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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여름의 문학기행/
옥천 정지용 문학관
늘어선 아파트, 쭉 뻗은 도로, 그 간간히 보이는 산, 교회, 술집, 정류장, 퇴색한 집, 슬라브, 가꾸지 않은 숲, 덕지덕지 붙어 있는 간판들... 그 간판 들 중 러시안바, 우리네 도시의 모습을 본다. 위험, 개조심, 바보, 사랑해, 개새끼... 낙서. 정신병원, 구정골, 대흥가축, 외박골, 장개울길, 향수의 고향답다. 옥천으로 가는 길, 잘못들어 청주로 갔다 다시 대전으로 향하고 대전에서 옥천행 버스를 탔다. 씀방이길, 서정이 가득한 서정길, 이백, 근북, 환평, 곳곳에 물이 좋다. 옥천, 비옥한 내가 있다는 말을 실감났다. 금강 휴게소, 옥천 톨게이트, 송시열, 김문기, 육영수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곳.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더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정지용 시인의 향수란 시처럼 지용문학관 앞에는 실개천에 가득 물이 잘잘 흘러가고 있었다. 물이 좋아 옥천이로구나. 어릴 때 들었던 잘잘 물소리가 들려왔다. 지용의 안경낀 동상, 그리고 아담한 초가 생가와 바로 옆의 문학관이 주는 문학적 향기가 새로웠다. 한 여자가 지용을 소개하는 대목에 귀를 기울였다.
[정지용 시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삼대 시인 중에 들어갑니다. 첫 번째가 백석이라고 하구요. 세 번째가 바로 지용시인이라고 하니까요.]
[그렇지요. 저 사진 좀 보세요. 잘 생겼잖아요.]
[그러니까요 윤동주도 그렇구요. 저 오장환을 보세요. 저 사람이 인민군 장교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는 오장환 아닌가요.]
[그렇지요. 그 병든 서울의 오장환 말이에요.]
검은 안경에 세로 줄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사내가 환한 미소의 여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가만가만 나누는 대화들 안에 문학사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우리는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안경을 쓴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정지용 선생의 모형 옆에서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었다. 아담한 생가 위에 떨어지는 눈부신 팔월의 햇살과 함께 지용문학관을 급하게 들렀다 나왔지만 향수의 시처럼 비옥한 땅, 그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싯귀가 머리를 맴돌았다. 어쩌면 그건 시인에게 절박한 하나의 그리움이었으리라. 동상과 문학관이 보이게 사진을 찍고 우리는 급하게 원주로 가고 싶었지만 일곱 시로 약속한 이외수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급하게 문막을 지나 북원주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춘천으로 향했다.
격외선당(格外仙堂)과 작가 이외수
한림대학교 정문 부근에서 만나기로 해 찾아간 곳은 작가의 집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집 바로 앞 쪽에 자신의 선당을 내 그곳에서 소설을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과 만나 자유롭게 소설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춘천의 향교가 주는 예스러운 멋처럼 교동, 대학교가 있는 곳 앞 골목에 자리한 격외선당(格外仙堂)이었다. 백보드에 써 있는 창작의 단계가 눈길을 끌었다. 1. 주제, 2 구성. 그 앞에 한 발을 뻗고 할머니처럼 생긴 얍상한 작가가 흩어진 머리칼을 날리면서 앉아 있었다. 몸의 움직임이 적은 작가는 가끔씩 한 마디 말을 꺼내 좌중을 휘어잡았다. 소설을 공부하는 고등학생과 또 대학생, 나이든 소설가 지망생들까지 함께 있었다. 선당이 주는 여유와, 도인처럼 앉아 있는 작가, 그리고 곳곳에 붙어 있는 과감한 생략과 여운의 그림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선경이 따로 없었다.
[선생님이 장편을 탈고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 탈진 상태에요.]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도인의 세계처럼 그 또한 신선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만은 공명된 소리였고 굵직했다. 금테 안경, 수염, 그리고 긴 머리와 자유롭게 뻗은 한 발, 작가의 뒤로는 붓이며 각종 그가 즐겨 쓰는 도구들이 편경처럼 걸려 있었다. 버선을 신은 것처럼 날렵한 그의 발이 섬세했다. 무당 같기도 했다.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독려를 했다. 신기어린 무당, 영험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낼 것 같은 모습의 작가를 보면서 어쩌면 참 신통한 경지에 올라섰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모습 아닌 다른 어떤 것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바라보고 그 모든 걸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선이 굵고 과감하게 생략된 생기가 숨어 있었는데 마치 선문답을 하듯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 중심을 예리하게 찔러왔다. 얘들아 오너라, 달 따러 가자. 물고기 그림이 주는 시원하고 또 자유로운 약동이 새삼 마음에 와 닿았다. 발을 뻗은 최대한 자유스럽게 명상에라도 잠긴 듯 보이는 작가는 도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명상에 잠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최대한 자유롭게 하면서도 서릿발처럼 작품세계와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중심, 평범하게 말하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말뜻이 담겨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글이 되어야 해.]
작가의 그림처럼 한 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화두처럼 마음에 콕 박혀왔다. 직감, 그리고 순발력이란 말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언어를 고르는 세심함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돌아보면 아무 것도 아닌 죽고 사는 것에 비하면 그처럼 큰 문제가 아닌 것을. 충분히 신의 기운을 입어야 하는 것이 글쓰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창작이란 본래가 신의 창조영역이었으니까. 창조적 기운과 그 바람을 생각했다. 새로운 세계는 평범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묘한 세계였으리라. 작가는 그 일을 위한 특별체험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얼음밥을 먹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볼일을 본 배설물만 치우는 그런 지독한 절제력을 작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문학이 몰살당하고 구타당하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서릿발처럼 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써가고 있을 작가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용기를 내서 더 좀 힘든 것을 그려내길 바랍니다.]
작가는 소설을 배우는 사람들을 향해 일갈하듯 한 마디씩 말을 했다. 그의 앞에는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뒤로 묶은 긴 머리, 꽉 다문 듯한 입술과 함께 눈에서는 신비한 빛이 새어나오는 미소와 자신감이 단호하지만 느릿느릿 어느 한 세계를 이루어가는 도인의 모습처럼 다가왔다. 힘든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서 접하고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체험과 모험의 의미를 그는 소중히 여기는 듯 했다. 소설을 배우는 사람들은 거의가 여자들이었다. 여중고생, 여대생, 그리고 처녀들까지... 여성적 감수성이 언어로 문학으로 더 예민하게 다가갔을까.
섬세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굵직하게 엮어가는 힘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사상이나 주제, 그리고 방향을 잡아가는 힘이라니, 결국 섬세한 문장과 주제를 구성해내는 능력이 관건이었다. 주제를 구성해내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어떤 사상, 어떤 할 말, 어떤 부딪침이 있는 것일까. 어떤 극복의 대책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너는 기형도의 시를 많이 봐.]
세상에 가득한 이야기의 순서를 잡아 할 말의 중심을 갖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야 했다. 주름, 안경, 수염 그 기행적인 곳 속에서도 자연스러운 내공의 힘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잔잔한 유머를 즐기고, 작중 인물들을 만들어내듯 주변 상황을 읽어내는 힘이 보였다. 마음을 비우고 멀리서 찾아오는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
[인물들이 너무 착해. 살아도 무방한 사람들뿐이라고.]
작가는 인물을 제대로 설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악인을 등장시키려면 누가 들어도 끔찍한 인물을 그려야 해. 착한 것도 좋지만 독자를 더 착하게 만들려면 교훈적 악인을 등장시켜야 해. 이런 놈은 안 된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려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거라고. 작가는 비굴하면 안 돼. 용기를 내야 해.]
작가는 내일은 자유롭게 시 한 편씩을 써오는 것이 숙제라면서 굵직한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자기 한 세계를 확고한 그림으로 단순화 시켜낸 굵은 선처럼, 자신의 기준이 명확했다.
[여기 있는 분은 연탄길을 쓴 작가입니다.]
무릎을 꿇은 자세로 공손하게 앉아 있는 사내가 문학회에서 왔다고 말한 우리를 향해 인사를 했다.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장편 하나를 탈고 했다면서 근래 독자들은 1000매를 넘으면 책을 집어 던진다면서 서두를 뗐다. 보통 700매 내외로 쓴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 속에서도 자신은 작가적 양심으로 그렇게는 쓸 수 없어 830매 정도의 소설로 장편을 탈고했다는 것이다. 괴물 같은 건 한 1200매 정도 될 겁니다. 그는 예년에 비해 소설을 읽는 독서 인구가 40%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이 시장성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너무 무분별하게 책을 내고 조금만 유명해져도 책을 내고 수필가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되었다. 작가는 연예인, 스님들을 비롯해 책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쓰는 사람도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요즘 재미난 매체들이 많고 비디오, 스포츠 오락 게임등 다양해서. 서점들이 파산상태가 되었습니다. PC방은 붐비는데, 책을 읽어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으면 모를까 읽고도 남는 게 없으면 돈 아깝고 차라리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 게 낫겠죠. 8,000원 이상이 가는 책값에 비해 500원이면 비디오를 빌릴 수 있는 경쟁으로 놓고 보면 16개를 볼 수 있으니까 본전 생각이 날 겁니다. 그러니 작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가슴에 남는, 여운이 오래 가는 걸 만들려고 애써야 합니다.]
문1>선생님의 신관은 어떠신지. 무신론인지 아니면 범신론에 가까운지. 선생님께서는 종교에 대해 상당히 조롱을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많은 종교를 인정하는 편입니다. 범신론에 가깝다고 봐야지요. 제가 조롱하려고 한 건 종요가 애정, 사랑, 자비가 본질인데 그 본질을 상실하고 사업화된 면이 있어 언짢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발효된 종교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융통성이 없습니다. 그저 계율을 만민에게 적용시키기만 할뿐, 자유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사물에 대한 애정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 상실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세력확장에만 신경쓰는 교회, 정치와 결탁된 교회를 저는 안 좋게 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은 교세확장으로 성도를 머리수대로 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의 위대성을 계산으로 따질 수 있습니까. 모세가 나와도 바다를 가로로 가를 것입니다. 인간의 영적 성숙이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 보다 못한 작태를 전 반대합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과 종교는 둘이 아닙니다.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내적인 미를 강조하지만 내적인 아름다움과 종교의 가르침은 본질이 다르지 않습니다.
문2>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도는 없겠지만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나 중점적으로 해야 할 공부가 있다면 무얼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분야든 기초가 튼튼해야 자유자재가 가능합니다. 문학의 기초는 언어입니다. 즉 단어죠. 낱말 하나하나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기초가 튼튼한 겁니다. 연수원생들도 한 달 동안 배우는 것이 단어입니다. 보통 단어는 생어와 사어로 구분합니다. 소설 속에서 동원되는 단어들을 보면 인위적으로 비유하면 10년만 지나면 낡은 축에 들어가고 맙니다. 가급적 자연 속에서 얻어낸 단어들이 좋습니다. 인간 중심의 단어들은 추상적인 언어들입니다. 만져지지 않고 버려져 냄새와 맛을 볼 수 없는 단어들입니다. 그런 단어들을 묶어서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고독이란 말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암갈색으로 색칠을 하고 모양을 만들면 달라집니다. 고독이 허물어진다. 밀려든다. 혹은 솟구친다처럼 말이죠. 기타 모방에 관계된 언어 즉 생어를 붙이면 죽은 단어도 살아납니다. 기초 문학수업은 노트 다섯 권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나눠 단어를 채집하는 것과 같은 작업입니다.
자료가 풍부하고 단어가 감각별로 오감을 자극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무감각을 색칠하는 단어로 살아나야 합니다. 한 단어 한 단어 그렇게 써주면서 생각이 나지 않으면 노트를 떠들러 보세요, 그러면 단어의 감각이 살아나게 됩니다. 제 문체는 서술적인 문체를 거의 쓰지 않는 편입니다. 주로 보여지고 만져지는 감각적인 단어들을 씁니다. 그 첫 번째가 생어 위주로 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연 속의 비유입니다. 그런 단어를 골라쓰면 20-30년이 지나도 낡지 않고 생동감이 있는 글로 살아 남을 수 있는 겁니다. 저는 문장을 쓸 때 만년체는 쓰지 않습니다. 간결체의 문장으로 씁니다. 만년체의 문장엔 욕심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문장을 어색하게 만듭니다. ~하고, ~하고, ~하다고 쓰지 말고 그걸 세 문장으로 나눠~했다. ~했다. ~했다고 쓰세요. 그래야 한 문장씩 선명해집니다. 실제로 한 문장 안에서 그 많은 것들을 연상하는 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단어는 감각 위주로 쓰고 오감을 자극시킬 수 있는 단어를 써야 합니다. 문체는 단문 위주로 간결체로 쓰고 말입니다. 사건을 풀어가는 건 서술적 문체보다 묘사적 문체로 쓰길 바랍니다. 옛날 이야기와 소설이 다른 건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고 맛보는 그래서 시적인 효용성이나 다른 장르와 다른 깊이를 소설 안에서 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사실 다른 장르들이 갖는 장점들이 소설 안에는 다 있습니다. 그런 효용성을 살려야 옛날 이야기를 적은 소설과 다른 다양한 맛을 단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문체와 스토리에 머물지 않고 묘사의 현장감을 살려나가야 합니다. 실제 그곳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설명을 줄이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술적 문체를 묘사적 문체로 바꿔야 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건 단어입니다. 옛날 습작시절에 저도 얻은 그 감각 하나로 30년을 울궈 먹고 있는 겁니다. 기초가 중요합니다. 외상값 갚으려고 쓴 글이 절실했고 그렇게 된 이후에 당황했습니다. 등단한 사람에게 거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궁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후속작이 없으면 심사위원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실제 밀린 방값이나 가게 외상값을 갚는 것에서 이제는 문학으로 한 평생을 살 수 있도록 산속에서 삼녀 동안 공부를 해서 결국 3년 후에 중앙문단에 데뷔를 한 것입니다.
요즘 창작하는 교수가 가르치는 건 모르지만 평론가들이 가르치는 문창과 수업은 애들을 망치거나 혹은 비평가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론은 빠삭하지만 쓰려고 하면 못씁니다. 문창과에서도 시나 소설을 쓰는 건 사양길입니다. 문창과 내에서 시나 소설을 전공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20% 정도에 불과합니다. 다 드라마나 시나리오, 혹은 만화 스토리텔러로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작가들의 사명감이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 젊은 작가들이나 좋은 작가들도 잘 될 때 구심점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은 너무 마구잡이로 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하루 한끼의 식사를 한다고 했다. 저녁에 아침을 먹었다. 며칠 굶었다면서 그는 홀쭉한 몸으로 살아가는 그 도인과 같은 생활을 드러내 보였다.
단어를 채집하는데에도 그저 단어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의 단어를 음미해야 합니다. 그냥 채집하면 너무 종류가 많다. 그냥 나무라고 쓰면 그건 하나의 기호에 불과합니다. 반드시 그 나무의 맛을 본 다음에 써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기운이 실리는 겁니다. 단어는 기호로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음미해 쓰는 사람과 그저 습관적으로 쓰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기운의 차이를 기감(氣感)하는 글이어야 합니다.
문4> 저는 연극영화학과 1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저도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꿈인 사람인데 제가 공부해야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배우 수업>이란 책을 읽어봤습니까. 연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나 그 쪽에 관계된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책입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떤 배우가 햄릿을 연기한다고 합시다. 그 배우의 햄릿을 보고 다시 햄릿이 살아온 것 같다. 얼굴이나 생김새, 말이나 어투까지 똑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연기를 하는 건 연기로 놓고 보면 빵점이란 겁니다. 왜 그러냐, 100명이 연기를 하면 100명의 햄릿이 나와야 정상이란 겁니다. 그건 예술의 창조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수가 가르치는 것 보고 그대로 하는 연기는 흉내내기 도장찍기, 거울 보고 연습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빵점연기란 말입니다. 예술은 자기의 창조성과 투철한 정신을 가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1970년대부터 21세기까지 모든 연극인들이 읽는 철학서와 같은 텍스트이자, 또 소설처럼 쓰여진 책입니다.
문5>연탄길 저자의 질문/버스를 타기 전에 술을 하나 선물하고 싶어서 캔맥주 마시고 들어가는데 집에 장모님이 와 계셔 집에 캔 맥주를 가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에 올라가 캔맥주를 놓고 왔는데 가만히 들어와 생각해보니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다가 이전 가까운 자리를 영화연극과에 다니는 일학년 학생에게 양보한 후 다시 가까이 가 그가 가져온 선물(쇼핑백)을 가져다 놓았다.
답/ 저는 요즘 술 끊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의 말을 책에다 쓰지 않습니다. 평론도 안 붙이고 작가의 말도 안 붙입니다. 쑥스러워서 말이죠. 그래서 어떤 사람의 책에도 발문을 쓰지 않습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또 이론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할 수 있는 건 독자를 한명이라도 늘렸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무리 아름다운 낱말이라도 눈물에 적시지 않고 파종하면 말라 죽는다’는 어떤 분의 말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소설의 새로운 화두란 새로운 인물형의 창조겠지요. 영화 환경이나 만화시장도 이전과 달리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스토리 위주의 드라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만큼 투자는 많이 하면서도 내용이 부실하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고 봅니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삼백 만원을 주는 것이 아깝다거나 혹은 원작료와 각색비를 이중으로 지불하는 것을 아끼려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거나 감독이 직접 원고를 쓰는 일을 합니다. 또 공부가 안 된 사람들이 써대는 그런 원고로 성공을 한다는 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손재주가 많아서 애니매이션에서 그림이 뛰어납니다. 일본의 대부분 애니매이션 그림을 한국사람들이 싼 인건비로 그려낼 정도로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애니매이션을 편집에 비싸게 팔아먹습니다. 디즈니랜드 애니매이션에도 3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국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림은 잘 그리지만 이렇게 돈벌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 왜 그럴까요. 그런 그림을 한국에서 만들면 그림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나빠서 실패한다는 겁니다.
인체로 놓고 보면 시나리오는 척추와 같습니다. 대사가 죽어 있고 탄력이 없이는 결코 영화가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을 보면 늘상 묻습니다. 밥 먹었니. 그리고 게속 밥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도 하다못해
창자가 빈 채로 있나요 하고 다르게 물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먹었냐 먹었어... 하고 메시지가 없는 말들을 끝없이 방송합니다. 좋은 영화는 좋은 대사가 탄력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니까 안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평소 생활 속에서 낱말이나 말들을 음미하는 걸 습관화 해가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발효문화입니다. 세균을 일으키는 화학변화라고 하는 것이 두가집니다. 그 한 가지는 부패고 다른 한 가지는 발효입니다. 우리는 부패된 언어가 아니라 발효된 언어를 써야 합니다. 작가는 의식이 발효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먼저 푹 익어야 합니다. 의욕과 충동만으로 글이 나오진 않습니다. 감독은 원작을 보고 아카데미상을 휩쓸 것 같이 말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주고 나면 개판으로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그건 정신이 결여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술 하려면 구심점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구심점으로 예술을 봐야 하지 나를 보아선 안 됩니다. 거리를 저울로 재고 무게를 줄자로 재는 건 틀려먹은 기준입니다. 작가 스스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사유를 해야 합니다.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을 보고 우리는 사과에 만유인력이란 것 이외의 법은 없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시인은 시를 끄집어내고 또 노래를 끄집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물을 보고 의식을 확장해 나를 발효시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먹이 이외의 단순함 너머의 것 찾아내야 합니다. 단어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찾아낸 단어를 우리는 음미해야 합니다. 가령 인체를 놓고 제일 먼저 머리를 그린다고 합시다. 머리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라든가, 어떤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나쁜 걸 말합니다. 수학적으로 암기를 잘 하는 사람은 응용을 잘하는데, 그게 다 일까. 물리적으로 머리는 망치로 두들겨 쉽게 파손되면 불량품일까 아니면 오래 버티는 것이 우량품일까. 머리를 쓴다는 건 물리적, 수학적, 혹은 내부적 외형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작가는 단어에 대해 명상하고 사유해야 합니다.
가리마를 보면 머리에 나 있는 하얀 길이라고 할 수 있고 다른 생물체에는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렇게 그 안에 사는 생명체는 숲 속으로 다니지 길이 잘 닦여진 곳으로는 안 다닌다는 것이나, 머리는 왜 자르면 안 아픈데 뽑으면 아프지, 뭐 이런 식으로 단어를 가지고 놀아야 합니다. 단어를 씹어보고 만져보고 뒤집어 보고 잘라보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문학은 안 됩니다. 비틀과 뒤집고 충돌시켜보고 해야 음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겉모습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음미해서 나오는 대사는 다릅니다.
걸레 하면 사람들은 더럽다고 먼저 말합니다. 남들도 똑 같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걸레였을까. 저건 어머니의 무릎을 지키던 내복이었고, 혹은 아리따운 처녀의 들꽃 무늬가 새겨진 원피스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제 기능을 다 하고 걸레가 되었다면 걸레는 결코 더러운 것만은 아니란 겁니다. 인간 가운데 남을 거룩하게 하면서 자신은 찢어지고 헤어진 걸레만도 못한 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글을 읽으면 먼저 남이 못보는 것, 가슴을 철렁하게 하고 뭔가 잘못 봤어, 뭔가 잘못 살았어 하는 여운을 남기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주어야 생명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사 하나에도 생명이 실리는 겁니다. 그 정신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척추가 없는 사람처럼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흐물거리지. 우리는 그런 언어를 일상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도 안하고 그저 빨리 얻으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공먹겠다는 욕심입니다. 하지만 왜 과정을 안 거치고 그 나이에 얻어내려고 합니까. 남보다 열 배 노력을 해야 열 배 소득을 얻는 겁니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노력을 너무 게을리 합니다. 생노병사 중에 예수도 골라 먹지 않았고 석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응당 거쳐가야 하는 것입니다.
돈 많은 재벌총수도 집무실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합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젊어서 고통을 감내하거나 어려운 것 고통스러운 것이 싫으면 안 옵니다. 어영부영 보통 청년백수들을 보면서, 한국경제가 언제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전부 이걸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결국 내 자신에게 의존하는 수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젊어서도 서울대 출신 백수건달이 있었고 신문에 할 소리 뻥뻥하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전두환 박정희 시대에도 아가리 막고 귀 막아 안 들렸을 뿐 눈에 뜨이지 않아서 그렇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청년 백수 사령관처럼 똑 같이 공부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요즘 아이들 학원 세 개 이상 다니는데, 학원 안 다니면 큰 일 날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놈이 그 놈처럼 똑 같은 식입니다. 다 아는 영어 모르면 자신만 쪼다 되는 것일까요. 나는 영어를 잘 할 줄 모르지만 내 소설이 터키어로 번역이 되어서 터키에만 가면 대환영입니다. 여기저기서 교수로 초빙하겠다는 겁니다. 터키와 교류를 할 때면 꼭 저를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남이 영어를 한다고 다 영어를 하니까 다를 것이 없고 빛나지 않는 겁니다. 영어 못해도 아무 불편함이 없습니다. 다 통역해서 남들 다 할 때 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400만이 다 하지 않습니까. 회사를 잘 되게 하려면 발상이 다른 사람이 필요합니다. 400만이 다 그게 그것이라면 자신만이라도 특별해야 합니다. 그렇게 특별하면 회사에서도 여기를 그만두어도 다른 곳에서 그 쓸모 때문에 오라고 하는 것이지 남들 다 하는 것 하면 한 곳에서 쫓겨나고 다른 곳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의 백수사령관은 빌빌거리면서 결국 지하로 잠적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지하인생을 사는 건 젊어서 한 게 없어서입니다. 내가 가져야 할 노하우가 없고 똑 같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시나리오로는 안 됩니다. 독특한 발견을 하고 제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젊은 사람이 해보지도 않고 하기도 전에 이건 이럴 것이라고 말하면 평생 달라질 것이 없이 삽니다. 직장에서도 책을 읽으면 돋보입니다. 책 안 읽으면 그게 그것입니다. 예술가는 머리 쓰는 것 뿐 아니라 마음 쓰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문6/ 세상이 바뀌고 있다. 스피드, 혹은 전문화, 그 안에서 문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안 바뀌는 겁니다. 최후의 희망은 인간답게 사는 겁니다. 작품을 만든다는 건 인간답게 살아가는 인물을 찾아내는 겁니다. 고매한 노동론,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자문적인 말은 안 됩니다.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인간형이 모티브가 되어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러려면 명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저는 자신에게 가혹합니다. 하루 네 시간 이상 잠을 자면 불쾌하고 자책감 같은 것이 듭니다. 두 끼 먹으면 미안하고.
저는 젊어서 여행을 많이 다녀서 여행하면 진저리가 납니다. 또 외국에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외국에 가서 이내 후회를 하고 맙니다. 사람 사는 것이 거기서 거기죠. 저는 망원경을 놓고 천체를 보거나 현미경 속에서 의식여행을 떠납니다. 이렇듯 내면을 읽으면 어디나 똑 같습니다. 사람도 거기서 거깁니다.
문7/미셀푸코는 철학을 정의하길, 삶이란 왜냐고 묻는 자의 자기 반성이다고 했습니다. 문학의 자기반성적인 면을 강조한 건데요. 다른 이는 작가를 달리는 열차의 화부로 비유를 했습니다. 독자는 열차의 승객이고 작가는 석탄을 때는 화부란 겁니다. 선생님의 문학은 자기 반성 쪽입니까 아니면 독자에게 보이는 무엇입니까.
작가는 종착지에 먼저 가서 기다리는 쪽입니다. 작가의식은 현실론적으로 30년은 앞서 있어야 합니다. 현재진행형의 화부역할이 아니라 선구자적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정말 순교를 각오하는 것만큼 힘든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여러분 또한 거룩해 보입니다. 세계적인 첨단예술가 백남준을 보십시오. 그는 최첨단 예술의 창조자로 전국에 동상 백개를 세워도 좋을 사람이고 또 전 교과서에 실려야 할 사람입니다. 1974년 전 세계의 채널에 정월 초하루 방영되었던 대단한 예술가지만 우리나라에 오면 아마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대학생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가 한국에 삼년 있으면 조급해 복장이 터져 죽거나 혹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굶어 죽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예술가들은 거룩합니다. 조악한 상황에서 예술을 붙잡고 산다는 건 순교자처럼 거룩합니다.
문8/물신화된 세상 속에서 소설이 나아갈 화두를 어떻게 보십니까?
조화에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기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제 작품 황금비늘에서 제일 나쁜 놈은 나뿐인이라고 말했습니다만 나뿐인이 나쁜 놈입니다. 먼지 한 점도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만 중시하면 개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양놈들은 나뿐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퇴화되지요. 그 놈들은 I를 제일 중요시 여깁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자기 마누라까지도 우리 마누라라고 할 정도로 우리란 생각이 무의식 속에 들어 있습니다. 원래 한국 사람의 정서를 놓고 보면 바로 요즘의 이기심이 조화로움을 깨트리고 있다는 겁니다. 전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정체성을 잃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주관을 왜곡시킵니다. 한국이 지니고 있는 전통성과 정체성을 잘 살려가야 합니다. 그건 우리가 지닌 철학적 종교성이 서양의 것들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는 서양에서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도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늘을 두려워 할 줄 알았습니다. 밭을 매다 돌이 튀어나와도 왜 하필이면 거기 있다가 맞았느냐면서 대화를 할 줄 아는 여유 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상들은 나무하고도 대화를 할 줄 알았지만 요즘은 그 조화로움을 상실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런 결과가 인간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겁니다. 전체를 놓고 보면 반드시 인간에게 해악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 하나만 잘 되면 남이야 죽건 말건, 고추장에 톱밥을 넣고 농약 먹은 콩나물을 가져다 팝니다. 돈만 벌면 된다는 개인주의는 궁극적으로 작가만의 화두가 아니라 인간의 화두여야 합니다.
강원일보의 건물이 있는 곳 주변에 일단 숙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가까운 명동에 나가 춘천의 맛을 보기로 했다. 춘천 막국수와 닭갈비의 맛처럼 춘천이란 도시는 깔끔하고 산간지역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호반의 도시다운 여유가 느껴졌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네온의 불빛도 훨씬 더 선명했다. 서울에서 보던 네온불빛과 달랐다. 강원일보 주변은 가요주점과 온갖 환락의 불빛들로 반짝였다. 송선사께선 육만원의 방값을 인원 한 사람을 줄이는 융통성으로 반가격에 할인해 오는 입담을 보여주었다.
드럼통 같은 불판 위에 넓은 판을 깔고 그 위에 야채와 닭을 넣고 볶는 닭갈비와 함께 소주 한 잔씩을 하고 또 얼음이 섞인 막국수를 먹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북한과의 축구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생각과 함께 휴가기간이 주는 안온한 기분을 즐기면서 호프 한 잔씩을 더 마셨다. 이전 마인호프를 생각나게 하는 호프집이었는데 들어가기 전 우리는 농담으로 주인이 다른 사업을 하다 망했거나 혹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들어섰을 때 주인은 안주를 강권했지만 우리는 호프만을 고집했다. 어둠 속 서서히 걸어 들어오는 숙소와 춘천의 한산한 한여름밤의 기억을 안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유정 문학촌과 작가 전상국
다음날 김유정 문학촌을 찾느라 춘천의 외곽을 헤매다 친절한 전상국 선생의 안내로 김유정 문학관을 찾아갈 수 있었다. 시내에서 팔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김유정 문학관은 문학관이 아니라 그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학촌을 이루고 있었다. 전상국 선생님도 김유정 문학촌의 촌장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에게 문학관 안에서 자세히 김유정의 문학세계를 소개 받았다. 실레마을(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금병산 그리고 그 안에 나오는 금따는 길, 금병의숙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이름붙여 만든 문학촌이었다. 소설가 전상국씨가 김유정의 소설에서 기가 죽은 이유는 어쩌면 칠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읽히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생생한 농민의 삶을 담은 생활언어/한자어를 쓰지 않고 순수한 우리말로 쓰는 소설.
/우리 말, 독특한 언어감각과 해학적인 작품세계 형상화. 실제 마을 배경, 실존인물의 형 상화. 입체적이고 실감나는 이야기로 와 닿게 하는 이유. 당시 욕쟁이 영감 등.
/채만식의 시니컬한 풍자와 달리 김유정의 소설엔 만무방 혹은 따라지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보 같은 삶의 이야기를 위에서 내려다보듯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 다.
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실레마을, 한자로는 증리라고 불렀다. 그의 소설 31편 중 12편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쓰여질 만큼 그는 이 년 여 동안 머문 그 마을에서 당시 우리 서민들의 삶을 담은 귀중한 소설을 일궈냈던 것이다. 병풍을 두른 듯 서 있는 금병산을 따라 등산로가 나고 그 이름을 소설에 나오는 이름을 따 봄봄길, 금따는 콩밭길 등등 작품으 이름을 붙이자 새로운 운치와 함께 이곳이 김유정문학을 체험해볼 수 있는 귀한 문학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전상국 소설가는 말했다.
부자였지만 초가집을 짓고 ㅁ자 형태의 집을 지어 안에서 걸어 잠그면 바깥에서 도둑이 들어오지 못할 정도의 폐쇄적 집구조, 거기에 굴뚝에서 밥하는 연기가 바깥으로 퍼져가지 않도록 집안에 굴뚝을 놓을 정도로 세심했던 구한말의 부자들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은 역 이름도 김유정 역으로 정할 만큼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가 이름을 딴 역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로 김유정 역에 가보았는데 그곳엔 김유정의 책과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유정역...!
그의 소설이 세월이 흘러도 가치가 새로운 건 무엇 때문일까. 문학사에서 그처럼 해학적이고 언어가 생동감 있으면서 또 향토적인 작가도 없다. 그의 작품 제목 봄봄은 본래 제목이 봄·봄이 정확한 이름인데도 교과서에서까지 다 봄봄으로 실렸다. 이 아래아(·)의 의미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을 내리고 있는데, 점순이의 점, 혹은 두 남녀의 대결구도, 혹은 우주 순환논리등 다양하다. 그의 소설에 한자가 없다는 건 주목할만하다. 그건 따라지 만무방(한끗 인생으로 체면이나 염치 없이 막되 먹은 사람)들의 인생을 적나라하게 잘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정취를 그리는 게 꿈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판소리나 마당극 같은 이야기를 뽑아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그리고 아니리로 말하는 이들이 모심다 마치 논두렁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얘기한다. 자식인 소설이었던 채만식의 소설과 달리 김유정의 소설은 만무방들의 인생 이야기다. 산골 나그네에서도 얼굴을 당시엔 안면이라고 한자어를 썼지만 그는 낯짝이나 낯빤대기란 말을 골라 쓸 정도로 세심했다. 낙엽이란 말도 떨잎이라고 썼다. 그는 밑바닥 언어를 구사했는데 그 언어가 60,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살아 있는 언어로 죽지 않고 전해진다. 거듭 그가 매력 있는 작가로 교과서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실린 이유를 알 듯 했다.
동백꽃은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데, 강원도에서 동백꽃은 산수유처럼 노랗게 꽃을 피우는 꽃이다. 작가는 그 꽃향기가 향깃하고 알싸하다고 그리고 있다. 그 향기는 바로 생강냄새처럼 알싸한 바로 생강나무였다. 그의 글은 구체적인 묘사의 힘이 있다. 김영하, 성석제 그리고 오정희씨도 그의 작품을 보고는 그 언어구사력과 능청스러움에 탄복을 했다고 한다. 스물 아홉의 나이 밖에 살지 못한 그의 언어감각이라니. 문학사에서도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는 크다. 전상국 선생이 평양에 갔을 때 북한 문학에서도 김유정은 높이 평가를 해주고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고 한다.
여덟 살 때 조실부모하고 형이 재산을 팔아먹으면서 어려워진 형편에 박록주란 당시의 최고 가수를 짝사랑했던 일로 또 박용철의 여동생이었던 박봉자와 나란히 어떤 남편, 어떤 아내를 맞을까 하는 글일 실었다 인연이 되어 죽을 때까지 현서를 쓸 정도로 짝사랑 했던 일로 빨리 죽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박봉자는 나중에 김환태란 문학평론가에게 시집을 갔다.
문학관에도 김유정의 유품은 한 점이 없었다. 그건 그의 원고보퉁이를 김유정의 형 친구인 안회남이란 사람이 가지고 북으로 갔는데 북한에도 김유정의 유품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문학관 한 편에 붙어 있는 신문기사엔 박록주가 썼다는 글이 붙어 있었다.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요. 마치 판소리 가락처럼 김유정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었다.
사건의 의외적 전개, 엉뚱한 반전, 한국문학의 전통적 맥을 잇는 해학미... 김유정의 소설을 보면서 성석제씨 또한 전통과의 접목에 새로운 도전을 느낀다고 했다. 서양의 해학과는 다른 우리 선조의 해학적 전통을 그의 소설 속에서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픔이 있던 당시의 농촌을 우리의 전통적 골계미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바보들의 우직스러운 행동을 똑똑한 사람이 보고 즐기는 이야기다. 사회성은 적지만 그 당시 농촌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을 잘 그리고 있다.
그는 이 년 동안 농촌에 내려와 농촌계몽운동을 하면서 그 안에서 그 농촌의 욕쟁이 할아버지를 비롯해, 생생한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실감나는 그들의 언어로 그려냈다. 한학을 한 김유정이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한 자를 한자도 쓰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우리 감각을 살리고 또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살려냈던 것이다. 주막터, 움막야학터, 김봉필의 집, 덕만이 마을... 등등. 노다지와 소낙비로 동시에 혜성처럼 타나난 김유정은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시골에 내려와 있었다.
문학관이 그저 시에서 접수해 일방적으로 홍보관에 그치지 않고 민간단체에서 맡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상국 선생의 문학촌 활성화 복안이었다. 그는 그저 문학관이 아닌 실제적 체험의 공간이 문학촌으로 문학관을 한층 더 승화시켰다. 산문백일장, 소설 낭송대회, 문예 캠프, 향토작가 알리기, 열 일곱 살 점순이 찾기, 마을 욕필이 할아버지 찾기, 등등 주민과 함께 하는 문학체험도 하게 말이다. 군부대를 찾아가 김유정의 작품세계를 알리기도 하고 당시의 삶을 체험해보기 위해 떡을 치기도 했다. 안해와 소낙비란 작품을 연극으로 실연해 보기도 한다고 했다. 또 김유정역을 향해 열차로 여행와 삼박 사일 동안 문학제를 열어 전국적으로 김유정 문학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예산을 욕심내기 보다는 나오는데로 그 돈으로 행사를 치러 지금은 이천 오백만원가지 예산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직원들 월급을 주고 그저 운영하는데 급급한 문학관이 아닌 주민과 혹은 문학의 저변인구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문학촌으로서의 기능을 그는 강조했다.
지금 시대에 문학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더 이전에 비해 그 시대가 갖는 가치를 담아내는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향이 주는 자연의 안온함처럼 고장문화예술의 메카로서의 기능을 문학촌이 하고자 한다고. 문학 또한 지금 이 시대 속에서 더 구심점을 가지고 사회에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이란 도시는 전란으로 초토화된 후에 다시 일어난 도시라 전통과의 연결고리가 약하다면서 도청소재지지만 인구가 적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춘천이란 문화적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인형극, 판토마임을 넘어 이제는 김유정과 함께 새로운 문학적 힘을 키우는 곳으로 말이다.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묶여 공장을 짓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인구가 늘지 않는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사는 건 척박하고 풍요롭지 않지만 문화의 변방지대에서 문화 인프라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에선 홍석중이라고 황진이를 썼던 작가가 김정일 집안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듯 상당히 자유로운 모습이었다고. 4.15문학 창작단이란 20여명의 작가들이 있어서 그들은 일급 작가로서 김일성상 계관작가나 인민상 계관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최근 미전향 장기수들의 혁명사상을 주로 작품으로 다루려고 한다고 했다.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여서 작가들을 잘 대우해 줘 아파트를 제공하고 공동창작실을 이용하는 등 최고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체제상 서점에 가보면 책이란 것이 잘 유통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전상국 선생은 아무리 시대가 달려져도 우리의 전통성이라고 하는 기본 줄기는 변함이 없다면서 어떻게 우리의 전통성의 맥을 이으면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 작가에게 맡겨진 소명이라고 말했다. 전상국 선생은 식사를 했느냐면서 문학촌 앞에 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은 순수 백퍼센트로 만든 메밀 막국수를 만드는 곳이었다. 실제 메밀국수는 색깔이 검지 않고 밝은 색이라고 말했다. 메밀싹무침 맛이 일품인데 날씨가 더워 싹을 구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주인은 인정이 있었다. 총모양으로 생긴 메밀 전병 안에 무속을 넣어 만든 총떡의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육수를 조금 넣고 젓가락으로 서른 일곱 번 정도 비벼줄 정도의 세심한 뒤집기로 다가오는 막국수의 맛이 독특했다.
[왜 막국수인줄 아세요. 그건 이제 막... 이제 막 반죽한, 이제 막 뽑은, 이제 막 먹을 수 있는 그런 국수란 말이죠. 옛날에도 우리 조상들은 찬 물에 방금 삶은 국수를 풍덩 담갔다 꺼내어 국수를 먹었지요. 그런데 지금 국수를 보면 보리 탄 것을 넣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메밀맛이며 그 끈기가 제대로 날 리가 없지요. 한 번 드셔보세요. 지금 드시는 맛이 바로 본래 메밀 맛입니다.]
춘천 닭갈비를 묻는 질문에 전상국 선생은 본래 추워서 드럼통에 요리할 수 있도록 닭을 각쳐서 불판에 올려놓고 먹던 것에서 연유했다면서 지금 먹는 닭갈비는 본래 닭갈비의 맛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대학가 앞에서 젊은이들 입맛에 맞게 변형된 것이지 본래 예전 이곳에서 군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각을 친 닭을 불판에 구워 먹는 그 맛이 진짜라고 했다. 언제 다시 오시게 되면 진짜 닭갈비 맛을 보시라구요. 여러분이 드신 건 안 좋은 기름맛에다 야채 맛이지 그게 어디 진짜 닭갈비 맛입니까.
할아버지한테 와봐, 촌장님은 막국수집 딸을 향해 말했지만 아이는 그림을 그리는데 심취해 할아버지고 뭐고 없다. 야 너 그림 잘 그린다. 메밀밭에서 찍은 부부와 두 딸의 동생이다. 한 살 터울이란 딸들은 살짐이 있고 복스러운 얼굴이었다. 이거 네가 그린 그림이야. 야 대단한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그림은 걸게 사진 속의 두 딸 아이가 그린 그림이었는데 미술상도 몇 받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했다. 문학촌 정자에 와서 그림 그려 알겠지. 촌장님이 그림 그리라고 했다고 말이지. 무더운 날씨 땡볕이 내려쬐는 김유정 역에서 가까운 곳에 집필실이 있다는 전상국 선생과 헤어질 때도 정중하게 서로 인사를 나눴다. 막국수집 부엌에서 일을 하던 안주인과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 원주에서 청주 가는 길 토지문학관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그건 토지문화관이란 변수 때문이었다. 토지문화관은 일반 관객에게 관람이 되는 곳이 아니고 토지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토지문학공원 겸 토지문학전시관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당구동인 줄 알았는데 단구동이었다. 공원 겸 전시관을 찾아가다 결국 멀리서 온 일행과 나뉘어 일부는 돌아가고, 일부는 남게 되었다. 소낙비가 그친 하늘에 내려뙤는 뜨거운 뙤악볕 아래 우리는 토지문학공원으로 향했다. 동부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삼키로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결국 그렇게 가까운 시내에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외곽만 찾은 것이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 돌아가는 일행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죽어서 문학비보다 살아서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문학을 하려면, 조용히 마음으로 하지 연설은 무슨 연설이냐고. 우리가 강연을 들으러 왔냐고.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설가를 만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는 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문학을 하는 게 술을 마시고 어영부영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런 꼴 보기 싫다고. 여하튼 정지용문학관으로부터 시작된 문학일정을 되돌아보면서 또한 사람들의 생각이 동상이몽처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얘기들 때문이었다.
토지문학 전시관과 작가 박경리
택시를 타고 찾아갔을 때 우리는 그곳이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집필하면서 머물렀던 저택이었음을 알았다. 결국 그곳에 그의 생가와 함께 토지문학공원 겸 전시실이 조성되어 있었다. 대문, 집으로 향하는 길, 그리고 둥근 전시실까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작가가 살다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 모든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살아 있는 것을 죽여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 자체는 한이다.
2. 모든 생명은 공평하다. 자신에 대한 연민은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3. 모든 자연과 더불어 잘 살기 위해 잉여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문학은 본질이 아니라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저 밥하고 풀 뽑는 일처럼 일상적인 일이 더 본질적이다. 어쩌면 죽어서 문학비보다 살아서 생활이 중요하다는 말도 일맥상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말까지 폄하하는 태도는 문학기행의 근본 동기까지도 뒤흔드는 것이어서 새삼 휴가 기간 동안에 찾아간 문학기행치고는 참 썰렁한 결론이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새삼 이외수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작가도 한국에 오면 삼년 안에 복장이 터져 죽거나 혹은 배고파 죽고 말 것이란 말이었다.
원주 단구동 집은 박경리 선생이 토지 4부를 쓰면서부터 17년 동안 살았던 곳이었다. 언덕에 있는 집은 시원한 전망에 우리나라 삼대 악산이라고 하는 치악산이 동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었다. 박경리 선생은 자신이 그 집을 내어놓으면서 자신이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가 안착한 터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당시 토지개발 공사가 그렇게 그녀의 땅을 수용하는 것에 미안해 지어준 곳이 바로 토지문화관이라고 했다. 1993년에 지어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찾아와 테이프를 끊은 토지문화관은 작가를 위한 창작의 공간으로, 문학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을 위한 집필실이자, 또 각종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지어졌다.
박경리 선생은 그래도 이전 자신이 글을 쓰던 시대가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토지를 끝내고 나서 정말 놀고 싶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여행도 하고 누리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정작 글을 쓰고 나니 재미가 없어. 글을 써야 생기가 나. 내 개인 감정이나 목적에 상관 없어. 도망할 수 없는 것이 작가의 양심인가봐. 괴로움조차 밑거름이 돼. 지금 잘못된 것이 있다면 돌려놓아야 해. 시계 바늘이 맞지 않다면 시계 바늘을 돌려 놓듯이 말이야.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해.
환경문제란 문학과 경제를 떠나 인간이 그곳에서 떠나살 수 없는 즉 삶을 지탱하는 터전이지. 한 생명을 존재케 하는 것 말이야. 그래서 환경문제가 중요한 거라고. 크게 시야를 터서 본질적인 것 끄집어 내고 정립해 가야 해. 방법을 시도하자. 그것이 창조적이어야 해. 복고로 있었던 것을 되풀이 하자는 것이 아니야. 그건 복제지. 자본주의 경제행태를 보면 많이 생산하고 소비 하는 쪽에 집중을 하지. 하지만 그 안에 창조성이란 것이 너무 없어. 그저 생산과 창조가 같은 게 아니야. 창조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오늘 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서 모든 폐단을 드러내고 있지. 그리고 방향제시조차 못하고 있어.
우리는 토의를 통해 토의 문학을 할 필요가 있어. 새로운 논문도 창작한다고 하잖아. 그건 창조적 행위야. 학설을 정립하는 창조적 행위는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영상등 후원해 준다고.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쉐터를 짜 십년 이십년 입었다는 그녀였다. 문인 친구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기도 할 정도였던 그녀는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어지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그녀를 소개하는 비디오는 그녀가 일흔 세살이었던 이전의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도 기계로 쓰지 않고 만년필과 원고지를 고집한다는 그녀였다. 유기농법으로 재배를 한다는 그녀는 땅 속의 미생물까지도 믿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삶을 이야기 한다. 그것이 생명사상이다.
하지만 자동식은 반생명적이다. 그건 인간이 손으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운동성과 능동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동적으로 사람이 변해간다는 건 자동적인 기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능동적인 건 사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오늘날 모든 과학발달은 인간을 너무 수동화 시킨다. 그러다 보니 본래 가지고 있던 생명의 능동성마저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가. 수동이 되면 피동적이 되고 생명력이 퇴화된다. 사람도 물체에 가까워진다. 인간이 기계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기계의 노예가 되는 건 아닌가. 예전엔 인간, 혹은 염치란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염치란 말을 들을 수가 없다. 그건 요즘 너무 염치없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정서가 메말라 가고 땅과 정서적 교류가 사라져 간다. 흙에 농약을 뿌리고 또 화학비료를 쓰는 일은 우리 농촌마저 상업주의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농업이 아닌 상업논리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려는 것이 자본주의다. 정서적으로 염치와 죄의식이 사라진 지금 지옥 밑바닥에서도 이윤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혼령이다. 자본주의로 인한 인간의 기계화는 사람들을 더욱 피동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이 염치없고 인간적 생명적인 것들이 매말라 간다. 피동적인 상태에서는 기계적인 것들이 가속화 되고 그러다 보면 반생명화로 최후의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다.
환경훼손이 심각해져가는 상황에서 생태계가 보존되어야 하고 갯벌이 보존되어야 하는 저변에는 인간들을 위한 것들이 들어 있다. 역사적으로 자유와 평등이란 것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인간을 위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상가도 생명에 대한 자유와 평등을 말하진 않는다. 인간을 위한 자연의 잔인한 학살이란 건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놓고 보면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우리는 먼저 모든 생명에 대한 평등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을 위시해서 모든 생명이 먹어야 산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대로 먹지 않고 다이옥신이나 오존층 파괴와 같은 일로 공포를 갖기 시작한다면 불가능하다. 모든 생명의 평등을 통해 필요한 것들은 취하되 필요치 않은 것들은 놓아줘야 한다. 한국처럼 잔치가 많은 나라도 없다. 골프장처럼 노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춤추고 노래하는데 모든 힘을 쓰는 사이 산은 죽어간다. 부자들도 보리밥 먹고 살던 옛 부자를 배워야 한다. 갑자기 돈 벌어 사치하고 낭비하는 졸부들이 세상에 정신없이 쓴다. 가난이 두렵지만, 흉년들어 배고프고 굶어 죽을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너무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가난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옛날엔 굶어 죽어도 먹을 것이 없어서 였지만 오늘날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가난해 진다.
욕망 때문에 자본주의는 상품을 만들어 파는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자원을 마구 쓴다. 그래서 땅이 죽어가고 언젠가는 썪어 없어지는 것이다. 욕망은 우리들 삶을 죽인다. 전쟁은 가난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을 위해서 한다고 한다. 땅을 빼앗는 예전의 전쟁과 달리 요즘 전쟁은 시장을 빼앗는다. 왜 각국에서 서로 원자탄을 만들려고 하는가. 그건 그들에게 더욱 더 불필요한 것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원자탄 때문에 굶주린다고도 할 수 있다. 욕망이란 불필요한 것이 많아져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역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요즘 여름이면 시원한 옷을 입고 그저 집이 있으면 되었지, 더 이상 많은 것들이 있으면 사람이 가난해지는 것이다.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불필요한 것들 때문에 더욱 더 가난을 두려워하게 된다는 말이다.
남편과 사별후, 이십 년 동안 수예점을 운영했던 박경리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금 불필요한 욕망 때문에 가난을 두려워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문제를 새삼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욕망 때문에 여유로움을 잃고 끝없이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끌려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그건 하루 세끼가 아닌 두끼도 자신에게는 과하다면서 이전 외상값을 갚는 것으로 시작해 산에서 단어채집을 하며 직접 그 맛을 음미하고 다양하게 체험해내며 쓰는 작가의 언어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처럼 자신을 절제하는 일로 작품을 완성하느라 탈진이 되어 있었을 작가의 모습을 통해 감동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건 불필요한 욕망을 비워낸 작가들에게 찾아오는 넉넉한 여유이자 자유로움이었다. 내내 돌아오는 길 꾸벅꾸벅 졸면서 동서울로 돌아왔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던 옥천의 정지용문학관 그리고 듣던 것과 달리 그 강인한 문학정신으로 도인적 세계를 접한 것처럼 강렬했던 이와수씨와의 짧은 만남, 그리고 춘천에 남은 문학의 향기 김유정 문학관과 인상 깊은 전상국 선생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듬성듬성 개발의 바람이 불어가지만 토지문학공원이나 전시관 또 토지문화원처럼 생명의 맥이 뛰고 있는 원주로부터...
첫댓글 * 한편의 소설을 대하는것 같다. 시인의 고향을 둘러보고, 두 분의 작가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그들의 치열함으로 작품이 탄생되어왔고,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왜 작가를 만나려 하는가? 그 울림속으로 들어가 내 자신도 함께 울림을 느끼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지문학공원에 함께 갔더라면 좋았을 걸요. 단구동 집에서 토지를 쓰고 있던 박경리 선생의 그 치열한 문학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억어린 여행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