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저녁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마침 오랜만에 만나는
두 분 집사님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으므로
전화를 받고 곧장 갈 수는 없었는데
청주 노동·빈민·통일 운동의 큰 지도자인
정진동 목사님께서 위중하시다는 전화였습니다.
이튿날은 아침나절부터 많이 바빴는데
제가 소장직을 맡고 있는 환경교육센터 '초록별'의 상위 기관인
청주·충북 환경운동연합에서 해마다 하는
'환경인의 밤' 행사 준비 중의 하나인
충북권 10대 환경뉴스 선정과 환경대상 심사가 있어
그 준비 관계로 아침나절을 다 쓰고
늦기 전에 가봐야 한다고 서둘러 성모병원엘 갔습니다.
정목사님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하여 겨우 목숨을 지탱하고 계셨는데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한참동안 그분의 발을 만지다가 돌아왔습니다.
발을 만지는 동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가장 먼저는
그 발이 우리 지역의 아픔과 어려움이 있는 자리라면
어디든 내닫던 바로 그 발이었다는 생각이었고,
이어서 떠오른 생각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목사로 살면서
그분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는 자각이 한 축을 이루었고
다른 한 축은 몸담고 있는 충청노회(분리 되기 전의 충북노회)가
본디 우리 교단이었던 정목사님을
정치적인 이유가 분명해 보이는데, 다른 것을 구실로 하여
제명처리하였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신학을 하면서
내가 목사가 되고 어느 정도 입지가 생기면
정목사님을 사면하여 복권시켜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안수를 받고 지내면서 분위기를 보니
그분을 사면·복권시켜드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내가 뒤따라 제명당하는 것이 훨씬 빠르겠다는 판단이 서는 것이
우리 노회의 분위기였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며
그 분의 일이 좋아 마음 속으로 존경의 염을 지니고 있으면서
일이 있을 때 만나기도 하면서
늘 한쪽에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놓지 못하고 대하곤 했다는 것,
그리고 지역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연세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앞장서서 호령하시던 모습까지
그분의 발을 만지는 동안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2005년 1월에 높은 혈압이 말썽이 되어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
약 3년 여의 세월 동안 몸져 누우셨다가
마침내 주님의 부름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뵙고 온 것이 한낮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은 것이 그 날 오후 5시 30분,
우리 노회의 이기녕 목사님 모친상 조문을 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조문 마치고 회의 하나 하고 나서
돌아가신 뒤 성모병원에서 의료원 영안실로 옮기셨음을 들은 대로
의료원으로 가서 조문을 하고
이어 다음 날 입관예배를 인도하는 시간에는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슬픔으로
모처럼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저런 나흘 간의 장례 일정따라
오늘 오전 상당공원에서 노제를 드린 다음
광주 망월동 민주화추모공원을 향해 떠나시는 것까지 보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정진동 목사님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운동판에 있다고 하지만
그분이 하시는 것과는 다른 것이 제가 생각하는 운동방향이라는 것이
늘 생각하는 입장이었고, 또한 그런 방향에서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 가끔씩 겹치는 부분에서 마주칠 때마나 악수나 나누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이 목사라고 하는 사실이
청주 지역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써 늘 든든한 것이 사실이었고
위에 적은 것처럼
나흘의 과정을 거치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되짚어 보았는데
오늘의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언급을 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가셨으므로 우리 노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빚을 진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이 한 번이라도 빚을 내놓으라고 하신 일이 없으시니
앞으로 또한 영원히 그러할 터이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한 시대를 목회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침체 일로를 걸으면서
여기서 벗어날 길을 도무지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도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교회 성장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교세의 위축과 교회의 쇠퇴는 피할 수 없는
서글픈 운명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교회성장학적 측면에서 많은 분석들이 있었을 줄 알지만
결국은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다는 말로 요약하면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답일 것입니다.
그 동안 교회는
교회 안의 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의 세(勢)를 확보하고 있었으므로
나름대로의 누릴 몫도 얼마든지 눈만 밝으면 찾을 수 있었고
십자가의 신학은 나날이 약화되고
영광의 신학만이 판을 치는 곳이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없이는 부활도 없는데
부활의 영광만 말하고 십자가의 고난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현실,
그것은 바로 고난받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기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이 바로 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진동 목사님은 중요한 기독교운동가이셨는데
오늘 우리 교단이 그런 이들마저 외면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판단을 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음,
그러니 지금이라도 관점을 바꾸는 일이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두운 곳에 교회가 희망인 것은
밤중에 네온 십자가를 켜는 것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사실,
신음소리가 나는 곳이면
그 어디에나 찬송가 또한 들리고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대와 역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목사님을 보내고 돌아와
제 다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 글을 통하여 섣부른 것들이 드러났다면
그것은 모두 제 부족함의 소치로 돌립니다.
그런 부분들이 눈에 띄면 질책해 주시기 바라며
모든 꾸지람은 주님의 선물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 이 글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충청노회 홈페이지'에 올리기 위해 쓴 글입니다.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생략하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기독교운동을 글을 통해 펼치고자 하는 내 생각들을 담으려는 고민이 있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