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여자애의 내 집 짓기 - 첫번째 이야기
내 귀농경력은 10년이다. 나이는 18이다.
우리 식구는 귀농한지 십년 째다. 그러니까 내 귀농경력도 십년인 셈이다.^^ 중학교를 두 달 다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엄마 아빠 남동생과 같이 오그리복작 지내고 있다. 나대로 공부하고, 산에도 가고, 농사도 조금 지으며 지낸다.
먹는 것과 자는 걸로 하루의 반을; 보내고, 무협판타지랑 헤비메탈음악도 좋아한다. 그렇게 집에서 지낸지 5년째인데, 이번에 귀농통문에서 학교 안 다니는 아이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다른 잡지에 내가 사는 이야기를 원고지로 50매나 썼더니 밑천이 달린다;;
그리고 귀농 식구면, 학교 안 다니고 자연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말 안 해도 알아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요즘’ 지내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나는 지금 ‘내 집’을 짓고 있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산골의 겨울은 밤이 길다. 그 긴 밤을 식구들이 모두 집 안에서 지낸다. 우리 집은 집도 작은데다 한지 문이라서 소리가 집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들린다. 음악을 듣고 싶어도 크게 틀지 못하고, 손님이 오면 좀 불편하다. 그래서 겨울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고.
그래서 겨울에 산에 올라가면, 여기 나무들 사이에 집을 지을까, 저기 커다란 바위틈에 집을 지을까 하는 공상들을 했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해마다 겨울이면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나랑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나보다 돈이 많다는 것? 그래서 엄마는 엄마를 위한 공간-아래채를 지을 터를 닦아 놓으셨다.
지난겨울에도 엄마랑 그 이야기를 했다. 해마다 해오던 이야기지만, 올해는 아래채 터를 닦은 지 일년이 지나, 언제라도 집을 올릴 수 있다 생각하니 더 실감났다.
나는 내게도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엄마 아래채를 지으면 열심히 노가다(;)를 하겠다고 했다. 아래채가 있으면, 혼자 있고 싶은 식구들이 잠깐씩 가 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엄마가 ‘이거 잘못하면 집지어 놓고 너한테 뺏기게 생겼다’고 하셨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물론, 아래채를 지어놓으면 내가 들어가 엉덩이 눌러 붙일 가능성이 컸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아래채’에서 ‘정현이 집’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다.
아래채에 난방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다. 구들을 놓아도 되고, 난로를 놓아도 되고, 보일러를 깔아도 된다. 그렇지만 나는 구들방이 좋다. 내가 선뜻 집을 짓기로 한건, 이제는 내 방에 내가 불 때고 살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6년 전 우리 집을 지을 때, 부모님이 나한테 보일러 방할래? 군불 방 할래? 하고 물어 보셨을 때는 보일러 방을 택했다. 날마다 불 땔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구들방을 택했다. 구들이 우리 고유의 뭐고, 몸에 어떻게 좋고, 이런 건 솔직히 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기름값’이 전혀 안 든다는 것이다. 노인네(?)처럼 기름값에 신경 쓰는 게 좀 뭐하지만, 기름보일러 방에 살면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왠지 기름값(;;) 생각이 들어 불을 팍팍 때고 자질 않았다. 그런데 구들방은 떡 누우면 따끈따끈하고 얼마나 좋은가! (이러니까 진짜 노인네 같은-_-;)
전에는 밤마다 불을 땐다는 것도, 그렇게 불 땔 나무를 해야 한다는 것도 전혀 엄두가 안 났다. 그래서 내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못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 ‘불 때고 살아야 하면, 하고 살겠지 뭐’ 하는 무대포 생각으로 ^^;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지낸지 벌써 5년이다. 그 동안 집 외벽 미장도 해보고, 안방에 불도 때보고, 고추 말뚝 한다고 산을 싸돌아다니고... 하면서 지냈더니, 이제는 내 집이 생겨도 충분히 관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 내 앞에,...
집을 지어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질 못했다. 목수는 많지만 목수마다 자기 색깔과 생각이 있었다. 우리는 쉽게 설렁설렁 작은 아래채를 짓고 싶어 했는데, 이런 우리 생각과 맞는 목수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또 좁은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문제도 마음이 쓰였다. 아무래도 그 목수의 리듬을 맞춰 주어야 하고, 그러면 우리의 리듬이 깨질 테니까.(이러니까 맞는 목수를 구할 수가 있나;)또, 5평짜리 작은 집을 짓는데 목수를 부르는 것도 좀 뭐했다.
그래서 목수를 못 구해 올해 역시 그냥 넘어가나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우리랑 너무 맞는 목수를 구했다! ‘엄마 아래채’에서 ‘정현이 집’으로 바뀌고 난 뒤 나타난 그 목수는...... 바로 우리 아빠였다.
엄마 아래채였을 땐 관심이 없다가 ‘정현이 집’이 된 후 목수를 하시겠다 한 이유는↓
아빠 : 너 시집갈 때 전세금 마련해주는 건 어려워도, 집 짓는 능력은 가르쳐 주겠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일기는 좀 쓰면 좋겠다. 해서 아버지는 부모 노릇을 성실히(?) 하기 위해 목수로 짠! 나서주셨다-내 집짓기 공부라는 조건(?)으로....
우리 아버진 직업 목수는 아니지만, 우리식구 살 집 정도는 지어주실 수 있다. (참고로 나는 엄마/아빠, 어머니/아버지라는 호칭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쉽게 말하면 보통은 엄마 아빠였다가 내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 ^^;)
이래서 덜컥 내 집 짓기가 시작 됐다. 엄마 집이였을 땐 아무 진전이 없었지만 내 집이 되니 집짓기가 바로 시작이 되는… 훗 -_-v
엄마랑 거래(?)를 했다. 나는 엄마에게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기로 하고, 엄마는 내게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 거래를 끝내고 생각해 보니, 내가 실수했다. ‘엄마 집’ 짓는 거였으면, 도와준다는 생색 내고, 집 다~ 지어진 다음에 내가 싹 들어가면 됐는데. 이젠 엄마 홈피도 지어주고, 집 짓는 곳에서 노가다 열심히 하고 생색도 못내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_ㅜ
- 이번 집짓기의 모토 ‘쉽게 짓자!’
이번 집은 식구들끼리 쉽고 재미있게 공부삼아 짓기로 했다. 우리 식구들끼리 하는 거니까 며칠 안에 우~하니 지을 필요도, 누구 사정(?)에 맞출 필요도 없다. 그냥 우리가 살던 리듬대로 늦잠 자고;; 농사도 하면서 짓자고 이야기했다.
집을 짓기로 하고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먼저 집 설계, 집을 두 칸으로 나누었다. 한 칸은 내 방, 한 칸은 식구들이 모두 쓰는 마루방. 내 방은 구들방으로 하기로 했으니까 마루방보다 작게 짓기로 했다.
심벽 집을 지을까, 귀틀집을 지을까. 어느 집이 더 쉬울까 -_-; 그러다가 ‘오비끼’로 귀틀집을 지으면 쉽게 잘 짓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비끼: 8x8 너비의 목재. 보통 귀틀집 목재보다 작고, 사방으로 각이 져 있어 치목을 안 해도 된다.)
-나는 한량 목수다
아침에 집터에 갔다. 집터는 맨땅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어제 저녁에 이야기로는 지붕까지 다 얹었고, 밤엔 들어가서 사는 꿈을 꿨는데, 막상 집터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아빠목수한테 ‘뭐 할까요’하니까 기초다짐을 할 잔돌을 주워 터에 가져다 놓으라 하신다. 그래서 나 혼자 손수레에 잔돌들을 약간 해다가 집터에 부렸더니, 온 가족이 집터로 왔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기초다짐 공사가 시작됐다. 사방 돌아가며 귀틀 벽이 들어갈 자리를 파고 거기에 잔돌과 모래를 넣었다. 역시 내가 나서면 뭔가가 바뀐다(^^v).
바닥 기초 위에 한 자정도 높이로 돌이나 벽돌을 쌓는 것을 고막이 공사라 한다. 쉽게 하려고, 시멘트벽돌로 쌓기로 했다. 벽돌을 올리는데도, 말뚝을 미리 박아 수직수평을 잡고, 이것저것을 계산해야 한다. 왠지 멍해지는 게 나는 목수체질(?)은 아닌 것 같다. 노가다는 머리가 편하고 운동도 되고;;
이제 벽돌을 쌓을 차례. 시멘트 벽돌이니까 시멘트 매지를 넣어야 한다. 시멘트 : 모래=1:3 비율로 섞고 물 섞었다. 시멘트 개는 일을 하는데, 이게 쉬운 게 아니구나.... 남이 하는 걸 옆에서 보면 쓱쓱 쉽게 뒤집는 걸로 보이는데....
목수,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노가다? 아무나 ‘못’ 한다. =_= 예전에 누가 나보고 너는 노가다 체질이라고 놀렸다. 하지만 이번에 집 지으면서 느꼈다. 나는 목수 체질도, 노가다 체질도 아니다. 한량 체질이다 ^^;
엄마 아빠 나 이렇게는 벽돌을 쌓고, 동생은 돌아다니며 삽으로 시멘트를 떠다 준다. 이렇게 벽돌을 쌓아 올리는데, 엄마 아빠가 두 단 쌓으면 나는 한 단을 쌓고 있다(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디까지나 내가 꼼꼼히 해서 그런 거야!’하고 생각했다.
세 단을 쌓고 나서 쉬었다가 식구가 다 같이 감자를 심으러 갔다. 그런데 여기서도 엄마 아빠가 나보다 두 배 빠르다. 역시 나는 한량체질이다.
아버지는 저녁에 내게 ‘흙과 통나무로 짓는 생태건축’, ‘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기’라는 책을 주시고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집 짓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그래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묻는 식으로 집을 지어나갔다.
-나무들의 등장~
고막이를 다 쌓았다~ 이제 나무가 등장할 시간(?)이다. 아침에 식구 모두 차를 타고 전주에 갔다. 모자를 쓰고 주먹밥을 싸가지고. 나무를 고르러 가는 길이다. 중고 목재상에 가서 목재를 직접 골라가며 샀다.
목재를 고르러 온 사람들이 부부랑 애들 둘인걸 보고, 그곳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더라.^^; 동생은 쌩쌩 잘 달리면서 목재를 나른다. 나는 여기서 부딪히고 저기서 긁히고 ㅜ.ㅜ
목재가 왔으니 이제 ‘하방(下枋)’이라는 걸 놓는데, 엄마가 나보고 ‘네 방 하방은 네가 놔’ 하신다;; 아빠까지 합세해서, 엄마를 성원한다. 우리 엄마아빠는 이럴 때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결국 얼떨결에 ‘내 방은 내가’ 하기 시작했다.
하방을 주먹장 맞춤으로 땄다.(이름이 너무 재밌다^^) 책에 나온 주먹장 맞춤 모양을 보고, 본을 만들려 했는데, 책에는 주먹장 맞춤 모양의 비율(?)이 나오지 않았다. 대충 하겠다는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귤 상자를 뜯어서 본을 하자고 하시며 귤 상자를 가져 오셨다.
상자를 뜯는 순간, 상자가 주먹장 맞춤 모양으로 조립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주먹장 맞춤 비율을 살펴보니 밑 부분이 1:1:1이였다. 이걸 따라 상자를 잘라서 (사진처럼) 본을 만들었다.
←참고도;
그런 다음 하방으로 쓸 나무를 가져다가, 따내야 할 부분에 본을 대고 연필로 선을 그었다. 그 선을 따라 톱질을 하고, 모양대로 끌로 땄다. 끌로 따내는데 겁이 난다. ‘잘못하다가 ‘툭!’ 하고 나뭇결을 따라 많이 날아가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연필 선을 그대로 남기고 땄다. (내 안에 이렇게 소심한 성격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하방 작업이 끝났다. 이제 집터에 가져가서 얹어야 하는데, 하방 나무를 보니 서로 끼워 맞춰지기엔 너무 덜 따졌다. 결국 다 다시 따야 했다. 그래도 꼼꼼히 한 덕인지 딱 들어맞는 뿌듯함을 누렸다.
-문얼굴 짜기~
이제 문얼굴을 짜야 한단다. (문얼굴: 문을 달거나 끼울 수 있도록 문의 양옆과 위아래에 이어 댄 테두리, 문틀) 내 방에는 문이 두 개 들어간다. 방문과 붙박이장 문. 그리고 창이 두 개 들어간다.
하방을 놓을 때 너무 여유를 줬던 것이 떠올라 벽장 문얼굴은 문에 딱! 맞게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벽장문은 예전에 우리 집 지을 때 쓰고 남았던 문으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문의 크기를 잴 때 집에 방문 크기를 재서 문얼굴의 크기를 재단(?)했다. 문얼굴을 다 짜고 실제 쓸 문을 찾아 끼워보니, 이 문이 5년 동안 늘어나 있는 것이다;; 결국 벽장문 문얼굴을 0.7cm씩 대패로 날려 1.2cm 정도 늘어난 문에 맞추어야 했다. 처음 전기 대패를 손에 잡아보는데 0.7cm를 반도 채 따기 전에 이마에 땀이 나고, 어깨가 다 아팠다.
-내가 멋지게 느껴질 때....
여기서 잠시 공구 다루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산골에서 10년씩 살다보니 웬만한 공구는 다 다루어 봤다. 하나씩 배워서 내가 공구를 많이 다룬다는 걸 못 느끼고 있었는데,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내가 못 다루는 공구가 없더라 ^^v 톱질은 기본이고, 끌질, 도끼질, 자귀질, 흙손으로 미장까지..... 그래서 아래채를 지으며 특별히 공구 다루는 법을 배우진 않아도 됐다.
하지만 전기 공구는 좀 특별하다. 힘도 좋고 사람이 쉽게 못하는 일을 해준다. 나같이 팔이 가는 여자아이도 집을 짓게 해주니까. 하지만 속도도 빠르고 위협적이라 아무래도 긴장이 된다. 전기 공구를 다루면 왠지 내가 멋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애’가 드릴을 윙 돌리는 모습, 왠지 폼 나는 듯;
-문얼굴 세우기
내 손으로 끌 작업한 나무를 하방에 가져다가 방문 문얼굴을 세웠다. 식구들이 다 와서 잡고, 수평수직 맞추고, 각목으로 고정을 시켰다. 그리고 한발 짝 떨어져서 앉아서 문을 통해 풍경도 보고, 경치 좋다 감탄도 하고, 사진도 찍고, 괜히 들락날락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지막으로 벽장문을 세우려는데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것 같다. 벌써 4월 말이구나..... 좀 하다보니, 입 안에 갈증이 나다 못해 식도가 마르는 느낌마저 든다. ‘윽 물을 미리 가져다 놓을 걸~’ 하고 속으로 소리치면서 문을 세웠다. 사방으로 수직수평을 잡고, 받침대를 세워 문을 고정했다. 끝났다!
집으로 달려가는데, 시원~한 마실게 땅긴다. 기왕이면 알코올이 함유된;; 그런데 우리 아빠는 알코올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땅기시는 바람에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창문 문얼굴도 다 짜놓았다. 이제 귀틀이 올라갈 차례지만, 원고 마감을 위해 여기까지만 쓴다. 글엔 못 썼는데, 이웃들이 도움말도 주고, 공구도 빌려줬다.
아직 아래채는 문얼굴만 올라갔는데, 나를 보는 사람마다, 혹은 집 짓는단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정현아, 나는 하룻밤 재워주겠지?’ 한다. 집 다 지어지고 나서 내가 며칠이나 내방에서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귀농통문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