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한평생 추운겨울에 꽃을 피우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번을 이지러지더라도 그 본래의 성질이 남아 있으며 (月到千虧餘本質)
버드나무는 백번 꺾이더라도 또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 (柳經百別又新枝)“
이는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특히 외교문서를 잘 쓰기로 유명했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야언(野言)≫에 나오는 7언절구 한시입니다.
한시는 물론 당대 최고의 문장가답게 《상촌집》, 《낙민루기(樂民樓記)》,
《황화집령(皇華集令)》 같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으며 위 시조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가
잘 드러나는 시로 퇴계 이황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하지요.
선조임금의 신망이 두터웠으며 장남 신익성이 임금의 셋째딸 정숙옹주와 결혼할 때 좁고 누추한 집을 수선할 것을 권했지만 집이 훌륭하지는 못해도 예(禮)를 행하기에 충분하다며 끝내 기둥 하나도 바꾸지 않은 청렴한 선비로도 이름이 났습니다.
인조의 스승이기도 했던 신흠이 죽자 인조는 손수 장례에 쓰일 물품을 챙길 정도로 스승
신흠과는 돈독한 사이였습니다.
신흠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산마루에 있으며, 무덤과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덤이 산마루에 자리 잡아 발걸음을 하기 쉽지 않지만 힘든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푸르른 하늘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줄뿐더러 고즈넉한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봄날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라고 한 선생의
말을 되새기며 무덤을 오르는 길목에는 빛깔 고운 진달래가 활짝 피어 가신 이의 향기를
물씬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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