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게-'총각(總角)'이란 말은 중국의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어린아이의 머리를 양쪽으로 모아서 모가 나게 맨 것을 말한다. 총각은 오늘엔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란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이러한 뜻의 총각이 붙은 말에 '총각김치'가 있다.
'총각김치'를 사전들은 '총각무로 담근 김치'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총각무'란 말이나 '총각김치'란 말은 적어도 그 말을 만든 심리적 과정에서는 같은 출발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처녀림(處女林)이 있대서 꼭 총각림(總角林)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총각김치가 있으면 처녀김치도 있어야 한다고들 더러 익살을 부리기도 하는 이 '총각김치'는 사실은 '청각(靑角)김치'를 그렇게 잘못 쓰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청각을 넣은 김치여서인지, 그 생긴 모양이 크지도 않고 꼭 고만고만한 데서 붙여진 이름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총각김치'는 아낙네들이 김치를 담그려고 씻으면서 매만지는 사이에 엉뚱하게 아니 실감나게 연상되는 어떤 느낌에서 붙여진 이름이란 복사빛 해석쪽으로 기울어가는 것만 같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말이다.
'총각김치'처럼 그 어원을 따져보면 웃음을 띠게 하는 말에 '멍게'가 있다. 독특한 맛으로 우리들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멍게'는 우리 나라 남쪽의 몇몇 지방에서만 식용하였는데 6·25 이후부터 전국에 퍼졌다고 한다. '멍게'는 지금은 '우렁쉥이'와 함께 표준어로 대접받고 있지만 아직도 사투리 냄새가 나는 말이다.
1960년대에 서울의 어느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식점의 차림표에 '멍게' 한 접시 얼마, '우렁쉥이' 한 접시 얼마라고 씌어 있기에 어느 손님이 물었다. "주인장, 멍게하고 우렁쉥이는 같은 것인데 왜 두 가지를 다 써 놓았습니까?", "어떤 사람은 멍게를 찾고 어떤 사람은 우렁쉥이를 찾아서, 우리 집에는 두 가지가 다 있다고 자랑하려고 둘 다 써 두었습니다"란 주인의 답변에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렸다는 얘기다.
아마도 '멍게'를 찾은 사람들 중 거의 대부분은 부산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었을 것이다.
민간 어원설에 지날지 모르나 이 '멍게'의 어원이 흥미롭다. 국어 사전을 보면 '끝에 가죽이 덮인 남자 어른의 ××'로 풀이된 '우멍거지'란 말이 있다. 포경 수술의 '포경(包莖)'의 순 우리말이다. '멍게'는 이 '우멍거지'에서 온 말이란다. '멍게'의 생김새가 똑 '우멍거지'와 비슷한데 차마 그대로 쓸 수가 없어 가운데 두 자를 떼어 쓴 '멍거'에서 왔다는 것이다. 술좌석에서 웃음 속에 풀이하는 '멍게'의 어원이다.
사실 시장들에서, 까놓지 않은 멍게들이 불그스름한 빛을 띤 채로 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양을 볼라치면 남자의 어느 부분이 연상되기도 한다. '멍게'란 말은 이를 파는 사람들, 특히 아줌마들이 지어낸 이름으로 생각되는데, 그러고 보면 '멍게'란 말은 '총각김치'란 말과 그 이름을 지은 연유가 비슷해진다.
그러면 '멍거'가 왜 '멍게'가 되었으며, 또 '멍기'라고들 할까.
천지뻬까리-경상도 말의 특징 중의 하나에 모음추이(母音推移·vowel shift) 현상이 있다. 곧 경상도에서는 '파'를 '패'라 하고, '고구마'를 '고(구)매'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으로 '멍거'가 '멍게'가 된 것이라 하겠다. 경상도 방언의 특징 중에는 'ㅔ'를 'ㅣ'로 발음하는 현상도 있다. 곧 '네(you)'를 '니'로 발음하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으로 '멍게'는 '멍기'로 변한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면 '멍게'는 '우멍거지'의 '멍거'가 '멍게'로 된 것이 '멍기'로도 발음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경상도 방언 중 특이한 말로 '천지뻬까리'가 있다.
어느 지방 사람이 경상도 사람에게 물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쓰는 '천지뻬까리'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건 '쌔비리따(쌔비릿다)'란 뜻이지예."
"그럼 '쌔비리따'는 무슨 뜻입니까?"
"'억수로' 많단 말 아입니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는 얘기가 있다.
'억수로'는 '억수'에서 온 말로 보인다. '억수'는 '물을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비'로 '억수로'는 '억수처럼' 곧 '대단히 많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상도 방언이다.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민중서림, 1982)을 보면 '쌨다'를 '쌓이어 있을 만큼 퍽 흔하다'로, '쌔고쌨다'를 '아주 흔하다'로 풀이하고, '쌔버렸다'는 '쌔고쌨다'의 경상도 방언이라 했다. '새비리따'는 이 '쌔버렸다'가 변한 말로, 이는 경상도의 특별한 말이라 하겠다.
이 두 말들보다 더욱 경상도 말 냄새가 짙은 말로 '천지뻬까리'를 들 수 있다. 우리들 인사말들 중에는 밥 먹는 일을 주제로 한 인사말이 많다. 어떤 이는 이러한 인사말이 지난날의 가난한 삶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천지뻬까리'란 말도 양식이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긴 말이 아닌가 여겨진다.
'낟가리'를 경상도에서는 '뻬까리'라 하는데, 이는 '볏가리'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에서 'ㅕ'는 'ㅔ'로 곧잘 변동한다. '한 병'을 '한 벵'이라 하는 것이 그 예다.
'천지뻬까리'를 더러 '천지삐까리'라고도 하는데 이는 'ㅔ'가 'ㅣ'로 변동한 것이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이란 뜻 외에 '서울엔 장사가 천지다'에서 보듯 '무척 많음'이란 뜻도 있다. 그러고 보면 '천지뻬까리'는 '무척 많은 볏가리'란 뜻이라 하겠다.
한글학회 부산지회장·여명중 교장