전 지침에 보면 성을 둘러서 매일 한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 일곱째 날에 일곱 번 돌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을 돌 때에 입을 다물고 조용히 돌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 때에 한 두 사람이 입을 열게 된다면 입을 열어 이런 저런 불평을 쏟아내기 쉽고, 그렇게 하다 보면 군중 심리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을 도는 행동을 필경 그만 둘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입을 다물 때에는 순종하기가 쉽지만, 입을 열어 서로 말하기 시작하면 부정적인 말과 원망 불평의 말들을 쏟아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는 것이 백 퍼센트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자 회당장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도 그 집 분위기를 먼저 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 들어가시자 곧장 그 아이가 죽은 직후부터 떠들며 심히 통곡하는 호곡꾼들을 향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제지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다 내보내셨습니다. 그런 후에 그 아이가 있는 방에 제자들 중에 세 사람만 데리고 들어가셔서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명하신 후에 그 소녀의 손을 붙들어 일으키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소녀가 이미 죽어서 절대로 못 살아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확실하게 하는 그 통곡 소리, 떠드는 소리들을 먼저 다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고요하고 평온한 중에 잠든 아이를 깨우듯이 그 아이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인 분위기, 불신앙적인 분위기,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하고 세속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대하는 믿음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동네에 들어가셨을 때에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옛날 목수의 아들로서만 기억하고 전혀 그를 믿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일하실 수 없어서 몇몇 사람만 고치고 그곳을 떠나오셨습니다.
이처럼 분위기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하고 부정적인 말을 늘 쏟으며 불신앙적인 말을 내뱉는 이들 가운데서는 일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께서 침묵하시고 깊이 숨어버리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자기 파멸적인 말들을 들으신 대로 그들에게 행하시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이 고백한 바 시편 141편 3절 말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는 기도를 늘 드리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삼가고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파괴적이고 자기 조롱과 자기 파멸적인 말들은 일체 금해야 하겠습니다. “망했다. 끝났다. 믿어봐야 소용없다. 기도해본들 소용없다. 이렇게 살다 끝나겠지.”라든지 소망 없는 말들을 일체 생각도 말고 입으로 내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에 우리가 마음을 담아서 입술로 긍정적인 고백을 심아애 하겠습니다.
“지금은 어려워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 참다 보면 좋은 일도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기도하고 있으니 끝이 좋을 것이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으니, 분명히 하나님께서 솟아날 구멍을 보여줄 것이다.”
잠언 12:1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낸 실로 자기가 들어가 살 집인 고치를 짓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미래도 우리 입에서 낸 이러한 복된 입술의 고백을 통하여 지어져갈 것입니다. 입술이 긍정적이고 소망적이고 희망적일 때에 하나님께서 그 입술의 말로써 하나님의 복락이 그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손바닥에 올려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우리의 작은 입술의 복된 말이 주님 귀에 들려지면 그 들은 바 복된 우리 말을 인하여 주님께서 아름답고 멋있고 힘차게 응답해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입술의 말은 잘 사용하면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잠언 20:15 말씀에서 이르기를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5:11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처럼 지혜롭고 때에 맞게 하는 말은 참으로 무엇보다 귀한 보배입니다. 칼을 차고 달려오는 다윗에게 마주 나아가 그 발앞에 엎드려 지혜롭게 말한 아비가일의 세 치의 혀가 분노한 다윗의 마음을 가라앉혀 자기 집안의 사람들이 칼에 죽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아벨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의 담대하고 지혜로운 말이 잔인한 요압 장군의 칼날로부터 그 성 사람들을 구해냈습니다. 룻의 아름답고 복된 말은 남편과 아들들을 하루 아침에 다 잃고 살 소망이 없어진 나오미를 살아야 할 이유와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런 저런 시험하는 말을 그녀에게 던져서 그녀를 시험하였는데, 그 때마다 그 여인은 지혜롭고 겸손하고 인내하면서 간절하게 구하는 말을 함으로써 예수님을 크게 감동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입술의 말은 아름답고 복되게 사용하면 이렇게 많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입에 파수꾼을 두고 우리 말을 잘 지켜서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파괴적이고 무익하고 세속적인 말들은 일체 입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잘 지킵시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자주 기도합시다. 그리고 신앙적이고 유익하고 복이 되고 생명이 되고 위로와 용기를 주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세우는 복된 말을 합시다. 그리하여 한평생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수많은 말들로 인하여 듣는 이들에게도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에 기쁨이 되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한없는 복락을 주시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